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0(2011)년 3월 21일 로동신문

 

한 기업가의 삶을 애국의 길에서 빛내주시여

전 남조선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선생에게
베풀어주신 사랑과 믿음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품은 북에 있건 남에 있건 해외에 있건 조국을 사랑하고 민족을 위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따뜻이 품어주는 한없이 넓고 자애로운 품이다.사상이나 리념,주의주장보다 민족을 더 귀중히 여기시며 민족의 리익을 위한데 모든것을 복종시켜나가시는 그이의 숭고한 애국의 뜻에는 매혹되지 않는 사람이 없고 머리를 수그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

남조선과 해외의 얼마나 많은 동포들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애국의 뜻을 따라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 나섰던가.남조선의 현대그룹 명예회장이였던 정주영선생도 그들중의 한 사람이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뵈옵고 참된 애국이 무엇인가를 비로소 깨달은 정주영선생은 장군님을 우리 민족의 위대한 령도자로 우러르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조국통일성업에 나섬으로써 생의 말년을 빛내일수 있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참된 애국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속에 있다.》

일찌기 《기업으로 애국한다.》는 나름대로의 지조를 품은 그의 인생은 기업과 떼여놓고 볼수 없다.그는 자기 인생의 거의 전부를 기업에 바치였다.나중에는 정치개혁을 주장하며 《대통령선거》에도 출마해보았다.하지만 결코 인생의 진정한 기쁨은 맛보지 못하였다.그러던 그가 생의 말년에 《참다운 애국은 통일》이라는 신념을 품고 극적인 인생전환을 하게 된것이다.

《문민》독재사회에서 집권세력과 뜻이 다르다는 리유로 기업활동에서 각종 저애를 받고 지어 심한 정치적압력까지 받던 정주영선생은 마음이 저절로 오래전에 떠나온 북으로 향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그가 드디여 용단을 내려 공화국북반부를 방문한것은 그의 가슴속에 묻혀있던 애국의 씨앗을 싹틔워준 계기가 되였다.그는 그립던 고향 통천에도 가보고 때로는 평양랭면을 들면서 그리고 어린시절 추억이 깃든 금강산도 돌아보면서 늦었지만 이제라도 분렬된 조국의 통일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품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정주영선생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불후의 고전적로작 《온 민족이 대단결하여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자》에 접하게 되였다.민족적량심을 가지고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지어 남조선의 집권상층이나 대자본가,군장성들과도 단합할것이라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뜻을 로작을 통해 받아안은 그는 격동을 금할수 없었다.

(남과 북이 사상과 제도가 엄연히 다르고 더우기 정치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립되여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장군님께서 그런 담대한 정치적의지를 천명했으니 이 얼마나 위대한 애국자이신가!)

조국통일을 위한 그이의 한없이 넓은 도량과 포옹력은 정주영선생에게 분렬된 우리 조국에서 참된 애국자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진리로 새겨주었다.드디여 그의 가슴속에서는 애국의 불씨가 불길처럼 타올랐다.

(이제라도 조국의 통일과 민족의 번영에 헌신하는 애국적인 기업가가 되자.)

이렇게 결심다진 그는 자기 기업의 전략을 우리 공화국과의 협력교류로 내세우고 앞장에서 그 실현을 위한 걸음을 내짚었다.

반통일세력들의 악랄한 비방과 방해책동을 물리치며 결단코 통일애국의 길에 나선 그의 마음속진정을 누구보다 귀중히 여기신분은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주체87(1998)년 10월 30일 자정이 가까와오는 깊은 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선군혁명령도의 길을 이어가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공화국북반부를 방문하고있던 정주영선생을 만나주시였다.위대한 장군님께서 선군장정의 로고도 푸실 사이없이 정주영선생과 그 일행이 묵고있던 숙소에 몸소 찾아오신 이 사실도 충격적이였지만 그때에 있은 담화는 더더욱 그의 심장을 틀어잡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정주영선생을 《명예회장선생》으로 정답게 불러주시며 체류기간 불편한 점들은 없었는가고,선생이 다리를 불편하게 쓰는것 같은데 어떻게 되여 그렇게 되였는가고 따뜻이 물어도 주시였다.그리고 자신께서는 정주영선생이 배짱이 세고 한번 하자고 마음먹으면 끝까지 내미는 성미를 가지고있는분으로 알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정주영선생은 여직껏 그 누구에게서 받아본적 없는 따뜻한 고무와 인정에 가슴이 후더워짐을 금할수 없었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겸허하게도 정주영선생을 가운데 세우고 영광의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시였으며 우리 민족이 잘되고 잘살게 하자는 사람들과는 그 누구와도 언제나 손잡고나갈것이라고 하시며 북남사이의 협력교류와 관련한 《현대》의 사업방향을 적극 지지해주시였다.

그 격정을 묵새겨둘수 없어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바래드리고 자기 방에 들어서면서 엄지손가락을 펴보이며 《과시 장군이시야.》라고 흥분된 심정을 터치였다.그러면서 장군님을 만나뵈오니 이제는 통일이 다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웨치듯이 말하였다.정주영선생의 이 말에 그의 수행원들은 《우리 회장님은 오늘 〈하느님〉을 만났다.》고 하며 기뻐 어쩔줄 몰라하였다고 한다.

정주영선생일행이 남조선으로 돌아가던 날 수백명의 기자들이 판문점에까지 나와 붐비였다.기자들과 회견한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뵙던 일들을 긍지에 넘쳐 되새겨보며 자기가 체험한 그이의 위인적풍모에 대해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남조선의 한 기자가 《북에 갔다오더니 변한것 아닌가? 왜 자꾸 장군님,장군님 하는가?》고 물었다.

이때 정주영선생은 《내가 세상을 다니며 장군이란 장군은 다 만나봤어도 진짜장군은 김정일장군님이 처음이다.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부르는데 나도 장군님이라고 부른다.》고 쏴주듯이 면박을 주었다.

정주영선생은 정치인은 물론 《대통령》이라고 해도 칭찬하는 말을 해본적이 없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였다.이런 그가 경애하는 장군님을 만나뵙고 그이께 완전히 매혹되였던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을 자자구구 새길수록 정주영선생의 눈앞에는 통일의 아침이 보이는것만 같았고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싶은 열정이 샘솟았다.그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한량없는 믿음과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금강산관광개발을 다그쳐 그해 11월 동해의 푸른 물에 첫 관광선을 띄움으로써 북남경제협력의 물고를 터놓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력사적인 6.15공동선언발표후 공화국북반부를 방문한 정주영선생을 또다시 만나주시였다.이날 그이께서는 정주영선생은 민족이 화해하는 길을 열어놓은 개척자와 다름없다고,그 공적은 앞으로 력사에 큰 장을 차지하게 될것이라고 분에 넘치는 평가와 크나큰 영광을 안겨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르는 그의 주름잡힌 얼굴에는 자그마한 애국의 싹도 귀중히 여기시며 그것을 큰 나무로 키워주시는 운명의 태양이신 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경모심이 뜨겁게 어려있었다.

정주영선생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과 은정은 이뿐이 아니였다.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느 기념촬영시에는 정주영선생이 불편해하니 앉아서 사진을 찍자고 하시였고 또 어느때에는 상한 관절때문에 불편해하는데 치료를 잘하여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하시였다.그리고 건강한 몸으로 오래오래 앉아있으라고 하시며 산삼과 수예품도 보내주시였다.혈육의 정을 초월하는 이처럼 뜨거운 사랑과 믿음을 받아안은 정주영선생이였기에 그는 반통일분자들의 압력과 회유에도 굴함없이 통일애국의 길을 꿋꿋이 걸을수 있었다.

주체90(2001)년 3월 21일 그가 사망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애석함을 금치 못하시며 민족의 화해와 통일의 길에 남긴 그의 공로를 높이 평가해주시였고 민족분렬사에 류례없는 조의대표단과 함께 자신의 명의로 된 조전과 화환까지 보내주시였다.어찌 그뿐이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보통강기슭에 그의 애국심이 깃든 체육관이 일떠섰을 때에는 거기에 그의 이름과 그앞에 《류경》이라는 단어를 붙여 의의가 있게 《류경정주영체육관》이라고 명명하도록 해주시여 그가 민족을 위한 길에서 영생하는 삶을 누리도록 하여주시였다.생존시나 운명했을 때나 정주영선생에게 변함없이 베풀어진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은정,고결한 의리는 영원한 전설로 겨레의 기억속에 남아있을것이다.

오늘도 정주영선생의 삶은 그가 자본가이건 군장성이건,과거에는 어떤 길을 걸어왔건 진실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여하려는 사람에 대해서는 너그럽게 안아주시고 통일의 길로 이끌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품이야말로 온 겨레가 운명을 맡기고 영원히 안겨살 위대한 태양의 품이라는것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있다.

본사기자 김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