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5월 25일 로동신문
공화국을 받드는 길에 참다운 애국충정이 있다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초대의장이였던 한덕수동지의 한생을 더듬어
우리 조국은 애국자가 많은 나라이다. 한세기전의 식민지약소국이 존엄높은 백두산대국으로 오늘의 영광을 맞이한것은 선군조국에서 사는 우리 인민들뿐아닌 해외에 있는 조국의 장한 아들딸들의 헌신을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경애하는 위대한 령도자 《한덕수의장은 어버이수령님의 령도를 높이 받들고 총련을 결성하고 재일동포들을 묶어세워 조국의 통일과 부강번영을 위한 애국사업에 한생을 바친 혁명의 원로,로혁명가,참된 애국충신이였습니다.》 자본주의이역땅에서 오로지 수령의 사상과 령도를 받들어 재일조선인들의 운명과 생활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이룩하도록 이끈 애국충신인 한덕수동지의 한생은 영광찬란한 우리 조국의 력사속에 힘찬 고동을 계속하고있다.
주체확립은 해외교포운동의 제일생명
준엄한 전화의 불길속에 조국의 산이 타고 강이 끓던 1952년 어느날 도꾜도 이따바시에 자리잡은 목조건물의 한 방에서 밤가는줄 모르고 펜을 달리는 사람이 있었다.한덕수동지였다. 전쟁의 운명을 한몸에 걸머지시고 위대한 전승을 마련하시느라 긴장한 나날을 보내고계실 어버이수령님께 기쁨의 보고가 아니라 재일조선인운동의 운명구원을 바라는 청을 올리게 된 그였다. 닥쳐든 엄혹한 현실은 그의 가슴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게 하였다. 강철의 령장을 눈앞에 그리며 정중히 문안인사를 드리고 편지를 올리게 된 사연을 적어가는 한덕수동지는 망울을 터친 재일조선인운동앞에 불어친 사나운 비바람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해방의 환희속에 재일동포들의 창의에 의하여 재일본조선인련맹(조련)이 고고성을 터뜨린 그때부터 미일반동들은 탄압의 칼을 휘둘렀으며 조선전쟁발발을 앞두고서는 조련을 강제해산하는 야수적폭거를 감행하였다.해방직후 간또지방조선인회를 책임지고 조련결성에 발벗고나서던 나날과 어버이수령님의 력사적서한 《재일 100만동포들에게》를 감격속에 받아안고 용기백배하여 조련의장단 성원으로 동포들의 권리쟁취를 위해 자개바람이 일도록 뛰여다니던 소중한 추억이 간직되여있는 동포조직이였다. 멸시와 천대를 박차고 닻을 올린 애국운동앞에 덮쳐드는 시련의 파도는 그뿐이 아니였다. 그가 무엇보다 가슴아파 위대한 수령님께 글월을 올리게 된것은 재일조선인운동내부에 끼여든 사대주의자들의 준동으로 엄혹한 사태가 빚어졌기때문이였다.재일조선인운동의 핵심성원들이 탄압을 피해 지하에 들어간것을 기화로 머리를 쳐든 이자들은 제주도에 공화국기가 휘날린다고 해도 재일동포들의 처지는 달라질것이 없다고 줴치면서 조직강령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호》조항을 빼던지고 종주국혁명론을 부르짖었다.하여 초보적인 생존권도 가지지 못한 동포들이 《일본혁명 만세!》의 구호밑에 무모한 투쟁에 나섰다가 더운 피를 쏟았고 놈들은 《폭력방지》를 떠벌이며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하였다.동포들의 피바다우에서 난파선마냥 표류하는 재일조선인운동을 구원할 방도는 과연 무엇인가. 편지를 한자한자 써나갈수록 미제를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떼무리를 상대로 판가리싸움을 하고계시는 어버이수령님께 자기마저 매달리지 않을수 없다는 괴로움에 가슴이 저려왔다.하지만 다른 방도는 없었다. 재일조선인운동을 살리자면 민족의 태양이신 어버이수령님께 있는 그대로 실태를 보고올리고 가르치심을 받아야 하였다.이러한 품성은 한생을 해외교포조직을 책임지고 수령님의 뜻대로 해외동포들의 자주적권리를 보장하고 공화국을 수호하여 투쟁해온 한덕수동지의 성격에서 핵을 이루고있었다. 펜을 달리는 그의 심중에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이 밀물처럼 차올랐다. 한덕수동지가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 뵈온것은 주체37(1948)년 12월이였다.새 조국건설의 초행길을 헤쳐가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분초를 쪼개가며 사업하시는 속에서도 한덕수동지를 비롯한 재일조선인경축단 성원들을 조국에로 불러주시였던것이다.한덕수동지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헤아려주시며 남의 나라에서 당하는 망국노의 설음이 얼마나 가슴에 사무치는가 하는것을 자신께서도 직접 체험해보아 잘 알고있다고 못내 가슴아픈 어조로 말씀하시였다.친어버이사랑에 한덕수동지는 해묵은 설음이 가셔지는듯싶었다. 1907년 2월 경상북도 경산군의 농민가정에서 태여난 한덕수동지가 20살 나던 해에 한가닥 희망을 품고 현해탄을 건너갔지만 따라다니는것은 망국노의 비참한 신세였다.민족적멸시와 학대를 더는 참을수 없어 단나차굴공사장의 로동자들과 함께 항거해나섰던 그가 《선인도 사람인가.》라고 부르짖는 야수들에게 만신창이 되도록 두들겨맞기를 그 몇번… 육신을 부수는 고통보다 지켜줄 품이 없는 망국노의 한에 사나이의 비분을 뿌리던 그였다. 항일의 불길을 헤치시며 조국을 찾아주시고 오늘은 자기들을 몸가까이 불러주시여 자주독립국가의 당당한 해외공민의 긍지를 안겨주시는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덕수동지에게 힘과 지혜를 주시고 재일조선인운동의 장래를 부탁한다는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한덕수동지는 위인의 뜻을 심장에 새기며 보답의 맹세를 가다듬었다. 그러나 야만의 무리속에서 애국을 하고 민족의 얼을 지킨다는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였던가.위대한 수령님께 올리는 편지와 함께 련락원을 보내는 한덕수동지의 심중은 무거웠다. 전쟁의 중하를 한몸에 지니신 그 바쁘신 속에서도 몸소 련락원을 만나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복잡한 사태의 본질을 순간에 꿰뚫어보시고 근엄하신 어조로 조선사람들이 무엇때문에 일본혁명을 위해 피흘리는가,재일조선인운동을 조선혁명을 위하여 투쟁하며 재일조선인들의 민족적권리를 지키고 자기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복무하는 민족적애국운동으로 전환시키는것이 어려운 난국을 타개하고 재일조선인운동을 구원하는 길이며 재일동포들의 념원과 지향에 맞는 참된 애국의 길이라고 간곡히 가르쳐주시였다.재일조선인운동의 앞길을 찬란한 태양이 밝혀주고있었다. 한덕수동지를 비롯한 지도성원들은 물론 동포모두가 이젠 살았다고 환성을 올리며 운동재건의 투쟁에 분연히 일떠섰다.고질적인 사대의 후과를 가시기 위해 천리 밤길도 가리지 않았고 침식을 잊어가며 집필활동도 벌렸으며 치렬한 론쟁과 진지한 설복으로 사람들의 머리를 틔워주기도 하였다.로선전환방침을 구현한 새형의 조직을 내오기 위한 준비사업이 추진되였다. 드디여 주체44(1955)년 5월 25일 도꾜에서는 어버이수령님의 초상화를 정중히 모시고 력사적인 총련결성대회가 열리였다.람홍색공화국기를 긍지높이 가슴에 안으며 한덕수동지는 총련의 결성을 엄숙히 선포하였다.그가 끓어오르는 격정을 담아 《
이역의 하늘가에 피여난 우리 민족의 자랑
총련에는 시대와 력사가 준 긍지높은 칭호가 있다. 세계해외교포운동의 본보기! 민족적긍지로 가슴부풀게 하는 부름이다. 총련강화에 깃든 한덕수동지의 공적가운데서도 첫째가는 공적은 모범분회창조운동의 불길을 지펴올려 총련을 수령의 총련,어머니조국의 총련으로 강화발전시킨것이다. 총련결성후 위대한 수령님의 뜻대로 총련사업을 해나가는데서 무엇보다 걸린것은 동포들의 사상의식상태가 따라서지 못하는것이였다. 총련중앙에서 귀국실현문제를 토의할 때였다.하루빨리 귀국의 길을 열자고 저저마다 열변을 토하는 속에 일부 사람들은 생뚱같이 3반투쟁의 약화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해나섰다.3반투쟁은 미국과 일본반동정부를 반대하고 일본의 재무장책동을 반대하는것이 재일조선인운동의 기본임무로 된다는 미명하에 동포들을 애국운동이 아니라 일본혁명의 희생물로 내맡기는 극히 무모하고 사대주의적인 사상경향의 발로였다.궤변을 즉석에서 일축한 한덕수동지는 일군들에게 심각한 어조로 동포들을 공화국의 두리에 묶어세운다는것이 어떤 의미인가고 물었다.대답없는 좌중을 둘러보던 한덕수동지는 벌떡 일어서며 《공화국이란 바로 위대한 수령님이시오.수령님의 뜻을 모르면 제정신을 잃게 되오.》라고 불같이 말하였다. 당시 조국에서는 천리마운동의 불길이 세차게 타올라 세상을 놀래우는 기적이 창조되고있었다.어버이수령님께서 지펴주신 천리마운동의 봉화가 온 나라에 인간개조,사상개조의 열풍을 안아와 길확실,리신자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천리마의 고삐를 틀어쥔 시대의 기수로 되고있는 현실은 한덕수동지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한덕수동지는 지체없이 총련중앙과 지역별회의들을 열고 동포대중모두가 조국인민들을 본받아 천리마를 탄 기세로 투쟁하도록 할데 대한 전례없는 사상동원운동을 발기하였다.총련중앙의 전적인 지지를 불러일으킨 그 제의는 동포사회의 애국적계몽과 통일단결,총련의 미래를 위한 조직적진출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총성으로 되였다. 자신부터가 위대한 수령님의 로작과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를 손에서 놓은적이 없고 반동들이 《평양방송미치광이》라고 중상할 정도로 수령님과 조국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였다.궂은날,진길을 가림없이 각 분회들에 내려가 일군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뼈에 새기고 사업하도록 이끌었고 동포들속에 들어가 수령님의 숭고한 덕망과 위대성,항일투사들의 충정의 신념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해주기도 하였다.그의 뇌리에는 총련의 사업설계와 동포들의 운명에 대한 책임감만이 꽉 차있었다. 때문에 이 나날 그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다심한 정을 모르고 자랐다.그는 누구나 소중히 여기는 한집안 가장의 책임은 언제나 뒤로 미루고 동포들을 위해,수령과 조국을 위해 온넋과 생을 바친 총련의 가장이고 애국충신이였다. 한덕수동지의 불같은 노력속에 도꾜도 고호꾸분회를 비롯한 여러 분회에 《조국을 향하여 배우자!》라는 힘찬 글발이 나붙었고 어버이수령님의 력사적인 교시들과 혁명전통에 대한 학습바람이 일기 시작하였으며 그 기풍은 동포들이 사는 곳곳에 퍼져갔다.한덕수동지는 곧 총련 제6차 전체대회를 소집하고 총련의 모든 분회가 떨쳐나설것을 호소하고 이끌어나갔다.이것이 바로 총련의 발전력사에 뚜렷이 아로새겨지고 재일동포들의 애국애족운동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온 모범분회창조운동의 발단과정이였다. 총련조직의 강화를 위한 투쟁이 주체63(1974)년 2월 조국에서의 온 사회의 총련 제10차 전체대회가 성과적으로 끝나고 총련
오늘의 이 행복을 그 누가 주었나 로동당이 주었네 수령님이 주셨네 목숨도 바쳐가리 오직 한마음 … 현해탄너머 일본땅에서 한덕수동지가 즐겨부르던 노래 《오직 한마음》이 울리고있었다.평양하늘을 우러러 온넋을 담아 1절부터 3절까지 몇번이고 부르고 또 부르는 그의 눈시울에 맺혀있는 뜨거운것을 보며 동포들은 깊은 감동을 금치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목숨도 바쳐갈 오직 한마음! 이 한마음은 그의 인생을 시와 노래로 충만되게 하였고 창조와 열정으로 끓게 하였다.그가 지은 많은 노래들에는 풍만한 정서적울림속에 어머니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수령의 현명한 령도따라 존엄떨치는 총련조직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차넘치고있다. 일본땅의 여기저기 우리 동포 사는 곳에 꾸려진 자랑스러운 총련조직,조국위해,권리위해 싸워가는 슬기로운 일군들,초중급학교는 물론 대학교도 세워놓고 민족문화와 혁명전통을 체계있게 가르치는 모습,우리 나라와 다른 나라들의 현실을 옳바르게 알려주는 신문,통신기관을 꾸려놓고 사회주의조국을 따라배우며 공민답게 사는 자랑 … 교육원조비,장학금의 많고많은 귀한 돈을 바다건너 조국에서 보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높고 큰 사랑에 대한 찬가의 선률에는 위대한 사랑의 손길을 심장으로 받아안을줄 알고 보답의 삶을 불태워가는 한덕수동지의 뜨거운 충정의 열도가 담겨있다. 한덕수동지가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의 창립과 주체사상화,동포들의 민주주의적민족권리실현과 같은 거창한 위업을 떠메고 력사에 남을 공적을 세운 밑바탕에는 자기 수령,자기 조국을 끝까지 따르며 받들 애국충정이 놓여있었다. 인생말년에 한덕수동지는 가족에게 이렇다 할 재산을 남긴것은 없지만 자기는 부자라고 말하군 하였다.그의 큰 재산이란 바로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이고 자기자신과 동포들의 심장에 간직된 충정,애국애족의 신념이였다.언제인가 메히꼬의 한 인사는 총련중앙 일군들을 만난 자리에서 《조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국땅에서 총련이 달성한 빛나는 성과들은 주체사상의 결실이라고 확신한다.》라고 이야기한바 있다. 그렇다.수령과 조국을 따르는 한덕수동지와 같은 충신들의 노력에 의해 주체의 넋,애국의 넋이 동포들의 심장속에 뿌리내렸기에 총련은 말살의 역풍이 휘몰아치는 속에서도 추호의 동요없이 해외교포운동의 세계적모범을 창조해올수 있었다.
삶의 시작도 끝도 한모습으로
한덕수동지의 한생이 비낀 수첩들을 보면 글줄과 페지의 여백에서 《행운》,《행운아》라는 단어들을 자주 볼수 있다.그는 우연을 믿는 사람이 아니였다.하다면 무엇때문에 자기를 행운아라고 자부했는가.그것은 절세의 위인들을 수령으로 모신 행운과 위대한 령도의 계승으로 재일조선인운동의 미래가 창창하다는 확신때문이였다. 추억도 쓰라린 7월 8일의 대국상은 한덕수동지에게 있어서 청천벽력이였다.병상에 있는 자기를 찾아오시여 락심하지 말라고,혁명을 위해 백살까지 살아야 한다고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시던 어버이수령님의 그 음성이 아직도 들려오고있는데 7월 7일에 총련지부일군대회에 친히 보내주신 사랑넘친 축전이 마지막축전이라니 웬 말인가.한덕수동지는 믿을래야 믿을수 없는 현실앞에 밑둥잘린 거목마냥 쓰러졌다.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비길데 없는 상실의 아픔을 안고계시였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령전에서 오열에 떠는 그의 두손을 꼭 잡으시고 한의장동지의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고,위대한 수령님께서 한의장동지에게 혁명을 위해 오래오래 사셔야 한다고 하시였는데 건강하여야 한다고 오히려 힘을 주시는것이 아닌가. 식음을 전페하였던 한덕수동지는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을 변함없이 이어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손길에 이끌려 재생의 길을 걷게 되였다. 그는 완강한 정력을 발휘하였다.문필활동을 여생의 과업으로 여기고 《 총련의 미래에 보내는 그의 축복은 아름다왔다. 한덕수동지는 사랑하는 증손녀의 이름을 청송이라고 지었다.가족들이 녀자애에게 꽃같은 이름을 지어주었으면 하는 심정을 내비쳤지만 그의 견해는 드틸줄 몰랐다. 《꽃은 아무리 아름다와도 철을 따르기마련이지만 소나무는 여름에도 겨울에도 언제나 한모습이다.》 이 말속에 후대들도 위대한 장군님을 받들어 푸르른 소나무처럼 살기를 바라는 그의 다함없는 축복이 담겨있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존함으로 부르는 시대를 성벽처럼 지키렵니다》 위대한 장군님을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변함없이 높이 추대한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회의에 드린 이 헌시의 구절에는 충정으로 억센 삶을 장식하려는 전사의 순결한 결의가 비껴있었다. 주체89(2000)년에 들어와 한덕수동지의 생명은 경각에 이르고있었다.조국에서 온 자식들이 위대한 장군님께서 보내주셔서 우리가 왔다고,장군님께서 강한 의지로 병을 이겨내야 한다는 말씀을 주시였다고 거듭 아뢰이자 중태에 빠져있던 그에게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한덕수동지의 눈귀로 눈물이 흘러내리는것이였다. 기적적으로 눈을 뜬 한덕수동지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낮으나 엄한 어조로 말하였다. 《여긴 왜 왔느냐.빨리 조국에 가서 장군님을 받들어 일을 해야지.》 그때를 돌이켜보며 맏딸 한음전동무는 말하였다. 《생사기로에서 헤매이다가도 위대한 장군님 소식만 들으면 의식을 차리고 얼굴에 생기가 돌군 하였습니다.장군님 소식은 아버지에게 생의 활력소였습니다.정말 우리로서도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병상에서도 총련일군들과 함께 오랜 시간에 걸쳐 위대한 장군님의 의도대로 총련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방도를 토의하였고 누구에게라없이 《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백두산절세위인들을 높이 받드는 신념의 자세를 추호도 흐트리지 않은 한덕수동지,그는 정녕 투쟁의 시작도 끝도 한모습으로 빛내인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참된 혁명전사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영예의 생의 마지막순간에 한덕수동지가 동포들과 후대들에게 남긴 부탁은 무엇이였던가. 주체90(2001)년 2월 한덕수동지는 흐려지는 의식속에서 무슨 말인지 안타깝게 뇌이였다.사람들은 그의 손을 꼭 잡고 귀를 강구었다. 《경애하는 한덕수동지는 절세의 위인에 대한 매혹을 고백하는것으로 범상치 않은 삶을 마무리지었다.그는 죽어서도 백두산위인들을 따르고있는것이다. 수난의 세월 그 누구보다도 불우한 처지에서 생을 시작한 그였지만 백두산절세위인들께서 그를 지켜주고 이끌어주시였기에 험로역경을 헤쳐온 그의 한생은 보람찼고 긍지스러웠으며 어머니조국은 이 훌륭한 아들을 자기의 값높은 력사속에 품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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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의 1세들에 의해 개척되고 발전하여온 재일조선인운동은 오늘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고있다.시련과 난관은 의연 엄혹하지만 총련과 재일동포들은 탁월한 정치가이시고 무적의 령장이시며 자애로운 인덕의 체현자이신 경애하는 경애하는 총련은 재일동포들의 귀중한 삶의 요람이고 잃고서는 못살 보금자리이다.죽으면 죽었지 꺾을수 없는것이 애국의 넋이고 다른것은 다 버려도 피로써 지켜야 할것이 총련이다.시련은 일시적이며 승리는 재일동포들의것이다. 경애하는 본사기자 은정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