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4월 5일 로동신문
수령옹위의 제일선에서 한생을 빛내인 열혈충신 오백룡동지 서거 30돐을 맞으며
대성산혁명렬사릉의 붉은 기폭에 휩싸여 영생하고있는 항일혁명의 산아들가운데는 수십년세월 혁명의 군복을 입고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무장으로 옹위하고 받들어온 오백룡동지도 있다. 시련의 날에나 행복한 날에나 변함없이 혁명의 수령을 온넋을 바쳐 보위한 오백룡동지의 한생은 오늘도 우리에게 혁명전사의 심장은 어떻게 높뛰여야 하는가를 새겨준다. 위대한 령도자 《항일혁명투사들이 지녔던 높은 혁명정신과 그들이 쌓아올린 혁명업적과 투쟁경험은 우리 인민이 영원히 따라배우고 계승해나가야 할 귀중한 재보입니다.》 민족수난의 시기에 태여나 망국노의 설음과 고통을 뼈저리게 체험하다가 항일무장투쟁의 초시기에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한 오백룡동지는 주체22(1933)년초 소왕청 마촌에서 처음으로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는 영광을 지니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뵈옵는 순간 오백룡동지는 솟구치는 환희와 감격을 금할수 없었으며 이분이시야말로 조선인민이 그토록 애타게 갈망하던 민족의 구성이시고 그이따라 나갈 때 조국해방의 날을 앞당길수 있다는 신념을 더욱 굳게 간직하게 되였다. 오백룡동지와 전우들이 억울한 루명을 쓰고 생사기로에 놓였을 때 사생결단의 의지로 반《민생단》투쟁의 좌경적오유를 극복하시고 그들의 운명을 구원해주신분은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조선혁명의 심장이시고 우리 운명의 전부이신 위대한 그날의 맹세를 가슴에 안고 오백룡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을 가장 몸가까이에서 보위하는 경위대원으로 한생을 살았다.위대한 수령님의 가까이에 있을 때나 멀리 떨어져있을 때나 오백룡동지에게는 항상 사령부보위와 사령관동지의 명령관철이 최대의 의무로 간직되여있었다. 항일의 나날 오백룡동지는 경위중대장의 중책을 수행하면서 언제나 수령옹위의 선봉에서 용감무쌍하게 싸웠으며 오중흡동지가 륙과송전투에서 전사한 다음에는 수령결사옹위정신이 가장 투철하였던 7련대를 맡아 지휘하면서 조선혁명의 사령부를 믿음직하게 수호하였다.동녕현성전투와 소왕청방어전투,보천보전투,고난의 행군길 그리고 무산지구진출의 행군길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곁에는 항상 오백룡동지가 서있었다. 사령부를 옹위하는 전투마당에서 오백룡동지의 기관총과 싸창의 드센 화력은 적들을 전률케 하였으며 수령님의 명령지시관철에서도 오백룡동지의 부대가 언제나 앞장에 섰다. 주체28(1939)년 2월 오백룡동지의 경위중대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장백현 가재수부근에 이르렀을 때였다.대오에서 도주한 변절자의 밀고에 의하여 조선인민혁명군 사령부의 위치와 경위중대의 력량까지 알게 된 적들은 이리떼처럼 달려들었다. (사령관동지를 모시고 왕청에서부터 북만원정의 길을 거쳐 백두산서남부일대의 수만리길을 헤쳐가며 이날이때까지 싸워온 내가 조선혁명의 사령부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고 죽어서야 되겠는가. 천백번 죽어 한몸이 가루가 되여도 사령관동지의 안전만은 보장해야 한다.) 이런 결사의 각오로 오백룡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령활한 지휘밑에 중대를 이끌어 적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사령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였다. 오백룡동지의 소부대가 사령부와의 련계가 끊어지고 굶주림과 추위,변절자에 의해 행군로정이 알려진 최악의 상태에 처했을 때 일시 안전한 장소로 피했다가 다시 사령부를 찾아가자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맞섰다. 《그게 무슨 소리요.우린 온 동만땅을 기여서라도,딩굴면서라도 끝까지 사령부를 찾아가야 하오.마음속에서 한순간이나마 사령관동지와 떨어지면 우린 혁명을 못하오.》 그리고는 열병으로 쓰러졌던 몸을 일으켜 비겁한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기를 지키리라는 혁명가요를 부르며 한발자국,두발자국 앞으로 걸음을 옮겨나갔다. 항일의 나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대의 말먹이사정이 곤난하여 그처럼 애용하시던 백마를 부득이 어느 한 농가에 주도록 하시였을 때 그 소식을 전해들은 오백룡동지가 일제군경들을 족치고 많은 먹이를 로획해가지고와서 저를 처벌해도 좋고 강직시켜도 좋습니다,그렇지만 내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한 백마를 어데도 보낼수 없다는것을 알아주기 바랍니다라고 사령관동지께 울먹이며 간청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잘 알려져있다. 그때를 추억하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각같아서는 오백룡을 붙안고 고맙소,고맙소하면서 등이라도 두드려주고싶었다,나를 위한 일이라면 생사를 가리지 않고 불과 물속에라도 뛰여드는 이 대담무쌍한 소대장의 충직성에 나는 한두번만 감탄한것이 아니였다라고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쓰시였다. 오백룡동지는 바로 이런 투사였다.해방후와 전쟁시기 그리고 전후시기를 거쳐 오랜 기간 당중앙위원회와 무력기관을 비롯한 여러 부문의 중요직책에서 사업하였지만 오백룡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을 총대로 보위하던 백두산시절의 그 자세로 살며 투쟁하였다.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르시면 노상 달음질쳤고 계단도 두세개씩 건너뛰며 달려가군 하였다.백두산의 경위대원시절부터 몸에 배인 습관이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왜 그렇게 급하게 다니는가,천천히 다녀도 되지 않는가고 하시면 그는 《예》,《예》하고 대답은 하면서도 자기의 그 습관을 좀처럼 고치지 못하였다. 무더위가 계속되던 어느해 8월이였다.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땀에 푹 젖은 옷을 입고 뛰여온 그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동무는 평생 나를 따라다니느라고 잔등이 마를새가 없는데 시원한 남방샤쯔를 입고싶지 않은가고 물으시였다. 순간 그는 펄쩍 뛰며 《수령님,저에게서 군복을 벗기시렵니까? 군복을 벗겨놓으면 이 오백룡이한테 뭐가 볼게 있습니까.전 군복을 벗지 않겠습니다.군복을 입고 수령님곁에 늘 있는것이 저의 소원입니다.》라고 말하며 누가 당장 군복을 벗기기라도 하는것처럼 목깃을 부득부득 여미였다. 이처럼 오백룡동지는 수령을 위하여 피와 땀을 아낌없이 바치는것을 자신에게 부과된 혁명임무로,생활의 락으로 받아들이였다.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지시에 대한 집행을 상급앞에 지닌 하급의 의무로가 아니라 령도자에 대한 전사의 의리로 여긴 진짜배기혁명가였다. 하기에 그는 어버이수령님의 명령지시를 관철하는 길에서 리유와 조건타발이라는것을 몰랐으며 오직 《알았습니다.》라고 접수하였고 《수행하였습니다.》라는 한마디로 수령님께 보고드리였다. 수령의 명령지시에 대한 절대적이고도 무조건적인 결사관철의 정신을 떠나 오백룡동지의 한생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다.오백룡동지는 당사업이면 당사업,군건설이면 군건설,경제지도면 경제지도 등 초소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성실히 일하였다. 언제인가 오백룡동지는 전권대표로서 간석지건설사업을 총책임지고 지도할데 대한 과업을 받게 되였다. 《내 이번에 간석지건설장에 아예 뼈를 묻을 작정을 하고 나섰소.》 오백룡동지가 그때 한 이 말에는 그의 투철한 수령결사옹위정신과 참된 인간적매력이 그대로 비껴있었다. 어느날 룡매도에서 간석지개간공사가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하고있다는 보고를 받은 그는 지체없이 현지로 떠났다. 그런데 현지의 일군들이 그를 막아나섰다.자동차는 더 말할것도 없거니와 사람도 들어서기 힘든 감탕길이라는것이였다. 《아무리 길이 험해도 흔들레판이야 아니겠지.가자구!》 무던히도 들추는 뜨락또르의 련결차우에서 고령의 로투사를 부축해주며 일군들이 나이도 많은데 지휘부사무실에 앉아서 조직사업이나 해주고 이런 걸음은 하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고 걱정하자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를 생각해주는건 고맙소만 동무들이 알아야 할건 우리가 이런 길을 걷지 않으면 수령님께서 걸으시고 지도자동지께서 걸으시게 된다는거요.그래 한평생 고생만 하시는 우리 수령님과 지도자동지께서 이런 험한 길을 걸으시게 해서야 옳겠소?어디 말을 해보오.》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남다른 보살피심속에 성장하고 삶을 빛내인 오백룡동지는 늘 어떻게 하면 수령님과 장군님께 기쁨과 만족을 드릴수 있겠는가 하는데 대하여 생각하군 하였으며 그것을 무조건 실천에 옮기군 하는 남다른 특질을 가지고있었다. 겨울수박과 평양감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어버이수령님께 겨울에도 시원한 수박을 드릴수 없을가 하고 항상 생각해오던 오백룡동지는 지팽이에 몸을 의지하여 전국각지의 온천지대를 답사하고 전문가들과 토론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맞춤한 곳에 온실을 짓게 되였다.이렇게 온실수박농사를 시작한 오백룡동지는 거의 매일이다싶이 하루일이 끝나면 집으로가 아니라 차를 타고 그곳으로 향하군 하였다.주로 밤시간에 과외로 하는 일이다보니 그는 잠도 평양에서 현지로 오가는 차안에서 잤고 식사도 길옆에서 하는 때가 많았다. 노력이 드디여 열매를 맺어 눈이 강산같이 쌓인 한겨울의 어느날 첫물수박을 따게 되였다. 눈계절에 뜻밖에도 청신한 수박을 보게 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척 신기해하시였다.일군들로부터 그 내막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백룡동무만이 이런 일을 생각해낼수 있다고,그가 나에게 겨울에도 수박맛을 보이려고 소문없이 애쓴 그 마음이 더없이 고맙다고,하지만 나는 내가 수박맛을 보게 된것보다도 오백룡동무가 창조한 경험을 통하여 우리 인민들에게 사철 수박이며 오이며 신선한 남새들을 맛보일수 있게 된것이 몇갑절 더 기쁘고 감격스럽다고 여간만 만족해하지 않으시였다. 이렇게 오백룡동지가 어버이수령님께 겨울수박을 올린 이후 우리 나라에서는 온실농사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게 되였고 눈내리는 겨울에도 신선한 오이를 비롯한 남새가 인민들의 식탁에 오르게 되였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백룡동지와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어버이수령님께서 감나무에 대하여 깊이 관심하고계시는데 평양에서는 감을 재배할수 없는것이 유감스럽다고 말씀하신적이 있었다. 그러나 오백룡동지에게는 그것이 무심치 않았다. 강원도 전연지대를 돌아보고 오던 그는 안변군 천삼마을에 들려 그곳 토배기로인들이 들려주는 감나무비배관리에서 류의할 점들을 구체적으로 수첩에 적은 다음 몇그루의 감나무를 떠가지고 돌아왔다. 오백룡동지는 집뜰안의 양지바른 곳에 나무들을 심고 그야말로 갓난아이 보살피듯 계절마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마음을 썼다.선기가 돌면 새끼로 나무아지들을 꽁꽁 싸매주었고 밤에 자다가도 센 바람소리가 나면 벌떡 뛰쳐일어나군 하였다.이렇게 애쓴 보람으로 감나무들은 하나같이 뿌리붙임이 잘되였고 이태후부터는 열매를 맺기 시작하였다.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뵈온 자리에서 오백룡동지는 평양지방에서도 감나무를 얼마든지 재배할수 있다는데 대하여,자기 집에 감나무를 심어놓고 2년째 시험해보았는데 이제는 추위에도 잘 견딜뿐아니라 열매까지 어김없이 달린다는데 대하여 말씀드리였다. 그날 저녁 오백룡동지가 키우고있는 감나무들을 찍은 기록영화화면을 보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릎을 치시며 이것 역시 오백룡동무와 같은 사람만이 할수 있는 일이라고,평양지방에서 감나무를 자래울수 있다는것이 확증되였으니 앞으로 수도시민들에게도 감을 맛보일수 있게 되였다고 하시면서 못내 기뻐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와 위대한 장군님께서 의도하시는것이라면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스스로 맡아 기어이 실천하고야 마는 헌신성,바로 여기에 오백룡동지의 남다른 인간상이 있었다. 오백룡동지는 위대한 장군님을 높이 받들어모시는 사업에서도 모범을 보여준 조선혁명의 1세원로들중의 한사람이였다.백두밀림과 국내의 깊은 밀림속나무들에 백두광명성의 탄생을 알리는 구호들을 써넣던 그때로부터 오백룡동지는 위대한 장군님을 받들어 주체혁명위업완성을 위한 길에서 자기의 모든것을 다하였다.오백룡동지는 위대한 장군님을 어버이수령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모시는 여기에 혁명승리의 기본담보가 있다는 확고부동한 신념을 안고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당의 령도체계를 확고히 세우는데서 핵심적,중추적역할을 하였다. 살아서도 빛나고 죽어서도 영생하는것이 충신의 삶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백룡동지가 갑자기 생명의 위험에 처했을 때 당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도 뒤로 미루시고 하루에 열번나마 환자의 상태를 료해하시면서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써서라도 환자의 의식을 회복시켜야 한다,오백룡동지가 살아서 앉아만 있어도 우리 당은 힘이 된다고 하시며 가능한 모든 조치를 다 취해주시였다. 꺼져가는 생명앞에서 오백룡동지! 절대로 죽어서는 안됩니다,내 말이 들립니까하고 안타까와하시던 위대한 장군님,로투사와 영결하시며 어쩌면 그렇게도 빨리 갈수 있는가,오래동안 앓다가 우리곁을 떠났어도 이렇게까지 가슴이 아프지 않겠다고 비분을 쏟으시던 그이의 모습을 우리 군대와 인민은 잊지 못하고있다. 오백룡동지의 아들들에게 아버지의 대를 이어 당과 혁명에 충실해야 한다고 하시던 우리 장군님의 간곡한 말씀은 그들만이 아니라 이 땅의 천만사람들의 가슴에 뜨겁게 메아리치고있다. 오백룡동지가 지녔던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과 조국과 인민에 대한 다함없는 헌신성,백절불굴의 혁명가적기질은 경애하는 위대한 대원수님들을 받들어 혁명의 천만리길을 걸어온 항일선렬들처럼 경애하는 본사기자 백영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