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8월 16일 로동신문
정론 백두의 넋으로 심장을 불태우자
8월 15일,또다시 맞은 조국해방의 날이다. 위대한 수령 반만년 이 나라의 력사에 민족의 위대한 운명전환으로 새겨진 이날을 69번째로 맞이한 우리의 마음속에 백두산이 우렷이 솟아 빛나고있다. 경애하는 《 온 나라가 혁명의 성산 백두산을 찾고있다. 이해의 뜻깊은 태양절을 앞두고 조선인민군 련합부대 지휘관들이 백두의 눈보라맛을 보며 백두의 칼날을 벼리였고 위대한 장군님께서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신 50돐을 맞이한 6월에도 전군의 모범적인 군인들로 조직된 답사행군대가 백두의 항일전구를 편답하였다.온 나라 청소년학생들,직맹과 녀맹의 대표들이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을 돌아보았고 얼마전에는 전국의 당책임일군들이 백두의 풀물오른 군복차림으로 답사행군을 진행하였다. 누구나 흥분하고 격정을 터친다. 백두산에 오르니 무한한 혁명열로 심장이 한껏 달아오른다.백두의 칼바람은 계속혁명의지를 백배,천배해준다.… 그렇다.오늘 우리 혁명대오에는 백두의 넋이 세기와 세대를 이어 살아높뛰고있다. 백두의 공기로 마음을 씻고 백두의 눈보라맛을 실감하며 백두의 혁명정신을 뼈와 살로 간직하는것이 이 나라 천만군민의 지향으로,시대적흐름으로 되고있다. 백두의 넋으로 심장을 불태우자.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최후의 승리를 기어이 안아오리라. 이것이 우리 군대와 인민이 한목소리로 터치는 신념과 의지의 선언이며 이것이 오늘 조선의 시대정신이다.
조선사람과 백두의 공기
칠팔월의 무더위속에 백두산을 다녀온 당책임일군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백두산은 역시 공기부터 다르다는것이다.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을 답사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하는 말이다.우리 인민은 물론 외국인들도 백두산은 공기조차 령험한 신비의 산악이라고 말한것이 결코 우연치 않다. 혜산청년역에서 기차를 내려 뻐스를 타고 한동안 달려 보천땅에만 들어서면 천리수해가 풍기는 청신한 기운에 가슴이 쩡- 하고 열린다.바람을 타고 페부에 한껏 차오르는 그 맑은 공기의 맛을 무엇이라 표현하랴. 평양-삼지연정기항로를 오가는 비행사들도 백두의 공기에 대해서는 꼭같은 말을 한다. 《정말 온몸,온 정신을 깨끗이 정화해주는 백두산의 공기입니다.그래서 조종의 산이라고 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다면 이 나라 군대와 인민이 백두산을 찾고 또 찾는것이 과연 자연이 주는 장쾌한 경치나 청신한 공기때문만이겠는가. 이 나라 조종의 산 백두산, 조선사람은 누구나 백두산을 알고 백두산을 늘 마음속에 안고 산다. 약 100만년전 지각의 변동과 화산분출로 이 나라의 최고봉으로 우뚝 솟은 백두산,여기서 우리의 강토가 한지맥으로 뻗어갔다. 이 강토우에 조선민족이 생겨난 그때부터도 백두산은 최고의 산악이였고 천년전,백년전에도 우리 겨레는 백두산을 우러러 민족의 기개와 넋을 찾았다. 18세기 중엽 이 조종의 산악에 오르는 행운을 지녔던 박종이라는 량반서생도 동남으로 호탕한 창해를 내다보며 가슴을 넓히고 서북으로 창망한 대륙을 바라보면서 흉금을 터친 흥분을 백두산기행으로 남긴바 있다. 강도 일제에게 짓밟혀 신음하던 민족수난의 그 시기 재생의 서광을 애타게 기다리면서도 압제자에게 억눌려 백두산에 마음대로 오를수도 없었던 조선민족이였다. 백두산이 민족의 기개와 넋을 떨치는 영웅의 산악으로,혁명의 성산으로 된것은 위대한 수령 《백두산에 축지법 쓰는 장수 내렸다》,《일군병사들 투항하라 일행천리축지법 쓰는 장수 백두산에 출현》이라는 백두산밀영의 구호문헌들이 웅변으로 말해주고있다. 그때로부터 이 나라 삼천리강토는 자기의 숨을 쉬기 시작하였다.억압과 착취를 부시고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살려는 자주의 정신이 암흑을 깨치는 등불로 누리에 밝아올랐고 정의와 힘을 떨치는 총대의 기상이 강대한 민족의 보검으로 인민의 손에 쥐여졌다. 그 이름도 빛나는 백두산장수,백두산호랑이로 불리우신 그이께서는 혁명의 기발을 높이 추켜드시여 온 겨레를 전민항쟁,자력항일에로 불러일으키시였다.그이께서 새기신 백두산 줄기줄기,압록강 굽이굽이의 피어린 자욱자욱은 조국해방의 환희로운 그날을 안아오고야말았다. 69년전,온 나라에 메아리치던 《조국해방 만세!》의 우렁찬 함성을 귀에 쟁쟁히 들으며 우리 다시금 가슴속에 새기고 또 새긴다. 백두산은 그렇다.우리가 말하는 백두의 공기는 단순히 페부로 들이키는 자연의 공기가 아니다. 그것은 항일의 혈전만리에 그것은 반만년력사에 우리 인민이 처음으로 맞이한 위대한 수령 이 력사의 진리를 똑똑히 새겨안으며 전국당책임일군들의 답사행군대는 서있었다.삼지연대기념비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 백두의 공기로 마음들을 씻은 그들이였다. 그들의 가슴마다에는 조선로동당의 태아이고 씨앗이였던 건설동지사의 첫 당원들-차광수,김혁동지들이 물려준 붉은 넋이 꽉 차있었고 저 너머 청봉밀영에서 추상같이 울리던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선언이 울리고있었으며 오중흡7련대의 수령결사옹위정신이 백배로 굳세게 장약되였다.백두의 전구들을 편답하면서 삼지연군인민들속에서 항일유격대식군중정치사업도 하였으며 시랑송모임과 혁명가요합창경연도 하고 모닥불을 피워 때식도 함께 나누고 천막을 치고 빨찌산들처럼 숙영도 해본 그들이다. 지금은 그들이 온 나라 수백의 시,군,수천의 공장,기업소들로 돌아갔다.백두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키며 그들은 백두의 공기를 온 나라에 꽉 채우는 혁명의 송풍기가 되여 기적과 혁신의 불바람을 세차게 일으킬것이며 우리 당의 사상과 령도를 충직하게 받드는 성스러운 진군에서 기관차의 역할을 다해나갈것이다.
혁명가는 눈보라맛을 알아야 한다
눈보라,눈보라, 한번 외워보기만 해도 가슴가득 격정이 북받치고 눈시울이 젖어드는 백두의 눈보라이다. 설한풍이 휩쓰는 험한 산중도 없고 혈전의 험로역경도 없었지만 그날의 항일빨찌산행군로를 따르는 답사대오는 백두의 눈보라를 그대로 안고 처억처억 나아갔다. 걸음걸음,년대와 년대마다 전인미답의 길을 헤쳐온 조선혁명의 간고함을 뼈에 새겨주는 눈보라이다.난관을 이겨내는 의지가 어떻게 강해야 하는가를,시련을 뚫고 안아오는 승리가 얼마나 가슴뿌듯한 쾌감을 주는가를 심장으로 느끼게 하는 눈보라이다. 이런 심정으로 길을 다우쳐 장군봉에 당도한 전국당책임일군들의 답사행군대오앞에 백두산은 역시 호락호락 문을 열어주지 않는듯 하였다.짙은 운무,보슬비와도 같이 뺨을 적시는 물방울들… 일순간 맑아지다가는 또 눈앞을 가로막는 안개때문에 천지호반을 내려다볼수가 없었다. 《 눈보라가 치는것을 보니 백두산이 호락호락 문을 열어주지 않을것 같습니다.아마도 우리의 담을 시험하여보고서야 문을 열어줄 심산인가 봅니다.… 백두산의 눈보라를 오래간만에 맞으니 정신이 번쩍 듭니다.… 사나운 눈보라를 헤치며 백두산에 올라가보아야 백두산의 진미를 알수 있습니다.… 항일무장투쟁시기의 고난의 행군때에 비하면 지금 우리가 걷는 이 길은 아무것도 아닙니다.고난의 행군길이 철의 불바다라면 이 길은 꽃핀 들길입니다.… 주체61(1972)년 5월 31일 눈보라를 헤치고 백두산에 오르시며 위대한 령도자 백두의 눈보라, 우리 장군님의 한평생이 그대로 안겨오는 백두의 눈보라이다. 눈보라세찬 2월의 백두산밀영에서 탄생하시여 피눈물의 12월 그 마지막길도 눈보라속에 가신 아,우리의 그이께서는 백두의 눈보라속에서 한평생을 사시였다. 자신께서는 눈보라강행군으로 불굴의 로고를 바치시면서도 조국앞에는 강성번영의 만리를 펼쳐놓으시고 인민에게는 천만가지 행복의 터전을 안겨주시였다. 어머님의 따뜻한 품속에 계시던 어린시절에도 눈에 익도록 보시였고 백두산에로의 첫 답사행군길을 개척하시던 주체45(1956)년 6월에도 마음속에 안고가신 눈보라,그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계승완성할 숭고한 사명의 자각이였다.총대로 시작되고 총대로 백승을 떨쳐온 위대한 선군길의 만단사연이 그 눈보라에 어려있기에 우리 장군님께서는 어은동의 군사야영지에서도 《백두의 행군길 이어가리라》는 즉흥시를 읊으시였고 21세기 강성국가건설의 진격로를 열어나가시던 때에도 2월의 눈보라길을 헤쳐가시였다. 희망안고 이 길을 가고가리라 마음속으로 외우고 또 외우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 걷고걸으신 그 신념의 길,헌신의 길우에서 얼마나 가슴벅찬 강성번영이 우리를 찾아왔던가.사회주의붕괴의 어지러운 바람이 불어치던 1990년대초 향도봉마루에 《혁명의 성산 백두산》이라는 불멸의 글발이 빛나올랐고 1998년 8월말 내 나라의 푸른 하늘에는 첫 인공지구위성 《광명성-1》호를 실은 운반로케트가 백두의 기상을 떨치며 날아올랐다.백두산아래 삼지연과 삼수땅에 천지개벽이 일어났고 철령기슭의 고산땅에는 인민의 무릉도원,선군절경의 새 력사가 첫 페지를 눈부시게 펼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위업을 받드는 길에 위대한 장군님께서 한평생 안고 사신 백두의 눈보라,거기에는 모든것이 다 있다.혁명앞에 다진 언약 끝까지 같이하는 숭고한 동지애의 세계도,천만자식 품에 안아 로동당의 붉은기앞에 떳떳이 세워주는 무한한 인덕도 있으며 원자탄으로도 깰수 없는 수령,당,군대와 인민의 일심단결도, 이 모든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한다. 백두의 눈보라맛을 실감한다는것은 위대한 혁명가는 백두의 눈보라맛을 알아야 한다는 시대의 부름을 언제나 심장속에 안고 사는 사람만이 위대한 장군님 따라 걸어온 혁명의 천만리를 우리 당을 따라 영원히 빛나게 이어나갈수 있다. 시대의 부름이 절절히 울리는 8월의 이날에 또 한가지 명심해야 할것이 있다. 쇠는 고열로 끓어번지는 로속에서만 강철로 되고 꽃나무는 비바람을 맞으며 들판에서 자라나야 억세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법이다.백두의 눈보라맛은 겨울에 제일 잘 알수 있다고 하는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의 선군시대에 살며 투쟁하는 조선의 혁명가라면 겨울철에 백두의 눈보라맛을 실감해야 한다.신들메를 든든히 하고 모자를 단단히 쓰고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에로의 겨울철답사길에 올라 백두산의 눈보라를 헤치는 영광스러운 체험을 누구나 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생눈길을 헤치는 심정으로 일해나가야 한다.힘이 들면 천교령의 눈보라를 생각하면서 《반일전가》를 높이 불러 용기를 돋구어야 하며 그 어떤 난관이 앞을 가로막아도 맹산촌오지에서의 회의를 상기하고 비겁한자야 갈라면 가라는 노래로 배짱을 키우면서 혁명을 다시한번 상승시키기 위해 일떠설줄 알아야 한다. 해방의 8월이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것은 눈보라치는 2월과 12월을 언제나 심장에 안고 사는 사람만이 제일 정확히,제일 심각하게 자각할수 있는것이다.
백두의 정신은 우리 피와 살
백두산에로의 행군길을 다그치는 대오속에서 이런 대화가 오고간적이 있었다. 《올해는 백두산바람이 부는 해라고들 하는데 그 시작이 언제인지 아오?》 《예,압니다.그거야 인민군련합부대 지휘관들의 답사행군때부터지요.》 《틀렸소.》 《왜 말입니까? 그럼 책임비서동지는 백두산바람이 언제 터졌다는겁니까?》 《작년 11월말이지.》 … 지난해 11월 30일부 《로동신문》에는 경애하는 백설천지의 삼지연땅을 찾으시여 여러 부문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신 우리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유서깊은 혁명전적지 삼지연못가에 세워진 삼지연대기념비를 돌아보시였다. 조국진군의 길에 오르시였던 력사적인 그날의 모습그대로 군복차림을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과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인민들의 모습을 형상한 부주제조각군상들을 돌아보신 그이께서는 볼수록 장관이라고,그림처럼 황홀하다고 하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장군님의 직접적인 발기와 정력적인 지도밑에 세워진 삼지연대기념비는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이며 혁명전통교양의 거점입니다.삼지연대기념비앞에 서니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여야 하겠다는 결심과 의지가 더욱 굳세여집니다.… 백두산기슭의 항일전구를 찾으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말씀은 절절하시였다. 온 한해 전선길 천리를 헤치시며 적들과의 첨예한 대결전을 승리에로 이끄시고 《마식령속도》창조의 불길높은 전투장들을 찾고찾으시여 건설의 최전성기를 펼치신 그이께서 눈덮인 백두의 산야에서 무엇을 생각하시였는지 그때는 우리 미처 다 알수 없었다. 새해 2014년을 맞는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새로운 승리의 길을 밝혀주시고 끊임없는 강행군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또다시 엄동의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마두산혁명전적지를 찾으시였다. 구호문헌보존교양실을 돌아보신데 이어 야외에 있는 구호문헌들을 하나하나 보신 그이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장구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창조하신 빛나는 혁명전통은 우리 당과 혁명의 억센 뿌리로 된다고,우리 당이 혁명전통교양을 줄기차게 벌려왔기때문에 우리 군대와 인민은 력사에 류례없는 만난시련을 과감히 이겨내고 혁명의 한길을 꿋꿋이 걸어올수 있었다고 뜨거운 감회속에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해마다 이어지던 이 나라의 백두산답사길에 전례없이 중대한 의미가 부가되였다. 혁명의 대가 바뀔수록 혁명전통교양을 더욱 심화시켜야 한다는것은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신것이였다.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사상과 뜻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한걸음의 양보도 없이 실천해나가시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에 따라 올해 3월 23일부터 조선인민군 련합부대 지휘관들의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이 진행되였다.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답사행군이 성과적으로 끝났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수천리 먼길을 찾아가시여 그들을 만나시고 고무격려해주시였다. 전군에 혁명전통교양의 불바람을 세차게 일으켜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조선혁명을 끝까지 완수하기 위하여 답사행군을 조직하였다고 힘주어 말씀하시는 그이의 연설을 들으며 백두산혁명강군의 장령,군관들은 똑똑히 새겨안았다. 백두의 혁명정신은 우리가 대를 이어 물려받고 물려주어야 할 가장 고귀한 혁명의 재부이며 우리의 모든 승리와 번영을 굳건히 담보하는 불멸의 기치,사상정신적힘의 원천이다.이 정신이 세대를 이어 변함없이 계승될 때,이 정신을 혁명의 주인들이 자기의 피와 살로 만들 때 사회주의는 전진하며 최후의 승리를 이루고야마는것이다. 천만군민의 심장에 백두의 혁명정신을 깊이 심어주고 백두의 칼날을 세워주는것은 원쑤들의 발악이 악랄할수록,우리가 바라는 최후의 승리가 눈앞에 보일수록 더더욱 강조하고 큰 힘을 넣어야 할 사상교양,사상공세의 중대한 과제이다.이것은 우리 혁명이 자기의 장구한 력사에 력력히 새긴 엄숙한 진리이며 이에 대해서는 세계사회주의운동사가 피어린 교훈으로 반증하였다. 1970년대에 사상,기술,문화의 3대혁명과 속도전의 기치드높이 사회주의대건설에서 기적과 혁신을 창조할수 있은것도 우리 당이 제시한 《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라는 구호밑에 백두의 혁명정신이 온 나라에 힘차게 나래쳤기때문이였다.1980년대에도 우리 군대와 인민은 80년대의 김혁,차광수가 되자는 삶과 투쟁의 구호를 추켜들고 당과 수령의 두리에 한마음한뜻으로 굳게 뭉쳐 혁명과 건설을 힘있게 내밀었다.여러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제국주의련합세력의 반사회주의압살공세가 전례없이 강화된 1990년대,피눈물의 바다에서 솟구쳐 일어서야 했던 그때에도 우리 혁명대오에는 《높이 들자 붉은기》,《혁명의 수뇌부 결사옹위하리라》를 비롯한 신념의 노래들이 천만의 심장에 붉은기정신을 새겨주며 우렁차게 울리였다. 혁명의 길은 순탄치 않으며 앞으로 혁명앞에 예상치 않았던 시련이 닥쳐올수도 있다.군대가 평화적기분에 사로잡혀 싸움준비를 잘하지 않으면 전투에서 승리할수 없는것처럼 당이 혁명의 피맺힌 교훈을 잊고 설마병에 걸려 자기의 전통을 굳건히 고수하고 대를 이어 더욱 빛내이는 사업을 잘하지 않으면 돌이킬수 없는 엄중한 후과를 초래할수 있다. 혁명이 전진할수록 백두의 혁명정신을 더욱 높이 추켜들라. 백두의 넋으로 천만이 심장을 불태우게 하라. 력사와 시대는 오늘 우리앞에 이렇게 심각한 요구를 제기하고있다. 주체와 선군으로 자랑높고 백승을 떨치는 이 땅우에 백두산바람이 또다시 거세차게 불어치고있는것은 시대와 혁명의 요구에 대한 명백한 대답이다. 선렬들이 물려준 계급의 자각과 자기자신들의 체험으로 하여 이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기에 이 땅의 주인들은 하나같이 백두산을 우러르며 백두산을 찾고 또 찾고있는것이다. 백두의 공기로 마음을 깨끗이 정화하자. 백두의 눈보라맛을 실감하며 강자로 일떠서자. 백두의 혁명정신을 뼈와 살로 간직하고 이 조선을 세계우에 우뚝 올려세우자. 민족의 넋이 어리여있고 주체혁명의 력사적뿌리를 안고있는 백두의 산야를 자욱자욱 밟아보며 오늘의 세대들이 새로운 각성과 결심으로 일떠서고있다. 백두의 넋을 소중히 간직한 조선혁명이 이렇게 전진하며 최후의 승리를 마중가고있다. 조혁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