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4월 11일 로동신문
주체의 영원한 태양을 따르는 진보적인류의 다함없는
만민을 매혹시킨 희세의 정치원로
희세의 정치원로로서 높은 국제적권위를 지니시고 만민의 신뢰를 받으신 우리 수령님의 혁명활동 전과정에 관통되여있는것은 인민에 대한 가장 열렬하며 진실하고 헌신적인 사랑이다. 경애하는 《 언제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래동안 혁명을 해오면서 많은 사람들과 사귀였지만 원쑤들을 내놓고는 그 누구를 미워하거나 깔보며 무시하거나 얕잡아보려는 마음을 가져본적이 없었다고,그것은 우리가 대하는 사람들이 동지이고 벗이기때문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위대한 생애를 혁명적동지애,인간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력사로 수놓으시였다.세상에서 동지와 벗이 제일 많은분이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한없이 넓고 웅심깊은 인정미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주성을 지향하는 세계 여러 나라 당,국가수반들,정계,사회계,학계의 수많은 저명한 인사들과 두터운 친분관계를 맺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인정미와 숭고한 도덕의리,넓으신 도량과 아량있는 포옹력에 매혹되여 인생의 방향전환을 한 사람은 얼마이며 그이의 벗이 되고 제자가 된 사람은 얼마였던가. 뽀르뚜갈의 고메스로 말하면 군참모장,대통령경력을 가진 관록있는 정치인이였다. 지난 조선전쟁시기 미군의 침략적인 공세작전들이 물거품으로 되는것을 직접 목격하기도 한 그는 위대한 수령님을 강철의 령장으로 우러러 흠모하여왔다. 그가 수령님을 처음으로 뵈온것은 주체70(1981)년 7월이였다. 수령님께서는 그의 두손을 따뜻이 잡으시고 오랜 친구를 만나는 심정이라고 정담아 말씀하시면서 그의 공로도 평가해주시고 그가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대답을 주시였다. 주체71(1982)년 4월에 고메스가 또다시 우리 나라를 방문하였을 때에도 수령님께서는 그를 만나주시고 오찬도 함께 하시며 이젠 구면친구로 되였는데 우리 나라에 자주 오라고,인민을 위하여,유럽의 자주화를 위하여,발전도상나라들의 자주화를 위하여 함께 싸워나가자고 말씀하시며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뵈오면 뵈올수록 군복과 함께 한생을 살아온 무뚝뚝한 군인출신인 고메스의 심장에 지펴진 매혹의 불길은 더욱 세차게 타올랐다.수령님의 신비한 친화력에 온넋이 끌린 고메스는 《 어찌 그뿐이랴.버체트나 피오레가 관록있는 정의의 문필가로 세계언론사의 한페지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것도,듀프르가 수십년간 조선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사업에 정력을 바친것도,수많은 외국의 벗들이 수령님의 존함을 친근하게 부르며 그리움의 정을 터치고있는것도 폭과 깊이를 헤아릴수 없는 어버이수령님의 대해같은 인덕과 포옹력을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남기신 대외활동일화들가운데는 수령님의 숭고한 덕망을 보여주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주요명절때마다 우리 나라에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바쁘신 시간을 내군 하시였다.만나주실 때에는 매 사람앞으로 다가가시여 다정히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시였고 담화도 하시였다.한 일군이 수령님께서 한자리에 서계시면서 손님들로부터 인사를 받으시였으면 하는 의향을 말씀드렸다.수령님께서는 손님들이 우리를 찾아왔는데 주인인 우리가 그들을 만나서 인사를 해야지 그들이 와서 인사를 하라는 식으로 해서야 되겠는가고 나무람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이런분이시였다.자신의 로고보다 다른 사람의 편의를 먼저 생각하시며 바치신 위대한 헌신의 날과 달이 있어 수령님의 대외활동력사는 인류외교사에 일찌기 있어본적 없는 위인전설의 년대기들로 빛나고있는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은 우주와도 같은 품으로 세계를 안으시고 태양의 빛과도 같은 따뜻한 정으로 인류를 품어주신 희세의 정치원로이시다. 사상과 정견이 다른 사람들도 누구든지 우리 수령님을 한번 만나뵈오면 그 고결한 인품에 매혹되여 끝없이 흠모하고 존경하였다. 미국의 전 대통령 지미 카터는 우리 나라를 방문하여 위대한 수령님을 뵈옵고나서 《 일본정계 《흑막》속의 최고권력자였던 가네마루 싱도 위대한 수령님의 인간적풍모에 완전히 매혹된 정객이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일 두 나라앞에는 시대와 인민들의 요구에 맞게 불미스러운 과거를 청산하고 관계를 개선해야 할 과제가 나서고있었다.하지만 일본은 우익반동들의 책동으로 조일관계개선문제에서 결단성있는 걸음을 내짚지 못하고있었다. 이러한 때인 주체79(1990)년 9월 가네마루 싱이 우리 나라를 방문하여 3당공동선언을 채택하고 귀국하게 되였다.그가 비행기에서 내리자 기자들이 가네마루를 에워싸고 질문소나기를 퍼부었다.기자들을 일별하고난 가네마루는 《정말 훌륭한 방문이였다.아쉬운것은 너무 늦게 이번 걸음을 했다는 그것이다.이자 어느 기자가 어느날 그의 사무실에 복면한 사나이들이 뛰여들었다.그들은 가네마루의 가슴에 총을 들이대고 3당공동선언을 무효화하고 평양을 찬양하는 활동을 일체 중지할것을 강박하였다.이때 가네마루는 나는 신의를 목숨보다 귀중히 여기는 사람이다,어떤 놈의 총이나 칼에 맞아죽는대도 가네마루는 생의 마지막까지 《 우리 수령님께서는 한번 사귄 사람은 설사 하늘이 뒤집힌대도 의리를 변치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시고 위해주시였다. 정녕 수천수만의 심장을 틀어잡는 우리 수령님의 위대한 사랑과 의리의 세계,국적과 민족을 초월하여 시대의 위인전설로 전해지는 사랑의 서사시는 한없는 그리움과 열렬한 흠모의 송가가 되여 우리의 행성에 오늘도 울려퍼지고있다. 본사기자 배금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