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2월 11일 로동신문

 

마두산혁명전적지를 찾아서(1)

 

경애하는   동지께서 마두산혁명전적지를 현지지도하신 소식은 지금도 사람들을 무한히 격동시키고있다.

지난해 11월말 북방의 찬눈길을 헤치시며 삼지연군을 현지지도하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때로부터 두달도 채 안되던 때인 지난 1월 하순 세상에 아직 잘 알려지지 않고있던 안주지구 비밀근거지의 마두산혁명전적지를 찾으시여 혁명의 대가 바뀔수록 혁명전통교양을 더욱 심화시켜야 한다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마두산혁명전적지에로의 행로는 혁명의 붉은기높이 새로운 주체100년대를 이끌고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시려는 억척불변의 의지를 력사에 깊이 아로새긴 강철의 령장의 신념의 강행군길이였다.

경애하는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 창조하신 혁명전통을 영원히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켜 조선혁명을 완수하자는것은 우리 당의 확고한 의지이고 결심입니다.》

얼마전 우리는 항일혁명투쟁시기 우리 나라 서부일대의 지역적령도거점,중요한 군사작전기지였던 안주지구 비밀근거지의 마두산혁명전적지를 찾았다.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마두산혁명전적지는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수령   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항일무장투쟁시기 창설되였던 안주지구 비밀근거지의 밀영들중의 하나이다.

안주지구 비밀근거지는 주체27(1938)년에 마두산밀영,상산밀영,전산밀영,특맥산밀영들로 꾸려진 후 최후공격작전시기에는 혁명의 사령부가 자리잡게 될 중대한 사명을 지니고있었다.

안주일대에서 제일 높은 산인 마두산에 자리잡고있는 마두산혁명전적지는 조국해방작전수행의 중요활동거점으로서 안주지구 비밀근거지 밀영망중에서 특별히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밀영이였다.마두산은 그 모양이 말의 대가리같다고 하여 그런 이름으로 불리운다.

우리가 마두산혁명전적지를 찾은것은 정오를 가까이할무렵이였다.

울창하게 펼쳐진 수림속길을 따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처음으로 들리시였던 전적지의 구호문헌보존교양실을 찾느라니 백두의 밀림속을 헤치는것만 같아 마음은 절로 숭엄해졌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 박명순강사는 경애하는 원수님께 해설해드리는 영광을 지니였던 그날의 감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마두산혁명전적지를 비롯한 안주지구 비밀근거지에 어려있는 어버이수령님의 천출위인상을 세상에 널리 전할수 있게 되였다고 기쁨을 금치 못해하는것이였다.그의 이야기를 듣느라니 항일혁명투쟁사에 빛발치는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하나라도 더 찾아내여 주체의 혁명전통의 보물고를 더욱 풍부히 하시려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뜻이 뜨겁게 느껴졌다.사실 이미전부터 어버이수령님의 조국해방업적을 전하는 마두산혁명전적지에 류다른 관심을 돌려오시다가 새해진군의 첫 기슭에서 혁명전통교양을 무엇보다도 중시하시며 이곳을 찾으신 우리 원수님이시였다.

전날까지만 해도 푸근하던 날씨는 여느때없이 차디찬 바람을 일구며 귀뿌리를 빨갛게 얼구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이곳을 찾으시였을 때 맵짠 추위가 한창이였다더니 마치도 우리에게 그때를 체험하게 하려는가싶었다.그런데 우리의 이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 강사는 대한의 사나운 추위가 전적지의 골짜기마다에 짙게 서리여있던 궂은날에 원수님을 모신데 대한 자책감으로 죄스러움을 금할수 없다고 하며 지금의 날씨는 그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것이였다.자신께서는 그 모진 강추위를 이겨내시면서도 오히려 너무도 뜻밖의 영광에 미처 솜옷도 입지 못하고 나와 해설해드리는 강사의 건강을 걱정해주시던 경애하는 원수님의 따뜻한 음성이 지금도 귀가에 쟁쟁히 울린다고 박명순동무는 격정에 젖어 이야기하였다.

그의 안내를 받으며 구호문헌보존교양실에 들어서니 안주지구 비밀근거지가 한눈에 보이는 전경사판과 규모있게 전시된 구호문헌들이 한데 어울려 조화를 이루고있어 마치 산속의 구호문헌박물관을 돌아보는것만 같았다.

지금은 이렇게 훌륭하게 꾸려져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내고있지만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이곳을 찾으시였을 때에는 구호문헌들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보수작업이 한창이여서 몹시도 혼잡스러웠다고 한다.꿈결에도 뵙고싶던 경애하는 원수님을 너무도 불비한 작업장에 모시였던 안타까움은 지금도 이곳 사람들의 가슴속에 응어리로 맺혀 혁명전통교양거점의 주인으로서의 본분을 다해갈 결의를 더욱 굳혀주고있다.

우리는 강사와 함께 구호문헌보존교양실을 돌아보며 잊지 못할 그날의 사연에 대해 잘 알게 되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때 작업중이여서 정리되지 못한 주변환경을 조금도 탓하지 않으시고 구호문헌들을 보존하기 위한 대책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고 다정히 이르시며 그 방도에 대해서도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그러시고는 구호문헌은 우리 당의 혁명전통이 어떻게 마련되였는가 하는것을 실물로 보여주는 력사의 증견자라고 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이제는 우리곁에 우리 당의 혁명전통이 어떻게 마련되였는가 하는것을 말해줄 혁명의 1세들인 항일혁명투사들도 몇명 남지 않았다고,그런것만큼 우리는 구호문헌들을 세대를 이어가며 영구보존하여야 한다고 참으로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아안으며 일군들은 어찌하여 그이께서 마두산의 구호문헌들을 두고 그리도 마음쓰시였고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발전시키는데서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들이 얼마나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가 하는것을 더욱 깊이 새겨안게 되였다.

우리 당의 혁명전통에는 혁명위업수행의 전과정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혁명의 지도사상,지도리론,지도방법과 함께 풍부한 투쟁경험,고귀한 업적이 집대성되여있다.그것은 본질에 있어서 수령의 혁명사상과 리론,수령의 령도방법과 투쟁경험,고귀한 업적인것으로 하여 우리 당의 빛나는 혁명전통은 혁명과 건설의 승리적전진을 담보하는 근본초석으로 되고있다.항일의 빛나는 혁명전통이 있음으로 하여 우리 당과 인민은 준엄한 시련속에서도 혁명적신념과 불굴의 의지로 20세기 사회주의수호전에서 빛나는 승리를 이룩할수 있었으며 오늘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령도따라 새로운 주체100년대의 승리적전진을 힘있게 다그쳐나가고있는것이다.

우리 당의 혁명전통의 이러한 진리성과 영원불멸할 생명력이 바로 혁명전적지들의 구호문헌들에서 맥맥히 높뛰며 주체의 혈맥을 끝없이 이어주고있는것이다.마두산혁명전적지가 그것을 말해주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해방업적과 관련한 귀중한 력사적사실을 고이 간직하고있으면서도 그리 소문나지 않았던 마두산혁명전적지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찾아오신 때로부터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일군들은 이런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 안주지구 비밀근거지 전경사판앞에 서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거룩한 모습을 경건히 우러렀다.

 

비밀근거지에 어린 천리혜안의 예지

 

구호문헌보존교양실의 안주지구 비밀근거지 전경사판우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다음과 같은 교시가 정중히 모셔져있다.

《안주지구 비밀근거지는 조국해방의 최후공격작전을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중요한 작전기지입니다.》

이 명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34(1945)년 7월 조선인민혁명군 지휘성원들과 조국해방을 위한 최종군사담화를 하시면서 하신 교시였다.후날 항일혁명투사 김익현동지는 그때를 두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류경수,오진우동지들이 인솔하는 항공륙전대와 함께 평남도지역에 진출하여 이곳에 혁명의 사령부를 정하고 여기에서 전국적인 최후공격작전을 지휘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는데 대해 감회깊이 회상하였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왜 여기 안주지구를 그처럼 중시하시였는가 하는것을 사회경제적으로나 자연지리적으로도 매우 유리한 지점들에 꾸려진 마두산밀영,상산밀영,전산밀영,특맥산밀영들을 한눈에 볼수 있는 전경사판을 통하여 잘 알수 있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때 어버이수령님의 명제와 전경사판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다가 수령님의 교시와 사판을 보니 마두산혁명전적지가 자리잡고있는 안주지구가 우리 나라 서부일대의 지역적령도거점으로서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이룩하는데서 중요한 군사작전지역이였다는것이 뚜렷이 안겨온다고 만족하신 어조로 말씀하시였다.그러시고는 일군들에게 마두산의 지명이며 이 지대의 해방전이름,안주지구 비밀근거지의 유래에 이르기까지 친히 하나하나 해설해주시면서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조국해방업적을 뜨겁게 회고하시였다.

조선혁명의 사령부가 백두산에 튼튼히 뿌리를 박은 후에 벌써 안주지구를 중요한 작전거점으로 정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7(1938)년 3월에 사령부비서처 성원들중의 한 사람을 책임자로 하는 소부대를 이곳에 파견하시였다.당시 몇명 안되던 사령부비서처 성원들중의 한 사람을 골라 안주지구에 보내여 비밀근거지를 꾸리도록 하신것만 놓고보아도 우리 수령님께서 이 일대를 얼마나 중시하시였는가를 잘 알수 있다.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로부터 다섯달후인 8월에는 양덕군에 있는 남대봉밀영에 몸소 나오시여 안주지구에 비밀근거지를 꾸린 정형을 료해하시고 자연지리적으로 유리한 곳에 비밀근거지를 잘 잡았다고 하시면서 근거지가 앞으로 해야 할 구체적인 과업과 방도를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여러차례 사령부통신원들을 파견하시여 최후결전시기에는 안주지구가 혁명의 사령부가 위치할 강력한 보루로 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전경사판을 보시며 항일혈전사에 수놓아진 백두산청년장군의 걸출한 위인상을 뜨겁게 더듬으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숭엄한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수령님께서 그때 벌써 멀리 앞을 내다보시고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과 그에 배합한 전인민적봉기로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실 구상을 안으시고 안주지구에 비밀근거지를 꾸리도록 하신 이 한가지 사실만 놓고서도 우리 수령님은 천리혜안의 예지를 지니신 절세위인이시였다는것을 잘 알수 있습니다.》

강사는 물론 일군들도 우리 당의 혁명전통에서 맥박치는 어버이수령님의 천출위인상을 격찬하시며 수령님의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혁명로선을 대를 이어 빛내일데 대하여 강조하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경건히 우러렀다.

얼마나 전설같은 이야기가 여기 안주지구 비밀근거지에 소중히 어려있는것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호두회의이후 백두산일대에 혁명의 사령부를 두시고 1930년대말에는 적들의 중요한 군사전략적보루였던 안주지구를 장악하실 구상을 펼치시였다.

마두산,상산,전산,특맥산혁명전적지들이 자리잡고있는 안주지구 비밀근거지는 사방이 높은 산들로 둘러막혀있는 묘한 지세로 하여 예로부터 은신처로도 아주 적합하고 적의 공격을 막는데도 유리하였다.

임진왜란시기 묘향산의 서산대사가 의병투쟁에 떨쳐나선 중들에게 무술을 련마시켰다는 곳도 바로 여기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을 단순한 은신처로가 아니라 일제침략자들에게 섬멸적타격을 가하고 조국해방을 앞당기기 위한 군사작전에 아주 유리한 공격기지로 보시였다.

당시 수많은 광산들이 있던 이 지구에 비밀근거지를 꾸려놓으면 여기에 집결되여있는 로동자들을 혁명적으로 각성시켜 일제를 반대하는 항쟁에로 불러일으킬수 있다고 그이께서는 생각하시였다.

또한 지리적으로 볼 때 이 일대는 높은 산발을 통해 백두산으로 드나들기 유리하고 평양,문덕,신안주,개천을 비롯하여 국내의 여러 지역으로 나가는데 편리했으며 넓은 벌을 리용하여 식량저축도 할수 있었고 주요철도와 도로망을 끼고있어 활동하기에도 좋았다.

때문에 안주지구 비밀근거지가 자리잡은 곳은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공격작전이 개시되면 조선인민혁명군이 이곳에서 여러 지방으로 신속히 진출하여 무장투쟁을 전개할수 있었으며 국내의 광범한 대중을 전민항쟁에로 적극 불러일으켜 적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안길수 있는 공격에 아주 적합한 천험의 보루였다.

바로 이것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구상하신 전략전술적의도였다.

날로 높아가는 우리 인민의 반일감정을 어떻게 하나 꺾어보려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한 책동이 한층 강화되고있던 그때 국내깊이의 안주지구에 비밀근거지를 꾸린다는것은 결코 누구나 생각할수 있는것이 아니였다.

그것은 천리혜안의 예지와 비범한 통찰력,무비의 담력과 강인담대한 배짱,언제나 맞받아나가는 완강한 공격정신을 천품으로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만이 제시하실수 있는 가장 과학적인 전략전술적 구상이였다.

이렇듯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우리 수령님에 의하여 지난날 은신처로만 여겨져오던 이 일대는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앞당겨오는데 크게 이바지할수 있는 지역으로서의 자기의 독특한 지위를 가지게 되였다.

일제의 패망을 7년이나 앞둔 그때 벌써 국내깊이에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과 그에 배합한 전인민적봉기로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시려는 백두산위인의 전략적구상에 의하여 비밀근거지가 꾸려진 이 한가지 사실을 통해서도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천출위인상을 다시금 뜨겁게 새겨안을수 있는것이다.

일군들이 이러한 생각으로 격정을 금치 못하고있는데 경애하는 원수님의 말씀은 계속 힘있게 울리였다.

《조국해방은 철저히 수령님께서 조선인민혁명군을 령도핵심으로 하는 전민항쟁으로 강도 일제를 쳐물리치기 위한 항일대전을 벌리신 결과에 이룩되였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으며 일군들은 전민항쟁으로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신 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이 새로운 주체100년대에 더욱 빛을 뿌리도록 하는데서 자기들이 지닌 숭고한 임무를 깊이 자각하게 되였다.

 

천금을 주고도 살수 없고 만들수도 없는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이날 구호문헌보존교양실을 돌아보시면서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할데 대하여 중요하게 강조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혁명의 대가 바뀔수록 혁명전통교양을 더욱 심화시켜야 합니다.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창조하신 빛나는 혁명전통은 우리 당과 혁명의 억센 뿌리입니다.》

우리 군대와 인민이 지난 시기 력사에 류례없는 만난시련을 과감히 이겨내고 혁명의 한길을 꿋꿋이 걸어올수 있은것은 바로 혁명전통교양을 줄기차게 벌려왔기때문이다.

민족자체의 힘으로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신 수령님의 불멸의 항일혁명업적과 민족해방전쟁의 세계사적모범을 창조하신 수령님의 위대한 자주적혁명정신으로 세차게 맥박치는것이 우리 당의 혁명전통이고 그 진리성과 감화력을 실물로 보여주는 위력한 교양장소가 바로 혁명전적지인것이다.

우리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거룩한 발자취를 따라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해방업적을 뜨겁게 전하는 마두산혁명전적지를 돌아보면서 이 유서깊은 고장에 덮여있던 력사의 사실들을 되새겨보았다.

조국해방을 이태 앞둔 때 안주지구 비밀근거지에서 활동하던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는 사령부통신원을 통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영예로운 전투임무를 전달받고 주체32(1943)년 7월 여기 마두산밀영에서 중요한 회의를 진행하였다.

사령부통신원과 소부대성원들은 회의참가자들이 들어올 각 방향의 통로들과 마두산의 곳곳마다에 백두산3대장군의 위대성을 널리 선전하는 구호들을 정중히 써넣었다.

그때 진행된 회의에는 서부조선의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던 소부대책임자들과 광산,철도,농촌,목재소의 반일조직대표들이 참가하였다.

이날 회의를 집행한 소부대책임자는 전체 혁명조직들은 전민항쟁준비를 다그치고 무장봉기부대들을 확대강화하여 모든 교통망들을 철저히 틀어쥠으로써 일제의 아성을 급습하여 적들이 숨돌릴 사이없이 조국해방작전을 승리적으로 결속하시려는 사령관동지의 령활무쌍한 군사작전안을 빛나게 실행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회의참가자들과 이 일대의 혁명가들,애국자들에 의하여 조국이 해방될무렵 안주지구는 벌써 그들에게 장악되여있었다.

마두산밀영에서는 51점의 구호문헌들이 발굴되였으며 그중에서 백두산3대장군을 칭송한 구호문헌은 10여점이나 된다.

다른 고장들에서는 보기 드문 이런 뜻깊은 사연을 안고있는 마두산혁명전적지야말로 당원들과 근로자들,군인들과 새 세대들을 우리 당의 혁명전통으로 무장시키는데서 큰 역할을 할수 있는 중요한 교양거점인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자주적인 혁명로선,조국해방업적이 빛발치는 혁명전적지들을 통한 교양사업을 더욱 심화시켜 주체의 혁명전통을 영원히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키며 그 불멸의 전통에 기초하여 새로운 주체100년대의 영웅적진군을 힘차게 다그쳐나가시려는것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확고한 의지이다.

하기에 그이께서는 여기 마두산혁명전적지의 종업원들이 앞으로 혁명전적지를 잘 관리하고 그를 통한 교양사업을 더욱 강화할데 대하여 당부하시였고 수령님께서 창조하신 자주적혁명정신은 조선로동당의 확고부동한 지도사상이라고 그토록 강조하시였으며 혁명전적지들은 천금을 주고도 살수 없고 만들수도 없는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이라고 그리도 절절히 말씀하신것이리라.

경애하는 원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으며 일군들은 새로운 주체100년대의 요구에 맞게 혁명전통교양,혁명전적지를 통한 교양사업을 더욱 심화시켜나갈 결의를 굳게 가다듬었다.

강사로부터 이런 뜻깊은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몸소 보아주신 구호문헌들에로 발걸음을 옮기였다.

본사기자 김준혁
본사기자 정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