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2(2013)년 8월 23일 로동신문

 

민족단합의 화원을 아름답게
꽃피운 위대한 사랑

 

사상과 정견,신앙이 서로 다르고 직업도 인생행로도 각이한 우리 민족성원들이 걸어야 할 진정한 애국의 길은 어디에 있는것인가.생의 말엽에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품에 안겨 통일애국의 길을 걸은 전 세계평화련합 총재 문선명선생의 인생행로를 통해 그 대답을 찾을수 있다.

경애하는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 만사람을 따뜻하고 너그럽게 대해주시고 넓은 도량으로 안아주시였기에 어제날 민족앞에 죄를 지었던 사람들까지도 수령님을 재생의 은인으로,민족의 어버이로 따르며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에서 생을 빛내일수 있었다.》

주체80(1991)년 12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향을 방문하기 위해 평양에 온 세계평화련합 총재 문선명을 몸소 접견하시였다.

이 사실이 보도되자 남조선과 해외의 동포들,아니 온 세계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문선명으로 말하면 평안북도 정주태생으로서 지난 전쟁시기 남조선으로 나가 종교활동을 하면서 줄곧 반공을 일삼아온 인물이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장군님께서는 로년기에 이른 문선명선생이 평양에 오겠다는 청원을 너그러이 받아주시고 그와 그의 부인에게 고향을 찾아보고 친척들을 만나보도록 하여주신것이다.

문선명선생이 조국땅을 밟을 때의 나이는 어언 70고개를 넘긴 인생의 황혼기였다.허나 그는 자기가 태양의 밝은 빛을 받아 인생의 새 아침을 맞이하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장군님께서는 문선명선생의 평양방문을 위하여 특별비행기를 띄워주시고 그를 동포애의 정으로 따뜻이 맞이하도록 하시였으며 명승지참관 등 일정에 깊이 관심하시며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이 모든것은 조국을 멀리하고 살아온 그로서는 전혀 생각지 못한 특전이였다.

40여년만에 고향땅을 밟은 문선명은 공화국의 따사로움을 느끼고 자기의 형제들과 친척들이 차별을 받지 않고 근심걱정없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혈육의 정,동포애의 정을 알았으며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이시야말로 온 겨레가 믿고 따라야 할 조국통일의 구성이시라는것을 페부로 절감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문선명선생이 평양을 떠나게 되였을 때에는 나라일이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친히 그들일행을 만나주시고 애국애족의 정 넘치는 따뜻한 담화도 오랜 시간 하시고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정녕 그는 가슴이 쩌릿해오고 눈뿌리가 젖어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집을 뛰쳐나가 딴 길을 걸어온것을 탓할 대신 어버이수령님께서 그렇듯 따뜻이 대해주시니 어찌 감격에 눈시울을 적시지 않을수 있으랴.비록 과거가 떳떳치 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민족적량심과 애국심이 있다면 인생전환을 하도록 고무하고 이끌어주시는 위대한 은인의 품에 안긴 그는 무한한 행복감에 휩싸였다.사상과 정견보다도 조국통일이라는 민족적위업과 한피줄이라는 동포애적감정을 더 귀중히 여기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애국의 뜻에 그는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문선명은 접견석상에서 위대한 수령님께 고향을 찾아보려는 평생소원을 풀어주신것만도 고맙기 이를데 없는데 친히 만나주시기까지 하시니 너무도 감동되여 이 심정을 어떻게 표현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그동안 공화국을 비방하는데 앞장서온것을 깊이 사과하고 이제부터는 조국통일에 이바지하겠다고 진정으로 말씀올렸다.

그는 조국을 떠나면서 그처럼 너그럽고 인자하시며 민족을 열렬히 사랑하시는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애국정신에 크나큰 감명을 받고 탄복하였다고,그분들의 덕망에 보답할 길이 없는것을 안타깝게 여긴다고 하면서 절세위인들의 건강을 간절히 바라는 진심을 터놓았다.

이때부터 문선명선생은 반공의 길에서 뛰쳐나와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 자신의 남은 생애를 바치였다.그는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에 대한 의리를 지켜 민족의 화합과 공동번영을 위한 애국사업에 적극 기여하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 뜻밖에 서거하시였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접했을 때에는 북에서 일체 조문단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어떻게 하나 북을 방문하여 수령님께 조의를 표시해야 한다고 하면서 한 인사를 평양으로 보내 그이의 령전에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였다.그의 이런 인생전환에 대하여 남조선출판물들은 《평생을 반공에 바쳐온 그가 보여준 행동은 말그대로 엄청난 충격이였다.》고 놀라움을 표시하였다.

문선명선생에게 베풀어지는 백두산위인들의 믿음과 동포애는 끝이 없었다.어버이수령님 그대로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서거후에도 그가 공화국을 방문하고 백두산에도 오를수 있게 해주시였다.세계평화련합의 《리틀엔젤스》예술단의 평양방문도 그 따뜻한 사랑속에 마련되였다.공연을 관람하기 위하여 극장에 모여온 조국인민들과 해외동포들은 무대배경에 어버이수령님께서 문선명총재를 만나 그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는 장면이 모셔진것을 보면서 한번 정을 주면 끝까지 더해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사랑에 눈굽을 적시였다.위대한 장군님께서 활짝 꽃피우시는 동포애와 민족대단결의 화원속에 안긴 문선명선생은 장군님의 사랑과 광폭의 품이야말로 온 겨레가 운명을 맡기고 안겨살 진정한 삶의 품이라는것을 다시금 가슴깊이 새겨안았다.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은 그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정력을 다하여 조국통일을 위한 사업에서 더 많은 일을 할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힘이 되였다.하기에 그는 위대한 장군님을 뜻밖에 잃고 온 나라,온 겨레가 비분에 잠겼을 때 남조선당국의 방해를 물리치고 조의대표단을 파견하였던것이다.

우리 민족은 대대로 수령복,령도자복을 누리며 위대한 태양의 손길을 따라 애국애족의 길을 이어가는 행운의 민족이다.

경애하는   원수님은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높으신 뜻을 이어 민족대단결의 화원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가시는 위대한 태양이시다.

지난해 9월 7일 평양에 자리잡고있는 세계평화쎈터에서는 해내외 온 겨레의 가슴을 울리는 광경이 펼쳐졌다.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세계평화련합 총재 문선명선생의 령전에 화환을 보내신것이다.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문선명선생이 병환으로 사망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못내 가슴아파하시며 평양에서 그를 추모하는 행사를 크게 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을뿐아니라 민족의 화해와 단합,나라의 통일을 위해 기울인 그의 노력을 잊지 않으시고 친히 유가족들에게 조전과 위로의 말씀과 함께 자신의 명의로 된 화환도 보내주시였던것이다.이날 만수대의사당에서는 문선명선생에게 조국통일상을 수여하는 의식도 진행되였다.

어찌 그뿐이랴.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며칠전에는 문선명선생의 사망 1년이 되는것과 관련하여 그를 잊지 않으시고 한학자 세계평화련합 총재에게 추모의 말씀을 보내시였다.변함없이 이어지는 문선명선생에 대한 절세위인들의 크나큰 사랑과 은정앞에 유가족들은 물론 해내외의 온 겨레가 경애하는 원수님의 한없이 숭고한 동포애와 함께 조국과 민족을 위해 나서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차별없이 따뜻이 품어주시고 애국인사로 내세워주시는 그이의 무한대한 도량과 포옹력에 솟구치는 격정을 금치 못하였다.

지난날 곡절많은 운명의 길을 걸어오면서 조국과 민족앞에 죄를 지은 문선명총재가 인생말엽에 어지러운 과거와 결별하고 통일의 길을 걸으며 애국의 자욱을 남기고 영생의 언덕에 오를수 있은것은 대해같은 포옹력으로 민족성원모두를 한품에 안아주고 조국통일을 위해 떨쳐나서도록 가르쳐주고 손잡아 이끌어주신 절세위인들의 다심한 손길이 있었기때문이다.

진정으로 나라의 통일을 원하고 민족의 번영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통일애국의 뜻을 따르고 그이의 령도를 받들어 조국과 민족을 위해 한몸바쳐 나서야 할것이다.

본사기자 라설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