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문 : 일본의 독도강탈야망의 반동성

주체110(2021)년 2월 22일 《우리 민족강당》

 

령토강탈야망에 들뜬 일본반동들의 파렴치성이 극도에 달하고있다.

얼마전 일본은 독도의 령유권이 마치도 저들한데 있는것처럼 세계여론을 오도할 목적밑에 홈페지까지 개설하고 아무러한 타당성도 없는 자료라는것들을 들어가면서 독도강탈야망을 또다시 드러내놓았다.

최근에 들어와 우심해지는 일본반동들의 독도《령유권》론은 력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하나의 망설이며 가장 악랄한 령토강탈야망으로 일관된 반동적인 침략론리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독도는 그 누구도 침해할수 없는 우리 나라의 신성한 령토입니다.》

일본의 독도《령유권》강탈야망의 반동성은 첫째로, 그것이 조선에 대한 가장 악독한 식민지지배정책의 직접적산물이라는데 있다.

근대시기 일본의 해외침략의 첫 대상으로 된것은 조선이였으며 우리 나라는 20세기초에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되였다. 독도문제는 바로 이러한 일본의 조선침략정책의 발현이다.

지금까지 일본이 들고나오는 독도《령유권》주장의 《신빙성》근거는 1905년 2월 22일에 발포한 《시마네현고시 제40호》이다.

《시마네현고시 제40호》가 조작공포된 전과정을 따져보면 그것이 철저히 조선에 대한 침략책동의 한 고리였다는것을 잘 알수 있다. 문제의 이 공문서가 조작되기 5년전인 1900년에 조선봉건정부는 근대법적요구에 기초한 법령(칙령 41호)으로 독도가 울릉도에 속한 우리 나라 령토임을 명백히 재확인하고 《관보》(정부기관지)에 그 내용을 공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는 이러한 사실을 고의적으로 외면하고 독도가 저들의 령토임을 주장하는 《시마네현고시 제40호》라는 낮은 급의 지방행정기관공시문을 발포하였다. 여기에는 그들나름의 음흉한 타산이 있었다.

이 시기 일제는 조선에 대한 독점적지배권을 둘러싸고 짜리로씨야세력과 정치군사적으로 첨예한 대립상태에 있었다. 이로부터의 출로가 짜리로씨야를 군사적으로 제압하는데 있다고 판단한 일제는 1904년 2월 8일 침략적인 로일전쟁을 도발하였으며 그해 2월 23일에는 조선봉건정부를 위협공갈하여 《한일의정서》를 강압적인 방법으로 체결하였다. 6개 조로 된 이 《협정》에서는 전쟁기간 일본군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우리 나라의 임의의 지역을 군용지로 사용할수 있다는것을 못박았으며 그러한 지점의 하나로서 울릉도, 독도도 지정되였다. 뒤이어 일제는 울릉도와 독도에 해군망루를 건설하며 독도주변에 해저전선을 늘여 조선반도 북부와 울릉도-독도-일본령토를 련결하는 전선망가설을 계획하였다.

이렇게 되여 당시까지 일본인들에게 어로적《가치》로만 인정되여오던 독도가 일약 군사적요충지로 되였으며 일제는 그 지정학적가치가 새롭게 부각된 독도를 아예 일본령토로 편입하려는 야망밑에 해군성, 외무성 등 여러 성들을 발동하여 탈취작전을 벌렸다.

교활한 일제는 독도탈취에 정부가 공개적으로 나서는 경우에 일어나게 될 국제적물의를 피하기 위하여 이미 독도수역에서 어업활동을 벌리고있던 민간인어로기업가를 추동하여 《어업독점권》을 신청하게 하고 그것을 농상무성, 해군성, 내무성, 외무성 등이 《심의》하도록 하였다. 1905년 1월 10일 그 《청원》을 접수한 일본내각은 같은 해 1월 28일 독도를 일본령토로 편입한다는것을 결정하고 2월 15일에는 내무대신《훈령》으로 시마네현지사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고 현내에 고시할것을 지시하였다. 이렇게 되여 1905년 2월 22일 《다께시마편입》에 대한 《시마네현고시 제40호》가 조작되였으며 오끼도로부터 서북쪽으로 85n.mile이나 상거하고있는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시킨다는것과 섬을 《다께시마》로 부른다는것을 내용으로 하는 고시문이 《현보》에 게재되고 이 사실이 2월 24일부 《산잉신붕》에 자그마한 보도기사로 실렸다.

이러한 음모에 뒤이어 일본 해군성은 1905년 7월 25일 독도에서 망루설치작업을 시작하여 같은 해 8월 19일에 완성하고 6명의 인원까지 배치하였다. 또한 10월 8일에는 독도와 울릉도를 련결하는 해저전선을 늘이였으며 11월 9일에는 독도와 일본본토를 련결하는 해저선부설을 완료하였다. 이 모든것은 일제가 로일전쟁을 도발하고 우리 나라를 군사적으로 강점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였으며 국제사회계도 조선봉건정부도 전혀 모르게 진행된것이였다.(전문 보기)

 

[Korea Info]

 

Leave a Reply

《웹 우리 동포》후원 안내
カレンダー
2021年2月
« 1月   3月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最近の記事
バックナンバー
  • 2024
  • 2023
  • 2022
  • 2021
  • 2020
  • 2019
  • 2018
  • 2017
  • 2016
  • 2015
  • 2014
  • 2013
  • 2012
  • 2011
  • 2010
  • 2009
  • 2008
  • 2007
  • 2006
  • 2005
  • 2004
  • 2003
  • 2002
  • 2001
  •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