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96(2007)년 12월 10일 《로동신문》에 실린 글

 

매국역적 리회창의 죄악에 찬 행적을 고발한다

조국통일연구원 고발장

 

지금 남조선에서는 매국역적 리회창이 《대통령》벙거지를 써보겠다고 헤덤비는 해괴한 일이 벌어져 만사람의 격분을 불러일으키고있다.

리회창역도로 말하면 사대매국과 파쑈독재, 부정부패의 왕초로서 이미 두차례나 《대통령선거》에 나섰다가 인민들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력사의 무덤에 처박힌 정치송장이다.

이러한 송장이 무덤에서 기여나와 또다시 《대권》을 운운하며 돌아치고있는것이야말로 참으로 경악스러운 일이다.

리회창역도의 범죄적인 《정권》강탈기도는 력사와 시대에 대한 도전이고 남조선민심과 내외여론에 대한 우롱이며 민족의 수치이다.

조국통일연구원은 파쑈살인마이고 분렬과 대결의 광신자이며 부정부패의 왕초, 인간추물인 리회창역도를 단죄하여 이 고발장을 낸다.

 

극악한 파쑈살인마

 

리회창역도는 교형리, 살인마로 악명을 떨친자이다.

리회창의 살인마적기질은 애비때부터 유전되여온것이다.

역도의 애비 리홍규는 일제식민지통치시기인 1929년 경성법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일제검찰계에 복무하면서 온갖 반민족적행위를 일삼아온 친일주구이다.

리홍규는 황해도 해주지방법원 송화, 서흥지청 검사서기 겸 통역으로, 광주지방법원에서는 사상담당 검사서기로 일제관청의 마름노릇을 하며 수많은 우리 청장년들과 녀성들을 일본군의 대포밥으로, 성노예로 섬겨바쳤고 독립운동가들과 계몽활동가들을 처형학살하는데 악명을 떨침으로써 일본인검사들까지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당시 일제가 조선사람은 등용하지 않는 검찰서기직에 리홍규를 올려앉힌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악독한 민족반역자였는가를 잘 알수 있다.

8.15해방후 리홍규는 친미졸개로 변신하여 전라남도검찰청 검사로 있으면서 애국적인 민주인사들을 검거투옥학살하는데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리홍규에 의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죄 아닌 《죄》를 쓰고 철창속에 끌려가거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는지 모른다.

리회창의 애비의 특등친일친미매국노로서의 행적은 오늘도 사람들의 치를 떨게 하고있다.

더우기 격분스러운것은 리회창역도가 수치도 모르고 제 애비를 내세우는 놀음을 벌린것이다.

리회창은 《어릴적부터 지금에 이르도록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것은 아버지》라고 하면서 애비가 살던 집을 《력사유물》로 보존하고 애비의 묘를 《명당자리》에 옮기는 등 온갖 추태를 다 부리였다.

역도의 역겨운 망동과 애매모호한 피줄로 하여 남조선에서는 한때 리회창에 대해 《일본녀자에게서 난 사생아》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월간중앙》 2002년 2월호)

바로 이러한 그였기에 리회창은 남조선에서 파쑈독재로 악명을 떨친 박정희, 전두환, 로태우《정권》시기 《혁명재판소》의 심판관, 인천지방법원의 판사, 서울고등법원의 부장판사, 법원행정처의 기획조정실장 겸 조사국장, 대법원의 판사와 대법관 등 파쑈탄압기구의 요직들에 등용될수 있었다.

남조선의 《민족일보》사장 조용수에게 《북정권의 평화통일론을 보도, 선동하여 반국가적행위》를 했다는 판결을 내리여 그를 사형에 처하게 하고 전두환의 광주학살을 비판한 《한울회》와 《아람회》 등 진보단체성원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리였으며 1982년 3월 부산《미국문화원》방화투쟁을 전개한 의로운 청년학생들에게 사형을 언도한것 등은 리회창이 판사로 있으면서 저지른 파쑈살인만행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말》 1997년 8월호, 1997년 10월호)

대법관으로 있을 때에는 《민족통일민주주의로동자련맹사건》,《혁명적로동자계급투쟁동맹사건》,《조국통일촉진그룹사건》,《민족해방활동가그룹사건》,《사로맹인천위원회사건》,《사회주의로동자련맹사건》 등 수많은 《용공사건》들을 조작하여 죄없는 애국자들을 가혹하게 재판처형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리회창은 전두환《정권》시기 대법관들이 참가하여 판결을 내리는 주요《시국사건》 46건중 16건에 대해 《주심》을 설 정도로 파쑈독재체제유지에 앞장섰다. 김영삼의 《문민》독재《정권》시기에는 《감사원》원장으로 있으면서 살인악마의 기질을 더욱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하기에 당시 악명높은 《안기부》도 리회창의 《감사원》앞에서는 벌벌 떨었다고 한다.(《월간중앙》 1999년 10월호)

리회창역도는 전두환, 로태우군사파쑈깡패들의 부정부패를 눈감아주고 비호해주는데서도 남다른 수완을 발휘하였다.

1993년 남조선에서는 전두환, 로태우역도가 집권기간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사들여오는 과정에 많은 돈을 떼먹은 《률곡비리사건》이라는것이 터졌다.

당시 《감사원》원장으로서 이 사건을 맡은 리회창은 두 살인악당의 부정부패행위를 파헤쳐 엄격히 처벌할데 대한 사회각계의 요구를 무시하고 그것을 감싸주었을뿐아니라 《감사원》의 조사발표라는데서 전두환과 로태우의 이름조차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 《공로》로 하여 그는 그해말 《국무총리》의 자리에 올라앉았다.

그에 감지덕지한 리회창역도는 《총리취임인사》를 한다고 하면서 전두환과 로태우군사깡패의 집을 찾아가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렸으며 전두환과 로태우는 《뭐 그런걸 가지고…념려말라.》,《중책을 맡아 수고가 많겠다.》고 역도의 등을 두드려주는 등 노죽을 부렸다.(《월간중앙》 1999년 10월호)

리회창역도는 전두환, 로태우군사깡패들이 력사의 응당한 심판을 받고 감옥살이를 할 때에도 그들을 살려보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두환, 로태우사면문제를 빨리 매듭짓는것이 좋겠다.》고 공공연히 떠들었는가 하면 박정희는 《근대화를 이끌어온 대통령》, 전두환은 《헌정사상 최초로 평화적정권교체를 이룩한 대통령》, 로태우는 《민주화의 토대를 닦은 대통령》이라고 파쑈살인마들을 극구 비호두둔함으로써 그들과 한통속이라는것을 숨기지 않았다. (《한겨레》 1997년 7월 10일부)

인간증오사상이 골수에 배겨있는 리회창역도는 잔인하기 그지없으며 풀숲에 숨어 사냥물을 노리는 독사마냥 뱁새눈으로 살기까지 내뿜어 사람들로 하여금 소름이 끼치게 하였다.

역도는 술을 마시다가도 때없이 식탁을 내리치면서 《죽여버린다》,《토막쳐버린다》,《도끼로 찍어버린다》는 끔찍한 말들을 서슴없이 내뱉는가 하면 기자들이 자기 비위에 거슬리는 글을 쓴다고 하여 《창자를 끄집어내겠다》,《씨를 말려버리겠다》고 줴치는 등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으로서는 차마 입에 담을수 없는 폭언들도 수없이 쏟아냈다.

리회창역도의 잔인한 기질과 관련하여 그의 측근들은 《리회창은 무서운 사람이다.》,《리회창옆에 있으면 다 죽는다.》,《리회창은 가차없는 보복과 인간적배신을 할수 있는 인물》이라고 도리머리를 젓고있으며 일반계층은 《리회창이 대통령이 될 경우 이전 독재자들보다 더한 독재자로 될것》이라고 한결같이 혀를 차고있다.

의학전문가들은 리회창역도의 정신병자같은 언행에 대해 흔히 살인과 강도를 일삼는 강력범죄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세라고 하면서 그가 《대통령》이 되는것을 어떻게 하나 막아야 한다고 하였다.(《월간조선》 2000년 10월호, 《월간중앙》 1999년 8월호)

실로 리회창역도는 그의 혈통으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기질로 보나 남조선정객들가운데서 보기 드문 파쑈살인마, 교형리이다.

 

분렬과 대결의 광신자

 

리회창역도는 분렬과 대결을 악랄하게 추구해온 희세의 매국역적, 민족반역자이다.

리회창역도의 반통일적, 반민족적정체는 2000년의 력사적인 북남수뇌상봉때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력사적인 6월 평양상봉과 6.15공동선언의 발표는 반세기이상 지속된 불신과 대결의 북남관계를 화해와 협력, 단합의 관계로 전환하고 우리 민족에게 새 세기 조국통일의 리정표를 마련해준 일대 사변으로서 온 겨레와 전세계의 한결같은 지지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유독 리회창역도만이 이 특기할 사변에 대해 감히 《국치》니, 《시기상조》니, 《북의 통일전선전술에 말려드는것》이니 뭐니 하는 따위의 망발을 줴쳤을뿐아니라 어찌나 심술이 뒤틀렸던지 온 세계가 평양수뇌상봉의 감동적인 모습에 환호를 올리고있을 때 뒤골방에 틀어박혀 TV까지 꺼버리는 추태를 부리였다.

역도는 6.15공동선언에 대해 조목조목 다 부정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통일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미군철수에로 이어지는것은 절대로 안된다.》,《미국과의 동맹관계를 허물수 없다.》고 피대를 돋구었다.

리회창역도의 반민족적, 반통일적정체는 지난 10월의 수뇌상봉때 더욱 여실히 드러났다.

온 민족과 전세계는 7년만에 북남수뇌상봉이 다시 이루어지고 훌륭한 10.4선언이 채택된데 대해 진심으로 기뻐하고 환영하였다.

그러나 리회창역도를 비롯한 극우보수분자들은 이 뜻깊은 민족적경사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터무니없이 시비중상하였다.

역도는 지난 10월 24일 극우보수단체집회장을 찾아가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실패했다.》느니, 《북의 눈치를 보는 전형적인 굴종과 조공》이라느니 뭐니 하면서 《그 책임을 물을것》이라고 고아댔는가 하면 《앉아서 사느니 서서 죽는다는 각오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고수하기 위해 모두 일어나서 뛰자.》고 입에 게거품을 물고 지껄였다.(《노컷뉴스》 2007년 10월 24일부)

수뇌상봉에 이어 11월 중순 서울에서 10.4선언리행을 위한 북남총리회담이 진행되고 실천적인 합의서가 채택되자 리회창은 더욱 악에 받쳐 날뛰였다. 역도는 《강연회》,《간담회》등에 련속 출연하여 《격분》이니 뭐니 하는 망언을 서슴없이 토해내다 못해 《현정권이 대못을 박아 다음정권이 꼼짝 못하도록 만들려고 한다.》,《남북간 합의에 따른 어떤 사업도 추진되여서는 안된다.》고 분별을 잃고 고아댔다.(《경향신문》 2007년 11월 16일부)

리회창역도는 북남사이의 협력사업에 대해서도 기를 쓰고 반대해나섰다.

북남협력사업은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한 숭고한 사업으로서 어떤 경우에도 대결적목적에 악용되여서는 안된다.

그러나 동족대결의식이 골수에까지 차있는 리회창역도는 그 누구의 《개방》이니, 《상호주의》니, 《퍼주기》니 뭐니 하면서 북남협력사업을 심히 모독하고 뒤다리를 잡아당겼다.

리회창역도는 《남북교류는 북의 개방을 유도하는것으로 되여야 한다.》느니, 《대북지원은 북의 개방과 개혁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여야 한다.》느니 뭐니 하는 등의 불순한 망발을 함부로 줴쳤는가 하면 《전략적상호주의, 국민적합의와 투명성, 검증》의 《3가지 원칙》이라는것을 들고나와 《대북퍼주기》를 하여서는 안된다고 생떼를 썼다.

분렬과 대결의 광신자 리회창역도의 진면모는 이번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더욱 적라라하게 드러났다.

지난 11월 7일 리회창역도는 《대통령선거》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이라는데서 자기가 《총재》로 있던 《한나라당》의 대북정책을 어정쩡하다고 시비하면서 그래가지고서는 설사 집권하여도 《현재의 남북관계를 막을수 없고 그러한 정권교체는 필요없다.》,《한나라당에서 탈당하여 백의종군할테니 극우보수는 나를 따라나서라.》고 고아댔다.

그러면서 자기가 집권하면 《지금의 남북관계와 현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하고 무너진 한미동맹을 복원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11월 9일에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설치는 《북방한계선》을 날려보내려는 《북의 전술》이라고 하면서 그에 말려들어서는 안되며 《북방한계선》은 어떻게 하나 고수해야 한다고 떠들어댔다.

또한 《지금 대북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첫째가 핵페기이고 둘째가 북체제를 개혁, 개방하는것》이라는 얼빠진 소리를 줴치다 못해 지난 10월의 평양수뇌상봉까지 걸고들면서 《북을 개혁, 개방시키지 못하는 수뇌회담은 필요없다.》는 망발까지 서슴지 않았다. (《련합뉴스》 2007년 11월 9일)

리회창역도는 《한나라당》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민심을 유혹해보려는 목적에서 기만적으로나마 《대북정책전환》이라는것을 운운하는데 대해서도 기겁하여 서둘러 가로막아나섰다.

그는 《한나라당》이 종래의 분렬주의적이며 대결적인 《대북기본로선》을 절대로 변경하여서는 안된다고 야단을 쳤는가 하면 북남철도련결과 개성공업지구 건설, 금강산관광사업과 같은것도 다 걷어치워야 한다고 력설하였다.

리회창역도는 지난 11월 14일 부산에 가서도 《한나라당》의 《대북정책》에 대해 또다시 《정체성도 없고 어정쩡하다.》고 비난하면서 《북에 단호하게 개혁, 개방을 요구하는 강력한 지도력이 없다면 정권이 바뀐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고 앙탈을 부렸다. (《한국일보》 2007년 11월 14일부)

뿐아니라 11월 21일에는 《방송기자클럽토론회》에 나타나 《대북정책에서 전쟁론자라는 소리를 들을가봐 눈치를 봐서는 안된다.》,《북핵을 페기시키고 남북관계를 제대로 된 정상적인 방향으로 바꾸어놓아야 한다.》,《북과의 평화공존을 이루려면 우선 북체제가 개혁, 개방되여야 한다.》고 하며 대결과 전쟁을 선동해나섰다.

11월 22일에는 이른바 《대통령선거공약》이라는것을 내놓으면서 《핵페기》와 《개혁, 개방》,《상호주의》를 골자로 하는 제놈의 《대북정책》이라는것을 발표하였으며 23일에는 보수단체인 《재향군인회》관계자들과의 《간담회》라는데서 《총체적으로 나라의 기초가 흔들리고있다.》,《나라를 위기에서 구하자면 홍역을 치르더라도 북핵페기와 체제개혁, 개방은 뚫고나가야 할 가시밭길이라는것을 국민에게 설득해야 한다.》고 고아댔다.(《래일신문》 2007년 11월 23일부, 《련합뉴스》 2007년 11월 23일)

남조선언론들은 리회창역도의 이러한 치사스러운 언동에 격분을 금치 못하면서 《랭전적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다.》,《리회창이 대권을 잡으면 남북관계는 전쟁밖에 남을것이 없다.》,《앞으로 남북관계가 단절되고 민족이 전쟁과 같은 대재앙을 겪어도 국민은 참고견디라는 미친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저주를 퍼붓고있다.(《련합뉴스》 2007년 11월 23일, 《래일신문》 2007년 11월 23일부, 《자주민보》 2007년 11월 15일부)

리회창역도는 미국의 반공화국핵소동과 새 전쟁도발책동에 그 누구보다 적극 추종하였다.

2002년 미국이 광란적인 《북핵소동》에 기승을 부릴 때 리회창역도는 상전과 한짝이 되여 《충격적》이라느니, 《평화에 대한 위협》이라느니 뭐니 하면서 그 무슨 《핵사찰》과 《지원중단》,《핵포기》를 목이 갈리게 부르짖었으며 동족을 해치려는 미국의 반공화국압살책동에 대해 《잘하는것》이라고 박수를 치기까지 하였다.

리회창의 추태가 오죽이나 역겨웠으면 남조선의 각계층 인민들이 《리회창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의심스럽다.》,《리완용이 따로 없다.》고 혀를 찰 정도였으며 《한나라당》내부에서까지 《미국에서조차 비판받는 대북강경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대주의적자세》라는 비난이 쏟아져나왔겠는가.

리회창역도의 친미사대행위는 헤쳐볼수록 추악하다.

리회창역도는 2002년 6월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야수들이 장갑차를 미친듯이 내몰아 길가던 나어린 녀중학생들을 무한궤도로 무참히 짓뭉개여 학살한 사건이 터져 온 남녘땅이 분노에 떨고있을 때 미군의 귀축같은 만행을 공공연히 비호두둔해나섰다. 그리고 미제침략군이 지난 조선전쟁시기 감행한 로근리민간인학살사건의 진상이 밝혀졌을 때에도 《미국과의 우의관계》를 깨뜨려서는 안된다느니,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느니, 반미감정은 《일부의 감정》이라느니 뭐니 하는 망발들을 마구 늘어놓았으며 남조선정계인물들이 미국을 항의방문하는것마저 반대해나섰다.

이처럼 미국을 할애비로 섬기는자였기에 미국상전들은 리회창역도를 저들의 특등주구로 점찍어놓고 《대통령선거》때마다 이자를 후보로 내세워주고 적극 밀어주었다.

리회창역도가 1997년에 이어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다음 은신처로 찾아간 곳도 바로 미국이였다. 당시 이자는 1년나마 미국에 머물면서 상전들의 비호를 받았다.

이번에 정치송장 리회창역도가 《대통령》감투를 써보려고 다시 머리를 쳐든것도 미국상전의 각본에 따른것이다.

역도는 남조선에서 극우보수세력을 규합하여 《한나라당》보다도 더 친미적이며 대결적인 파쑈《정권》을 세울데 대한 미국의 지령을 받고 다 늙어빠진 몸으로 《대통령선거》에 뛰여든것이다.

이것은 리회창역도야말로 미국의 하수인이고 사냥개라는것을 실증해주고있다.

 

부정부패의 왕초, 인간추물

 

나라와 민족을 배반하는 역적의 무리들은 례외없이 부정부패로 얼룩진 도적왕초이고 인간추물들이다.

남조선에는 력대적으로 부정부패로 소문난 도적왕초들이 많이 기록되여있지만 리회창역도는 단연 첫손가락에 꼽힌자이다.

세상을 들썩하게 하였던 이름도 괴이한 《안풍》,《세풍》,《총풍》사건들도 모두 리회창역도가 《대통령》자리에 올라앉으려고 감행한 정치사기극, 부정부패행위이다.

세칭 《안풍》사건으로 알려진 《안기부예산횡령사건》은 이전 집권자 김영삼놈이 약 1억 1,461만 US$에 달하는 비밀통치자금을 불법적으로 조성하여 《안기부예산》이라는 미명하에 숨겨두고 그중 일부를 1995년의 《지방자치제선거》와 1996년의 《국회의원선거》때 《한나라당》의 전신이였던 《민자당》과 《신한국당》의 《선거》자금으로 탕진한 부정부패사건이다.(《월간조선》 2005년 12월호, 《한겨레21》 2001년 1월 18일호, 《대한매일》 2003년 9월 24일부)

당시 《신한국당》의 《선거대책위원회》의장으로 있었던 리회창역도는 《안기부》가 넘겨준 이 자금을 자기 패당들에게 나누어주고 자기도 막대한 액수를 부정사취하였다.

《세풍》사건으로 항간에 알려진 《국세청사건》은 1997년에 있은 《대통령선거》때 리회창역도가 동생 리회성과 《국세청》차장 리석희, 《한나라당》소속 《국회》의원인 서상목 등과 공모결탁하여 삼성그룹과 현대그룹을 비롯한 24개 기업체들로부터 1,148만 7,000여US$의 자금을 불법적으로 모아 《대통령선거》자금으로 탕진하고 사취한 부정부패사건이다.(《주간한국》 2002년 2월 28일호)

또한 《총풍》사건으로 불리우는 《판문점총격요청사건》은 1997년 《대통령선거》직전에 《한나라당》후보였던 리회창이 《청와대》와 결탁하여 《선거》정세를 저들에게 유리하게 조장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상에서의 《총격사건》을 계획하였던 사건이다.

이 사건은 리회창역도야말로 제놈의 《대통령당선》을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할 미치광이라는것을 그대로 실증해주었다.

2003년에는 《한나라당》의 《불법대선자금사건》이라는것이 터졌다.

이 사건은 2002년 《대통령선거》과정에 리회창패거리들이 20여개의 기업체들로부터 7,083만US$에 달하는 막대한 《선거》자금을 비법적으로 받아먹은 대형부정축재사건이다. (《KBS》방송 2004년 3월 8일)

그 돈을 1만원짜리 지페로 이어 놓는다면 길이가 천수백Km에 이르고 쌓아놓는다면 높이가 천수백m에 달한다고 한다.

리회창패거리들이 기업체들로부터 돈을 뜯어내는 수법도 매우 너절하고 날강도적이였다.

리회창패거리들은 돈을 봉투나 상자로가 아니라 차판으로 받아먹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차떼기》라는 말도 그래서 유래된것이다.

그들은 2002년 《대통령선거》때 《선거자금》이라는 미명하에 기업들에 내리먹여 막대한 돈을 차판으로 보내오게 하고는 남들이 볼세라 돈을 실은 차를 고속도로상에서 통채로 넘겨받았다. 이렇게 되여 리회창이 《총재》로 있던 《한나라당》은 《도적당》,《마피아당》에 《차떼기당》이라는 오명까지 얻게 되였다.

리회창역도의 이 부정부패사건으로 사회적물의가 크게 일어나자 《한나라당》은 그후 어차피 그것을 무마해보려고 당시의 여의도에 있던 당사를 내놓고 천막으로 자리를 옮기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지금도 리회창역도는 그때 《한나라당》의 《대선》자금중 일부를 반납하지 않고 떼먹은 혐의로 하여 검찰에 고발되여있는 상태에 있다.(《민중의 소리》 2007년 11월 22일부)

하여 《차떼기》라는 말은 리회창역도의 대명사로 되였으며 민간에서는 《차떼기로 설악산에 갔댔다》,《차떼기로 이사했다》,《차떼기로 고기를 날랐다》등의 풍자말들이 류행될 정도였다.(《월간조선》 2004년 4월호)

그밖에도 리회창역도의 부정부패사건은 이자가 변호사로 있을 때 돈을 뭉테기로 받아먹고 세금을 내지 않은 《고액수임료 및 탈세의혹사건》, 아들의 병력기피를 위해 오그랑수를 썼던 《아들병역비리사건》, 리회창의 녀편네가 기양건설기업으로부터 비법적으로 돈을 받아먹은 《기양건설로비의혹사건》, 집세만 하여도 년간 1억원대가 넘는 집을 여러채나 가로채 사용한 《초호화빌라사건》,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일대에 투기의 목적으로 2만 3,800여㎡의 대규모토지를 구입한 《부동산, 불법비자금사건》 등 이루 다 헤아릴수 없다.

아들이 미국류학시기 호화별장을 사가지고 진탕친 《아들호화주택소유의혹사건》, 태여날 손녀의 미국국적취득을 위한 며느리의 《미국원정출산사건》 등 남조선에서 커다란 물의를 일으킨 사건의 주범도 다름아닌 리회창역도이다.

이러한 인간추물이 지금 그 무슨 《서민》으로 자처하면서 시장과 빈민촌, 장애자들을 찾아다니며 낯간지러운 소리들을 하는것은 그야말로 역스럽기 그지없다.

리회창역도처럼 앞뒤가 다르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위선자도 세상에 보기 드물것이다.

리회창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소신과 원칙》을 떠들며 자기를 《대쪽판사》,《대쪽정치인》이라고 분칠해왔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그는 《정계에는 절대로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하고는 돌아앉아 정계에 나서고 《대통령선거》에서 패한 후 《다시는 정치무대에 나서지 않겠다.》고 《맹세》하고는 수염을 뻑 쓸고 언제 그랬던가싶게 또다시 그에 뛰여드는 등 말뒤집기의 명수이다.

이번에도 그는 지난 10월 25일 기자들앞에서 《대선에 출마하지 않는다는 립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공언하고는 입에 침이 미처 마르기도 전인 11월 7일 《대통령선거》출마를 공식선언하였다.

이 얼마나 파렴치한가. 남조선언론들은 리회창역도의 《공약》을 믿는다는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바라는것이나 같다.》고 평하고있다.

리회창역도는 인간적으로 매정하고 의리가 없으며 자기 리익을 위해서라면 그 누구도 사정없이 물어메치는 랭혈한이다.

리회창역도와 함께 일해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를 가리켜 《알수록 더 멀어지는 사람》,《원칙과 소신이 아니라 철저하게 정치적리해관계만을 계산하는 인물》이라고 저주한다.(《시사저널》 2002년 1월 24일호)

리회창을 정치계에 끌어들이고 그를 《감사원》원장, 《국무총리》, 여당의 《대통령》후보로 밀어주었던 이전 집권자 김영삼역도도 나중에는 그에게 발뒤축을 물려 당에서 쫓겨나는 가련한 신세가 되고말았다.(《월간중앙》 1999년 10월호)

리회창역도는 올해 72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새파란 옷을 입고 얼굴에 화장을 너무 진하게 하고다녀 로망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는 조소를 받고있다.

그는 쩍하면 구두발채로 책상우에 뛰여올라 탕탕 구르면서 《구국의 일념》이니, 《좌파정권종식》이니 뭐니 하고 망녕을 부리는데 그 몰골은 정객이라기보다는 히스테리병자 한가지이다.

리회창역도의 이러한 미치광이놀음에 대해 언론들은 《대쪽이 아니라 개쪽》,《치매증에 걸린 로인》,《극우랭전, 수구세력의 마지막몸부림》이라고 단죄규탄하고있다.

리회창역도는 이미 사회적으로도 매장된지 오래다.

전라북도 전주의 40대 남자가 자기를 《리회창을 닮았다》고 하는 한 사람의 말에 분을 삭일수 없어 그를 맥주병으로 내려치는 웃지 못할 희비극이 벌어지고 한 이름난 배우가 공개석상에서 리회창을 《죽도록 두들겨패주고싶다》고 하여 만사람의 절찬을 받았는가 하면 《선거유세》에 나섰던 리회창이 시민들로부터 닭알세례를 받는 일이 련일 벌어지고있다.

이것은 민족반역자, 인간오작품, 늙다리 산송장인 리회창역도에게 차례지는 응당한 봉변이다.

제반 사실은 리회창역도야말로 더는 그대로 두어서는 안될 낡은 시대의 유물이고 력사의 쓰레기라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이런 역도가 감히 권력의 자리를 넘보는것을 어찌 용납할수 있겠는가.

리회창역도의 존재는 남조선인민들의 불행이고 민족의 재앙이다.

지금 리회창역도는 미국상전의 비호밑에 권력야망을 실현해보려고 발버둥을 치고있지만 남조선의 민심은 그에게서 떠난지 오래다.

력사와 시대는 희세의 사대매국노, 반통일분자, 민족반역자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것이다.

제명을 다산 리회창역도가 갈 곳은 무덤밖에 없다.

리회창역도는 온 민족의 저주속에 수치스러운 종말을 고하고야말것이다.

 

주체96(2007)년 12월 9일

평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