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7월 21일 로동신문

 

혁명전사,그 부름속에 빛나는 인생의 영광

조선인민군 군관이였던 윤성중동무가 받아안은 사랑과 믿음

 

지난해 7월 전승 60돐을 맞으며 평양에서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모시고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 준공식이 엄숙히 거행되였다.

영생의 언덕에 안치된 500여명의 렬사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위하여,조국을 위하여 청춘과 생명을 아낌없이 바친 혁혁한 무훈의 주인공들이다.그들가운데는 수류탄묶음을 안고 적땅크밑으로 뛰여든 영웅도 있고 《김일성장군 만세!》를 소리높이 웨치며 가슴으로 불뿜는 원쑤의 화구를 막은 영웅들도 있다.치렬한 공중전에서 적기들을 격추한 비행사와 심한 부상으로 몸을 움직일수 없게 되자 한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여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안긴 영웅도 번영하는 조국의 오늘을 지켜보는 영광의 자리에 있다.

허나 우리가 이 글에 쓰려고 하는 윤성중동무로 말하면 공화국영웅도 아니고 이름있는 군사지휘관은 더욱 아니였다.해방의 열기에 강산이 끓던 민주건설시기와 불구름이 타래치던 전화의 나날에도 그리고 생의 마지막시기까지 취사원이라는 직무에 묵묵히 충실해온 평범한 사람이였다.

《윤성중동지

조선인민군 군관

1922년 5월 4일생

1971년 9월 29일 사망》

이것이 그의 묘비에 씌여진 글발의 전부이다.

하다면 어떻게 되여 윤성중동무는 이 영생의 언덕에 서게 되였으며 그는 지금 세상을 향하여 우리 후대들에게 무엇을 말하고있는것인가.

 

매혹과 흠모

 

우리 시대가 낳은 어느 한 명곡에는 매혹은 흠모를 낳는 마를줄 모르는 샘물 흠모는 매혹이 터친 꺼질줄 모르는 불길이라는 잊혀지지 않는 구절이 있다.

수난많던 이 땅에 열려진 격동의 영웅시대를 노래하고 평범한 인간들이 어떻게 영웅으로 성장하는가에 대한 형상적대답이 담겨있다고도 할수 있는 이 노래에 윤성중동무의 한생의 체험도 비껴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김책동지가 뜻밖에도 서거하였을 때였다.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시며 가장 중요한 일이 제기될 때마다 의례히 찾군 하시던 김책동지를 잃고 그토록 상실의 아픔이 크시였건만 그와 함께 일하던 전사들에 대하여서까지 마음쓰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어느날 윤성중동무를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가족들은 다 잘 있는가,어디 아픈데는 없는가고 말씀을 시작하신 그이께서는 취사원동무가 그동안 수고많았다고 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과 김책동지사이에 오간 동지적사랑과 의리에 대하여 잘 알고있던 윤성중동무는 수령님께서 그처럼 믿고 내세워주시던 김책동지를 잃은 애석함을 안고 이렇게 자기의 결심을 말씀올리였다.

《장군님,저를 최전선구분대에 보내주십시오.제 거기서 싸우는 전사들의 뒤바라지를 하겠습니다.》

군복을 입고 취사원을 하는것을 늘 부끄럽게 생각하며 김책동지에게 전투원으로 보내달라고 몇번씩이나 졸라왔었지만 이제는 고지에서 싸우는 전사들의 뒤바라지를 하는 취사원이 되겠다고 자진해나서는 그였다.

미더운 눈길을 보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의 손을 꼭 잡아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제부터 나와 같이 있읍시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행복이였다.순간 그는 어버이수령님께 무엇이라고 말씀올려야 할지 몰랐다.흘러내리는 눈물이 한없는 고마움에 젖은 그의 마음을 대변하고있었다.그 높은 믿음과 고결한 의리에 충정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자각이 온몸에 차넘치였다.

하지만 그때까지 다는 알수 없었다.어버이수령님께서 평범한 취사원에 불과한 자기를 위해 왜 그토록 마음쓰시는것인지.

어느날 윤성중동무는 한 일군으로부터 어버이수령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해듣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는 김책동무가 보고싶어 못 견디겠다고,그래서 김책동무가 데리고 일하던 취사원동무를 자신의 곁에 두려고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는것이였다.어버이수령님의 말씀을 전달받고서야 그이께서 자기를 최고사령부에 불러주신 깊은 뜻을 알게 된 윤성중동무의 심중이 과연 어떠하였으랴.

하루에도 몇차례씩 수령님을 만나뵙고 가르치심을 받으면서도 그때마다 최대의 경모심을 안고 옷깃을 여미군 하던 김책동지,수안보에서의 잊을수 없는 그밤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안전보장을 위하여 한밤을 지새우며 교대없는 보초를 서던 김책동지,

길지 않은 나날에 목격하였던 하많은 사실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아,그래서였구나.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쳐온 투사동지들이 그 언제나 장군님만을 그리워하고 그이의 안녕을 지키고 그이의 높은 뜻을 받들어가는 길에서 인생의 행복과 영광을 찾은것은…)

인생의 귀중한 진리를 새겨안는 윤성중동무의 귀전에 김책동지의 목소리가 들려오고있었다.

-내 몫까지 합쳐 우리 장군님을 잘 모셔주시오.

언제나 존경하여오던 김책동지앞에 윤성중동무는 이렇게 결의다지였다.

《제 비록 취사원이지만 김책동지의 당부를 평생 심장에 새기고 장군님을 위해 목숨도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윤성중동무가 그 맹세를 지켜가던 나날은 김책동지가 늘 들려주군 하던 위대한 수령님의 위인적풍모를 걸음걸음 체험해가는 나날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인민들과 꼭같이 잡곡밥을 드시며 조국해방전쟁을 이끄신 가슴뜨거운 사실에 대하여서는 오늘 우리 인민들 누구나 다 알고있다.하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 단 한끼도 흰쌀밥을 들지 않으시였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못하다.

윤성중동무와 일군들,친위중대원들이 안타까와할 때마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위로하시며 잡곡을 섞으면 오히려 밥맛이 더 좋다고,인민들이 조밥을 먹을 때에는 우리도 조밥을 먹어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군 하시였다.고지에서 싸우는 전사들에게는 더운 밥과 따끈한 국을 먹여야 한다고 당부하시면서도 자신께서는 늘 잡곡밥에 나물채 몇가지로 식사를 하신분이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주체42(1953)년 4월 어느날 점심때였다.

식당에서 검소한 식탁을 마주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을 바라보시며 오늘부터 매주 토요일을 보리밥먹는 날로 정하자고 하시였다.지금까지 끼마다 잡곡밥을 드신 그이께서 또 토요일을 보리밥을 먹는 날로 정하자고 말씀하시니 모두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마주보기만 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펄쩍 뛴 사람은 윤성중동무였다.어버이수령님께 변변치 못한 식사를 올리지 않으면 안되였던 그는 누구보다 속을 많이 태웠다.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뵈오러 찾아왔던 항일혁명투사들과 인민군전투원들,인민들은 물론 지어 외국인들까지도 그의 손을 부여잡고 수령님의 안녕과 건강을 부탁한다고 절절히 당부하였는데 언제 한번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것으로 하여 늘 죄스러움이 컸던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낮은 식생활기준을 정하시니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인민적풍모에 눈물만 앞섰다.

주체41(1952)년 4월 15일은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40돐이 되는 날이였다.

그전해의 생신날에도 어버이수령님의 만류로 끝내 생일상을 차려드리지 못한 일군들은 이번에만은 어떻게 하나 소박하게나마 성의를 다하려고 며칠전부터 노력하였다.그리하여 구해온것이 닭 3마리였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엄하게 나무람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 생각해보시오,지금 전쟁으로 말미암아 나라의 식량사정은 매우 긴장하여 인민들이 식량고통을 겪고있는데 우리가 생일을 차리면서 식량을 랑비해서야 되겠습니까라고 하시며 절대로 생일상을 차리지 말아야 한다고 단호히 말씀하시였다.그러시면서 다시한번 강조하는데 우리는 언제나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여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결국 이해의 생신날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잡곡밥에 나물채를 드시며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헌신하시였다.

전쟁시기만이 아니였다.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언제나 자신과 인민을 떼여놓고 생활해본적이 단 한번도 없으시였다.

절세위인에 대한 끝없는 매혹은 절대적인 신뢰와 흠모,충정을 낳는 마를줄 모르는 샘이였다.

당시로서는 우리 인민이 다 알수 없었던 어버이수령님의 한없이 소박하고 평범한 생활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하는 남다른 행운속에서 성장하였기에 매혹과 흠모,충정은 윤성중동무의 성격적특질로 되였다.

 

한생의 영광이 비낀 10년

 

수령과 전사사이에 맺어진 혈연적련계의 밑바탕에는 무엇이 있는가.정과 사랑이다.

윤성중동무가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일해온 기간은 10년이다.그 나날은 그의 한생의 영광을 대표할수 있으리만큼 가장 의의깊고 행복한 나날이였다.

윤성중동무는 생전에 자주 어버이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뵙던 때의 일을 못 잊어하며 자식들에게 들려주군 하였다.그날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전선사령부가 위치한 수안보에까지 나오시였던 날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포연탄우를 헤치시고 최전연에까지 오시리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김책동지를 비롯한 지휘관들과 전사들은 크나큰 격정과 흠모의 마음으로 그이를 보좌해드리기 위하여 바삐 뛰여다니였다.

그러나 윤성중동무만은 기쁨보다 걱정이 앞서 마음이 무거웠다.그처럼 뵙고싶었던 어버이수령님께 자기 손으로 이 세상의 진수성찬을 정성껏 만들어올리고싶은데 음식감이 변변치 못하였던것이였다.최전연이다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나지지 않았다.하는수없이 신선한 오이로 랭국을 풀고 짬짬이 캐여다 장만해두었던 도라지와 고사리를 무쳐놓았다.거기에 배낭속에 간수하였던 고추장 한종지를 놓은 식사를 어버이수령님께 차려드리였다.그리고는 너무도 어설픈 식사를 올린것이 민망스럽고 죄스러워 취사장 한구석에 엉거주춤 서있기만 하였다.

그의 옹색한 마음을 헤아려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고한다고 다정히 말씀하시며 전선에 나와서 동무들이 성의를 다해 만든 음식을 대하고보니 감개무량하다고,시원한 오이랭국까지 있으니 대단하다고 치하하시였다.그러시고는 아무리 진수성찬이라고 한들 전선에서 싸우는 동무들이 만든 음식맛에 비기겠는가고 하시며 스스럼없이 음식그릇에 수저를 가져가시였다.

《고사리와 도라지가 어데서 났습니까?》

《장군님,취사원동무가 짬짬이 마련하여 말려두었던것입니다.》

윤성중동무를 대신하여 김책동지가 말씀드리였다.

취사원동무의 성의가 대단하다고 하시며 못내 감동깊은 표정을 지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다시금 말씀을 이으시였다.

《전선에 나와서 도라지,고사리찬을 대하고보니 우리가 그전에 항일무장투쟁을 할 때 생각이 납니다.그때 유격대작식대원들은 전투의 여가에나 행군의 쉴참에 도라지와 고사리를 보면 캐고 뜯어다가 삶아 말리워가지고 다니면서 작식을 하였습니다.취사원동무가 최전선에서 자체로 부식물을 마련하여 전투원들의 식사를 보장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순간 윤성중동무의 가슴은 세차게 울렁이였다.취사원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자기의 별치 않은 수고를 항일유격대작식대원들의 투쟁기풍으로 높이 평가해주시니 세상에 이런 믿음이 또 어데 있겠는가.

《흑-》 하는 소리와 함께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떨어져내렸다.불쑥 해방전의 피눈물나던 일들이 어제런듯 되새겨졌다.

철들기 전부터 지주집에서 머슴살이를 한 그는 징용에 끌려나가 열발가락이 다 물크러지도록 심한 동상까지 입게 되였다.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바에는 차라리 고향땅에 묻히자는 강심을 품고 죽음의 소굴에서 도망쳐나왔지만 마음놓고 밥조차 빌어먹을수 없었다.겨우 발붙였다는 곳이 어느 국수집이였다.이렇게 시작된 부엌데기생활은 그야말로 노예살이였다.국수그릇에 파리가 잠시 앉았다 날아가기만 해도 《너같은 거렁뱅이배때기에나 처넣으라.》고 국수벼락이 들씌워지기도 하였고 또 어떤 때는 남은 음식을 몰래 입에 넣다가 들켜 죽도록 매를 맞기도 하였다.

모든 천대와 멸시를 숙명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던 윤성중동무의 운명에 이와 같은 날이 있으리라고 언제 상상이나 해보았겠는가.

뿌잇하게 흐려진 눈길을 들어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는 윤성중동무를 정겨운 시선으로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취사원의 임무가 중요합니다,전선의 동무들이 몇밤을 새워도 힘든줄 모르고 용기백배해 싸우는것은 그들의 식사를 잘 보장하기 위하여 애쓰고있는 취사원의 숨은 노력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습니다,그러므로 취사원의 임무는 총을 잡고 직접 적과 싸우는 전투원들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언제 한번 취사원의 일을 두고 이렇듯 영예롭게 생각해본적이 없었던 윤성중동무였다.더우기 남들은 총을 들고 적들과 싸우며 공을 세우는데 자기는 언제나 앞치마를 두른 취사원을 하는것을 늘 부끄럽게 여기며 사랑하는 안해에게 편지 한장 날리지 못하고있던 그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이날의 말씀은 윤성중동무에게 어제날에는 몰랐던 취사원의 긍지와 희열을 가슴가득 채워주었다.

그날 윤성중동무는 드디여 가족들에게 편지를 썼다.해방후에야 연필이란것을 손에 쥐여보고 글을 배운 그가 이날의 영광을 또박또박 적어서 안해에게 첫 편지를 보냈던것이다.

취사원동무가 식사를 보장하기 위해 애쓰는데 여기는 전선이라는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산나물을 채취하겠다고 지내 멀리까지 가면 안된다고 하시며 그의 신변에 대하여서까지 마음쓰셨다는 대목에 와서 윤성중동무의 안해도 울고 어머니의 얼굴과 편지를 번갈아 쳐다보던 철모르는 자식들도 모두 울었다.

이때로부터 그가 취사원으로 일한 기간은 령도자와 전사간의 가장 뜨거운 혁명적사랑과 의리가 엮어진 나날이였다.

바쁜 시간을 내시여 취사장에 나오실적마다 몸소 일을 도와주기도 하시면서 그의 생활과 가족들의 안부에 대하여 일일이 물어주시였고 그가 일을 더 잘하도록 걸음걸음 이끌어주기도 하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정전된 이듬해 봄에는 윤성중동무가 가족과 떨어져있는것까지 마음쓰시며 아이들도 보고싶겠는데 그래서야 되겠는가고 하시며 새 집도 마련해주도록 하시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색다른 음식이나 좋은 물건이 생겼을 때면 그의 가정에도 꼭같이 나누어주시였으며 추리밭에 추리가 익었을 때에는 잘 익은 추리를 몸소 따주시면서 아이들에게 주라고 이르기도 하시였다.그리고 그의 안해가 해산하였을 때에는 산모와 애기의 건강을 념려하여 귀중한 보약들을 마련해주시였으며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선물을 보내주시는 이 세상 다시 없을 사랑과 은정을 가득 안겨주시였다.

수령과 취사원,

동서고금 그 어디에 령도자와 평범한 취사원사이에 이렇듯 뜨겁고도 진한 사랑과 정이 흐른적 있었던가.

한번 정을 주시면 지휘관이든 취사원이든 그가 누구이든 혁명의 한길에서 사상과 뜻과 운명을 같이하는 동지로,전우로 여기시며 하늘같은 사랑과 은정을 거듭거듭 베풀어주신 어버이수령님,

우주의 행성들이 변함없이 태양의 주위를 돌고있음은 태양의 거대한 구심력때문이 아니겠는가.

윤성중동무와 같은 이 나라의 평범한 사람들이 어버이수령님을 끝없이 따르며 그이를 받들어 물과 불속에도 뛰여들며 전쟁사에 다시 없을 결사옹위의 영웅적화폭을 펼친 밑바탕에는 바로 혁명전사들에 대한 우리 수령님의 하늘같은 믿음과 사랑이 소중히 자리잡고있었다.

하기에 윤성중동무는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한식솔이 되여 누려온 삶의 10년을 가장 아름답게 추억하며 한생토록 그이께 충직하였다.

 

위대한 사랑에 고결한 의리가 따른다

 

윤성중동무는 평범한 사람이였다.일제식민지통치시기 우리 인민 대개가 그러하였던것처럼 무지와 몽매의 암흑세계속에서 고달픈 인생길을 걸어야 했던 인간이였다.

공화국의 품속에서 참다운 삶의 좌표를 찾고 가렬한 전화의 나날 위대한 수령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일하는 행운을 지니는 과정에 윤성중동무에게는 남다른 성격적특질이 형성되였으니 그것은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절대적이고도 티 한점 없이 순결한 충실성이였다.어버이수령님의 안녕과 건강은 윤성중동무에게 있어서 기쁨과 행복의 전부였다.

윤성중동무는 《염소》라고 불리울 정도로 지독한 줄담배군이였다.그런 그가 하루에 두갑도 그만 세갑도 그만이던 담배를 뚝 끊었다.주방의 위생을 보장하는데 자그마한 지장도 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이 사실을 어버이수령님께서 알게 되시였다.그이께서는 담배가 몸에 해롭다고 하니 끊어서 나쁠것은 없겠지만 그렇게 좋아하던 담배를 불쑥 끊어도 되겠는가,담배란 끊기가 조련치 않은데 피우고싶은것을 참자니 오죽 고통스럽겠는가고 몹시 걱정하시였다.

그러던 어느날 윤성중동무는 큼직한 곽을 하나 받게 되였다.그안에는 고급담배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담배는 기호품인데 왜 생각이 나지 않겠는가,이것을 건사해두고 정 피우고싶을 때 한대씩 피우라고 하시였다는것이였다.

윤성중동무는 목이 꽉 메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자기가 담배를 끊은것을 두고 어버이수령님께서 그렇게도 마음쓰실줄 정말 몰랐던것이다.

그후에도 윤성중동무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어버이수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정을 가슴에 안고 오직 혁명임무에 충실하였다.

윤성중동무가 두고두고 잊지 못해하던 이야기가 있다.

전쟁이 더욱 가렬해지던 어느날 미제공중비적들의 폭격이 있었다.여기저기 폭탄이 날아와 터지는 속에서도 윤성중동무에게 번개치듯 떠오르는것은 따로 보관해둔 고추장단지였다.

대피호로 달려가던 사람들이 반대로 뛰여가는 윤성중동무를 보고 소리쳤지만 그에게는 들려오지 않았다.찾아낸 단지를 안고 달리던 그는 폭격에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소중한 고추장단지를 더욱 품어안은 그였지만 세찬 충격에 단지는 깨지고말았다.

사실 그 고추장단지로 말하면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에 대한 추억이 짙게 어려있는 단지였다.

이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기에 그는 여러곳에 입은 상처의 아픔보다 고추장단지가 못쓰게 된것이 너무도 분하였다.땅우에 흩어진 단지쪼각들과 범벅이 된 고추장,그것을 손으로 그러모으는 윤성중동무에게서는 사나이울음이 터져나왔다.

윤성중동무가 응급처치를 받고있는 곳으로 오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고추장단지가 무엇이길래 목숨과 바꾸려 하였는가고 나무람하시면서 나는 김책동무가 살아있을 때부터 이 동무를 잘 아는데 책임성이 높은 동무이라고,고지식하고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그런 사람이 아니였다면 고추장단지때문에 이런 모험은 하지 않았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고지식하고 일밖에 모르는 책임성높은 사람,

이것이 어버이수령님께서 아시는 윤성중동무였다.고추장단지가 아니라 그보다 더 작은것이라 해도 어버이수령님을 위한 일이라면 목숨과 서슴없이 바꾸었을것이며 적의 화구가 앞에 있다 해도 주저없이 몸으로 막았을 윤성중동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윤성중동무를 위해 자주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여러가지 료리방법도 가르쳐주시였고 그의 지성이 어린 소박한 음식도 달게 드시며 아주 잘 만들었다고 치하하군 하시였다.

계속되는 전쟁은 우리 인민의 생활에 어려움과 곤난을 주었다.최고사령부에도 후방물자가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였다.하여 시장이나 주변마을에서 쌀과 고기같은것을 구해오고 강에 나가 물고기와 가막조개도 잡아오군 하였다.

그때마다 윤성중동무는 자신이 직접 그 안전성에 대하여 열번,스무번을 거듭 검사해보고서야 마음을 놓군 하였다.

이런 순결한 마음이 담긴 음식을 드시며 우리 수령님께서 기뻐하시면 이 세상의 행복을 다 독차지한듯 하여 훨훨 날아갈것만 같은것이 취사원의 심정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전쟁의 중하를 걸머지시고 쌓이고쌓인 일감들을 처리하시느라 언제 한번 제시간에 따끈한 식사를 드신적이 없으시였다.

윤성중동무는 늘 이것이 가슴에 맺혀 내려가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자신에게 높은 요구성을 제기하며 분발해나서군 하였다.

전선에서 후방으로,후방에서 전선으로 끊임없는 현지지도를 이어가실 때에도 우리 군인들과 인민들에게 자그마한 페도 끼치지 않게 하시려는 어버이수령님의 뜻을 받들고 윤성중동무는 온갖 성의를 다하여 어버이수령님의 식사를 보장해드리였다.식사시간도 잊고 사업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위하여 매일이다싶이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도 하면서 자신을 깡그리 바치였다.

전승의 환호성이 터져오른 때로부터 세월은 멀리도 흘러왔다.

윤성중동무가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일해온 나날은 길지 않았지만 수령님을 받드는 길에서 전사의 본분과 의리를 다한 그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은정,뜨거운 추억은 흘러가는 세월속에서도 변함이 없으시였다.전후시기 자신께서 입으셔야 할 외투를 윤성중동무의 딸에게 안겨주시던 그 사랑으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의 자녀들모두를 훌륭히 키워주시였다.그들이 해놓은 자그마한 일에 대하여서도 높이 평가해주시면서 사랑과 은정만을 베풀어주신분이 바로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윤성중동무와 그의 자녀들에 대한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사랑과 믿음은 혁명적동지애와 숭고한 도덕의리의 최고화신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에 의하여 줄기차게 이어지고있다.

조국해방전쟁시기 윤성중동무가 발휘한 충실성의 모범을 특출한 영웅적소행으로 보시고 그의 공적을 그토록 높이 내세워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하늘같은 믿음과 은정에 떠받들려 오늘도 윤성중동무는 공화국영웅들과 어깨나란히 영광의 언덕에서 영생의 삶을 빛내이고있다.

수령결사옹위는 초소와 직무로 하는것이 아니다.

그가 한개 전선을 맡아 지휘한 사령관이였다 해도,평범한 취사원이였다 해도 다같이 평범한 전사가 되여 목숨으로 수령을 결사옹위한 인간들이 우리 선렬들이였으며 이 위대한 전통으로 하여 우리 혁명은 그토록 승승장구하여올수 있었다.

윤성중동무의 한생은 우리에게 인생의 진리를 말해주고있다.

절세의 위인의 사랑과 은덕에 깨끗한 량심과 의리로 보답하는 길에 혁명전사의 존재가치가 있고 값높은 인생의 영광이 있다!

금별메달은 번쩍이지 않아도 우리 당이 취사원이였던 윤성중동무를 영생의 언덕에 세워준것은 그가 이 인생의 진리,혁명의 진리를 한생을 바쳐 빛내였기때문이 아니겠는가.

오늘날 외진 섬에서 등대원으로 일하여도 최고사령부로 가는 길을 밝혀준다고 생각하고 수천척지하막장에서 일하여도 캐내는 한줌한줌의 석탄이 부강조국에 빛과 열을 보태준다고 생각하는 그런 인간들에게 우리 당은 혁명전사라는 고귀한 칭호를 안겨주고있다.

백두산위인들의 슬하에서 혁명을 하며 충정을 바치는것을 신념과 량심,의리로 여겨온 윤성중동무를 비롯한 전세대들의 한생은 경애하는 원수님을 따라 노도치는 우리 혁명대오에 무한한 활력을 주는 귀중한 교과서로 되고있다.

본사기자 백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