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12월 22일 로동신문
이런 아름다운 사회주의제도에서 우리가 산다 대관군의 한 로동자처녀가 잃었던 얼굴을 다시 찾기까지의
자본주의사회에서는 흉내낼수도 만들수도 없고 영원히 가질수도 없는 귀중한것이 우리의 사회주의사회에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뜻밖의 사고로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고 고통을 겪던 로동자처녀를 8년세월 정성다해 치료하여 끝끝내 얼굴을 찾아준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대신하려고 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온 나라에 서로 돕고 이끄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미풍이 차넘치게 하여 우리 사회를 화목하고 단합된 일심단결의 대가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인간의 마음속상처가 얼굴에 비낀다면 사회의 어두운 그늘이 비끼는 얼굴은 아마도 그 사회의 관심밖에 밀려난 불행한 사람들의 운명일것이다. 산골군에 사는 평범한 로동자가정의 로동자처녀가 19살 꽃나이에 자기 얼굴을 형체도 없이 잃은것이야말로 불행중의 불행이 아닐수 없었다. 우리는 다시 찾은 얼굴에 밝은 미소를 지은 처녀 림송미를 보면서 생각하였다. 미용수술이 제일 값비싼 수술의 하나로 되여있는 자본주의사회라면 수백만금을 들여 아름다운 얼굴을 만들어낼수 있을지언정 인간의 심장속에서 우러나오는 저렇듯 티없이 맑고 밝은 미소를 살수 있을것인가. 처녀의 얼굴에 비낀 구김살없는 미소, 그가 흘리는 고마움의 눈물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진면모를 들여다볼수 있는 거울이 아니랴.
너도 나도 사회주의의 딸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8년전 수도의 밤거리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람이 살아가느라면 뜻밖에 부닥친 생활의 심각한 물음앞에서 선뜻 대답 못하고 고민하는 때가 있군 한다. 깊은 생각에 잠겨 퇴근길을 걷고있는 조선적십자종합병원 의사 림현단동무의 심정이 그러하였다. 며칠전에 과에는 얼굴에 심한 화상을 당한 처녀가 입원하였다. 눈까풀과 입술, 코가 다 타버리고 볼이며 턱 등이 숯덩어리처럼 되여버린 얼굴 아닌 얼굴이였다. 그래서 처녀는 두눈만 내놓고 온 얼굴을 가리우고 집안에서 숨어살다싶이 하고있었다. 스무해 가까이 미용수술을 해온 림현단동무였지만 대관군의 한 공장 로동자라는 19살 난 처녀 림송미처럼 이마를 제외한 온 얼굴이 험하게 이그러진 환자는 처음이였다. 림현단동무가 알고있는 이 분야의 현재의술로는 치료불가능, 원상회복불가능이라는 절망적인 답이 나왔다. 중앙병원의 유명한 의사선생님을 믿고 찾아온 처녀는 애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었다. 처녀의 그 눈빛이 이밤도 그냥 따라서는것만 같아 천근만근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앞으로 활기에 넘친 처녀들이 마주 왔다. 시름이란 아예 없는듯 깔깔거리며 웃고떠드는 처녀들의 모습은 수도의 밤거리를 밝히는 불장식에 환히 빛나고있었다. (저들곁에 대관처녀는 정녕 다시 설수 없단 말인가? 환자의 마지막희망인 의사마저 포기한다면 처녀는 삶을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그 책임은?…) 설사 사회는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 해도 의사의 량심은 한 불행한 처녀의 삶을 구원 못한 책임을 일생토록 그에게 따져물을것이였다. 치료를 시작한다면 한생을 바쳐야 할수도 있었다. 용단을 내리지 못한채로 림현단동무는 며칠째 이렇게 고민을 거듭하고있었다. 집에 들어서는 림현단동무를 어머니가 맞이하였다. 《그 처녀가 그렇게 심하냐?》 의사인 딸을 각별히 사랑하는 김명시로인은 딸의 얼굴빛만 보고서도 많은것을 짐작하군 하였다. 《자신이 없어요. 아마 일생을 바쳐도 못 고칠것 같아요.》 딸의 맥풀린 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조용히 말했다. 《너야 의사가 아니냐. 전쟁때 화선군의들은 다 죽은 사람도 살려냈는데…》 여느때에는 례사롭게 들리던 어머니의 그 말이 그 시각 림현단동무의 가슴속에는 간호원로병의 엄숙한 목소리로 무겁게 파고들었다. (의사! 나는 왜 의사가 되였던가?) 림현단동무의 부모는 전쟁로병영예군인들이였다. 화선의 용감한 군의들은 생명이 경각에 달했던 그의 아버지를 살려냈고 간호원이였던 어머니도 동지들을 위해 자기 한몸을 서슴없이 바쳤다. 전후에 어머니는 아버지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가정을 이루었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 오누이는 아버지없는 설음, 몸이 불편한 영예군인어머니와 함께 사는 괴로움을 모르고 자랐다. 오히려 전쟁로병영예군인가정의 아들딸이라고 학교에서도 마을에서도 그들을 각별히 위해주었고 나라에서는 대학공부까지 시켜주었다. 고마운 제도, 고마운 사람들을 위하여 무슨 직업을 선택할것인가 하고 생각한 끝에 림현단동무는 우리 제도가 가장 귀중히 여기는것을 위하여 복무하는 일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제도가 가장 귀중히 여기는것, 그것은 인간이였다. 인간의 생명을 지켜주는 의사직업이야말로 가장 성스럽고 보람찬 애국자의 직업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던것이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는 말이 있지 않니. 하물며 너야 대학공부를 하고 학위까지 받은 의사가 아니냐.》 가렬한 전화의 날 수많은 동지들을 죽음의 고비에서 필사적으로 구원한 옛 화선간호원의 억센 손이 그의 등을 쓰다듬었다. (어머니세대가 자기 생명까지 바쳐가며 전우들을 살려냈다면 나는 일생을 바쳐서라도 송미의 얼굴을 되찾아주리라.) 이런 결심을 안고 림현단동무는 스스로 송미의 운명을 책임졌다. 송미는 그에게 절절히 호소했었다. 《선생님, 우선 눈부터 감게 해주세요.》 당시 송미는 눈주위의 피부가 타서 눈알이 다 드러나고 눈물이 쉬임없이 흘러내렸다. 눈까풀의 보호가 없이 오래동안 지속되면 실명이 올수 있었다. 당장 치료할것은 눈만이 아니였다. 높은 열에 코마루가 완전히 녹아붙어 처녀는 숨쉬기 가빠했다. 입도 국수 한오리나 겨우 들어갈 정도로 졸아들어 밥도 먹을수가 없었다. 밥 한끼 먹는데도 몇시간 걸려야 했다. 눈, 코, 입! 어느 하나 소홀히 할것이 없었고 선후차를 가를수도 없었다. 림현단동무를 비롯한 의료일군들이 송미에 대한 치료의 첫단계로 삼은것은 이 세가지 고충을 시급히 해결하는것이였다. 그들은 피부이식수술의 방법으로 눈까풀을 만들었으며 코구멍을 어느 정도 넓히고 입도 다소 크게 벌릴수 있게 해주었다. 첫 수술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송미네 공장의 지배인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어디 보자, 송미야!》 송미의 얼굴을 본 지배인의 눈가에 실망의 빛이 어렸다. 《눈, 코, 입이 단번에 생겨나게 하는 방법은 없는가?》고 하는 지배인에게 입원실환자들은 의사들의 수고에 대하여, 이번 수술결과는 과가 생겨 처음인 기적같은 성과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해주었다. 송미의 육체적고통을 덜어준것만도 얼마나 큰일인가를 지배인은 잘 알고있었다. 그는 림현단동무에게 머리숙여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림현단동무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치료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산 사람의 얼굴을 대상으로 하는 미용수술은 복부수술처럼 한두차례의 수술로 끝나는것이 아니다. 더우기 송미와 같이 심한 화상환자인 경우 수술이 몇십번이 되겠는지 아니면 몇백번이 되겠는지 의사들자신도 가늠할수 없었다. 실지로 송미는 지금까지 8년동안에 무려 100여차에 걸치는 크고작은 수술을 받았다. 한두시간도 아니고 여러 시간, 한두번도 아니고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는 긴장한 수술들은 림현단동무에게 힘겨운 정신육체적부담을 지워주었다. 끼니까지 건늬며 저녁늦게까지 온종일 수술을 한 날이면 걸음을 옮길 힘마저 없어 퇴근할 생각도 잊고 그냥 쓰러져 잠들었다. 그런 때면 입원환자들도 발끝걸음으로 복도를 지나가군 했다. 그러나 긴장한 수술전투보다 림현단동무를 더 괴롭히는 고충은 미용수술의 첨단에로 나아가지 못하면 송미의 치료가 더이상 불가능하다는것이였다. 피와 살을 바쳐서 될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정성과 헌신만으로는 해결할수 없는, 세계적으로도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미용외과학의 최첨단의 령역을 돌파해야 하는 심각한 현실이 림현단동무의 앞길을 가로막고있었다. 이 극한점에서 림현단동무가 얼마나 힘겨운 선택의 결심을 내렸겠는가 하는데 대하여 다 이야기할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의학과학자도 아닌 평범한 의사가, 하루에도 수십명의 환자들을 대상하고 수술도 진행하면서 가정도 돌보아야 하는 40대의 녀성이 혼자서 미지의 최첨단세계를 개척할 선구자가 될 각오를 품은것이 그 어떤 명예나 학위학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송미와 같은 평범한 인간들의 운명을 책임져야 할 보건일군의 의무감으로부터 그리고 우리 의학이라고 왜 세계의 령마루에 올라서지 못하겠는가 하는 새 세대 지식인의 자존심으로부터 출발한 용단임을 강조하고싶다. 오늘의 시대는 보건일군들에게 인민을 위하여 자신을 바치는 지극한 정성과 함께 자기 분야에서 세계패권을 쥘수 있는 뛰여난 실력을 요구하고있다. 림현단동무가 스스로 선택하고 8년세월을 헤쳐온 그 길은 당과 국가의 은혜로 의학공부를 하고 인간생명의 기사가 된 우리의 보건일군들에게 참으로 귀중한 생활의 진리를 이야기해주고있다. 림현단동무는 자기의 고심어린 탐구와 확증으로 후날 다른 보건일군들이 지름길로 삼을수 있는 리정표를 하나하나 세우며 간고하게 전진해나갔다. 연구소나 실험실에서 1년, 2년세월을 보낼 일이 아니였다. 《내가 빨리 성공하지 못하면 송미의 처녀시절이 병원침대에서 다 흘러갈수 있어요.》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딸을 만나러 온 어머니에게 림현단동무는 이렇게 말하군 하였다. 우리 나라 미용외과학에서 하나의 큰 전진이라고 할수 있는 새로운 수술방법을 도입해가던 나날 림현단동무는 거기에 필요한 수학적계산에 대한 도움을 받기 위해 김일성종합대학 수학부의 한 녀성박사와 마주앉은적이 있다. 그 녀성박사는 처음에 림현단동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들을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대관군의 로동자처녀의 화상으로부터 시작된 그의 진지하고도 정열적인 이야기를 듣고 몹시 감동된 녀성박사는 제일처럼 도와나섰다. 그가 알려준 공식에 의거한 수학적계산방법으로 새로운 수술방법을 보다 과학화할수 있었다. 하지만 림현단동무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콤퓨터프로그람화하는 사업에 달라붙었다. 그 문제를 놓고 여러 콤퓨터전문가들과 토의를 하였지만 그들에게는 미용외과학이 너무 생소한 분야인것으로 하여 결실이 없었다. 그가 몹시 안타까와하고있을 때에 림현단동무에게서 치료를 받고 병을 고친 김책공업종합대학의 박사원생이 그를 찾아왔다. 그의 걱정거리를 알게 된 박사원생은 자기가 그 프로그람을 만들어보겠다고 나섰다. 《저야 선생님의 새 수술방법의 덕을 직접 입은 사람이 아닙니까.》 이렇게 완성된 프로그람은 송미를 비롯한 미용외과환자들의 치료를 적극 진척시켰다. 어느날 병원초급당위원회에서 림현단동무를 찾았다. 《동무가 하는 치료연구사업에 필요할것 같아 동무를 다른 나라들과의 의학교류사업에 참가시키기로 하였소.》 그때 림현단동무의 마음속에 고패친 감사의 정을 무슨 말로 다 할수 있으랴. 첨단으로 향한 걸음걸음에서 자신의 지식의 빈곤을 뼈저리게 느끼며 더 많은 지식을 배울것을 내심 갈망하던 그였다. 말없이 눈을 슴벅이는 그의 가슴속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울리고있었다. (아, 고마운 어머니당이여! 조국이여! 내 그대를 위해 무엇을 아끼랴!) 여러달에 걸친 다른 나라에서의 의학교류사업을 끝마치고 조국으로 돌아오는 그의 짐은 온통 미용외과학분야의 도서들로 꽉 차있었다. 림현단동무는 여러가지 기구와 약물을 창안하여 새로운 방법에 의한 수술기간을 종전보다 훨씬 줄이였으며 송미의 치료에서 제일 난문제로 되던 코수술도 성과적으로 진행함으로써 그의 얼굴을 구조적으로 완성하여주었다. 우리의 의학은 또 한걸음 크게 내짚었다. 우리 나라 미용외과학의 개척자의 한사람인 림현단동무의 스승이였던 교수 박사 정원걸선생은 송미의 수술결과를 직접 보고 이렇게 말했다. 《현단선생에게 우리 미용외과학의 새 세기를 부탁하오.》 8년세월 림현단동무는 낮에 밤을 이어 자신을 초불처럼 불태워왔다. 그는 언제 한번 자기 집 침대에 편히 누워 잔적이 없다. 그에게 있어서 병원은 곧 집이였고 환자들은 한가정의 식솔들이였다. 어느날 오후 림현단동무는 입원실복도를 지나다가 낯익은 사람이 송미의 입원실로 들어가는것을 보게 되였다. 뒤모습은 분명 남편이였다. 그를 따라 입원실로 들어선 림현단동무의 귀에 송미가 《삼촌!》하고 반겨맞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해와 뜻밖에 부딪친 정일남동무는 면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당신이 하도 송미, 송미 하기에 한번 만나보자고 왔소.》 그러나 송미와 정일남동무는 이미 혈육과도 같은 관계였다. 송미에게 식료품을 안겨주고 밖을 나서는 남편을 림현단동무는 눈물이 글썽해서 바래웠다. 만수대창작사 공예사인 정일남동무는 안해의 치료연구사업의 가장 열성적인 지지자이며 또한 평가자이기도 했다. 《아직 멀었소. 조각에서도 사람의 눈, 코, 입을 만들기가 제일 힘든데 산 얼굴을 만드는 일이야 더 심사숙고해야지.》라고 하는 남편의 평가가 림현단동무에게는 큰 힘으로 되군 했다. 수도에서 수백리 떨어진 산골에 집이 있는 송미는 1년 치고 반년이상은 병원생활을 해야 했다. 그때마다 림현단동무의 온 가족은 송미를 자기 식구처럼 여겼다. 림현단동무의 어머니 김명시로인은 송미를 손녀로 여겼고 림현단동무의 부부는 딸처럼 보살펴주었다. 입원생활을 마친 송미가 보양생활을 림현단동무의 집에서 하는것은 어느덧 례사로운 일로 되였다. 김명시로인은 새로 생긴 손녀에게 늘 말하군 했다. 《우리 오누이자식도 이 홀어머니보다 고마운 품속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단다.》 림현단동무의 동생인 김일성종합대학 교원 림현기동무네 부부도 송미를 조카로 삼았다. 지난해 가을 당의 은정으로 룡흥네거리에 높이 솟은 김일성종합대학교육자살림집에 입사한 림현기동무와 권명성녀성은 입원치료를 끝낸 송미를 데리러 왔다. 《이번엔 우리 집에 가있자꾸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마련해주신 행복의 집이란다.》 그 집에서 송미는 올해 설명절을 림현단동무의 일가친척들과 함께 쇠였다. 치료에만 신경쓰느라고 다 큰 처녀를 곱게 단장시킬 생각을 못했다고 미안해하며 품들여 마련한 새옷을 내놓는 림현단동무앞에서 송미는 흐느껴울었다. 《고맙습니다.》 8년세월 자기를 위해 심혈을 다 바친 현단과장을 어머니라고 부르고싶은 열망이 가슴속에 끓어번졌지만 처녀는 이 한마디 말밖에 더 할수 없었다. 그를 품에 꼭 안고 림현단동무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나도 너도 사회주의의 딸이란다. 당과 사회주의제도의 품에서 나도 자라고 너도 자라니 우린 모두 한가정, 한식솔이란다.) 대관군에 사는 림송미의 어머니는 자기 딸의 얼굴을 되찾아준 고마운 은인의 얼굴을 아직 한번도 본적이 없다. 대관땅의 처녀로동자를 8년세월 병원의 특별환자로 등록하고 치료연구사업을 병원적인 사업으로 떠밀어주고 림현단과장을 전국과학자, 기술자대회장으로 떠밀어준 심일철, 김영진동무들을 비롯한 조선적십자종합병원 일군들과 의료일군들, 헤아릴수없이 많은 그 은인들모두에게 어떻게 인사해야 할지 몰라 어머니는 저 멀리 깊은 산골마을에서 그저 눈물만 짓고있다. 위대한 천리마시대에 화상당한 한 소년을 위하여 함흥의 보건일군들이 발휘한 고결한 소행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우리의 사회주의대가정의 구호를 더욱 빛나게 해주었으며 인간중시, 인간사랑의 주체사상을 체질화한 사회주의보건일군들의 전형을 수백수천이나 태여나게 해주었다. 우리 당과 사회주의제도는 오늘날 또 한명의 참다운 보건일군을 훌륭히 키워 인간생명의 기사로 인민앞에 내세워주었다. 다시 찾은 얼굴에 눈물을 짓고 목메여 외우는 처녀의 감사의 인사, 그것은 림현단동무와 같은 선군시대 보건일군들이 자신의 모든것을 바쳐 억세게 떠받들고있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보건제도를 우러러 이 나라 인민이 삼가 드리는 한없는 고마움의 큰절이였다.
마음속을 비치는 해빛
취재과정에 우리는 이 감동깊은 이야기의 또 한사람의 주인공에 대하여 알게 되였다. 그는 림송미가 다니는 공장 초급당비서 리춘일동무였다. 하여 우리는 대관군으로 떠났다. … 8년전 9월 초하루날, 례사로운 그날 오후에 초급당비서 리춘일동무는 공장실험실에서 예상치 않은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병원으로 달려가는 리춘일동무의 뇌리에 심한 부상을 당했다는 처녀의 이름이 맴돌았다. 림송미!… 그가 잘 아는 실험공이였다. 출퇴근길이나 생산현장에서 볼 때마다 무엇이 그리 기쁜지 항상 방글거리던 예쁜 처녀, 입직한지 몇해 안되지만 어떤 실험분석이든 막힘없이 해내여 모두가 칭찬하는 사랑스러운 처녀였다. 의식을 잃은 처녀곁으로 다가간 리춘일동무는 그만 앗!-소리를 칠번 하였다. 처녀의 얼굴이 너무도 험상궂었던것이다. 그 얼굴이 며칠을 두고 눈앞에 얼른거려 그는 밥술을 뜨지도, 잠을 이루지도 못하였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한 로동자의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송미의 아버지 림덕남동무였다. 수십년간 공장에서 일해온 림덕남동무는 맏딸 송미가 중학교를 졸업하자 자기와 한공장에서 일하도록 하였다. 딸에게 로동자의 성실성과 깨끗한 량심을 가르쳐준 그는 뜻밖의 불행이 닥쳐온 그날 아침도 중요한 실험때문에 일찌기 공장으로 떠나는 송미를 대견한 마음으로 바래웠다고 한다. 성실하고 고지식한 로동자부녀! 과연 그들이 무엇을 믿고 이날이때껏 무슨 일이든, 어떤 초소든 군말없이 깨끗한 량심을 바치고 성실한 구슬땀을 쏟아왔는가. 힘과 열정,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깡그리 바친다 해도 그로 하여 자신들의 삶은 더 행복하고 희망에 넘치리라는것을, 한없이 위대한 품이 자기들의 운명을 끝까지 맡아주고 밝은 미래를 꽃피워주리라는것을 굳게 믿었기때문이 아니였던가. 그 믿음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바로 자기와 같은 당일군이라고 리춘일동무는 생각하였다. 송미가 도인민병원을 비롯한 여러 병원들에 다녀온 후에도 리춘일동무는 송미아버지와 마주앉아 앞으로의 치료대책을 토의하였다. 그때마다 덕남동무는 입을 꾹 다물고있었다. 여러 병원들에서 내린 치료가망이 거의 없다는 결론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던것이다. 그럴수록 자기 딸을 위해 무진 애를 쓰고있는 초급당비서를 비롯한 공장일군들을 대하기가 민망하였다. 어느날 저녁 그가 쥐죽은듯 고요한 울안에서 줄담배를 태우고있는데 리춘일동무가 대문안에 들어섰다. 《덕남동무, 송미를 중앙병원에 보냅시다. 평양에 있는 조선적십자종합병원에서 송미를 데리고 오라는 련락이 왔습니다.》 림덕남동무는 고개를 푹 떨구고 대답이 없었다. 담배불을 비벼끄는 그의 손이 부르르 떨리였다. 그는 목갈린 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망가진 기계를 살리기도 힘든데 사람의 얼굴이야 더 말해 뭘하겠습니까. 이젠 마음쓰지 마십시오.》 막막하기 그지없는 딸의 앞길에 한점의 불꽃이라도 일굴수 있다면 림덕남동무는 기꺼이 자기 한몸을 불태울것이였다. 그런 아버지로서 딸의 앞날을 스스로 포기한다는것은 얼마나 가슴터지는 일이였으랴. 그러나 오랜 로동계급의 량심은 딸이 공장의 무거운 짐이 되는것을 바라지 않았다. 땅이 꺼지게 내쉬는 그의 한숨소리를 들으며 리춘일동무는 굳어진듯 서있었다. 이윽하여 그는 림덕남동무의 손을 억세게 잡았다. 《믿읍시다. 우리 의사들을! 위험에 처한 한 생명을 위하여 비행기까지 띄우는 우리의 사회주의보건제도를!》 리춘일동무는 의사가 아니였으며 의술도 몰랐다. 다만 근로인민대중이 하늘처럼 존대받는 이 땅에서 참된 로동자가정의 성실한 로동자처녀인 림송미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야 하며 그가 기어이 불행을 가시고 자기 얼굴을 되찾게 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신념을 간직하였을뿐이였다. 그런 일을 위해서 공장종업원들앞에서 당조직을 대표하는 일군인 자신이 필요하였다. 설사 아버지는 딸을 포기한다고 해도 초급당비서인 그자신은 자기 종업원을 절대로 포기할수 없었다. 그는 송미네 집에서 나와 오불꼬불한 골짜기를 내리면서 내짚은 걸음마다에 힘을 돋구며 마음속으로 억척같이 웨쳤다. 《할수 있어! 할수 있구말구!》… 8년전의 그밤 한 당일군이 자신을 다잡으며 한 종업원처녀를 위해 걸은 험한 산길에 우리 엄숙히 서본다. 만약 자본가라면 공장로동자를 위한 그런 걸음, 그런 심정이 단 한순간인들 있을수 있으랴. 황금만능세상의 기업주라면 로동재해를 당한 로동자에게 몇푼의 돈을 던져주고 당장에 해고지시를 내렸을것은 너무도 뻔한 일이 아닌가. 조선적십자종합병원에서 치료를 시작한 송미가 림현단과장에게서 첫 수술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제일먼저 달려온 사람은 리춘일동무였다. 수술자리가 깨끗이 나아야 또 수술할수 있다고, 그 기간이 열달은 걸릴것이라는 림현단선생의 이야기를 송미에게서 들은 그는 말하였다. 《열달? 너무 길구나. 병원에선 현단선생이 담당의사이지만 여기에선 내가 네 의사다.》 그는 공장로동자료양소 료양권을 꺼내놓았다. 《수술경과를 좋게 하는덴 온천욕이상 없다더라. 래일 당장 가거라.》 초급당비서가 쥐여주는 료양권을 송미는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었다. 그 료양권에 또박또박 씌여진 자기 이름 세글자가 눈물에 가리워 잘 보이지 않았다. 목메인 딸대신 아버지가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당비서동지!》 송미는 이렇게 신온온천부근에 있는 료양소로 떠나갔다. 송미의 취사담당을 맡은 료리사에게는 공장 초급당비서가 직접 작성한 식사지표가 전달되고 부식물보장을 후방부문에서 따라세우도록 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초급당비서의 가정에서도 송미의 병치료가 첫째가는 관심사로 되여 리춘일동무의 안해는 자기가 심고 가꾼 터밭남새며 닭알 등 가지가지의 부식물을 료양소로 보내주었다. 그로부터 두달이 지나 송미가 다시 평양으로 올라왔을 때 림현단동무는 어리둥절하였다. 《왜 벌써 왔니?》 《우리 당비서동지가 수술자리를 만져보고나서 〈이젠 수술을 또 해도 되겠다.〉라고 했습니다.》 송미의 대답을 듣고 림현단동무는 수술부위를 살펴보았다. 정말 경과가 놀랄만큼 좋았다. 모든 사연을 안 림현단동무는 가슴이 젖어들었다. 그는 송미를 껴안았다. 《널 위해 마음쓰는 사람이 우리 의료일군들만이 아니였구나.》 이렇게 말하는 그의 눈앞에는 아직 만나본적 없는 대관땅의 한 당일군의 모습이 우렷이 떠오르고있었다. 송미의 행복한 래일을 지켜 그 당일군도 그의 곁에 함께 서있는것이였다. 지난 8년세월 리춘일동무는 대관땅에서 림송미의 의사가 되고 간호원이 되여주었으며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여주었다. 공장종업원명단에는 송미의 이름이 여전히 올라있고 송미는 온 공장의 각별한 관심과 사랑속에 살았다. 해마다 평양에 와있는 날이 더 많았던 송미는 보통 생일을 병원에서 의료일군들과 환자들의 축복속에 쇠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해 그의 생일날이였다. 림현단과장과 가족들, 미용외과 의사, 간호원들, 환자들이 모여 송미를 축하해주고있는데 리춘일초급당비서가 입원실로 들어섰다. 《송미야, 내가 늦었구나.》 이렇게 말하는 그의 이마는 땀으로 축축히 젖어있었다. 림현단동무가 송미의 생일이야 우리가 어련히 쇠주는데 왜 이렇게 힘든 걸음을 하였는가고 하자 그는 늘 선생님들에게만 맡겨둔것이 미안했다고, 송미의 이번 생일은 어떻게 하나 자기 손으로 쇠여주고싶어 왔다고 하는것이였다. 이날 송미곁에는 친혈육이라고는 한명도 없었지만 그는 온 세상을 다 안은듯이 기쁘고 즐거웠다. 생일은 누구에게나 기쁘고 즐겁다지만 얼굴에 심한 화상을 당한 후 처음으로 맞은 생일은 그에게 있어서 얼마나 가슴아팠던가. 부모의 성의가 담긴 푸짐한 음식상에 가족친척들이며 동무들이 빙 둘러앉았지만 송미는 웃방에서 모포를 뒤집어쓴채 나올념을 안했다. 《송미야, 널 위해 모두 왔는데 어서 나오렴.》 어머니가 몇번 불렀으나 송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슴을 찢는 흐느낌소리만이 울려나왔다. 그 정상에 누구도 그를 더는 찾지 않았다. 웃방에서는 그가 울고 아래방에서는 가족들과 동무들이 눈물을 흘렸다. 그때 송미에게 사무쳐온것은 이젠 모두 자기의 생일을 잊어버렸으면 하는 기막힌 생각이였다. 그러던 송미가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된 생일을 다시 찾은것이였다. 잊을수 없는 하루가 저물어가던 깊은 밤에 송미는 가슴저리던 그 생일날에 모여왔던 동무들을 그려보며 속삭였다. 《오늘이 바로 나의 생일이야. 가장 기쁘고 행복한 생일! 난 이젠 더는 불행하지 않아. 내 생일은 더이상 서러운 날이 아니야. 평양의 수많은 사람들이 내 생일을 알고 축하해주었고 당비서동진 내 생일을 쇠주려고 수백리 먼길을 달려왔어. 세상에 나처럼 행복한 처녀가 또 있을가!》 침대에 놓인 수많은 기념품들을 어루쓸던 그의 손이 눈부신 화장품곽에 가닿았다. 리춘일초급당비서가 마련한 생일기념품이였다. 송미는 믿고있었다. 머지않아 그 화장품으로 자기 얼굴을 아름답게 단장하게 되리라는것을. 그는 노래를 부르고싶었다. 오늘 생일축하연에서 불렀던 노래, 초급당비서며 림현단과장, 의사, 간호원들과 목청을 합쳐 함께 불렀던 《세상에 부럼없어라》노래를. 그 아름다운 밤에 송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처녀로 다시 태여나고있었다. 공장 초급당비서 리춘일동무와 종업원처녀 림송미사이에 맺어진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초월하는 뜨거운 정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는 한두마디만 더 하려고 한다. 한 대학에서 도서실장으로 사업하는 안해 김순희녀성이 도서구입으로 평양출장을 떠날 때면 리춘일동무는 어김없이 잔소리를 하군 하였다. 《송미한테 꼭 들려보오.》 《다 알아요. 송미야 이젠 우리 집식구가 다되지 않았나요.》 《아무렴, 당일군의 안해야 응당 그래야지.》 이런 당비서를 누군들 따르지 않으며 스스럼없이 달려가 안기지 않을수 있으랴. 해빛이 넘치는 아침 공장에로의 출근길에 오른 리춘일초급당비서의 주위에는 항상 많은 로동자들이 모여들군 한다. 무슨 의견을 제기하기도 하고 가정잡사를 터놓기도 하고 인정깊고 유모아적인 그의 말에 그저 좋아 귀기울이는 모양은 향기로운 꽃에 벌들이 날아든 모습같기도 하고 자애로운 어머니주위에 자식들이 오롱조롱 매여달린 광경같기도 하다. 리춘일동무는 철산봉의 광부가정에서 성장하였다. 그 과정에 그는 우리 나라야말로 로동계급의 세상이라는 진리를 온몸으로 체득하였다. 《우리 나라에서야 로동자가 행복에서도 영광에서도 첫자리를 차지해야지.》 이것이 로동계급출신 당일군인 리춘일동무의 당사업지론이다. 하기에 그는 올해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공장을 찾으시였을 때 원수님께서 지난해에 훌륭한 병사의 어머니라고 높이 평가하신 대관땅의 어머니 정선영의 남편이 바로 우리 공장 종업원이라고 기대옆에 말없이 서있는 평범한 선반공에 대하여 자랑담아 말씀드리였으며 원수님을 모시고 공장일군들이 사진을 찍게 된 영광의 자리에서도 한옆에 서있던 혁명사적교양실 강사를 제대군인강사라고 원수님께 아뢰이고 자기 자리를 내여 그이의 바로 곁에 세워주어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한생토록 못 잊을 영광의 시각이 흐른 뒤 제대군인강사가 자기의 다음자리에 서서 사진을 찍은 초급당비서에게 미안함을 금치 못해하자 리춘일동무는 《제대군인강사인 동무가 경애하는 원수님곁에 선것이 내가 그이의 곁에 서서 사진을 찍은것보다 더 기쁘오.》라고 하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자연의 해빛에는 그늘이 있어도 우리 당의 따뜻한 사랑의 빛은 인간의 깊은 마음속까지 비친다. 그 빛은 상처입은 마음, 그늘진 심정에 더 밝고 따스하게 비쳐든다. 우리 원수님께서 잘못된 인생길에 들어섰던 부모없는 청춘남녀를 어머니손길로, 어머니마음으로 따뜻이 품어주고 행복한 가정까지 이루어준 금야군 가진로동자구의 평범한 녀성당일군에게 초급당비서동지!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써보내주신 친필이 오늘도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준다. 꾸며낼수도, 지어낼수도 없는 이런 진실하고 열렬한 인간사랑을 지닌 어머니당일군들이 지켜선 일터와 마을들이 사회주의 우리 조국을 이루고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뜻을 받들어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듯 인민을 대하고 사랑하는 이런 당일군들을 굳게 믿고 이 땅의 성실한 근로자들이 강성국가건설에 피와 땀, 목숨까지 서슴없이 바치고있다. 이렇듯 자애깊은 눈빛, 따스한 손길로 마음속 구석구석까지 보살펴주는 고마운 로동당의 품속에서 우리모두가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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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송미에게는 수첩이 하나 있다. 이름과 사는 곳, 전화번호들로 빼곡한 수첩이다. 같이 입원생활을 한 동갑또래 처녀로부터 당중앙위원회 일군에 이르기까지 나이도 직업도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주소가 가득히 적힌 그 수첩을 펼쳐보느라면 산골군의 한 공장의 화상환자처녀가 자못 유명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취재가 끝난 후 우리는 얼굴을 다시 찾은 림송미와 그를 위해 8년세월 사랑과 정성을 기울인 림현단과장과 리춘일초급당비서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고 하였었다. 그런데 모두 사양하였다. 림송미는 일터에서 혁신자가 된 다음 사진을 찍겠다고 하였고 림현단과장은 송미의 얼굴을 더 아름답게 만든 후에 보자고 하였으며 리춘일초급당비서는 자기야 당일군의 본분을 하였는데 무슨 사진이냐며 펄쩍 뛰였다. 인권도 인정도 황금과 리기로 저울질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상상도 못할 이런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서는 례사로운 일처럼 되고있다. 외진 섬에도 단 1명의 학생을 위한 분교가 있고 산골마을에도 몇 안되는 주민들을 위하여 진료소가 있는 나라, 영예군인이나 로병들에게는 친혈육보다 더 가까운 한식솔들이 있고 부모잃은 아이들에게는 가정보다 더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주는 땅, 산모를 위해 비행기가 날고 당비서가 부모잃은 청년들의 친부모가 되여 정을 맺어주고 결혼상을 차려주는 이런 사회가 바로 우리의 사회주의제도이다. 이런 아름다운 인간륜리가 60여년세월 이 나라에 공기처럼, 강물처럼 흘러오고있다. 작은 가슴에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과 주소가 가득 적힌 수첩을 품고 아름다운 새 삶의 길에 씩씩하게 들어선 림송미와 같은 우리의 새 세대들, 그들이 자기 운명의 은인인 고마운 당과 사회주의제도를 위하여 빛나는 위훈의 길을 걸어가리라는것을 우리는 믿어의심치 않는다. 본사기자 허명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