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8월 3일 로동신문
[정세론해설] 패자의 운명에서 벗어날수 없는 가련한 처지
우리 군대와 인민은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에서 실로 놀라운 력사적기적을 창조하였다.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시며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신 위대한 수령 보통상식으로는 상상도 할수 없는 이 가렬처절한 전쟁에서 우리 군대와 인민은 미제와 15개 추종국가군대들,남조선괴뢰군,일본군국주의반동들로 무어진 승냥이떼무리들을 물리치고 련전련승을 이룩하였다. 돌이켜보면 우리 인민의 조국해방전쟁은 인류력사상 가장 간고하고 치렬한 전쟁이였다. 1947년 3월 미국은 악명높은 《트루맨주의》를 공포하고 세계를 《수호》한다는 구실밑에 친미반동국가들을 규합하여 사회주의나라들과 민주력량에 대한 봉쇄와 전면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미쳐날뛰였다. 당시 미국내에서는 1948년말부터 시작된 과잉생산공황이 점차 확대되여 물가가 폭락하고 기업체들이 무리로 파산되였다.실업자대렬이 늘어나고 독점체들이 쓰러지는 등 파국적인 경제위기가 휩쓸었다.이러한 환경에서 독점자본가들을 구원할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군비확장과 새 전쟁도발뿐이였다. 안팎으로 궁지에 몰린 트루맨은 미국내에서 《반공》소동을 일으키는것과 함께 새로운 해외침략전쟁을 도발하는 길에 나섰다.침략전쟁의 발화점을 조선반도로 미리 내정하고있던 미국은 호전광인 덜레스를 국무성의 대외정책고문으로 들여앉히고 보다 적극적인 아시아정책,극동정책으로 방향전환을 하였다.그 골자가 바로 조선전쟁의 도발이였다. 남조선강점후 미제는 저들의 철저한 식민지,침략적전초기지로 남조선을 전변시키고 미국의 지배령역을 장차 전조선에로 확대하려고 획책하였다. 《해방자》로 자처하던 미제는 전패국에서나 허용될수 있는 군정통치를 남조선에서 실시하였다. 미군정통치의 범죄적진상에 대하여 미국인기자 마크 게인은 《일본일기》에서 《우리들은 해방군이 아니였다.우리들은 점령하기 위해서,조선사람이 항복조건에 복종하는가 안하는가를 감시하기 위하여 온것이다.우리는 상륙 첫날부터 조선인민의 적으로서 행동하였다.》라고 썼다. 미제는 남조선에서 괴뢰무력을 조작해내고 북침전쟁수행에 필요한 각종 전투기술기재들과 군수물자들을 방대한 규모에서 계속적으로 투입하였다. 미제는 1948년-1950년기간에 26억 2 700만US$를 괴뢰군의 무장장비를 갖추는데 들이밀었다.미국경제협력국 조선분국 국장 죤슨은 미의회에서 《미국식무기로 무장하고 미국장교들에 의하여 훈련된 10만여명의 남조선군대는 모든 준비를 끝마치였으며 언제든지 전쟁을 개시할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떠벌였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38゜선 전지역에 걸쳐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불의의 무력침공이 개시되였다.사실 조선전선에 흉물스러운 낯짝을 들이민 미제침략군치고 《승리》를 확신하지 않은자가 없었다. 조선전쟁을 도발하면서 미군부우두머리들은 72시간안에 《전쟁을 결속지을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다.그러나 조선전쟁에서는 국제사회의 상상을 뒤집어놓는 기적이 일어났다.미국은 3일이 아니라 3년동안이나 전쟁을 치르고서도 력사상 체험해본적이 없는 대참패를 당하였다. 조선전쟁시기 미제는 인민군대에 의해 《오산의 비극》으로 시작된 패전을 역전시켜보려고 1950년 8월 《킨작전》(대물동작전),《싼터 볼트작전》(전격작전),《라운드앞프작전》(몰이사냥작전),《킬러작전》(살해작전),《립퍼작전》(선톱작전),《스레치-함마작전》(메와 모루작전) 등과 《하기공세》,《추기공세》,《김화공세》,《감은절공세》,《크리스마스공세》,《신공세》를 비롯하여 괴이한 명칭을 가진 작전,공세들을 수많이 벌려놓았지만 참패의 운명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일명 《상승사단》이라고 하던 미제24사단은 대전에서 완전히 괴멸되였다. 1951년도에 철직된 맥아더나 《하기 및 추기공세》를 벌렸다가 톡톡히 쓴맛을 본 릿지웨이보다도 클라크의 처지는 더욱 가련하였다. 1953년 7월 27일 패자의 몰골로 정전협정문건에 조인한 클라크는 정전협정문건에 서명하고나서 《나는 정부의 지시를 수행함으로써 력사상 승리하지 못하고 정전협정에 조인한 최초의 미군사령관이라는 영예롭지 못한 이름을 띠게 되였다.》고 개탄하였다. 클라크의 치욕은 곧 미국의 치욕이였다.미제가 유엔의 이름까지 도용하면서 우리 공화국을 강점하기 위하여 날뛰였지만 조선전쟁에서 미제의 《강대성》의 신화는 산산이 깨여지고말았다. 미국잡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는 조선전쟁에서의 《미군의 손실은 미국이 다섯번의 대전쟁 즉 독립전쟁,1812년전쟁,메히꼬전쟁,미에(미국-에스빠냐)전쟁 및 필리핀전쟁에서 입은 손실을 다 합친것보다 2배이상 더 많다.》라고 전하였다. 침략자들이 전선에 들이민 병력과 화력기재의 밀도에 있어서,전쟁수법의 야만성과 횡포성,잔인성에 있어서 조선전쟁은 실로 지난 시기에 있은 모든 전쟁을 훨씬 릉가하였다.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의 영웅적투쟁에 의하여 침략과 살륙으로 살쪄온 미제는 력사상 처음으로 침략전쟁에서 수치스러운 참패를 당하고 멸망의 내리막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제국주의자들이 침략전쟁을 도발한 그자리에 주저앉아 영웅적조선인민앞에 무릎을 꿇고 정전협정에 조인함으로써 3년간에 걸치는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은 우리 인민의 빛나는 승리로 끝났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세계전쟁력사에서 가장 간고하고 준엄하였던 시련을 위대한 정신력으로 이겨냈으며 세계를 경탄시킨 대중적영웅주의와 무비의 용감성,조국수호정신과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미제를 우두머리로 한 제국주의침략자들에게 심대한 패배를 주고 그들의 침략야망을 꺾어버렸다. 삼천리조국강토를 탐욕의 아가리로 집어삼키려는 미국의 침략적본성과 야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미국이 패자의 몰골로 정전협정문건에 조인한지도 수십년세월이 흘렀다. 그때로부터 반세기가 훨씬 넘는 기간 조미대결은 계속되여왔으며 여기에서 미국은 언제나 패자의 수치를 면치 못하였다. 6.25뒤에는 언제나 승리의 7.27이 있다는것은 지난 조미핵대결의 력사가 증명하여주고있다. 본사기자 라명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