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최고전당이여, 절세위인들의 그 업적 영원토록 전해가라  국가과학원이 걸어온 70년력사를 더듬어

주체111(2022)년 12월 2일 로동신문

 

 

우리 나라 과학의 최고전당 국가과학원이 창립 70돐을 맞이하였다.

장장 70년에 걸치는 국가과학원의 자랑찬 연혁사는 혁명과 건설에서 언제나 과학을 중시하고 과학기술을 보검으로 하여 찬란한 미래에로의 길을 개척하여온 위대한 조선로동당의 과학기술중시, 인재중시의 빛나는 력사이다.

절세위인들의 손길아래 태여나고 주체적인 대과학기지로 전변된 국가과학원은 당의 위업, 사회주의위업을 위한 성스러운 혁명의 장로에서 과학과 기술로 커다란 공적을 쌓아올렸으며 당과 조국과 인민에게 충실한 붉은 과학전사, 혁명적지식인들의 대부대, 과학전선의 주력부대로 억세게 장성강화되였다.

국가과학원의 자랑스러운 70년력사의 분수령에서 또다시 가야 할 70년, 700년의 미래를 확신성있게 내다보며 우리는 과학의 최고전당과 더불어 길이 빛날 절세위인들의 만고불멸의 업적을 온 세상에 소리높이 전한다.

 

미래를 위하여 마련해주신 주체과학의 만년토대

 

감격도 새로운 주체103(2014)년 1월 14일은 또 한분의 절세위인의 거룩한 자욱이 국가과학원에 처음으로 새겨진 영광스러운 날이다.

그날 국가과학원 구내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제일먼저 찾으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말씀하시였다.

《국가과학원은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령도업적이 뜨겁게 깃들어있는 단위입니다.》

우리 과학이 걸어온 길의 축도와도 같은 국가과학원의 발전행로에 깃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을 숭엄한 마음으로 돌이켜보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존안에는 사무치는 그리움이 어려있었다.

국가과학원이 창립된것은 전쟁이 한창이던 때였다.

총포성이 울부짖고 불과 불이 오가는 전쟁시기에 조국의 머나먼 장래를 내다보고 과학원을 창립한다는것은 보통의 담력과 배짱으로써는 도저히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였다.

그것은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지니신 전쟁승리에 대한 억척불변의 확신이였고 과학중시사상의 빛나는 실천이였으며 찬란한 조국의 미래에 대한 가장 열렬한 사랑의 분출이였다.

인류력사와 더불어 과학이 출현한것은 수천년전 고대시기이다.하지만 과학과 기술이 사회경제발전을 떠밀고 사람들의 생활에서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된것은 수백년밖에 되지 않는다.더우기 과학과 기술이 일체화되면서 생산력증대와 사회적진보에서 보다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것은 불과 70여년전부터이다.

지난 세기중엽부터 그야말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과학기술은 오늘날 매개 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강력한 요인으로 급부상하였다.

과학기술이 사회경제발전에서 거대한 역할을 하기 시작한 바로 70년전 우리 나라 과학의 최고전당이 전화속에서 태여난것은 얼마나 의미심장한 사변인가.

그 시기로 말하면 인민군대의 드센 공격에 참패를 거듭하던 미제가 정전담판장에 끌려나오기는 하였지만 막뒤에서 새로운 대규모적인 공격준비를 다그치고있던 때였다.

전선에서는 그야말로 조국의 한치의 땅을 놓고 사생결단의 격전이 벌어지고있었다.

전선과 후방의 중하를 한몸에 지니신 그처럼 바쁘신 가운데서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승리할 조국의 래일을 내다보시고 전후복구건설의 웅대한 설계도를 무르익히시였다.이를 위해 깊이 관심하신 문제가 바로 나라의 과학력량을 하나로 묶어세우는것이였다.

당시 나라의 과학력량은 매우 미약하였다.연구소들도 얼마 되지 않았고 과학자들도 몇십명밖에 안되였으며 실험수단과 연구설비들도 빈약하였다.더우기 과학연구사업을 통일적으로 조직지도하는 정연한 체계가 없다보니 연구사업은 계획적으로, 조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있었다.

청소한 과학력량을 하나로 묶어세우지 않고서는 장차 전후복구건설에서 제기되는 수많은 과학기술적문제들을 집체적힘과 지혜로 풀어나갈수 없었다.

우리 혁명과 과학기술발전의 절박한 요구를 깊이 통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41(1952)년 4월에 열린 과학자대회에서 과학원창립을 위한 구상을 펼쳐주시였다.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과 사대주의, 교조주의에 물젖은 일부 사람들은 다른 나라들에서는 독립후에도 10년 또는 수십년이 지나서야 과학원을 창립하였는데 하물며 해방된지 몇해밖에 안되고 더우기 큰 전쟁을 겪고있는 형편에서 과학원을 창립하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전쟁이 끝나고 나라가 통일된 후에야 연구해볼 문제라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승리에 대한 신심은 고사하고 민족적자존심마저 줴버린 얼빠진자들의 그릇된 견해를 단호히 일축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과학진영이 약하면 약할수록 우선 과학연구사업을 조직하고 지도하는 국가적인 사업체계를 튼튼히 세워놓고 과학기술발전을 급속히 추진시켜야 한다고 하시였다.그러시고는 온 나라의 우수한 과학자들을 모아 과학연구사업을 집체적으로 진행하기 위하여 과학원을 조직하도록 할것이라고 엄숙히 선언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을 들으며 과학자들은 폭풍같은 박수로써 과학원창립방안을 열렬히 지지해나섰다.

그날의 격동된 심정에 대하여 한 과학자는 후날 자기의 회상실기에 이렇게 썼다.

《수상동지께서는 오늘과 래일만을 내다보시는것이 아니라 먼 앞날까지도 내다보시고 우리 나라 과학발전의 길을 가리켜주고계신다.

그이의 령도를 받는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것이며 그이의 위대한 구상은 실현될것이다.》

마침내 주체41(1952)년 12월 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과학원(오늘의 국가과학원)의 창립이 온 세상에 선포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 과학의 최고전당이며 앞으로 모든 과학연구사업을 통일적으로 조직지도할 사명을 지닌 과학원이 전쟁의 불길속에서 창립된것은 우리의 커다란 자랑입니다.》

그때로부터 20년세월이 흐른 어느날 자연과학부문 일군들을 만나신 자리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의 어려운 때에 과학원을 창립한것은 참으로 현명한 조치였다고 다시금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주체88(1999)년 1월 11일 국가과학원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다른 나라들에서 다 과학원을 내오기때문에 우리도 내온것이 아니라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활동의 첫 시기에 벌써 과학이 가지는 중요성을 통찰하시였기에 과학발전의 억센 뿌리를 마련해오시였고 해방후 지체없이 골간연구소들을 내오시고 그 토대가 꾸려지자 전쟁의 그 어려운 시기에도 과학원을 창립하시였다고, 지금까지 전쟁시기에 과학원을 창립한 나라는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것이라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국가과학원을 찾으시여 전쟁시기에 승리할 조국의 래일을 내다보시고 과학원을 창립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뜨겁게 돌이켜보시였으며 나라와 민족의 생사운명을 판가리하는 준엄한 전쟁시기에 국가과학원을 창립한것은 하나의 사변이였다고 하시였다.

정녕 국가과학원을 창립하신 때로부터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시는 전 기간 과학원사업에 각별한 관심을 돌리신 위대한 수령님,

수많은 불후의 고전적로작들과 나라의 정사를 론하는 크고작은 회의들에서 과학기술을 주체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주시고 여러 차례나 찾으시며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국가과학원은 과학연구지도기관으로서, 주체적인 대과학기지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수행해올수 있었다.

국가과학원의 자랑스러운 연혁사의 갈피에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피눈물의 해를 보내시고 처음으로 맞이한 해에 사회경제부문에 대한 첫 현지지도로 과학원을 찾으신 불멸의 자욱이 진하게 아로새겨져있다.

그날은 주체84(1995)년 4월 28일이였다.

그때 일군들도 과학자들도 위대한 장군님께서 국가과학원을 찾으신 깊은 심중을 미처 다 헤아리지 못하였다.

그날로부터 근 30년이 흐른 오늘 우리모두가 다시금 가슴깊이 절감하게 되는 위대한 장군님의 과학중시의 뜻은 얼마나 원대하고 심원한것인가.

사상과 총대와 함께 과학기술로 이 땅우에 기어이 사회주의강국을!

나라의 과학기술발전사에 빛나는 장을 아로새긴 위대한 장군님의 현지지도는 과학으로 부강하고 번영하는 조국의 미래를 하루빨리 안아오시려는 그이의 확고부동한 의지를 다시금 뚜렷이 보여준 의의깊은 계기였다.

력사의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간곡히 교시하시였다.

우리 당은 전쟁의 어려운 시기에도 과학자들의 연구조건을 우선적으로 보장해주었기때문에 전후 짧은 기간에 나라의 공업화를 빛나게 실현할수 있었다.과학기술발전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기 위하여서는 과학연구사업에 필요한 모든 조건들을 충분히 마련해주어야 한다.…

사면팔방으로 달려드는 원쑤들의 온갖 도전을 물리치며 조국을 지키는것만도 기적이였던 준엄한 시기였다.

그러나 설사 공장은 멎어서도 과학기술발전만은 절대로 멈추어서는 안된다는것이 바로 그처럼 어려웠던 고난의 시기에 전선에서 전선에로 끊임없이 이어가시던 선군혁명령도의 길을 국가과학원에로 이으시고 대담하고 획기적인 조치로 대과학기지에 크나큰 활력을 부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과학중시의 웅지였다.

희세의 선군령장 김정일장군님의 그날의 모습에서 국가과학원의 과학자들과 일군들 아니 온 나라 인민은 뵈왔다.

준엄한 전쟁의 불길속에서 과학원을 창립하여주시던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 김일성장군님의 영상을.

그리고 확신하였다.1950년대의 전승과도 같이 1990년대 고난의 행군에서의 필승을!

참으로 우리 조국앞에 준엄한 시련이 닥쳐왔던 고난의 시기는 당의 과학중시사상이 더욱더 확고하게 천명된 나날이였다.

사회주의강국건설의 전환적국면이 마련되던 주체88(1999)년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새해의 첫 현지지도의 자욱을 국가과학원에 새기시였다.

과학기술의 힘으로 조국의 부강한 래일을 안아오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드팀없는 과학중시의 의지는 여러 차례에 걸치는 함흥분원에 대한 현지지도와 생애의 마지막해에 진행하신 생물공학분원에 대한 현지지도에도 뚜렷이 새겨져있다.나라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던 시기에도 전자공학과 세포공학, 유전자공학, 화학과 같은 중요과학연구부문에 최신실험설비들을 일식으로 마련해주시고 생물공학연구기지를 훌륭하게 꾸려주신것을 비롯하여 국가과학원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나라의 과학기술발전을 위하여 그이께서 기울이신 크나큰 심혈과 로고는 찬란한 조국의 미래를 위한 애국헌신의 거룩한 자욱으로 오늘도 빛나고있다.

국가과학원 창립일이면 사랑하는 과학자들이 보고싶으시여, 선거날이 오면 과학자대의원후보자들에게 투표하시려 과학원을 찾고 또 찾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의 자욱자욱은 은정과학지구의 드넓은 구내길과 청사들에 뜨겁게 어리여있다.

절세위인들의 하늘같은 그 사랑과 믿음이 있었기에 국가과학원의 과학자들을 비롯한 우리의 과학자, 기술자들은 행복한 나날에나 준엄한 나날에나 과학과 기술로 당과 조국을 받들고 우리 사상, 우리 제도를 견결히 옹호고수하여올수 있었다.

정녕 머나먼 혁명의 려정에서 조선로동당의 과학중시정책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힘있게 과시하며 우리 조국의 존엄과 기상을 떨치는데 크게 기여한 하나하나의 과학기술성과들은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 소중히 가꾸어오신 고귀한 결정체가 아니랴.

그렇다.과학이 없으면 미래도 없다.

준엄한 전쟁의 불길속에서 국가과학원을 창립하시고 엄혹한 시련의 시기에 과학기술중시의 기치를 더 높이 추켜드시여 과학으로 강하고 흥하는 우리 조국의 찬란한 미래를 위한 만년토대를 마련해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불멸의 업적은 주체과학발전사와 더불어 길이 빛날것이다.

 

위대한 손길로 펼쳐가시는 과학중시의 새 력사

 

오늘 국가과학원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자기 발전의 새로운 장을 펼치고있다.

과학으로 새세상을 만들고 이 땅우에 기어이 온 세계가 우러러보는 사회주의강국을 일떠세우실 드팀없는 의지를 지니시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과학중시의 숭고한 뜻을 빛나게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손길을 따라 국가과학원이 걸어온 지난 10여년간은 과학자들과 일군들이 당의 과학전사, 혁명적지식인이라는 크나큰 영광과 행복을 날이 갈수록 가슴벅차게 절감해온 긍지높은 나날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나라의 경제발전과 과학기술발전에서 국가과학원이 큰 몫을 맡고있습니다.

오늘도 국가과학원의 과학자들과 일군들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은정과학지구를 처음으로 찾아주시였던 주체103(2014)년 1월 14일의 감격과 흥분을 잊지 못하고있다.

한겨울의 차디찬 새벽공기가 채 가셔지지 않고 많은 과학자들이 출근길에 있던 이른아침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국가과학원을 찾아주시였다.

하지만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날도 밝지 않은 이른새벽에 벌써 국가과학원 책임일군의 집에 사랑의 전화를 걸어오신 사연은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그때로부터 불과 몇시간이 지나 시내로부터 멀리 떨어진 수도교외의 한끝에 자리잡고있는 과학지구에서 아침일찌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맞이한 국가과학원의 책임일군들은 크나큰 환희와 함께 한켠으로는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이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국가과학원에 태양상으로 형상한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동상을 모시여 과학자들이 수령님들을 늘 뵈옵고 수령님들께 마음속진정을 터놓으며 사업하고 생활하게 하자고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이어 국가과학원 혁명사적관과 111호제작소, 과학전시관을 비롯한 여러곳을 오랜 시간에 걸쳐 돌아보시며 그이께서 여러 차례나 강조하신것은 그 어떤 첨단연구개발과 관련한 문제가 아니였다.

과학연구사업은 생눈길을 헤쳐나가는것이나 같다고, 나라의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과학기술을 중시하고 과학기술발전에 힘을 넣어야 한다고 하시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말씀하시였다.

《당에서는 이번에 국가과학원 과학자들에게 현대적인 살림집을 건설해주기로 결심하였습니다.내가 오늘 국가과학원에 나온것도 중요하게는 과학자들의 살림집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서입니다.》

크나큰 감격의 파도가 일군들의 가슴속에 세차게 일렁이였다.

해놓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전사들을 조금도 탓하지 않으시고 과학기술문제에 앞서 과학자들의 연구조건문제, 생활문제부터 깊이 마음쓰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

하지만 그처럼 귀중한 시간을 바치시며 영광의 기념사진도 찍어주시고 한낮이 다 되여서야 떠나신 그이께서 그 걸음으로 세상에 둘도 없는 과학자휴양소를 안겨주시려 또다시 머나먼 길을 이어가시였음을 미처 다 알수 없었던 국가과학원의 과학자들이였다.

그때로부터 얼마후 은정과학지구와 연풍호기슭에서는 과학자들을 위한 사랑의 건설대전이 벌어졌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국가과학원 과학자들에 대한 사랑을 안으시고 이른아침부터 저녁늦게까지 찍으신 1월의 그 자욱은 5월에는 과학자휴양소건설장으로, 6월에는 위성과학자주택지구건설장으로, 8월에는 또다시 연풍과학자휴양소건설장으로 이어졌다.(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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