전화의 나날로부터 60여년 -력사의 땅 원화리와 더불어 길이 전해지는 은혜로운 사랑의 이야기-

주체109(2020)년 3월 24일 로동신문

 

사연도 많고 뜻도 깊은 력사의 땅 원화리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는 이태전 11월에 있은 가슴뜨거운 일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그날은 평원군 원화협동농장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명예농장원으로 모신 63돐을 3일 앞둔 날이였다.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신 그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평안남도당위원회에서 올린 문건을 마주하게 되시였다.원화협동농장에서 결산분배와 관련하여 명예농장원이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 분배몫을 올린다는 내용의 문건이였다.

전화의 나날 원화리농민들과 함께 밭고랑도 째시고 삼태기로 거름도 내시며 씨앗을 묻으시였으며 전후 협동조합이 조직되였을 때에는 만면에 해빛같은 미소를 지으시며 자신께서도 이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겠으니 함께 농사를 잘해보자고 하신 어버이수령님!

최고인민회의 제8기 대의원선거의 날인 어느해 11월 자신께서도 원화협동농장의 명예농장원이라고, 그러니 원화협동농장은 다른 협동농장들보다 농사를 더 잘 지어야 한다고 하시며 도당위원회에서 잘 도와주어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

우리 조국에서의 수령과 인민의 위대한 단결, 그 빛나는 력사의 축도이며 증견자인 평원군 원화리,

경애하는 우리 원수님의 심중에 만단사연과 더불어 참으로 깊이 간직된 력사의 고장이였다.

 

* *

 

어버이수령님께서 원화리농민들과 첫 인연을 맺으신 날은 가렬처절한 전화의 나날이였다.

키낮은 울바자에 달린 사립문은 열려져있었으나 집주인을 깨우지 못하게 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검부레기들이 흩날리는 쌀쌀한 한지에서 새날을 맞으시였다.이제 날이 밝으면 또 씨붙임전투를 해야 할 마을사람들을 다문 얼마간만이라도 더 재우려고 마음쓰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그날 종일 농민들과 승리의 씨앗을 뿌리시며 폭탄구뎅이도 메우고 곡식을 심어야 하며 빈땅같은것도 잘 리용하여야 한다고, 귀중한 땅을 한치도 묵이지 말고 모조리 경작함으로써 더 많은 알곡을 생산하여야 한다고 일깨워주신 어버이수령님,

쉴참에는 울퉁불퉁한 논머리에 스스럼없이 앉으시여 로인들에게 담배도 권하시며 농촌경리를 발전시키려면 관개공사를 비롯하여 할 일이 대단히 많은데 농업협동조합을 조직하고 농민들이 하나로 뭉쳐 일한다면 많은 일을 성과적으로 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농업협동조합을 조직해야 농민들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개선할수 있다고, 협동조합을 조직하고 단합된 힘으로 마을을 잘 꾸려나가면 원화리는 오곡이 무르익고 백과주렁지는 아름다운 고장으로, 일하기도 좋고 살기도 좋은 고장으로 될것이라고 가르쳐주신 어버이수령님,

전후 사회주의협동화의 장엄한 포성과 함께 원화리에 협동조합이 태여났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쁨에 넘치시여 조합원명단에 자신의 존함을 써넣도록 하시였다.

지금으로부터 35년전 4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뵈옵게 된 자리에서 어느 한 나라의 농업생산협동조합 관리위원장일행은 자기들이 어느 협동농장을 참관했을 때 그 농장의 농장원명부에 주석님과 김정일동지의 존함이 있는것을 보았다고 수령님께 말씀올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농장이 바로 평원군에 있는 원화협동농장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전후 우리 나라에서 농업협동조합이 한창 조직될 때 평원군 원화리에 나가 그곳 조합원들과 담화하면서 나도 이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겠으니 함께 농사를 잘해보자고 하였습니다.그때부터 나는 원화농업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등록되였습니다.》

찾으실 때마다 원화리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업협동화의 본보기가 마련된 영광의 땅이라고, 나도 여기 조합원이라고, 우리 함께 농사를 잘해서 원화협동농장을 발전시켜보자고 말씀하시며 농산계획도 친히 세워주신 어버이수령님,

참으로 원화리농민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신 우리 수령님이시다.

갓 조직된 조합에서 운수수단이 부족되여 애로를 느끼고있다는것을 아시고 여러필의 말과 달구지를 보내주시고 자신께서 저택에서 보시던 수많은 농업기술도서와 함께 리용하시던 라지오까지 보내주신 어버이수령님,

전후 원화리농민들이 추워할세라 수백벌의 솜옷도 마련해주시고 그들의 세간을 불구어주시려 수백마리의 양, 오리, 닭, 돼지를 보내주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어느해 6월 어버이수령님께서 또다시 원화협동농장을 찾으시였다.

전후에는 이 협동농장에 폭탄구뎅이, 금점구뎅이들이 많았는데 그것을 메우고 토지를 멀끔하게 정리해놓으니 아주 좋다고, 그동안 원화협동농장에서 일을 많이 하였다고 원화리가 걸어온 길을 감회깊이 추억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원화리는 내가 전후에 농촌을 지도하면서 농업협동조합을 처음으로 무은 곳입니다.

그때 원화리에 좋은 로인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퍽 늙었을것입니다.그때 내가 남편이 적들에게 피살된 한 아주머니의 아들을 만경대혁명학원에 보내주었습니다.그 아주머니의 아들은 만경대혁명학원을 졸업하고 인민군 어느 부대에서 군관으로 복무하고있습니다.아마 그 아주머니도 이제는 늙었을것입니다.》

그 녀인이 아직 농장에서 일하고있다는것을 아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더없이 기쁘시여 전쟁시기 원화리를 지도할 때 찍은 사진이 우리 집에도 있다고 기쁨어린 어조로 말씀하시였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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