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7월 23일 로동신문
태양의 축복속에 만복을 누립니다 리재룡
무릇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나에게도 제일 즐겨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세상에 부럼없어라》입니다.나는 이 노래를 오락회를 할 때에도 부르고 사회주의대건설장들을 찾아 노래를 요청받았을 때에도 부릅니다.
하늘은 푸르고 내 마음 즐겁다 손풍금소리 울려라 사람들 화목하게 사는 내 조국 한없이 좋네 … 이 노래는 나와 류다른 인연을 맺은 노래입니다.40여년전 공화국의 품에 처음으로 안기였을 때 맨 먼저 배운 노래가 바로 《세상에 부럼없어라》였습니다.온 나라 강산에 미래사랑,후대사랑의 위대한 서사시가 울려퍼지는 격동적인 현실속에서 이 노래는 더더욱 내 심장을 파고듭니다.내 오늘 그 랑만적인 운률속에 태양의 축복받아 만복을 누리는 나의 긍지높은 삶,세상에 부럼없는 우리 아이들과 인민들의 행복넘친 삶에 대해 노래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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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말로 이 세상에 부러운것없는 복받은 인간입니다.감옥귀신이 될번 하였던 내가 위대한 태양의 품에 안겨 신념과 의지의 강자로,공화국영웅,조국통일상수상자로 떠받들리우고있습니다.어머니당의 다심한 은정속에 행복한 가정도 이루고 사랑의 보금자리도 폈습니다.그리고 온 나라가 다 아는 축복이의 아버지가 되였습니다. 우리 집 방안벽에 정히 모신 위대한 《온 나라 인민들의 축복속에 태여난 애기이름을 축복이라고 지어줍시다 김 정 일 2002.7.23.》 그때로부터 어느덧 열두해가 되였습니다.정말 생각이 깊어집니다.차디찬 남녘땅에서 인생고목으로 시들던 나에게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던 자식복을 안겨주시고 친히 딸애의 이름까지 지어주신 위대한 장군님,절세위인의 하늘같은 은혜를 되새길수록 격정에 목메입니다. 몇해전 우리 축복이가 국제아동절을 맞으며 진행된 어린이들의 예술소품공연에 출연한적이 있습니다.그때 랑랑한 목소리로 노래 《세상에 부럼없어라》를 부르는 그의 모습은 사람들의 눈굽을 적시였고 끝내 나도 울리였습니다.수십년전 내가 처음으로 배운 이 노래를 딸이 부르는것을 보니 감회가 깊었습니다. 추위에 떨어본 사람일수록 태양의 열과 빛을 더 느끼고 인생고초를 겪어본 사람만이 행복의 귀중함을 더 잘 아는 법입니다.《세상에 부럼없어라》를 때없이 부르며 누리는 만복에 대한 생각으로 가슴벅차오를수록 나의 수난에 찬 과거가 돌이켜집니다. 남조선강원도 양양군에서 10남매의 막내로 태여난 나는 막바지인생으로 20여년간을 보냈습니다.예로부터 막내아들은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한다고 했지만 나는 한번도 가정의 그러한 애틋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내가 태여날 당시 형제들중 절반은 굶주림과 병마로 이미 저세상사람들이였습니다.량부모도 일찌기 한많은 세상을 떠났습니다.국민학교를 몇해 못 다녀보고 쫓겨난 나는 잔뼈도 굳지 않은 9살때부터 나무지게를 지고 비지땀으로 미역을 감으며 설음속에 험한 산길을 톺아야 했습니다.그래도 10남매중 학교문전에라도 가본것은 나혼자뿐이라는 유일한 위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굶기를 밥먹듯 하다나니 늘 주린 배를 움켜쥐고 다니였습니다.남들이 먹다버린 과일껍질을 주어먹고 모진 배아픔에 몸부림치던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학교시절 원족갈 때 겨우 꽁보리밥에 된장 몇숟가락 박아넣은 밥곽이 창피스러워 으슥진 곳을 찾아가며 눈물을 떨구던 일은 오히려 즐거운 추억이였습니다.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피를 판적은 또 얼마였는지 모릅니다.불쌍한 막내라고 늘 왼심을 쓰던 누이들도 내 생일날에 쌀밥 한사발 안겨주지 못할 정도로 우리 집살림은 궁했습니다. 한창시절을 이렇게 늘 서러움의 눈물로 보내면서 때로 먼저 간 어머니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어머니는 하나이지만 부족함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하지만 설사 나에게 어머니가 열백명 계신다한들 차디찬 그 세상에서 별도리가 있었겠습니까. 어깨를 짓누르는 나무짐으로도 내 작은 입을 건사할수 없어 나는 소년배군이 되였습니다.지금 우리 축복이나이쯤입니다. 바다는 바다대로 애어린 육체를 가혹하게 닥달질하였고 무시로 생명을 위협하였습니다.그것도 그렇지만 배군들에 대한 천시는 이루 말할수 없었습니다.사자밥을 먹으며 칠성판을 등에 지고 다니는 비천한 인생이라 어디 가나 《재수없는 배놈》이라는 상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배군들은 자연히 몸도 마음도 거칠어져 타락과 염세의 늪에서 허우적거리였습니다.그 비참한 모습들에서 나는 자기의 앞날을 예감하며 절망에 빠지였습니다.절망은 마음의 자살이라는데 내 처지가 바로 그러했습니다.산 사람에게 포부가 없다면 숨쉰다는것만 내놓고 죽은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뭇발길에 이리저리 채이는 막돌같은 인생인지라 부러움조차 가지지 못하였습니다.무엇을 부러워해야 아무 소용도 없는 그 가련한 신세를 어린 마음인들 어찌 깨닫지 못하였겠습니까.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를 볼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달밤에 그네뛰는 장면을 보며 왜 그다지도 남녘에서의 불우한 나날이 생각나던지.하늘중천 밝은 달은 하나이건만 어떤 사람 달을 보며 즐거워하고 어떤 사람 달을 보며 서러워한다는 노래를 들으며 저도 모르는 사이에 두볼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는것을 걷잡을수 없었습니다.아버진 또 우신다고 팔을 잡아당기는 축복이를 보며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웠습니다. 태양의 축복속에 부러운것없이 자라나는 내 딸 축복아,너같은 행복동이들이 어찌 저 노래의 진의미를 다 알겠는가고. 내가 부러움의 감정을 처음 느끼게 된것은 공화국의 품에 안긴 때부터였습니다.물고기잡이를 위해 차디찬 2월의 날바다길에 나섰던 우리는 길길이 뛰는 세찬 풍랑속에 정처없이 표류하던중 인민군해병들에 의해 구원되게 되였습니다. 20살이 넘도록 사지판을 넘나들던 나는 공화국의 품에 안겨 처음으로 사람대접을 받았습니다.그 못된 세상에서 만났던 크고작은 잡병들을 말끔히 털어버리였습니다.전쟁때 비참하게 숨져 논두렁에 되는대로 묻힌 어머니와 울화병으로 한많은 세상을 떠나간 아버지,생때같은 자식을 약 한첩 못 써본채 잃고 통곡하던 맏누이생각이 저절로 났습니다. 공화국에서의 3년세월은 환희와 감동의 련속이였습니다. 어느날 깊은 밤 우리 배군들은 류다른 음식상앞으로 안내되였습니다. (저녁식사는 이미 푸짐히 했는데 이건?…) 안내원의 말은 너무나 뜻밖이였습니다. 《오늘이 리재룡동포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입니다.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함께 추모합시다.》 나는 순간 머리가 핑 돌았습니다.일찌기 눈물이 말라버렸던 눈에서 뜨거운것이 좔좔 흘러내렸습니다.떨리는 손으로 제술을 올린 나는 어머니를 부르며 그만 그 자리에 어푸러져 오열을 터치였습니다. 여직껏 어머니에게 생전효도는 고사하고 제술 한잔 부어올리지 못했는데 이토록 뜨거운 사랑을 부어주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어머니 기뻐하십시오.아들은 복을 받아안았습니다. 공화국북반부의 그 어디를 가보아도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소리가 생활의 선률로 울려퍼지고있었습니다.이 땅이야말로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인생만복을 누리며 사는 참 좋은 세상이라는 확신이 바위처럼 굳어져갔습니다.그럴수록 운명적인 그 풍랑이 정말 고맙기 그지없었습니다.나는 지금도 생각합니다.지옥의 나락에서 헤매이던 이내 몸을 락원의 언덕으로 실어다준 그 풍랑은 분명 행운의 풍랑이라고. 평안남도 숙천군에서 살던 맏형네 집을 찾았을 때 받아안은 감동은 정말 이루 말할수 없었습니다.글쎄 어버이수령님께서 그 바쁘신 속에서도 평범한 농사군인 우리 맏형네 집에까지 들리셨댔다는것이 아닙니까.몸소 가마뚜껑도 열어보시며 생활의 구석구석을 보살펴주신 자애로운 어버이,나에게는 맏형이 들려주는것이 마치 별나라 이야기같았습니다.북녘인민들 누구나 이런 행운과 영광을 너무나도 생활화된 복으로 여기고있는데 더우기 놀랐습니다. 아!이런 자애로운 어버이가 계시여 사람들 누구나 우리의 집은 당의 품,우리는 모두다 친형제이라고 긍지높이 노래부르고있는것이구나. 부러웠습니다.은혜로운 품속에서 부럼없이 사는 북녘인민들이 눈물이 나도록 부러웠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영원히 살고싶었습니다.이런 세상이 고향사람들 아니 모든 남녘인민들에게도 펼쳐지게 하고싶었습니다.내가 조국통일을 위한 험준한 싸움길에 주저없이 나선것은 바로 그때문이였습니다. 캄캄한 철창속에서 《세상에 부럼없어라》,이 노래는 모진 고초를 이겨내게 하는 신념의 숨결이였습니다. 출옥후 어느 한 통일운동단체 성원들의 모임에서 나는 수십년간 마음속으로 부르고부르던 이 노래를 목청껏 불렀습니다.그때 사람들의 얼굴에 비꼈던 감동과 동경의 빛이 오늘도 눈에 선합니다. 장장 30년세월 남녘의 차디찬 감방에서 신념을 지켜 싸우다가 공화국의 품에 다시 안겨보니 《세상에 부럼없어라》,이 노래가 변함없이,더욱 높이 울려퍼지고있었습니다.내가 더욱 깊은 감명을 받은것은 아이들의 행복이 꽃물결로 설레이는 현실이였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것을 천품으로 지니신분,후대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는 자애로운 어버이를 령도자로 모시고있는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복속에서 살아온 조국인민들은 아마 다는 모를것입니다. 한평생 아이들을 제일로 사랑하시며 세상에서 좋은것은 다 안겨주신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대원수님들의 그 고매한 천품을 그대로 이으신 우리의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후대관은 매일,매 시각 내 가슴을 울려줍니다. 경애하는 《우리 아이들과 인민들을 세상에 부럼없이 잘살게 하는것이 우리 당의 투쟁목표입니다.구호 〈세상에 부럼없어라!〉를 생각하면 어려운 일도 웃으며 하게 됩니다.》 지금 이 땅의 곳곳에서는 나라의 왕들인 우리 아이들을 위한 사랑의 궁전들이 수없이 일떠서고 밝고 명랑한 아이들의 웃음소리,노래소리가 끝없이 울려나오고있습니다. 얼마전 우리 축복이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은정으로 훌륭히 꾸려진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야영기간 몸과 마음이 더욱 싱싱해지고 발랄해진 딸애를 보며 나는 새삼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였습니다. 내가 남쪽에 있었더라면 저애의 운명이 과연 어찌되였을가 하고.애당초 세상에 태여나지조차 못했을것이며 설사 태여났다 하더라도 그 차디찬 세상에서 천덕꾸러기늦동이신세를 면치 못했을것입니다.《축복》이란 이름은 더우기 당치않을것입니다. 궁궐같은 야영소자랑,송도원의 아름다운 경치자랑으로 끝날줄 모르는 딸애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참한 옛 추억이 또다시 갈마드는것을 어찌할수 없었습니다. 내가 살던 속초의 바다가도 아름답습니다.속초는 옛적부터 명승지로 소문났던 설악산을 끼고있습니다.설악산은 해뜰무렵 바다에서 부감할 때 그 경치가 또한 류다릅니다.그런데 그 경치가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었겠습니까.유년시절 나무지게를 지고 힘겹게 넘나들 때도 그렇고 소년어부시절 귀항길에서도 눈뿌리가 빠지게 보고본 산세였지만 나에게는 그 경치를 즐길 아무런 정신적여유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제일 경치좋은 곳들에 꾸려진 그 많은 궁전,야영소들에서 한점 구김살없이 마음껏 웃고 뛰놉니다.얼마나 행복한 아이들입니까. 지난 국제아동절때 평양애육원에 펼쳐졌던 감동깊은 화폭도 참으로 눈물겨웠습니다. 6.1절을 맞이한 원아들이 보고싶어 왔다고,아이들이 하나같이 밝게 웃는것을 보니 마음이 즐겁다고 말씀하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친아버지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자식들마냥 그이 품에 매달려 떨어질줄 모르는 원아들,그것은 정녕 육친의 정이 넘쳐흐르는 한가정,한식솔의 모습이였습니다. 그때는 미처 다 몰랐습니다.저녁밥을 맛있게 먹는 원아들의 모습을 보시며 우리 원수님께서 무엇을 생각하고계셨는지. 얼마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그날 원수님께서는 원아들의 식사도구를 두고 못내 마음쓰시면서 아직 아이들을 위한 일에 빈구석이 많다고 말씀하시였다고 합니다.그러시고 집기류와 원아들의 생활필수품을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것으로 마련해주겠다고 하시며 그 대책까지 세워주셨다는것이 아닙니까. 얼마나 세심한분이십니까.얼마나 극진한 사랑입니까. 다른 나라들에도 고아원은 있습니다.하지만 국가수반이 고아원을 찾아갔댔다는 소리를 들어본적이 없습니다.설사 그 누가 찾아갔다한들 동정의 꾸레미를 들고 갈수는 있어도 결코 친부모의 정을 부어줄수 없습니다.집없는 아이들,부모없는 아이들이 《국가와 사회의 가장 어두운 리면을 보여주는 존재》라고 말은 하면서도 눈길은 랭담합니다. 그런데 우리 원수님께서는 한해에도 여러차례나 부모없는 아이들을 찾아주시며 이토록 걸음걸음 사랑의 전설을 남기십니다.부모없는 아이들은 누구보다 정을 그리워한다고,우리가 부모들을 대신하여 그들을 밝고 바르게 잘 키우자고 하시며 다심한 정을 기울이시는 우리 원수님의 그 뜨거운 사랑에 어린시절 내자신이 뼈저리게 체험하였던 고아의 설음이 일시에 녹아내리는것 같았습니다. 정말 세상에 우리 원수님처럼 한없이 숭고한 후대관을 지니시고 아이들의 아름다운 미래를 가꾸어가시는 위인은 없습니다.흩어진 광선을 다 모아도 태양을 이루지 못하듯이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의 사랑을 다 합쳐도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후대사랑에는 결코 천만분의 일도 가닿지 못합니다. 도처에서 피비린 분쟁이 그칠새 없는 오늘의 세계에서 그 첫째가는 피해자는 다름아닌 아이들입니다.더우기 미제의 침략의 마수가 뻗친 나라들에서 숱한 전재고아들이 생기고 불쌍한 아이들이 보호와 구원을 애타게 부르짖고있습니다.한지맥으로 잇닿은 남녘땅에서도 해마다 숱한 아이들이 《입양》의 명목으로 다른 나라들에 물건짝처럼 팔려가고있습니다.얼마전에는 수학려행을 떠났던 수많은 학생들이 인간의 정이 말라버리고 돈밖에 모르는 세상을 만난탓에 검푸른 바다속에 빠져 어처구니없는 생죽음을 당하였습니다.이런 암흑천지에 과연 미래가 있을수 있겠습니까. 썩고 병든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아이들의 밝은 앞날을 생각조차 할수 없지만 우리의 고마운 사회주의제도하에서는 그것이 눈앞의 현실입니다. 얼마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를 또다시 돌아보시면서 하신 뜻깊은 말씀이 귀전을 울려줍니다.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는 우리 인민들에게 승리에 대한 신심과 락관을 준다. 억대의 재부보다 귀중한것은 운명에 대한 믿음입니다.그 믿음이 있을 때 어떤 고난과 시련도 두렵지 않고 번쩍이는 번화가도 절대로 부럽지 않습니다. 하기에 우리 인민들은 모진 시련과 역경을 웃음으로 헤쳐갑니다.수령과 인민이 피와 정으로 맺어지고 숨결과 박동을 같이하는 이런 제도,이런 나라를 그 누구도 어쩌지 못합니다. 옥중에서 전향공작의 칼바람이 휘몰아칠 때 교형리들은 나를 만만하게 여기고 검질기고 악착한 고문을 들이대였습니다.하지만 내 신념을 꺾을수 없었습니다.맥이 빠진 그들은 남쪽에서 뼈가 굳은 리재룡이 불과 3년만에 저렇게 빨간 물이 든것을 보니 북의 사상과 제도가 무섭긴 무섭다고 비명을 질렀습니다.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습니다.3년이 아니라 3개월 아니 3일만이라도 그 고마운 세상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달리될수 없을것이라고. 오늘 우리의 신성한 사회주의제도를 어째보려고 끈질기게 발악하는자들에게 나는 말하고싶습니다. 《세상에 부럼없어라》,이 노래가 생활의 선률로,신념의 메아리로 울려퍼지는 이런 나라를 그 누구도 당해낼수 없다고,왜냐하면 세상에 부럼없는 생활을 마련해주시는 위대한 령도자께 인민은 목숨바쳐 충정다하기에,소중한 그 제도를 지켜 그 무엇도 두려움없이 견결히 싸워나가기에. 노래의 구절에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 힘 꺾을자 그 어데 있으랴 풍랑도 무섭지 않네 백두의 넋을 이어 빛나는 내 조국 두렴몰라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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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우리 축복이의 사진을 때없이 들여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군 합니다.제복입은 모습이 정말 대견하기 그지없습니다.축복이는 지금 당의 은정속에 강반석혁명학원에서 선군조선의 역군으로 억세게 자라나고있습니다. 사진속의 딸애와 나는 자주 마음속대화를 나눕니다. 축복아,우리 장군님,우리 원수님께서 축복해주신 너의 앞날은 참으로 밝고 밝다.내 조국의 창창한 미래를 펼쳐주는 선군의 찬연한 빛발아래 이 땅의 수백만 축복이들의 앞날은 참으로 아름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