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교육중시정책을 관철하는 길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참된 교육자 -개천시 천리길초급중학교 교원이였던 오철룡동무에 대한 이야기-

주체110(2021)년 9월 25일 로동신문

 

얼마전 개천시 천리길초급중학교에서는 후대교육사업에 심장의 마지막박동까지 다 바친 한 교원의 고결한 생에 대하여 꼭 소개해줄것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내여왔다.

우리는 이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몇해전 2월 어느날, 수업도중 각일각 생이 꺼져가는 속에서도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모아진 칠판에 어려운 수학문제풀이의 묘리를 다 쓰고나서 두손으로 교탁을 꽉 그러잡은채 숨을 거둔 오철룡교원,

그는 어떤 사람이였는가.어찌하여 그가 생을 마친지도 여러해가 지났건만 개천시의 일군들과 학부형들, 제자들은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하여 뜨겁게 추억하는것인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교원들은 누가 알아주건말건 깨끗한 량심과 성실한 노력으로 한생을 바쳐 교육초소를 지켜가는 참다운 애국자, 충실한 혁명가가 되여야 합니다.》

우리 당은 조국의 미래인 후대들을 전적으로 교원들에게 맡기고있다.

교단에서 순직한 개천시의 평범한 교원이 남긴 생의 자욱은 교육을 우리의 미래를 맡아줄수 있는 교육으로 만들데 대한 당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나가는데서 이 땅의 모든 교육자들이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성스러운 교단에 서야 하는가를 생동한 화폭으로 보여주고있다.

 

교원의 자격

 

오철룡동무가 교단에 처음으로 선것은 나라가 어려운 시련을 겪던 1990년대말이였다.

당시 20대의 젊은 나이에 교원생활을 시작한 그에 대하여 눈여겨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교원양성소를 졸업하고 몇해후에 평성사범대학과정안을 통신교육으로 마친 그가 후날 높은 실력을 소유한 교원으로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

그는 교단에 설 때마다 수십쌍의 맑은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는것을 더없는 긍지로 여겼다.자질향상을 위해 애쓰다가 쪽잠에 든 순간에조차 그는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영웅이 되고 박사가 된 꿈을 꾸군 하였다.

그러나 그 긍지도, 가슴부푸는 꿈도 한순간이였다.수업시간에 학생들의 물음에 확신성있는 대답을 주지 못해 난처할 때가 있었던것이다.정말이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싶은 심정이였다.

(신성한 교단에 세워준 당의 신임에 보답하려면 시간을 아껴가며 학생들의 맑은 눈동자앞에 떳떳할수 있는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그는 경험이 풍부한 교원들을 찾아가 스스로 학생이 되여 수업을 받군 하였다.그러자니 밤잠도 잊어야 했고 먼길도 때없이 걸어야 했다.어떤 날에는 하루수업이 끝난 후 왕복 60리가 넘는 먼곳에 가서 년로보장을 받은 교육자에게서 허심하게 배우기도 했다.

《학생들에게 하나를 배워주어 그들이 열, 백을 깨닫게 가르친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네.그러나 교육자라면 마땅히 교단에 서있은 년한을 자랑할것이 아니라 한명이라도 더 많은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네.》

뭇별을 동무삼아 돌아가는 그를 동구밖까지 나와 바래우며 오랜 교육자가 한 이야기가 준 충격은 컸다.

(당에서 우리 교원들에게 학생들을 전적으로 맡기고있는데 어찌 교단에 섰다고 하여 교육자라고 자부할수 있겠는가.모든 학생들을 나라에 필요한 기둥감으로 키워내야 진짜교육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학교에서 짜놓은 시간표에 따라 과목수업시간이 되면 자연히 서게 되는 교단이 선뜻 올라설수 없는 산마루마냥 아찔하게 높아보였다.

당의 숭고한 의도를 받들자면 교육자의 완벽한 실력을 갖추어야 했다.그러자니 시간, 시간이 절대적으로 모자랐다.시에 새로운 참고서가 나오면 제일먼저 구하여 애독하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거기에 나오는 모든 문제들을 제가 먼저 다 풀어보는것이 그의 습관으로 굳어졌다.문제를 푼 다음에도 한가지 방식이 아니라 여러가지 방식으로 풀어보면서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배워주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 교장은 자정이 퍽 넘어 학교청사를 돌아보다가 한 교실에 불이 켜져있는것을 보게 되였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려던 교장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텅 빈 교실에서 오철룡교원이 열심히 칠판에 수식을 쓰고 설명을 하면서 모의수업을 하고있는것이 아닌가.

사연을 물어보니 그날 오후에 학생들이 공을 차며 머리쉼을 하자고 너무 조르기에 과외학습시간에 한시간정도 운동장에서 축구경기를 조직했다는것이였다.흠뻑 땀을 흘리며 학생들과 어울려 축구경기를 할 때까지는 즐거웠지만 지금은 어쩐지 마음에 납덩이를 매단것 같다는것이였다.

《오늘 밑진 한시간을 봉창하자면 래일의 교수밀도를 높여야겠기에…》

그 한시간동안에 배워주지 못한 지식을 교육자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공백으로 생각하며 다음날에는 더 깊이있게 가르쳐주고싶어한 교육자,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가운데 단 한명이라도 쭉정이가 생길세라 교수준비에 피타는 정력을 기울인 불같은 정열가가 바로 그였다.

오철룡교원은 결코 타고난 수재형의 교육자가 아니였다.하루 두시간정도 자며 피타게 자습을 한 노력가형의 교육자였다.학교에서 퇴근한 후에도 매일같이 새벽 4시까지 집에서 수학문제를 푸느라 고심하면서도 잠자는 시간이 아까와 그는 늘 입버릇처럼 외웠다.

《사람이 자지 않고 살수는 없을가? 하루가 한 240시간쯤 되면 좋겠어.》

교원인 자기가 높은 실력을 갖추지 못해 인재육성이 더디여지는것 같아 늘 마음속죄스러움을 느끼는 그였다.그것을 앞으로 열배, 백배로 봉창하자고 초불처럼 자신을 불태웠다.

그는 어쩌다 몸이 불편할 때에조차 집에 누워있는것을 딱 질색하였다.

몇해전 심한 질병을 앓은 후과로 근 1년동안은 마비가 온 왼쪽다리때문에 학교로 출근하기 불편해한적이 있었다.여느때면 10분에 갈 거리를 한시간나마 걸어서 학교로 가자니 막 안타까왔다.그러나 자기가 불편하게 걷는 모습을 학생들이 보면 그들의 마음속에 그늘이 생긴다며 어뜩새벽에 아무 일도 없는듯이 나가군 했다.

보다못해 안해인 박경숙녀성이 애원했었다.

《여보, 다문 며칠간이라도 집에서 안정하세요.당신이 매일 출근하지 않는다고 누가 탓하겠나요?》

《교육자의 시간은 인재를 키우는데 바치는 시간이요.거기에 바칠 시간을 자기를 위해 소비한다면 그건 벌써 교육자가 아니지.여보, 교단에서 학생들의 호기심어린 눈빛을 마주보는것이 나에겐 제일가는 명약이라오.》

자기 직업에 대한 애착이 강렬해질수록, 교단을 지켜선 자기가 인재농사를 책임졌다는 자각이 점점 커질수록 그만큼 시간을 귀중히 여겼고 제한된 시간에 교수효과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더 품을 들였다.만일 한명의 학생이라도 교수내용을 잘 리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교수합평회에서 우수하다고 평가된 교수안도 그날 밤중으로 다시 만들군 하였다.

언젠가는 수학교원인 그가 국어분과장을 찾아가 열심히 문학수업을 받은적도 있다.국어분과장이 전공과목을 바꾸려 하는가고 묻자 그는 어줍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 제자들중에 수학도 잘하고 문학적재능도 있는 한 학생이 있는데 난 아직 그를 가르칠만 한 자질을 갖추지 못해서 그럽니다.절름발이교원이 되여서야 학생들이 지켜보는 교단에 어떻게 나서겠습니까.》

제자들을 조국의 앞날을 떠메고나갈 인재로 하루빨리 키워낼수만 있다면 초급중학교에서 취급하는 모든 과목을 아니 이 세상의 모든 학문을 다 배우고싶어한 그를 두고 교원들은 무서운 정열가라고 혀를 찼다.

농사군의 량심과 성실성이 가을에 가서 평가되듯이 교원이 묵묵히 지혜와 땀을 바친것은 후날에 정확히 나타나게 된다.

주체96(2007)년, 드디여 그가 키운 제자들가운데서 수재로 선발되여 상급학교로 가는 첫 졸업생들이 나오게 되였다.그 다음해부터 수재양성기지로 가는 졸업생들이 점점 늘어났다.어떤 해에는 맡은 학급의 절반이상의 학생들을 1중학교들에 보내였다.이때부터 개천시에서는 수재가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하던 말들이 조용히 사라졌다.

개천시의 일군들과 학부형들은 어디서 저런 훌륭한 교육자가 불쑥 나타났을가 하면서 길가에서 그를 만날적마다 칭찬했다.그럴 때면 그는 얼굴을 붉히였다.

《아직 뒤떨어진 학생들때문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게 어떻게 선생 잘못이겠소? 그애들의 지적능력이 낮아서겠지.》

《아닙니다.제가 그들이 자기 능력을 다 발휘하게 잘 가르쳐주지 못해서입니다.》

이렇게 그는 수재양성기지에 간 제자들을 두고 흐뭇해한것이 아니라 아쉽게 성적이 낮아 보내지 못한 제자들때문에 속을 썩였다.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줄달음쳐 산 그가 세상을 떠난 후 학교의 교육자들은 그에 대한 몇가지 자료를 종합해보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오철룡교원은 주체96(2007)년부터 주체107(2018)년까지의 12년동안에만 하여도 백수십명의 학생들을 도소재지의 수재양성기지들에 보내였으며 수십명의 제자들을 평양제1중학교에 편입시키였던것이다.

이 높은 실적의 밑바탕에 진하게 고여있는것은 무엇인가.

직업적혁명가, 당이 안겨준 신성한 부름앞에 충실하기 위하여 자신을 초불처럼 태운 고결한 진정이다.오직 학생들을 더 잘 가르치기 위해 끝없이 바치고바치여도 성차하지 않은 불같은 정열과 노력이다.

교단에 섰다고 하여 다 교육자인가.교원의 긍지와 보람을 과연 교단에 서있은 년한과 맡아 배워준 학생들의 수로만 말할수 있는가.

오철룡교원이 남긴 불같은 생의 메아리는 오늘의 이 심각한 물음에 대답을 주고있다.

당에서는 우리 교원들을 믿고 조국의 미래를 맡기였다.신성한 교단에 떳떳이 설수 있는 자질을 갖추라.직업적혁명가의 긍지와 보람을 교단에 서있은 년한이 아니라 키워낸 인재들에게서 찾아야 한다.그런 사람만이 교육자라고 떳떳이 말할수 있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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