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6(2007)년 12월 19일 《로동신문》에 실린 글

 

일본의 시대착오적인 대조선적대시정책의

파산은 필연적이다

 

올해에 조선반도정세가 눈에 띄게 변화되였다. 랭전의 마지막 동토대를 녹이는 화해와 협력, 대화와 협상이 열기를 띤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력사의 이 흐름을 달가와하지 않으면서 제동을 걸려고 모지름을 썼다.

일본의 대조선정책의 적대적성격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다.

간과할수 없는것은 올해 일본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이 그 목적과 실현수법, 규모와 심도에 있어서 지난시기에 대비할수 없는 매우 무모하고 최후발악적이였다는것이다.

올해 일본의 대조선정책은 한마디로 말하여 극단적인 대결정책이였다.

지난해 9월에 발족된 전 아베내각은 가능한 모든 수단들을 총발동하여 우리 공화국에 대한 정치군사적압력과 제재를 가하는것을 골자로 하는 대조선정책을 수립하였다.

이와 함께 그들은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폭넓은 국제적련합을 형성하고 그 련합의 돌격대역할을 수행하여 흐려진 일본의 국제적영상을 개선하는것을 저들의 대외정책의 중요한 고리로 삼았다. 그리고 올해에 그것을 본격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미친듯이 발광하였다.

반동적아베내각이 대조선정책의 대결적성격을 극단적방향으로 끌고간데는 여러가지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첫째로 과거청산을 회피하자는것이였다.

일본자민당에는 국회의원들로 련맹을 무은 《일본의 전도와 력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모임》이라는것이 있다. 이 조직은 2007년 벽두부터 아베의 요구에 따라 1993년 고노내각관방장관의 담화에 대한 재검토를 시작하였다.

고노내각관방장관의 담화란 일본군 《위안부》범죄와 관련한 일본정부의 《사죄》와 《반성》을 형식적으로나마 표시한것이였다. 아베내각은 《일본의 전도와 력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모임》을 발동하여 반인륜적범죄의 과거력사를 저들구미에 맞게 밭갈이해놓음으로써 그 청산에서 발뺌할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려 하였다.

그것은 둘째로 일본의 군사대국화, 재침야망을 실현할수 있는 기본출로를 찾자는것이였다.

지난 1 9일에 일본방위청은 방위성으로 승격되였다. 《청》이라는 글자 하나가 《성》으로 바뀌였지만 그것은 일본의 군사기구구조와 전략의 질적변화를 의미하는것이였다. 일본은 침략적군사력을 부단히 강화하고 《자위대》를 해외에로 진출시킬수 있는 또 하나의 토대를 닦아놓았다. 아베내각은 이러한 조건에서 대조선정책을 극단적인 대결적성격으로 일관시키고《북조선위협》론을 요란하게 떠들어 일본의 재침능력과 구실을 확고히 마련하려 하였다.

그것은 셋째로 일본에서 심각화되는 정치경제적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였다.

거품경제붕괴후 일본은 장기적인 경제위기에 시달려왔다. 누구도 이 위기를 타개할 뚜렷한 방책을 내놓지 못하였다. 아베내각도 경제위기를 극복할 뾰족한 수를 가지고있지 못하였다. 아베내각의 지지률은 2007년에 들어와서 급격히 떨어졌다. 국제무대에서도 일본의 력사외곡과 과거청산회피문제를 놓고 반일기운이 높아갔다. 아베내각은 국내외적으로 저들에게 쏠리는 증오의 눈초리와 불만의 목소리를 다른데로 돌릴 필요를 강하게 느끼게 되였다. 그 방책이 바로 조일대결을 극도로 첨예화시킴으로써 내외의 이목을 그쪽으로 집중시키는것이였다.

올해 일본은 랍치문제를 걸고 우리 공화국의 존엄과 권위를 훼손시키기 위한 악랄한 여론전외교전과 함께 제재책동을 전례없이 발광적으로 벌리였다.

원래 아베내각은 《랍치내각》이라고 불리워왔다. 말하자면 랍치문제에 명줄을 건자들이 들어앉은 내각이라는것이다. 아베는 집권후 처음으로 랍치문제담당 수상특별보좌관직을 새로 내왔다. 지난 8월에 있은 내각개조시 수상보좌관수를 줄일 때에도 아베는 랍치문제담당 수상특별보좌관직만은 그대로 놔두었다.

아베내각은 극우익보수단체들을 내세워 죽은 사람을 살려내여 돌려보내라는 식으로 랍치문제를 극대화하면서 여론전을 폈다. 이와함께 일본당국자들은 유엔을 비롯한 국제무대에 나가 집요하게 이 문제해결을 위한 《지원요구》《협력》을 구걸해나섰다. 특히 그들은 이 문제를 걸고 6자회담진전에 제동을 걸려고 발악적으로 책동하였다.

일본집권세력은 올해 10월 중순부터 우리 나라 선박의 입항전면금지와 모든 품목의 수입금지 등 기한이 만료되는 대조선제재조치를 6개월간 연장할것을 결정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조치가 랍치문제해결에서 《돌파구를 열기》위해 필요하다고 떠들었다.

올해 일본의 대조선적대시정책실행에서 보다 엄중한것은 총련과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탄압소동과 제재책동이 그 어느때보다도 광란적으로 벌어진것이다.

일본반동들은 총련시설들과 재일동포들에 대한 강제수색과 폭행, 체포 등 야수적행위들을 끊임없이 감행하였다. 일본공안당국은 총련지부사무소들, 조선학교들 등을 강제수색하기 위해 중무장한 수백명의 경찰과 장갑차까지 동원하는 횡포무도한 파쑈적폭거를 감행하였다. 재일조선인학교들과 가정들에 각이한 일본반동단체들과 깡패들의 악의에 찬 협박전화와 전자우편들이 꼬리를 물고 날아들었고 폭발물테로사건들이 자주 발생하였으며 학교에 오가는 조선인학생들과 민족옷을 입은 연약한 조선인녀학생들이 무차별적인 폭언과 폭행의 대상으로 되였다. 그들은 총련의 활동거점을 물리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정리회수기구를 내세워 총련중앙회관의 토지와 건물에 대한 강제경매까지 강행하려고 날뛰였다. 일본반동들의 반총련소동은 일제시기 간또지진때의 조선인탄압, 학살만행의 복사판이였다.

《만경봉-92호 입항금지를 비롯한 일본의 이러한 책동은 총련과 재일조선인활동을 말살하려는 반인륜적범죄행위로서 전후 일본의 그 어느 정권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 우리 공화국에 대한 간악한 주권침해행위였다. 또한 그것은 소수 민족을 보호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해주며 차별을 방지할데 대한 국제협약들을 란폭하게 위반한 악랄한 인권유린행위였을뿐아니라 현대판 타민족숙청행위였다.

올해 일본은 미국과 공모결탁하여 우리 공화국에 대한 군사적포위환형성과 재침책동에 미쳐날뛰였다.

일본은 일미군사동맹의 《중요성》에 대하여 떠드는 한편 《가치관을 공유하는》나라들과 새로운 군사동맹을 맺으려고 획책하였다.

일본은 오스트랄리아와 《안보협력공동선언》에 조인함으로써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미국, 일본, 오스트랄리아 3각군사동맹의 골격을 형성해놓았다.

일본반동지배층은 막대한 돈을 들여 미국산 무장장비들을 사들이였다. 이와 함께 미국과 미싸일요격시험을 진행하는 등 미싸일방위체계개발에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일본의 이러한 책동은 조선반도주변과 동아시아에서 커다란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군비경쟁위험을 증대시켰다.

일본의 군사적광증의 창끝은 우리 나라에 돌려졌다. 일본반동들은 우리 공화국의 그 무슨 《위협》설을 요란하게 류포시키면서 저들의 군사적광증이 우리 나라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것으로 묘사하였다. 일본《자위대》는 독자적으로 또는 주일미군과 우리 공화국을 겨냥한 각종 합동군사연습들을 분주히 감행하였다.

일본반동들의 무분별한 광기는 사실상 새 세기 국가진로를 바로 찾지 못하고 헤덤비는 리성잃은 정치난쟁이, 군국주의 요물의 절망적인 몸부림에 불과한것이였다. 그로하여 올해 일본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은 종당에는 파산의 운명에 처하였다.

국회 참의원선거에서의 자민당의 패배와 아베내각의 조기교체는 일본이 아무리 무분별한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실시하여도 그것이 국내의 심각한 정치경제적위기를 모면할수 있는 출로로 될수 없다는것을 실증해주었다.

정치적무능과 부정부패는 아베내각의 특징이였다. 이로 하여 아베내각은 민심을 잃을대로 잃고 사면초가의 위기에 처하게 되였다. 구체적인 모습도 해결방책도 없이 고무풍선처럼 둥둥 띄우기만 했던 아베의 《아름다운 나라》건설구상은 개꿈에 불과하였다. 매월 기업체파산건수가 천수백건에 달하고 실업률이 나날이 높아진것이 바로 일본의 현실이였다. 일본국민은 허황한 정치공약과 극단적인 대조선대결정책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려 하면서 경제위기해소와 국민생활을 외면해온 자민당을 참의원선거에서 패배시키고 아베세력을 권력의 자리에서 내모는것으로 엄정한 판결을 내렸다.

올해 일본이 아무리 극단적인 대조선적대시정책에 매달렸어도 긴장완화와 화해, 협력에로 나아가는 조선반도의 흐름을 가로막지 못하였다. 그속에서 우리 공화국의 존엄과 권위는 더욱 높아졌다.

올해에 우리 나라와마련방사이의 외교관계재개에 관한 공동콤뮤니케가 발표되였다. 우리 나라는 쯔르나고라공화국과 아랍추장국련방, 스워질랜드왕국, 도미니까공화국, 과떼말라공화국과 외교관계를 설정하였다. 우리 나라가 세계 여러 나라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한것은 커다란 외교적성과였으며 그것은 우리 공화국의 자주적인 대외정책의 정당성과 생활력의 힘있는 과시로 되였다.

일본이 조미관계개선에 제동을 걸려고 갖은 방해책동을 다하였지만 그것은 허사로 돌아가고말았다. 조미사이에 여러갈래의 대화와 접촉들이 진행되는 등 변화가 나타났다.

반면에 일본은 국제적고립의 구렁텅이속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지난 6월 미국회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관련 결의안이 통과된데 이어 7월에는 미국회 하원 본 회의에서 과거 성노예범죄에 대한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결의가 압도적다수의 지지를 받아 채택되였다. 그후 네데를란드국회 하원과 카나다국회 하원, 유럽의회에서도 일본군《위안부》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에 사죄를 요구하는 결의들이 채택되였다.

여러 서방나라 국회들과 유럽의회에서의 일본군《위안부》문제관련 결의채택은 과거력사를 부정하고 그 청산을 회피하려던 일본에 심대한 정치도덕적타격을 주었다.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일본에 과거청산을 강력히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세차게 울려나왔다. 력사외곡행위, 일본정부각료들과 국회의원들의 《야스구니진쟈》참배 등을 둘러싸고 아시아에서 일본에 대한 경계심과 항의규탄이 높아졌다. 이것은 동네북신세가 된 일본의 국제적고립상을 잘 보여주었다.

일미관계에서도 심각한 모순이 발로되였다.

일본은 미국이 우리 나라에 제멋대로 씌워놓은 《테로지원국》모자를 벗기지 못하도록 하려고 각방으로 못되게 놀았다. 그러나 일본의 그러한 처사는 공연한짓이였다. 우리 나라에 대한 《테로지원국》지정해제는 6자회담에서 합의된《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원칙에 따라 조미사이에 진행되는것으로서 일본이 푼수없이 나서서 감놓아라 배놓아라 하며 간참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도 일본의 이러한 시도에 대하여 시답지 않게 여기는 기색을 보였다.

《테로대책특별조치법》연장문제를 놓고서도 일미간의 모순이 표면화되였다. 일본《자위대》의 해외군사활동을 허용하는것을 기본내용으로 한 《테로대책특별조치법》은 2001년에 채택되여 여러차례 연장되여오다가 지난 11 1일에 효력이 더 연장되지 못하고 만료되였다. 이로써 미군함선에 대한 《자위대》의 급유활동은 끝나게 되였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세력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 자민당을 비롯한 여당세력은 일본국회에서 《테로대책특별조치법》을 연장하는 법안을 채택하지 못하였다. 자민당은 새로운 《테로대책특별조치법안》을 채택하려고 하지만 야당세력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 아직도 성사를 보지 못하고있다. 이에 대해 미국이 못마땅해 하며 불만을 표시하고있다. 미국대통령은 현 일본집권자의 미국방문시에 그를 국빈으로 환대해주지 않았다.

결국 올해에 우리 나라에 대한 국제적포위환을 형성하여 우리 공화국의 존엄과 권위를 깎아내리려던 일본의 모든 책동은 물거품이 되고말았다.

올해 일본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이 파산의 운명에 처하게 된 원인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분석하여 볼수있다.

일본이 자주성이 없이 미국에 맹종맹동한것이 대조선적대시정책실패의 기본원인으로 되였다.

대미추종이 일본의 체질화된 악습이라는것은 이미 세계에 널리 알려져있다. 일본집권자들이 《자주정치》요 뭐요 하면서 그럴듯한 소리들을 외워댔지만 실지행동은 그와 상반되게 하였다. 올해 일본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은 미국이 실시해온 대조선적대시정책의 복사판에 불과하였다. 문제는 정치적감각이 무디고 외교적수완이 보잘것 없는 일본집권자들이 미국상전의 립장을 초월하여 무분별하게 날뛴것이다.

이것은 일본의 전반적인 대조선적대시정책을 파산에로 몰고가는 근원으로 되였다.

시대의 흐름을 망각한 일본이 군국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오만방자하게 놀아댄것이 대조선적대시정책파산의 원인의 하나로 되였다고 볼수 있다.

자주성에 기초하여 화해와 협력, 평화와 친선을 이룩해나가는것은 현시대의 요구이며 흐름이다. 일본은 이와 배치되게 《자위대》의 해외진출, 재침을 꿈꾸고 군국주의정책실현에 열을 올리면서 그것을 대조선강경압살책동의 만능수단으로 내세웠다. 압력과 제재, 재침책동이 우리 나라에 통할수 없다는것은 반세기이상에 걸치는 조미대결력사가 실증해주었다. 군국주의사고방식에 물젖은 일본지배층이 일본의 처지, 조일관계의 본질을 외곡인식하다나니 근시안적인 안목을 가지고 대조선정책을 옳바로 수립할수도 없었고 긴장완화와 화해, 협력의 방향으로 변화되는 조선반도정세의 흐름도 옳게 예측할수 없었다.

이러한 요인들은 일본의 대조선적대시정책의 파산이 필연적이라는것을 실증해준다.

일본은 대조선적대시정책의 파산으로 수치를 당하고 큰 손해만 보았다. 일본은 여기에서 응당한 교훈을 찾고 조일평양선언정신의 요구대로 하루빨리 과거청산을 하며 시대착오적인 대조선적대시정책을 더는 강행하지 말아야 한다.

 

리 경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