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1월 24일 로동신문

 

《푸에블로》호사건의 진실과 미국에 준 교훈(3)

조선의 방위력을 시험해보려 들지 말라

 

1968년 12월 23일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 이전 승무원 82명과 시체 1구가 《귀향길》에 올랐다.그 시체는 《푸에블로》호 나포당시 조선인민군해군의 명령에 불복하고 무모한 반항을 하다가 죽은 선원의것이였다.

함부로 날뛰는 원쑤들에게는 시체와 죽음밖에 차례질것이 없다는 조선의 경고는 결코 빈말이 아니였다.

11개월이라는 기간은 미국에 아무러한 리득도 가져다주지 못하였다.《푸에블로》호와 기물,전자첩보장비와 기밀문서 등은 전부 몰수 당하였다.

세계의 면전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에 《증정》하는 사죄문건에 서명한 미국정부대표 우두워드의 후줄근한 모습은 15년전 조선전쟁에서 참패를 당하고 조선인민앞에 무릎을 꿇었던 패전장군 클라크를 련상케 하였다.그때의 수치와 좌절감에 대하여 당시 미극동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 클라크가 《내가 정부의 지시를 집행하면서 얻은것이란 승리하지 못한 정전협정문에 수표한 첫 미군사령관이라는 보잘것없는 명성이다.》라고 한 말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있다.

돌이켜보건대 조선은 미국에 있어서 언제나 죽음과 수치가 기다리는 곳이였다.

백수십년전 대동강에 기여들었다가 불타버린 《셔먼》호,미제국주의자들이 내리막길에 들어서는 시초를 열어놓은 조국해방전쟁,1967년 우리 나라 령해에 기여들었다가 수장된 《경호함56》호,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 …

《푸에블로》호 침입당시 조선인민군해병들은 7명의 결사대원들로 80여명의 미국간첩선 선원들을 사로잡았다.1 000여t급의 《푸에블로》호와 함께 무기와 장비들을 로획하였다.적함선에 뛰여오른 때로부터 불과 14분만이였다.

46년전 미제가 된매를 맞은 그때와는 대비도 안되게 오늘 조선인민군의 힘은 강해졌다.수십년간에 걸치는 첨예한 조미대결전은 공화국의 전쟁억제력을 비상히 강화해주었다.

《푸에블로》호의 범죄행위에 대하여 미국정부가 쓴 사죄문을 읽고난 당시 미국대통령 죤슨은 《미국이 생겨 력사에 남긴 사죄문은 오직 이것 하나뿐이다.》라고 비명을 올렸다고 한다.

하다면 그토록 《가슴아픈》 사죄문을 남긴 미국의 패배는 《푸에블로》호로 종결되였는가.

《하늘의 푸에블로》라고 장담하며 날치던 미제의 대형간첩비행기《EC-121》은 《푸에블로》호가 나포된 그 이듬해인 1969년 조선인민군에 의하여 단방에 격추되였다.1976년 《판문점사건》때도 역시 미국은 흰기를 들고 공동경비구역안의 질서를 변경시킬데 대한 조선인민군측의 제의를 받아들였다.1977년 7월과 1994년 12월 미군직승기격추사건 등 많은 사건들이 터졌지만 그때마다 미국은 조선인민앞에 사죄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백전백승은 조선인민군의 자랑스러운 전통이다.조선의 혁명무력은 절대로 빈말을 할줄 모른다.

남을 먼저 건드리려고 하지 않지만 우리를 먼저 건드리는 원쑤들에 대하여서는 언제나 무자비하게 대응하는것이 조선인민군의 기질이며 의지이다.미국이 강경으로 우리에게 그 어떤 압력을 가하려고 하는것은 어제도 오늘도 통할수 없는 헛된 시도이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움직이는 《미국의 사죄문》이 되여 닻을 내린《푸에블로》호는 미국에 심각한 교훈과 함께 경고를 주고있다.선의에는 선의로 대하고 강경에는 초강경으로 대응하는것이 조선의 변함없는 립장이다.

미국이 《푸에블로》호사건때의 수치를 또다시 당하지 않으려거든 반공화국적대시정책을 포기하여야 하며 조선반도를 군사적으로 지배하려는 야망을 버려야 할것이다.

본사기자 조향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