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8월 29일 로동신문

 

태양찬가,조국찬가는 영원히 높이 울려퍼지리

총련 금강산가극단명명 40돐을 맞으며

 

풍치수려한 주체조국의 수도 평양에 아름다운 금강의 노래가 울려퍼지고있다.5대혁명가극의 하나로 세상에 유명한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가 평양대극장에서 막을 올리였다는 소식은 사람들을 마냥 흥분시키고있다.

높이 솟은 봉이들도 구슬같은 맑은 물도

김일성원수님의 은덕을 노래하네

아 노래하자 금강산아

노래하자 은혜로운 인민의 태양

 

특색있고 관록있는 해외교포예술단체로 명망높은 총련 금강산가극단의 예술인들이 출연하는 공연인것으로 하여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는 자못 크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재일동포들은 비록 조국과 멀리 떨어져있지만 두터운 정을 안고 사는 하나의 혈육입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한량없는 은정속에 40년전 어버이수령님을 모시였던 뜻깊은 극장무대에 다시 선 총련예술인들의 감회는 참으로 류다르다.애국위업의 나팔수로 온 겨레의 사랑을 받고있는 이역의 아들딸들은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와 더불어 주체적해외교포예술의 빛나는 력사가 아로새겨지던 못 잊을 나날들을 가슴뜨겁게 되새겨보고있다.

 

가장 훌륭한 선물

 

지금으로부터 40년전인 주체63(1974)년 4월초 어느날 한척의 대형화객선이 동해의 푸른 물결을 헤가르고있었다.어버이수령님의 탄생 62돐을 맞으며 재일동포들의 다함없는 감사와 축원의 마음을 소중히 안고 가는 재일조선인예술단 성원들을 태운 《만경봉》호였다.조국땅은 아직 저 멀리 아득한 수평선너머에 있었건만 흥분된 마음들은 벌써부터 키돋움을 하고있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있지만 바다가 변한다는 말은 없다.하지만 이 동해에서는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났는가.원한의 그 세월 류랑의 피눈물을 뿌리던 설음많고 수난많은 이 바다에 오늘은 끝없는 행복의 눈물을 쏟으며 그리운 조국으로 우리가 간다.이런 생각으로 모두의 가슴가슴은 바다처럼 설레이고있었다.

조국의 대안이 가까와지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기슭을 떠나 너울너울 마주 달려오는 꽃배들,부두를 꽉 메운 환영의 인파,땅과 바다가 온통 꽃물결이였다.동포예술인들을 반겨맞듯 하늘도 끝간데없이 맑고 푸르렀다.조국인민들은 친혈육의 정으로 이역의 아들딸들을 얼싸안았다.역시 조국은 어머니품이였다.

조국에서의 하루하루가 순간이런듯 흘러가고 마침내 총련의 예술인들이 꿈결에도 바라고바라던 영광의 시각이 왔다.

주체63(1974)년 4월 14일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재일조선인예술단은 공연의 첫막을 올리였다.공연장소는 준공을 선포한지 얼마 안되는 인민문화궁전이였다.조국의 예술인들도 한시바삐 오르기를 소원하는 이 웅장화려한 무대를 자기들에게 먼저 내여주신 수령님의 사랑에 이역의 예술인들은 감격의 눈물지었다.

찬이슬 내리는 길거리에서 노래를 팔던 무대없는 예술인,이것이 어제날 우리들의 비참한 신세가 아니였던가.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있는가.어느분앞에서 행복의 노래를 부르고있는가.

생각할수록 끓어오르는 격정으로 동포예술인들의 가슴가슴은 세차게 방망이질하고있었다.그들이 무대에 올린 모든 종목들에는 오늘의 이 영광,이 기쁨을 마련해주신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의 정이 한껏 흘러넘치고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공연종목이 바뀔 때마다 거듭거듭 치하의 말씀을 해주시였다.한 녀성독창가수가 먼바다로 굽이치는 물결우에 피여오르는 흰구름마냥 은은한 서정을 담아 가요 《끝없는 이 행복 노래부르네》를 불렀을 때였다.

《잘하오! 아주 훌륭하게 부릅니다!》

제일먼저 박수를 쳐주시며 재청해주신분은 우리 수령님이시였다.두번째 노래는 《조국의 사랑은 따사로워라》였다.사랑의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신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재일동포들의 다함없는 감사의 정을 담아 노래를 부르던 가수는 그만 북받쳐오르는 감격을 누르지 못하고 어깨를 들먹이기 시작하였다.물뿌린듯 고요해진 장내에는 노래대신 가수의 흐느낌소리와 떨리는듯 한 관현악울림뿐…

말없이 눈가로 손수건을 가져가시는 수령님을 우러르며 관람자들도 출연자들도 샘솟듯 하는 뜨거운 눈물로 두볼을 적시였다.

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재일조선인예술단의 공연은 조국에 대한 충실성으로 충만되여있고 예술적기교의 측면에서도 완전무결한 공연이라고 높이 치하하시였다.그이의 과분한 평가에 모두가 몸둘바를 몰라하였다.대견하게 그들모두를 둘러보시던 그이께서는 총련예술인들이 조국에 처음 왔는데 공연만 하지 말고 조국의 예술을 배워가는것이 어떤가고 다정히 물어주시였다.저저마다 눈굽을 훔치며 눈부시게 발전하는 조국의 주체예술을 배워가고싶은 자기들의 소원을 아뢰였다.그러자 수령님께서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시며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를 배워가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순간 모두가 깜짝 놀랐다.어느모로 보나 미흡한 우리가 세계가극예술의 최고경지에 이른 《피바다》식혁명가극을 어떻게…

사실 한해전에 만수대예술단의 공연이 온 일본땅을 지진이 일어난것처럼 뒤흔들어놓는것을 보면서 그들의 부러움은 컸었다.하지만 너무도 높은 예술적수준과 기량을 요구하는것이여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였었다.지난 시기 음악무용소품들에만 출연하였던 그들이 대사와 노래,무용이 동반되고 인물들의 내면심리세계를 깊이있게 펼쳐보여야 하는 가극을 형상한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던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단순한 보살핌이 아니다.재능을 키워주고 인생을 바로잡아주는 위인의 사랑은 가장 숭고하고 웅심깊은 사랑이다.총련예술인들의 무한한 충실성과 열렬한 애국심,예술적잠재력을 굳게 믿으신 우리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재능을 더 활짝 꽃피워주고 내세워주고싶으시였던것이다.

그이께서는 혁명가극이라고 하여 신비하게 생각할것이 없다고,마음먹고 해보느라면 담도 커지고 기량도 높아진다고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시며 가극전습에 필요한 대책도 세워주시였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총련의 예술인들이 조국에 도착하기 전인 3월 어느날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먼저 재일조선인예술단의 조국방문일정에 대하여 세심하게 료해하시였다.그러시고는 그들에게 무엇인가 더 해줄것이 없겠는지 생각해보아야 하겠다고 신중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그날 저녁 평양대극장에서 공연하는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를 보아주시던 수령님께서는 혼자말씀처럼 이 가극을 재일동포들에게 보여주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하시였다.

그이의 깊은 뜻을 알수 없었던 한 일군이 모든 재일동포들을 조국에 데려다 보여주지 못하는것이 안타깝다고 말씀올리였다.

그로부터 며칠후였다.수령님께서는 이번에 총련예술단동무들과 재일동포들에게 큰 선물을 마련해주어야 하겠다고 하시며 아무리 생각해보아야 그들에게 줄 가장 훌륭한 선물은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이라고,이국땅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는 동포들에게 《금강산의 노래》를 안겨주자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이런 가슴뜨거운 사연을 알게 된 총련예술인들은 뜨거운것을 삼키며 수령님의 크나큰 신임과 기대에 충정으로 보답할 불같은 맹세를 다지였다.가극전습은 빠른 속도로 진척되여 시작한지 불과 한달만에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를 무대에 올릴수 있게 되였다.

주체63(1974)년 6월 27일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시는 길로 평양대극장에 나오시였다.총련의 예술인들이 높은 사상예술적경지에서 감명깊게 형상한 가극공연을 보시고 못내 만족하신 수령님께서는 140여명이나 되는 전체 성원들에게 일일이 축배잔을 찧어주시며 따뜻한 사랑을 부어주시였다.

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본으로 돌아가면 금강산가극단을 꾸리고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를 공연하여 총련과 《민단》동포들,일본에 오는 남조선동포들과 일본인민들에게 보여줄데 대하여 당부하시였다.

단란한 가정적분위기속에 시간은 퍼그나 흘러 수령님께서 떠나실 때가 되였다.울먹이던 동포예술인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그이의 승용차를 겹겹이 에워쌌다.여기저기에서 흐느낌소리가 터져나왔다.

《수령님… 건강하십시오!》

《…부디… 부디… 건강하십시오!》

《고맙소.… 고맙소.… 동무들도 건강하시오.건강하시오.》

수령님의 음성도 무척 갈려있었다.

목메여 흐느끼는 총련예술인들을 어루만져주시던 수령님께서는 달래시듯 말씀하시였다.

《그럼 이렇게 하자구.아까는 2년에 한번씩 오기로 했는데… 그럼 매해 오기로 하자구!…해마다 와서 만나기로! 응?!… 그렇게 하자구!… 자,이젠 그쳐!… 그치라는데…》

혈육의 정을 초월하는 가슴뜨거운 광경이 펼쳐지는 속에 수도의 밤은 소리없이 깊어갔다.

그날의 격정과 행복을 한 동포시인은 격조높은 시구절에 담았다.

목숨은 버리여도 저버리지 못할

어버이수령님의 크나큰 사랑

길이길이 전하렵니다

해와 달이 다하도록 충정하는 길에서

너무나도 꿈만 같은

이날의 이 감격 이 사랑을

대대손손 길이길이 노래하렵니다

 

재일동포들은 절세위인의 품속에서 금강의 선남선녀가 되여 돌아온 자기의 아들딸들을 뜨겁게 맞이하였다.동포사회의 열렬한 축복속에 그해 8월 29일 재일조선중앙예술단을 금강산가극단으로 명명하는 모임이 성대히 진행되였다.며칠후에는 공화국창건 26돐을 경축하여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공연의 막을 올렸다.가극은 심오한 사상예술성과 빈틈없이 째여진 무대조화로 하여 관람자들을 커다란 감격과 흥분에 휩싸이게 하였다.불과 3일동안에만도 총련과 《민단》산하 동포들은 물론 남조선동포들과 일본인민들,일본에 체류하고있던 외국인들 등 1만 1,000여명이 공연을 관람하였다.온 일본땅이 《금강산의 노래》열풍으로 끓어번지였다.가극은 이국땅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던 재일동포들의 가슴마다에 공화국의 해외공민된 더없는 영예와 자부심,민족의 넋과 애국의 마음을 깊이 심어주었으며 민족의 분렬을 끝장내고 조국통일을 이룩할 투쟁의지를 더욱 북돋아주었다.

금강산가극단의 결성! 이것은 주체적해외교포예술의 자랑찬 새시대를 알리는 장엄한 서곡이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총련의 예술인들이 조국에 올 때마다 그들의 공연을 보아주시고 뜨거운 어버이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어버이수령님의 따뜻한 손길아래 총련의 예술인들은 천하절승 금강산의 1만 2,000봉우리에 활짝 피여난 목란꽃처럼 주체적해외교포예술의 아름다운 화원에 뿌리내려 애국충정의 짙은 향기를 풍기게 되였다.

 

위대한 스승의 손길아래

 

해마다 광명성절과 태양절 등 뜻깊은 계기들마다에 총련의 예술인들이 어김없이 찾아온다.절세의 위인들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과 열렬한 조국애,민족의 향취가 뜨겁게 흘러넘치는 그들의 공연은 조국인민들의 절찬을 받군 한다.극장이 떠나갈듯 한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을 때마다 그들은 총련의 예술을 세계해외교포예술의 본보기로 빛내이시기 위하여 기울이신 위대한 장군님의 로고와 뜨거운 사랑의 이야기들에 대한 생각으로 눈굽을 적시군 한다.총련예술인들이 잊지 못해 추억하는 재간둥이일화도 그중의 하나이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인 주체81(1992)년 4월 어느날이였다.조국을 방문한 재일조선인예술단 성원들을 몸가까이 불러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예술단의 특기있는 배우들과 종목들을 일일이 찍어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총련에 인재들이 많습니다.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특히 노래를 잘 부릅니다.… 조국에 있는 예술인들보다 노래를 더 잘 부릅니다.》

만족하신 표정으로 한 남자성악배우에게로 시선을 돌리신 장군님께서는 그가 부른 노래들을 하나하나 꼽으시며 조국에는 동무와 같이 민요를 잘 부르는 가수가 없다는 과분한 평가까지 주시였다.그러시고는 곁에 있던 한덕수의장에게 오늘 공연을 보니 의장동지가 재간둥이들은 조국에 보내지 않고 다 그러안고있는것 같다고,그러니 총련에 재간둥이들이 많은것 같다는 유쾌한 롱담을 하시였다.그러시면서 한의장동지가 《욕심》이 많다고,숱한 사람들이 귀국하였는데 이렇게 재간있는 사람들은 보내지 않았다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한덕수의장도 웃고 총련예술단 성원들도 모두 즐겁게 따라웃었다.하지만 그들의 가슴속에서는 뜨거운것이 치밀어오르고있었다.위대한 장군님의 친어버이손길을 떠나 총련의 재간둥이들을 결코 생각할수 없다는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우리 장군님의 한없이 넓고 따사로운 품에 안겨 활짝 피지 않는 꽃이 없고 그 품속에 꽃펴난 인생은 시들고 지는 법이 없다.

총련예술인들에게 있어서 어버이수령님은 주체적해외교포예술인의 참다운 영예를 안겨주신 고마운 은인이시라면 위대한 장군님은 그들에게 주체의 예술관과 창조의 묘술을 하나하나 깨우쳐주신 위대한 스승이시였다.

사실 그때 우리 장군님께서 그토록 높이 평가해주신 재일조선인예술단의 음악무용구성시 《수령님의 환하신 웃음속에 우리 행복 꽃핍니다》로 말하면 총련예술인들이 위대한 스승앞에서 자기들의 창조적능력과 기량을 검열받는 심의공연이나 같았다.

몇달전 그들이 준비한 공연을 록화물로 보아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형식주의틀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총련의 특색이 살아나지 않는다고,자기의 얼굴이 없는 예술을 들고나오면 보는 사람들이 따분하고 공연하는 사람들도 성수가 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총련은 예술에서 조국의것을 기계적으로 모방하지 말아야 한다고 따뜻이 일깨워주시였다.그리고 자기의것만 좋다고 내세워서는 안된다고 하시며 그들의 머리도 환히 틔워주시였다.

총련예술인들에게는 자기들이 나아갈 길이 안개걷힌 지평선마냥 뚜렷이 안겨왔다.그날 장군님께서는 인자하신 미소를 지으시며 다음번에 올 때에는 자신의 심의를 받을 준비를 해가지고 와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1970년대에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를 받아안았을 때와 같은 드높은 신심과 열정이 가극단안에 차고넘치였다.총련의 창작가,예술인들은 한달 남짓한 짧은 기간에 총련의 개성이 살아숨쉬는 새로운 형식의 예술공연을 준비하였다.이런 사연이 깃든 공연이였다.

극장에 나오시여 공연의 전 과정을 주의깊게 보아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형식도 총련의 특성에 맞고 내용도 좋다고,1%의 결함도 없는 만점짜리 공연이라고 하시며 매우 만족해하시였다.

총련예술인들의 가슴속에는 뜨거운것이 가득 고여올랐다.

어머니의 사랑은 늙는 법이 없고 대견한 자식의 성장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눈빛은 한없이 부드럽다.정녕 그이의 높은 평가에는 바람세찬 이국땅에서 수령의 노래,조국의 노래를 목청껏 부르는 총련예술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힘과 용기를 주시려는 자애로운 어버이,위대한 스승의 사려깊은 웅심이 어려있었다.

가요 《우리는 하나》가 아직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어느날 조국을 방문한 총련의 예술인들을 만나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문득 조국에서 이번에 《우리는 하나》라는 좋은 노래를 만들었다고 알려주시였다.제목만 들어봐도 북과 남,해외의 온 겨레를 조국통일위업실현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는 통일진군가가 분명하였다.노래를 한시바삐 들어보고싶어하는 그들의 열망을 헤아리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노래형상이 완성되면 총련에 제일먼저 보내주겠다고 정겹게 말씀하시였다.정말 마디마디 총련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페부로 느껴지는 말씀이였다.

주체91(2002)년 2월말 어느날 재일조선인예술단의 음악무용종합공연 《애국의 꽃》을 보아주실 때였다.이때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공연전반내용이 좋고 형식도 생동하다고,매 작품들의 사상성이 강하고 다 특성이 있다고,민족적색채가 선명하고 동화되지 않는 재일동포들의 민족적기상을 잘 보여주었다고 거듭거듭 치하하시였다.그러시면서 그동안 총련에서 재일동포들의 생활감정과 취미에 맞는 주체적이고 애국적인 예술내용과 형식을 탐구하기 위하여 애써 노력한것이 확연하게 알린다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정녕 그이의 믿음과 기대는 끝이 없었다.절세위인의 이토록 크나큰 사랑과 은정을 심장깊이 간직하고 금강산가극단의 창작가,예술인들은 동포들의 가슴속에 애국의 불씨를 심어주고 동포사회의 민족성을 고수하며 동포들의 민족자주정신과 문화적소양을 키워주는 보람찬 공연활동을 줄기차게 벌려왔다.참기 어려운 시련의 나날에도 그들은 애국의 공연길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공연은 어디서나 열렬한 절찬을 받았다.

《주체예술의 거대한 생활력,아름답고 고상한 우리 민족예술의 향취를 한껏 느낄수 있었습니다.》,《우리 가극단이 최고입니다.》…

동포들의 심정을 대변하여 한 총련일군은 출판물에 이런 글을 투고하였다.

《기쁨,미래,웃음,단결,굳센 의지,그 소중한것들을 동무들의 훌륭한 노래춤을 통하여 다시금 깊이 새겨안게 되였습니다.우리 장군님과 사랑하는 어머니조국을 굳게 믿고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면서 애국의 공연길을 이어온 금강산가극단동무들,정말 고맙습니다.앞으로도 그 길을 변함없이 계속 이어가주십시오.우리는 언제나 동무들을 기다릴것입니다.》

금강산가극단의 공연은 남녘땅에서도 폭풍같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민족예술은 북과 함께 총련이 지키고 발전시켜왔다는것을 절감하였다.》,《멋있고 힘을 준 황홀한 공연,일등급의 예술단 총련의 금강산가극단을 사랑한다.》…

총련의 예술은 이처럼 이역의 창공높이 자기의 나래를 활짝 펼치였다.금강산가극단의 무대가 펼쳐지는 곳마다에서 애국투쟁의 발걸음이 더욱 세차졌고 동포사회의 단결이 강화되였다.

지난 수십년간 공연회수 7,000여회,천수백만명의 각계층 동포들과 일본인민들이 공연을 관람…

참으로 자랑찬 성과이다.

그 보람찬 나날에 총련 금강산가극단은 영예의 김일성훈장을 수여받았으며 수많은 예술인들이 김일성상계관인으로,인민예술가,인민배우,공훈예술가,공훈배우,2.16예술상수상자들로 자라났다.

참으로 이 세상에는 나라도 많고 예술인들도 많지만 절세위인들의 따사로운 손길아래 자라난 총련 금강산가극단 예술인들과 같이 행복하고 긍지높은 해외동포예술인들은 그 어디에도 없다.

 

* *

 

추억의 돛을 달고서 헤쳐온 보람찬 애국의 항로를 거슬러올라가보기도 하고 나아갈 희망찬 앞길을 신심높이 바라보며 총련의 예술인들은 오늘도 심장의 노래를 부른다.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따라 머나먼 길 걸어오면서 간직해온 일편단심,절세위인들의 뜻을 그대로 이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과 맺은 정을 피줄처럼 지니고 총련의 예술인들은 이역의 하늘가에 불멸의 태양찬가,조국찬가를 영원히 높이 울려갈것이다.

본사기자 허영민
본사기자 김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