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9월 8일 로동신문

 

태양조국의 력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해외의 애국충신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의장이였던 서만술동지가
받아안은 믿음과 은정에 대한 이야기

 

《조국찬가》의 숭엄한 선률이 울려퍼지는 이 땅,가없이 맑고 푸른 9월의 하늘가에 람홍색공화국기가 펄펄 휘날린다.백두산절세위인들의 령도따라 공화국의 승리와 영광넘친 로정을 빛내여온 애국충신들의 모습이 자랑스러운 기폭의 세찬 퍼덕임속에 어리여온다.그 못 잊을 군상들가운데는 투철한 애국의 신념을 지니고 주체적해외교포운동의 강화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한 전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의장 서만술동지도 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애국자란 칭호는 조국과 인민이 자기의 훌륭한 아들딸들에게 주는 값높은 칭호입니다.》

서만술동지는 절세위인들의 뜻을 받들어 거치른 이역땅에서 간고하고 시련에 찬 애국의 초행길을 묵묵히,꿋꿋이 헤쳐온 해외의 애국충신이였다.

백두산절세위인들로부터 참다운 혁명가,열렬한 애국자,로련한 해외교포활동가라는 값높은 평가를 받아안고 영생의 삶을 누리는 서만술동지,그의 남다른 인생길에 수놓아진 사랑과 은정의 서사시를 우리는 뜻깊은 9월과 더불어 감회깊이 되새겨보게 된다.

 

해빛과 씨앗

 

이야기는 공화국창건의 환희로 삼천리강토가 설레이던 66년전의 그 나날에로 거슬러올라간다.

주체37(1948)년 12월 어느날 한척의 자그마한 배가 이역의 한적한 포구를 조용히 떠나고있었다.공화국창건 재일조선인경축단 성원들을 태운 쪽배였다.

거치른 이역땅에서 고생하는 동포들과 건국의 기쁨을 나누시기 위해 우리 수령님께서는 재일동포대표들을 평양으로 초청하시였다.

반동들의 악랄한 방해책동으로 하여 조국에로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하지만 어버이품으로 달리는 자식들의 발걸음을 그 무엇으로 가로막을수 있으랴.조국에로의 항로가 개척된 속에 한덕수동지를 포함하여 10여명의 대표들이 출발하였다.이 범상치 않은 일행속에는 애젊은 나이의 서만술동지도 있었다.

한겨울의 바다는 가랑잎같은 쪽배를 뒤집어놓을듯 사납게 갈개였지만 청년 서만술의 가슴은 이름 못할 환희로 둥둥 떠오르기만 하였다.그 존함만 들어도 강도 일제가 벌벌 떨고 온 겨레가 재생의 희망으로 잠 못 들던 민족의 전설적영웅,백두산 김대장님을 찾아가는 길이 아닌가.

기승을 부리던 파도가 잔잔해지고 어느덧 려명이 깃들기 시작한 바다를 바라보느라니 베잠뱅이괴춤을 움켜쥔채 해돋이를 구경하겠다고 정신없이 달음박질치던 소년시절이 떠올랐다.

그의 고향은 경상북도 영일군(당시)이였다.영일이라는 지명은 해맞이라는 뜻이다.어렸을 때 그의 유일한 즐거움은 새벽에 영일만으로 달려가 수평선우로 솟아오르는 불덩어리같은 태양을 가슴벅차게 안아보는것이였다.그럴 때면 가난에 찌들고 설음으로 멍이 든 파리한 얼굴에도 한가닥 꿈이 봄무지개마냥 비끼군 하였다.하지만 자연의 태양은 망국소년의 애달픈 소원앞에 너무도 무정하였다.어떻게 하나 공부해보겠다고 바다건너 이역땅으로 간 농사군의 아들에게 차례진것이란 모진 민족적천대와 멸시뿐이였다.

그렇듯 불우한 운명을 한탄하던 그가 오늘은 민족의 태양이 찬연한 빛을 뿌리는 그리운 조국으로 가고있는것이다.

주체37(1948)년 12월 23일,이날은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되는 영광의 날이였다.어버이수령님께서 사선을 넘어 조국으로 찾아온 재일조선인경축단 성원들을 몸가까이 불러주신것이다.

거치른 일본땅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가고,사나운 겨울날씨에 작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오느라 고생이 많았겠다고 하시며 한사람한사람 따뜻이 손잡아주시는 김일성장군님,예지로우시면서도 겸손하시고 비범하시면서도 소탈하신 그이의 존안에서 서만술동지는 순간도 눈길을 뗄수 없었다.수령님의 시선도 일행중 남달리 애젊은 서만술동지에게서 자주 멈춰서군 하였다.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재일동포들이 공화국의 두리에 굳게 뭉쳐 조국의 통일독립과 민주주의적민족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투쟁에서 더 큰 성과를 달성하기 바란다는 크나큰 믿음을 표시하시였다.온몸이 눈과 귀가 되여 그이의 천금같은 가르치심을 새겨안는 서만술동지의 가슴속에서는 세찬 격랑이 일어번지였다.

아! 듣던바 그대로 위대하고 은혜로운분이시구나.

돌이켜보면 동서고금에 그 어느 나라의 령도자가 해외동포들을 위해 이처럼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준적 있었던가.예로부터 해외동포들은 민족이라는 대하에서 튀여나온 물방울에 비유되였고 그들의 력사는 례외없이 수난의 력사로 불리워왔다.더우기 재일동포들로 말하면 낯설고 물설은 이역땅에 끌려가 일제의 포악한 칼날밑에 등살을 벗기웠던 력사상 가장 비참한 수난자들이였다.그들이 이제는 민족의 위대한 태양을 모시여 가슴을 쭉 펴고 운명전환의 활무대를 펼치게 되였다.

참다운 애국의 진리를 가르쳐주시는 위대한 스승,보람찬 삶의 길을 열어주시는 민족의 자애로운 어버이를 끝없는 매혹과 격정속에 우러르며 그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나는 오늘 진짜태양을 뵈왔다! 운명의 태양을 뵈왔다!

태양의 눈부신 빛과 열이 흘러드는 애국의 화원에 서만술동지는 인생의 씨앗을 묻었다.못 잊을 그날 수령님께서 주신 고귀한 가르치심은 서만술동지에게 있어서 한생 흔들림없을 삶의 좌표로 되였다.

서만술동지는 생전에 해맞이에 대해 자주 말하군 하였다.민족이 낳은 절세의 위인들을 만나뵈옵던 잊지 못할 순간들을 그는 인생의 해맞이에 비유하군 하였다.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필연이라고 해야 할지 영광의 그 순간들은 공화국창건의 력사적인 나날을 돌이켜보게 하는 9월에 특별히 많았다.주체63(1974)년의 9월도 그중의 하나였다.

공화국창건 26돐 재일조선인축하단 단장으로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게 된 서만술동지의 가슴은 세차게 높뛰였다.당시 그는 총련중앙상임위원회 국장으로 사업하고있었다.

《…얼굴이 좀 축간것 같구만.먼길에 오느라고 수고가 많았겠소.》

무척 반가와하시는 수령님의 눈빛에는 름름하게 성장한 자식을 두고 대견해하는 어버이의 심정이 력력하였다.북받치는 격정으로 서만술동지는 그이의 품에 와락 안겨 어린애마냥 흐느끼였다.수령님께서는 오늘은 기쁜 날인데 왜 우는가고,울지 말고 사진이나 찍자고 하시면서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곁으로 이끄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이번에 동무를 만나게 되니 대단히 반갑다고,명절에 이렇게 만나니 얼마나 좋은가고 하시며 환하게 웃으시였다.그러시면서 총련이 지금 투쟁을 잘한다고,동무들이 사업을 잘한 결과이라고 하시며 그의 등을 다정히 두드려주시였다.어버이를 한자리에 모신 단란한 가정적분위기속에서 시간은 꿈같이 흘러갔다.

사실 그날 외국의 친선사절들과의 접견 등 바쁜 행사일정으로 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라도 쉬셔야만 하였다.하지만 그이께서는 총련동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것이 가장 유쾌한 휴식이라고 하시며 서만술동지일행을 위해 오랜 시간을 바치시였다.그 각별한 사랑에 서만술동지의 가슴은 축축히 젖어들었다.

다음날 공화국창건 26돐을 경축하는 국가연회장에서였다.서만술동지는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어버이수령님을 모신 주탁에 자기 자리가 있었던것이다.이것은 너무나도 특례적인 조치였다.그는 정말 몸둘바를 몰랐다.

이날 그는 재일조선인축하단 단장으로서 축하연설을 하였다.격정으로 높뛰는 가슴을 진정하며 마이크앞에 나선 서만술동지는 공화국의 창건자,령도자이시며 재일동포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위대한 수령님께 다함없는 감사의 인사를 삼가 올리였다.

안경을 벗으시고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닦으시며 서만술동지의 연설을 들어주시던 수령님께서는 그가 축배잔을 정히 받쳐들고 다가오자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그러시고는 정에 넘친 눈빛으로 그를 한동안 바라보시였다.

《…》

장내는 물뿌린듯 고요해졌다.이윽하여 수령님께서는 우렁우렁하신 음성으로 축배는 후에 하고 우선 동무의 손부터 잡아보자고 하시며 그를 자신의 넓은 품에 따뜻이 안아주시였다.순간 우뢰같은 박수소리가 장내를 진감하였다.참으로 눈물없이는 볼수 없는 감동적인 화폭이였다.

수령님께서는 곁에 있던 다른 나라의 국가수반에게 이 동무가 재일조선인축하단 단장이라고 소개까지 해주시였다.서만술동지의 가슴은 격정으로 터질듯 부풀어올랐다.

그 깊이를 헤아릴수 없는것이 어머니의 사랑이고 자식을 위해 바치는 어머니의 정은 모자라는 법이 없다.

그로부터 얼마후 조국을 방문한 재일조선고급학교 학생들의 예술공연을 보아주시려 극장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객석을 둘러보시다가 문득 총련축하단 단장이 왜 보이지 않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때 서만술동지는 공교롭게도 감기에 걸려 치료를 받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안색을 흐리시며 몹시 앓는가고 다시 물으시였다.열이 38℃까지 올랐댔다는 보고를 들으신 그이께서는 몹시 놀라와하시더니 이국땅에서 고생하는 동무인데 앓으면 되겠는가고 하시며 치료대책을 단단히 세워주어야 하겠다고 당부하시였다.

숙소로 찾아온 조국의 일군으로부터 그 소식을 전해들은 서만술동지는 수령님께 심려를 끼쳐드린것이 못내 죄송스러워 어쩔바를 몰라하였다.그런데 이때 전화종소리가 울리였다.송수화기를 드는 순간 그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수령님께서 걸어오신 전화였던것이다.

건강은 어떤가고,열이 높다고 하는데 일없는가고 물으시는 그이의 음성에는 다 자란 자식을 두고도 늘 마음놓지 못하는 친어버이의 다심한 정이 어려있었다.

서만술동지는 너무도 감격하여 《이젠 다 나았습니다.수령님!》 하고는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수령님께서는 래일 동무를 한번 더 만나주려고 하였는데 갑자기 다른 일로 만날수 없게 되여 이렇게 전화를 건다고 하시며 이국땅에서 건강을 잘 살피라고,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에 주의하라고 거듭거듭 당부하시였다.

통화는 끝났지만 서만술동지는 송수화기를 틀어쥔채 굳어진듯 서있었다.이토록 따사로운 보살핌속에 애국사업을 하는 우리 총련일군들처럼 복받은 행운아들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밤 수령님께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아뢰였다.

(해빛같이 따사로운 수령님의 그 사랑,그 은정을 길이 전하며 이역의 찬바람,눈속에서도 애국의 꽃송이들을 활짝 피워가겠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서만술동무는 한덕수의장이랑 쪽배를 타고 자신을 찾아왔던 일행가운데서 제일 젊은 재일조선인활동가였다고 두고두고 외우시며 아끼고 내세워주시였다.그리고 그가 이역의 사나운 풍파를 꿋꿋이 헤쳐나가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정녕 그 은혜로운 해빛은 애국의 씨앗을 움틔우고 꽃피워 열매맺게 해주는 사랑의 활력소였다.

 

거목과 뿌리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총련일군들에 대해 참으로 가슴뜨거운 사랑과 믿음의 말씀을 하시였다.

《… 나는 일본과 같이 돈이 모든것을 지배하는 황금만능의 사회에서 애국의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는 총련일군들의 고상한 정신세계를 높이 평가합니다.》

총련일군들에 대한 크나큰 믿음이 얼마나 후덥게 어려있는 말씀인가.

신념은 인생의 가치를 규정하는 기본핵이며 값높은 삶의 비결이다.때없이 들이닥치는 준엄한 시련의 폭풍우를 헤쳐나가야 하는 총련일군들에게 있어서 신념은 생명이다.총련이 형언할수 없는 시련의 광풍속에서도 좌절을 모르고 지나온 년대기들에 승리와 영광만을 수놓을수 있었던것은 서만술동지와 같은 미더운 충신들이 억척같은 뿌리가 되여 애국위업이라는 거목을 떠받들어왔기때문이다.

실력과 인격,일본새에서 로련하고 청렴결백한 일군,동포들속에 몸을 푹 잠근 신망있는 일군,심산속에 묻혀서도 짙은 향기를 풍기는 도라지꽃처럼 누가 알아주건말건 묵묵히 일하는 성실한 일군…

이것이 서만술동지에 대한 총련일군들과 동포들의 한결같은 평가였다.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총련애국위업의 대를 꿋꿋이 잇기 위해 자기 자식들부터 모두 총련일군,교육자로 내세운것만 보아도 그의 결곡한 성품을 잘 알수 있다.서만술동지를 이토록 신념의 애국투사로,로련하고 신망있는 해외교포활동가로 키워주시려 심혈을 기울이신분은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평소에 자기 자랑이라고는 도무지 할줄 모르던 서만술동지가 남다른 긍지속에 터놓은 이런 말이 있다.

《나는 총련일군들가운데서 두분의 백두산위인들을 제일먼저 만나뵈온 행운아이다.》

주체69(1980)년 10월 서만술동지는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 재일조선인축하단 단장의 중임을 지니고 조국땅을 밟게 되였다.대회가 개막되던 날 주석단으로 나오시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뵙는 순간 그는 마치 30여년전 어버이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뵙던 그날의 자리에 서있는듯 한 환각에 빠져들었다.겨우 마음을 진정한 서만술동지가 《안녕하십니까? 총련의 서만술입니다.》라고 정중히 인사올리자 장군님께서는 그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며 《알고있습니다.먼길을 오시느라고 수고하였습니다.》라고 정겹게 말씀하시였다.

예지와 열정으로 빛나는 안광,크나큰 도량과 인정미가 넘쳐나는 미소,활달한 기상이 맥박치는 몸가짐…

장군님의 위인적풍모에 대하여 말은 많이 들어왔지만 이렇게 직접 만나뵈오니 과시 비범한분이시구나,주체조국의 미래는 창창하구나 하는 탄성이 절로 터져나왔다.후날 그는 그 영광의 대회장에서 자기는 인생의 두번째 해맞이를 하였다고,영명하신 지도자동지를 뵙는 순간 1948년의 그 해맞이가 눈물겹게 생각났다고 감격에 넘쳐 말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의 사상을 높이 받들고 오로지 애국위업에 한생을 묵묵히 바쳐가는 서만술동지를 자신의 해외혁명동지들중의 한사람으로 굳게 믿으시고 걸음걸음 이끌어주시였다.

그가 총련의 부의장,제1부의장,의장으로 사업한 시기는 총련이 사상 류례없는 시련을 겪던 때였다.총련의 존재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겨온 반동들은 우리 공화국이 어려움을 겪고있는것을 절호의 기회로 삼아 총련을 말살하려고 온갖 비렬한 책동을 다하였다.그 엄혹한 시기에 서만술동지는 동포대중의 앞장에서 애국위업을 고수발전시키기 위한 투쟁을 이끌었다.

주체90(2001)년 5월 일본 도꾜에서는 총련 제19차 전체대회가 성대히 진행되였다.새 세기 첫해에 진행되는것으로 하여 특별한 의의를 가진 대회에서는 20세기에 총련이 이룩한 자랑스러운 업적과 빛나는 애국전통을 살려 21세기 재일조선인운동을 새롭게 앙양시켜나가기 위한 활동방침들이 제시되고 참가자들의 열렬한 지지찬동을 받았다.이 대회에서 새로 총련의장사업을 맡게 된 서만술동지는 신심에 넘친 총련일군들의 모습을 보면서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총련애국위업의 력사적전환을 마련하기 위해 위대한 장군님께서 바치신 끝없는 로고가 되새겨져서였다.

주체87(1998)년 4월 하순 어느날이였다.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서만술동지를 비롯한 총련의 책임일군들을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장군님께서는 불철주야의 강행군으로 쌓이는 자신의 피로는 생각지도 않으시고 총련일군들부터 걱정하시며 그들이 비행기가 아니라 안전하게 특별렬차를 타고 오게 하라고 간곡히 이르시였다.그리하여 불과 두명의 총련일군들을 위해 특별렬차가 편성되여 궤도우를 달리는 전설같은 광경이 펼쳐지게 되였다.

그토록 장군님을 그리워하던 서만술동지였지만 선군장정의 길에서 쌓인 피로가 력력한 그이의 모습을 뵈옵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옴을 금할수 없었다.

아! 이만큼 나이를 먹은 내가 장군님의 로고도 헤아리지 못하고 제 생각만 했댔구나.

그런데도 장군님께서는 먼데까지 오게 해서 안되였다고,너무도 일이 바빠 몸을 뺄수가 없어 그렇게 되였다고 하시며 오히려 량해를 구하시는것이였다.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서만술동지에게 주신 강령적인 가르치심은 재일조선인운동의 강화발전을 위한 참으로 귀중한 지침이였다.

한해후인 주체88(1999)년 4월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서만술동지를 만나주시고 변화된 새로운 환경에 맞게 총련애국위업을 강화발전시켜나가기 위한 강령적인 지침을 제시하여주시였다.자기들이 그토록 안타까이 방도를 모색하던 문제를 명쾌하게 풀어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을 우러르며 서만술동지는 근 반세기전 우리 수령님께서 재일조선인운동의 주체적로선전환방침을 내놓으셨을 때 받아안았던 감격이 밀물처럼 가슴속에 차오름을 금할수 없었다.대를 이어 천출위인들의 손길아래 애국사업을 하는 긍지와 행복감으로 온몸이 달아올랐다.줴기밥과 쪽잠으로 고난의 행군,강행군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속에서도 총련과 재일동포들을 위해 뜨거운 심혈을 기울이고계시는 우리 장군님,자신의 마음은 언제나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과 함께 있다고 하시는 그이의 말씀은 총련을 허물려고 어리석게 날뛰는 원쑤들에게는 뢰성벽력과도 같은 선언이였고 동포들에게는 필승의 신심을 백배로 해준 원동력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역의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군말 한마디없이 남모르게 많은 수고를 하는 서만술동지를 남달리 사랑하시며 온갖 사랑과 은정을 다 베풀어주시였다.서만술동지의 일흔번째 생일과 여든번째 생일에 깃든 가슴뜨거운 사연은 오늘도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심금을 세차게 울려주고있다.그의 생일은 4월 14일이였다.태양절을 하루 앞둔 날이라고 그는 애당초 자기 생일을 쇠지 않았었다.그의 이런 고결한 충정의 마음을 헤아려주신분은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주체86(1997)년 3월 어느날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총련의 서만술부의장(당시)이 얼마 안 있어 일흔번째 생일을 맞는다고 하시며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였다.이윽하여 장군님께서는 그는 총련의 원로의 한사람이고 지금까지 변함없이 총련사업을 잘해온 공적있는 사람이라고,그에게 영웅칭호도 수여하고 자신의 축하의 인사와 선물도 보내주며 생일축하연도 잘 차려주도록 하라고,그의 결곡한 성품을 보아서도 우리가 생일을 잘 쇠게 해주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두해전에도 서만술부의장은 21살때 한덕수의장과 함께 풍랑을 헤치고 위대한 수령님의 접견을 받으러 왔던 사람이라고,총련에서는 서만술과 같은 사람을 선배부의장으로 내세워주어야 한다고 정을 담아 말씀하시던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로력영웅의 금메달을 달고 위대한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사랑의 생일상과 은정어린 선물을 마주한 서만술동지는 평범한 인생을 진주보석처럼 빛내여주시는 그이의 한량없는 믿음과 은정에 오열을 터뜨렸다.

(위대한 장군님! 제가 무엇이라고,지금껏 무엇을 해놓은것이 있다고 이토록 과분한 은총을 베풀어주십니까!)

사실 당시 서만술동지로서는 한 인간이 누릴수 있는 영광을 다 받아안은것이나 같았다.어버이수령님의 탄생 70돐을 맞으며 김일성훈장수훈자의 영예를 지니였고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표창장도 받아안았다.조국통일상도 제일먼저 수여받았다.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의 건강이 걱정되시여 10여차례에 걸쳐 귀중한 보약도 보내주시였다.그러시고도 못다 주신 사랑이 있으신듯 이토록 크나큰 은정을 부어주시는것이였다.

10년후 서만술동지가 여든번째 생일을 맞던 주체96(2007)년 4월에도 가슴뜨거운 화폭이 펼쳐졌다.그때 위대한 장군님의 따뜻한 축복속에 마련된 서만술동지의 생일축하연회에 초대되였던 일본의 한 인사는 서만술동지에게 당신은 어떤 연고로 김정일총비서의 특별한 신임을 받고있는가고 호기심을 담아 물었다.그러자 서만술동지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애젊은 시절 태양이 그리워 쪽배에 몸을 실었던 자기를 총련의 원로로 내세워주시고 걸음걸음 이끌어주신 감동깊은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들려주었다.그 일본인사는 참으로 꿈같은 이야기라고 하면서 《의장선생의 인생에 비낀 아름다운 추억을 통해서도 김정일총비서의 위인적천품을 잘 알수 있다.》고 감동을 금치 못해하였다.

일편단심 백두산위인들만을 따르며 순간도 애국의 신들메를 풀지 않은 서만술동지는 위대한 대원수님들 그대로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모시여 인생의 찬란한 세번째 해맞이를 하게 되였다.

어버이장군님을 잃고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있던 피눈물의 그 나날 우리 장군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던 총련일군들을 못내 그리워하시며 총련의 서만술의장이랑 몇해째 조국에 오지 못하고있는데 자신의 인사를 전해달라고 뜨겁게 말씀하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김정일훈장이 제정되였을 때 첫 수훈자들의 명단에 서만술동지의 이름을 꼭 넣도록 세심히 헤아려주신분도 우리 원수님이시였다.

그 소식에 접하고 뜨거운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충정의 맹세를 다지던 전사는 며칠후인 주체101(2012)년 2월 19일 애석하게도 세상을 떠났다.그 비보를 받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위대한 대원수님들께 무한히 충직하였던 해외혁명동지를 잃었다고 못내 가슴아파하시면서 조의행사와 관련한 온갖 은정깊은 조치들을 취해주시였다.그리고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마음까지 담아 그를 영생의 언덕에 세워주시였다.

이렇듯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은혜로운 손길아래 서만술동지는 년대와 세기를 이어 해외교포운동의 저명한 활동가로 값높은 생의 자욱을 새겨올수 있었고 태양조국의 빛나는 력사와 더불어 오늘도 영생하고있는것이다.

 

* *

 

일편단심 위대한 대원수님들을 받들어 애국의 한길을 꿋꿋이 걸어온 서만술동지처럼 경애하는 원수님을 충직하게,진실하게,성실하게 받들어나갈 총련일군들의 의지는 확고하다.

우리는 이 글을 서만술동지가 생전에 류달리 사랑하였고 총련일군들이 신념의 주제가로 즐겨 부르는 노래의 한구절로 맺으려 한다.

좋아도 장군님의 조국 장군님의 총련에서

어려워도 장군님의 조국 장군님의 총련에서

내 언제나 살리라

본사기자 허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