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5월 31일 로동신문

 

우리 시대의 참된 인간전형-이천땅의 붉은 선동원

선군시대공로자의 영예를 지닌 이천군 신당축산전문협동농장
제3작업반 2분조 선동원 박연화동무에 대한 이야기

 

이천군 신당축산전문협동농장 선동원 박연화동무는 1996년부터 오늘까지 43명의 부모잃은 아이들을 데려다 키워 조국앞에 떳떳하게 내세웠다.그는 수십명의 자식들을 키우면서도 30년세월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선동원으로 사업하고있으며 농장적으로 소문난 실농군으로 성실하고 근면하게 일해오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그 어떤 난관과 시련앞에서도 주저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참된 애국의 한길을 걷는 사람,조국과 인민이 맡겨준 혁명과업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제때에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진짜애국자입니다.》

평범한 어머니들보다 몇갑절 더 무거운 모성의 부담을 스스로 걸머지고도 선동원의 의무,농장원의 본분에 누구보다 충실해온 박연화동무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된 사람들은 모두가 이천땅의 어머니선동원앞에 머리를 숙인다.

고결한 헌신으로 이어져온 그의 인생행로는 우리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깨우쳐주고있다.우리의 사회주의대가정의 한 성원으로 사는 공민이라면,당원증을 가슴에 품은 조선로동당원이라면 오늘의 시대에 어떤 지향과 책임감을 안고 삶의 순간순간을 빛나게 살아야 하는가를.

 

우리 마을앞에 오성산으로 가는 길이 있다

 

우리는 박연화동무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으로부터 18년전 분계연선이 가까운 이천땅의 한 포전에서부터 시작한다.그때 그는 두 자식을 가진 30대의 젊은 어머니였고 분조의 선동원이였다.

그날 아침도 박연화동무는 선동원의 일과대로 작업전에 당보에 실린 기사들을 독보하고있었다.《로동신문》에는 부모잃은 아이들을 친부모의 심정으로 맡아 키워 나라의 아픔을 덜어준 훌륭한 사람들의 미풍이 소개되여있었다.

독보가 끝나자 한 분조원이 젖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하였다.

《나라면 남의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울수 있을가?…》

분조원의 그 말은 박연화동무의 가슴에 깊이 파고들었다.

선동원인 나라면?

쉽지 않은 선택의 갈림길앞에 그는 선동원의 량심을 세워놓았다.

그날 박연화동무는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선동원은 신문에 실린 소행자료를 읽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 주인공처럼 떳떳하게 사는 사람이 되여야 하지 않겠는가.)

큰 결심을 내리지 않고서는 분조원들앞에 다시 신문을 들고 나설것 같지 못했다.잠자리에서 일어나앉은 박연화동무는 남편 리광렬동무에게 사연을 털어놓았다.리광렬동무는 부모잃은 아이들을 맡아 키우려는 안해의 결심을 두고 많은 생각을 하였다.

사실 그들의 네식구살림도 몹시 어려웠다.조국에 들이닥친 엄혹한 시련의 파도는 크지 않은 산골군인 이천땅에 다른 곳보다 더욱 힘겨운 생활난을 들씌웠다.철부지인 오누이자식들의 작은 배도 채워주지 못하는 괴로움,일터에서 돌아오면 선동사업준비로 밤을 새우다싶이 하는 안해를 크게 도와주지 못한 자책감으로 모대기던 리광렬동무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끝까지 갈길이면 걸음을 떼오.》

그로부터 며칠후 박연화동무는 8명의 낯선 아이들을 앞세우고 집으로 들어서는 남편을 맞이하게 되였다.놀라움에 굳어져 서있는 안해에게 리광렬동무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처음 만나던 때가 생각나오?심지 못한 강냉이영양단지모를 찾아 심던 그런 마음이면 되오.》

아이들의 머리를 일일이 쓰다듬는 박연화동무에게는 남편과 처음 인연을 맺던 잊을수 없는 그 봄날이 돌이켜졌다.

신당약수료양소에서 치료를 받던 어느날 점심참에 박연화동무는 개울가 가까운 밭머리에서 심지 못한 몇포기의 강냉이영양단지모를 보게 되였다.불편한 몸이였지만 그대로 두고 지나갈수가 없었다.한포기,한포기 강냉이영양단지모를 심기 시작할 때 포전 저쪽에서 한 청년이 달려오며 소리쳤다.

《금방 강냉이를 심어놓았는데 거기서 뭘 하오?》

씩씩거리며 처녀가 있는 곳으로 다가서던 청년의 눈이 금시 감동의 빛으로 젖어들었다.

《고맙소.》

《이걸 보고 그냥 지나갈 농사군이 어디 있겠나요.》

어디에서든 농사군의 본분을 잊지 않고 사는 그 진심에 끌려 신당리의 청년분조장은 개천리의 처녀농장원에게 청혼을 했다.…

10명 자식의 어머니가 된 그날 밤 박연화동무는 아이들의 이불깃을 꼼꼼히 여미여주며 오래도록 잠 못 드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하였다.

(난 선동원의 의무감으로 결심했었는데 저이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애들을 데려왔구나.)

농장에서 작업반장으로 일하고있는 남편 리광렬동무는 어려서 부모를 잃었다.마을사람들과 리의 일군들이 그들형제를 키워주었다.당의 품에서 그는 21살에 분조장,22살에 조선로동당원이 되였다.

박연화동무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남편을 다시 바라보았다.

(이 아이들의 훌륭한 어머니가 되겠어요.…)

식구가 갑자기 늘어나니 모든것이 부족했다.집도 좁고 그릇도 수저도 이불도 모자랐다.대신 부엌아궁과 가마가 늘어났다.일손과 시간은 모자라고 어깨우의 짐은 몇갑절 더 무거워졌다.

마을에서 밥짓는 연기가 제일먼저 나고 제일 늦게 불이 꺼지는 집도,매일과 같이 아이들의 빨래가 가득 걸려있는 집도 그의 집이였다.

수십명 자식들의 뒤바라지에 젖은 손 말릴새없이,일감을 놓을새없이 늘 뱅글뱅글 돌다나니 그는 언제 한번 방에 들어와 발편잠을 자본적이 없었다.어뜩새벽에 일어나 그 많은 아이들에게 밥을 해먹이고 학교갈 차비를 해주고나서는 서둘러 신문이며 선동원수첩을 한손에 들고 다른 손에는 호미를 들고 남먼저 포전에 이르자고 달음박질쳐가군 했다.

그 모습에 감동된 마을의 녀인들은 별식이 생겨도 그것을 들고 박연화동무의 집을 찾아왔고 리당일군들은 땔감이 떨어질세라 달려왔다.학교 교원들도 진료소의사들도 때없이 집에 들렸다.

부모잃은 아이들을 데려온 이듬해 1월 어느날이였다.그날 아침따라 아이들은 왜서인지 숟가락을 들고 서로 눈치만 보고있었다.밥상우에 주런이 놓인 죽그릇을 아프게 바라보던 박연화동무는 왜 그러고만 있는가고 물었다.그러자 쭈밋쭈밋하던 아이들이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오늘이 충옥이 생일인데…》

그제서야 그는 자기가 친딸의 생일을 까맣게 잊고있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때 어린 충옥이가 숟가락을 탕- 하고 밥상우에 놓았다.화들짝 놀란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밥상우에 숟가락을 내려놓았다.그 숟가락소리가 박연화동무의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충옥이가 뛰쳐나갔다.서둘러 따라나선 박연화동무가 마당에서 딸을 붙들어세웠다.

《너때문에 다른 애들이 눈치밥을 먹지 않니!》

어머니의 어깨가 세차게 떨렸다.데려온 자식들 밥곽에는 흰쌀밥을 싸주어도 낳은 자식들 밥곽에는 강냉이밥을 싸주는 어머니의 마음을 잘 아는 친아들 편광이가 동생의 손을 잡고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엄마,이제부터 우리 생일은 생각하지 마세요.》

친자식도 어머니의 속을 태울진대 한피줄이 아닌 수십명의 자식들을 한식솔로 만들며 박연화동무는 얼마나 많은 속을 태웠을것인가.

늦도록 김을 매고 돌아오던 어느날 저녁 그는 길가에서 녀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자기 자식의 이름을 듣게 되였다.

《일광이가 하는 말이 선동원이 자기 친자식은 밥을 꼭꼭 눌러 담아주고 데려온 아이들은 글쎄 곯게 퍼준다고 하지 않겠어요.》

《그럴 녀자가 아닌데…》

《아무렴 친자식처럼 정이 갈가?》

억이 막혔다.일시에 온몸의 기운이 쭉 빠지는것만 같았다.밥그릇을 받을 때마다 들었다놓았다하며 저울질하군 하던 일광의 모습이 떠올랐다.

박연화동무는 다음날부터 밥주걱을 집안의 큰딸인 단옥이에게 들려주었다.그래도 일광의 버릇은 좀처럼 고쳐질줄 몰랐다.

《난 더 못 견디겠어요.일광이만은 돌려보내자요.》

이렇게 말하는 박연화동무의 두볼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였다.그러는 안해를 묵묵히 바라보던 리광렬동무가 힘주어 말하였다.

《제 자식인데 버릇 나쁘다고 버리겠소? 더 용기를 내기요.그리구 밥주걱이야 어머니가 들어야지.》

자식들이 해마다 늘어날수록 박연화동무의 고생은 나날이 커졌다.

눈보라사납던 어느날 밤 박연화동무는 허둥지둥 집을 나섰다.총광이가 또 집을 뛰쳐나갔던것이다.

여기저기를 헤매다가 동틀무렵에야 동구길에 다시 들어선 그는 더이상 발을 내짚을 힘이 없어 눈판우에 털썩 주저앉았다. 부모잃은 아이들을 데려올 결심을 했을 때 아들 편광이가 애원하다싶이 하던 말이 몰아치는 눈보라속에 더 쟁쟁히 들려왔다.

《어머니,난 우리 네 식구가 좋아요.…》

바로 이때 멀리서 어머니를 찾아 눈을 걷어차며 달려오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안겨왔다.박연화동무는 얼른 눈굽을 훔치고 일어섰다.아이들이 《눈사람》이 된 어머니의 품에 와르르 안겨들었다.

《총광인 나쁜 아이야요.갈테면 가라지요.》

어머니는 말했다.

《세상에 나쁜 아이란 없단다.내가 아직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을뿐이지.》

그러자 아이들은 어머니의 품에 더 바싹 안겨들며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어머닌 좋은 엄마예요.우리가 나쁜 아이들이였어요.총광인 우리가 몰아줘서 집을 나갔어요.》

아이들은 어머니와 목소리를 합쳐 총광이를 부르고 또 불렀다.

맥없이 집에 들어서니 총광이가 머리를 푹 숙이고 서있었다.아버지가 더운물로 그의 발을 씻어주고있었다.힐끔힐끔 형제들의 눈치를 보는 총광에게 다가간 맏이가 아버지대신 그의 발을 붙잡고 씻어주었다.

잠시후 아이들은 서로 어깨동무하고 방안으로 왁 밀려들어갔다.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서있던 리광렬동무가 안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 시각 박연화동무의 젖은 눈빛은 마을앞의 큰길을 어루쓸고있었다.리광렬동무는 안해가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그 길은 바로 오성산과 잇닿은 길이였다.

눈보라사나운 그 길을 바라보는 박연화동무의 입가에서는 저도 모르게 이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가정의 어머니구실을 하기도 힘든데 온 나라 대가정을 품어안으신 우리 장군님께서는 얼마나 힘겨우실가.…》

그후 박연화동무는 부모잃은 아이들이 눈에 띄면 무작정 집으로 데려왔다.마음씨좋은 아버지,어머니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스스럼없이 찾아오는 애들도 있었다.

박연화동무가 데려온 아이들속에는 리광이라는 4살 난 총각애가 있었다.심한 피부병을 앓고있는 그를 안고 마을에 들어서던 날 사람들은 이왕이면 건강한 아이를 데려올것이지 왜 사서 고생을 하는가고 혀를 찼다.박연화동무는 애를 꼭 껴안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땅도 가꾸기탓이고 애도 정성을 들이기탓이지요.》

리광이를 위해 기울인 그의 지성은 실로 눈물겨운것이였다.그 애의 병에 류황연기를 쏘이면 좋다는 말을 들은 때부터 박연화동무의 몸에서는 류황냄새가 빠질줄 몰랐다.비좁은 비닐박막《집》안에서 리광의 몸에 류황연기를 피워올릴 때마다 그는 입버릇처럼 이런 말을 외우군 하였다.

《우리 광이 병 연기되여 날아나라.》

리광이는 캐득거리며 웃었지만 어머니가 얼마나 힘겨운 육체적고통을 겪고있는지 알수 없었다.병든 제 몸에 어머니가 피까지 뽑아 넣어주었다는 사실은 더욱 알지 못했다.

저녁마다 집에서는 하나,둘,셋… 셈세기공부를 하는 리광이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그러던 어느날 어머니와 함께 손가락을 꼽아가던 리광이가 갑자기 소리쳤다.

《엄마,왜 손가락을 구부리지 못하나?》

곁에서 숙제를 하던 아이들이 왁 모여왔다.

떡살이 배겨 꽛꽛해지고 쉬임없는 바느질에 쇠독까지 든 어머니의 손을 들여다보는 아이들의 눈가에 눈물이 고여올랐다.한끼에 열번나마 쌀을 일어야 하는 손,머리우에 한함지 빨래감을 이고도 남아 두 바께쯔에 갈라들던 손,수십마리의 집짐승도 치고 농장포전도 가꾸는 손…

어머니의 손가락에 정성껏 붕대를 감아나가는 어린 자식들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내렸다.

박연화동무는 이렇게 43명의 자식들을 키웠다.

그에게는 오늘까지도 갓난아기처럼 품들여 돌봐주고있는 선천적인 불구자들도 있다.그들을 데려오던 10여년전 그날에나 지금에나 그는 변함없이 말하군 한다.

《나야 그애들의 어머니가 아니예요.마지막까지 그애들을 책임지겠어요.》

고난의 행군시기부터 어머니로서 박연화동무에게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장군님께 《이천땅엔 부모잃고 헤매는 아이들이 없습니다.》라고 떳떳이 말씀드리고싶은것이였다.

비가 오고 눈이 오는 날이면 박연화동무의 자식들은 스스로 마을앞의 길로 달려나가 도로를 관리하군 했다.아마 오성산과 잇닿은 그 길에서 우리 장군님을 만나뵈왔다면 아이들은 한목소리로 이렇게 말씀올렸을것이다.

《장군님,우리에게도 아버지,어머니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진정은 만사람을 울린다

 

농장원들은 박연화동무를 두고 타고난 선동원이라고 말하군 한다.그의 자식들을 맡은 교원들은 박연화녀성이야말로 천성적인 교육자인것 같다고 감탄하기도 한다.

박연화동무네 집의 하루일과는 온 마을의 관심사이고 화제거리였다.

이른아침이면 기상구령이 울리고 아이들이 마당에 달려나와 체조를 하군 했다.체조가 끝난 뒤에는 집안팎과 마을길을 깨끗이 쓸었다.학교에서 돌아올 때에는 마치 한학급처럼 렬을 지어 노래를 부르며 마을로 들어서군 했다.

아이들이 렬을 맞추어 노래소리 랑랑히 학교에서 돌아올 때면 분조원들은 일손을 멈추고 선동원의 등을 떠밀군 하였다.

어머니의 모습이 가까와지면 맏이 를광이는 힘차게 구령을 쳤다.《노래 그만!-차렷!우로 봣!》 아이들은 기다렸다는듯 팔을 옆에 붙이고 발을 높이 들면서 어머니쪽으로 일시에 얼굴을 돌리였다.아직은 다리힘이 약해 토닥거릴뿐 땅을 꽝꽝 구르지는 못해도 농장원들과 마을사람들에게는 아이들의 그 대오가 대대나 련대같이 느껴졌고 박연화녀성은 마치 대대장,련대장처럼 보였다.

놀랍게 변모되는 아이들의 모습을 두고 농장원들모두가 감탄하였다.박연화동무가 피줄도 성격도 고향도 제마끔인 수십명 아이들을 한손의 손가락처럼 질서있게 뭉치게 하고 그들의 노래소리로 마을의 분위기를 일신시킨것은 그대로 농장원들을 교양하는 특유한 《직관선동》과도 같았다.

그의 집에 아이들이 한꺼번에 제일 많았을 때는 23명이였다.웬만한 농촌학교의 한개 학급과 맞먹는다.어머니앞에서 아이들은 마치 선생님앞에서처럼 엄숙하고 솔직하게 자기를 총화하였고 형제들의 잘못을 진심으로 비판하였다.

어느덧 30대의 청년으로 자라난 리원광동무는 장난세차던 어린시절 남몰래 이웃집의 과일나무에 올랐던 자기의 결함을 놓고 밤깊도록 벌어졌던 가정총화모임을 지금도 잊지 못해하고있다.걸핏하면 집을 뛰쳐나가던 아이도,밥투정을 늘 입에 달고다니던 아이도,시험때마다 성적이 낮아 선생님의 애를 태우던 아이도 이런 총화모임을 거쳐 착하고 공부 잘하는 학생이 되였다.형형색색의 아이들이여서 나타나는 결함들은 매번 달랐지만 그런 모임의 뒤끝에 어머니가 하는 말은 늘 같았다.

《오늘결함을 꼭 고쳐야 한다.그래야 앞으로 훌륭한 인민군대도 영웅도 박사도 될수 있단다.》

어느 가을날 하루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던 박연화동무는 우뚝 멈춰섰다.큰애들은 없고 작은아이들만 근심에 잠겨 오구구 모여있었던것이다.

《이 밤중에 오빠들은 다 어딜 갔니?》

단옥이가 어머니의 귀에 대고 속살거렸다.

《우리보고 고아라고 놀려준 애를 혼쌀내겠다고…》

박연화동무는 가슴이 철렁했다.그는 큰애들이 무리지어나갔다는 시내가로 달려갔다.

그날 총화모임시간이였다.비판하는 아이도,비판받는 아이도 없는 류다른 모임이였다.아이들은 묵묵히 어머니의 말만 기다렸다.잠시후 자리에서 일어선 박연화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오늘은 모두가 잘못했다.너희들도 친형제가 되지 않았니.너희들이 울린 그애도 친형제나 같애.〈세상에 부럼없어라〉노래를 새겨보아라.》

어머니의 꾸짖음에 아이들은 머리를 들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날 밤에 자기들이 울린 마을아이가 자기 부모에게서 얼마나 된꾸지람을 들었는지 모르고있었다.그리고 그 《사건》을 놓고 학교의 선생님들도,리당위원회의 일군들도 얼마나 심각한 자책속에 한밤을 새웠는지 더더구나 알지 못하고있었다.

박연화동무가 데려온 아이들은 산판에 되는대로 뿌려져 제멋대로 자라던 애어린 나무들과도 같았다.박연화동무는 그런 어린 나무들을 기름진 양묘장에 떠옮겨 곧고 싱싱한 큰 나무들로 키웠다.그 어린 나무들의 버팀목은 무엇이였던가.

그의 집 터밭에는 거의 절반면적을 차지하는 양묘장이 있었다.낟알 한줌이 더없이 귀한 때였고 한뙈기의 땅도 큰 보탬으로 되는 시기였지만 그는 서슴없이 터밭에 곡식대신 나무씨앗을 묻었다.

《이때껏 땔나무들을 베여오기만 했지 산에 나무 한그루 심어보지 못했구나.》

이것은 처음으로 나무씨앗을 묻던 그날 그가 아이들에게 한 말이다.

그 양묘장에서 키운 나무들을 박연화동무는 아이들과 함께 마을과 주변산들에 심었다.그렇게 심은 나무들이 수천그루나 된다.아이들도 나무도 눈에 띄게 자랐다.

박연화동무는 그처럼 어려운 속에서도 사회와 집단을 위한 좋은 일도 적극 찾아하였다.하나둘 늘어나는 지원증서들을 보면서 아이들은 한가정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어머니의 큰마음을 읽었다.그 보석같은 애국의 마음이 바로 여기저기에서 제멋대로 자라던 어린 나무들과도 같던 수십명의 아이들을 한마음,한모습으로 자라나게 한 귀중한 버팀목이였다.

그 아이들이 등교길에서 부르는 노래소리를 들으며 농장원들은 포전으로 나갔고 저녁에는 오락회로 즐거운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하루일을 총화지었다.아이들의 밝고 명랑한 모습은 고난을 이기는 힘이였고 래일에 대한 신심이였다.

어느덧 박연화동무의 집 벽면에도 조선인민군 입대증이 걸려지게 되였다.드디여 고난의 행군의 체험자,수호자의 한사람이 계급의 무기를 잡고 조국의 한 참호를 맡아나서게 된것이다.맏이 리를광이 조국보위초소로 떠나던 날 아이들과 함께 멀리까지 그를 바래워주며 박연화동무는 말하였다.

《너희 형제의 이름을 합치면 무슨 맹세가 되는지 부디 잊지 말거라.》

이런 어머니의 품속에서 13명의 조선인민군 병사가 자라났고 15명의 조선로동당원이 성장하였다.

참다운 모성애는 먹여주고 입혀주는것이 전부가 아니다.훌륭한 우리 어머니들이 자식을 위해 오만자루의 품을 바쳤다면 그것은 아마도 조국과 혁명을 아는 참된 인간으로 키우자고 기울인 원칙적인 사랑으로 일관되여있을것이다.

박연화동무는 자식들을 키우듯이 분조원들에게도 사심없고 꾸밈없는 진정을 바쳤다.

그의 분조에는 사람들의 말밥에 오르군 하는 한 청년이 있었다.남이야 일을 나가든말든 무슨 상관인가고 소리치며 마주서려고조차 하지 않는 그를 박연화동무는 매일이다싶이 찾아갔다.

그 과정에 그는 청년의 집살림이 남보다 더 어렵다는것을 알게 되였다.그는 땔나무도 해다주고 터밭김도 매주었으며 울바자도 새로 둘러주었다.그래도 청년은 농장일에 마음을 붙이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청년은 땔나무를 한짐씩 지고 집마당에 들어서는 아이들을 보게 되였다.박연화동무의 아이들이였다.허겁지겁 달려온 그에게 아이들은 이렇게 부탁하였다.

《우리 어머니가 오면 집에 땔나무가 많다고 말해주세요.우리 어머닌 할 일이 정말 많아요.》

《어머니에게는 우리가 왔댔다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청년은 목이 꽉 메여 말을 할수 없었다.

그로부터 1년후 청년은 맡은 포전에서 군적으로 최고수확을 내여 경험토론무대에까지 나서게 되였다.그날 연단으로 떠미는 박연화동무에게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선동원동무,난 집의 아이들보다도 못한 놈이였수다.내 그애들앞에 떳떳하게 살겠습니다.》

박연화동무의 선동원경력은 30년을 헤아린다.그 나날 그는 10번나마 분조를 옮기였다.한 분조를 앞선 분조로 만들고는 또 다른 분조로…

박연화동무가 뒤떨어진 다른 분조로 또 옮기겠다고 제기하였을 때 리당일군은 선뜻 응할수가 없었다.

그때 박연화동무는 흔연히 이렇게 말하였다.

《다 제 집안일인걸요.》

이렇게 그는 농장의 거의 모든 분조에 참된 선동원의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였다.

말로써가 아니라 늘 실천으로 군중을 교양하고 선동하는 박연화동무는 훌륭한 실농군이였다.

농장의 일군들과 분조원들은 대식구의 주부인 그에게 일감이 적게 차례지게 하려고 왼심을 써왔지만 오히려 그는 선동원답게 남보다 더욱 억척스럽게 일했다.그는 지력이 낮아 1t밖에 내지 못하던 한정보의 포전을 스스로 맡아 7t의 수확을 내는 기적을 창조하였다.그 나날 박연화동무가 지력을 높이기 위해 베여들인 풀은 한해에 100t씩이나 되며 등짐으로 걷어낸 돌은 수십m의 석축을 하고도 남는다.

훌륭한 어머니에게는 친자식,남의 자식 따로 없고 참된 선동원에게는 교양할 사람,못할 사람 따로 없으며 실농군에게는 나쁜 땅,좋은 땅이 따로 없다는것이 박연화동무의 소박한 생활철학이였다.이런 인간앞에 누군들 머리숙이지 않을수 있으며 이런 선동원의 목소리가 어찌 만사람의 심금을 울리지 않을수 있으랴.

어느해 봄날 작업반 당세포비서인 리광수동무가 박연화동무를 찾아왔다.그는 박연화동무앞에 조선로동당규약을 꺼내놓았다.

조선로동당원!그것은 박연화동무의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 고이 간직되여있던 가장 큰 희망이였으며 념원이였다.아직 누구에게도 말한적이 없는 가슴속소원을 헤아려본 당세포비서의 그 눈빛에서 그는 은혜로운 당의 손길을 온몸으로 느꼈다.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원이야 얼마나 훌륭한 사람입니까. 그런데 전 아직… 애들도 훌륭히 키우고 우리 분조가 계획을 넘쳐 수행하면 그때 가서 입당청원서를 쓰겠습니다.》

당세포비서는 아무 말도 할수가 없었다. 박연화동무의 심장속에 그려져있는 당원의 모습은 그렇듯 숭고하고 아름다운 참된 인간의 형상이였다.

사람들이여,

박연화동무가 입당청원의 고백을 선뜻 터놓지 못하던 바로 그 자리에 심장에 손을 얹고 서보시라.그의 정신세계의 높이와 자신의 인간됨의 높이를 비추어보시라.응당 해야 할 일을 하고,나라에 준 자그마한 보탬을 놓고 서둘러 자신의 영예와 평가를 생각한적은 과연 없던가.…

그로부터 석달후 박연화동무는 작업반당세포조직의 열렬한 지지속에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였다.그는 선동원으로 사업하는 기간 많은 농장원들을 혁신자로,초급일군으로,당원으로 키웠다.그속에는 작업반장들도 있고 관리위원장도 있다.

당에서는 참다운 모성애를 지니고 수십명의 부모잃은 아이들을 친자식으로 데려다 키운 박연화동무를 제4차 전국어머니대회와 조선로동당창건 60돐 경축행사에,30년을 선동원으로 훌륭히 사업하면서 나라의 쌀독을 채우는데 크게 이바지한 그를 제4차 전국선동원대회와 조선로동당 제8차 사상일군대회에 불러주었다.

지난해 10월 이천군국수집에서는 온 군의 축복속에 박연화동무의 일곱 자식의 결혼식이 진행되였다.리광렬,박연화부부는 그 일곱 자식까지 합하여 20명의 자식들의 결혼식을 차려주었다.

신랑,신부들이 차례로 리광렬,박연화부부의 잔에 술을 붓자 한 로인이 말했다.

《결혼식날 자식이 붓는 술잔에 부모의 한생의 눈물이 담긴다고 했거늘 이 좋은 날에 아버지,어머니가 한마디 하게나.》

사람들의 눈길이 리광렬,박연화부부에게 쏠리였다.부모잃은 수십명의 아이들을 데려다 키운 근 20년세월 그들의 가슴속에 쌓이고쌓인 말은 얼마나 많을것인가.

이윽하여 리광렬동무가 안해의 마음까지 합쳐 자식들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들,딸 많이 낳거라.》

이 소박한 말속에 이들부부의 진심이 집약되여있었다.그들은 바로 행복한 오늘처럼 자식들의 미래가 더 밝고 아름답기를 바랐고 우리의 화목한 사회주의대가정이 계속 흥하리라고 굳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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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땅에 부모잃고 헤매는 아이들이 없게 하겠다고 스스로 자식많은 대가정의 어머니가 된 녀인,한 분조의 선동원만이 아니라 작업반의 어머니로,실농군으로 수십년을 불타는 충정과 애국의 량심을 안고 살아온 박연화동무를 당에서는 우리 시대의 참된 인간전형으로 높이 내세워주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박연화,리광렬부부에게 은정어린 감사까지 보내주시였다.

우리 시대의 참된 인간전형-이천땅의 어머니선동원의 인생은 사람들에게 이런 진리를 가르쳐주고있다.

이 나라 천만군민의 운명으로부터 내 조국의 풀 한포기,나무 한그루도 모두 품어안으시고 피더운 심장을 바쳐 사랑하신 우리 장군님처럼,장군님의 뜻을 이어 우리 사회를 아름다운 인간사랑의 대화원으로 가꾸어가고계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처럼 인간을 사랑하고 조국을 사랑하라!

글 본사기자 리경일
본사기자 조향선
사진 본사기자 전성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