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4(2015)년 1월 23일 로동신문

 

북남관계개선의 앞길을 막아나선 미국의 죄악(1)

 

새 민주조선을 두동강낸 분렬의 장본인

 

민족분렬의 력사가 장장 70년을 헤아리고있다.

세계적으로 나라들사이에 교류와 협력,련대와 협조가 활발해지고 민족적단합과 발전이 적극 추진되고있는 오늘날까지도 우리 조선민족이 둘로 갈라져 나라와 민족의 통일적발전이 억제당하고있는것은 실로 안타깝고 통분할 일이다.

한강토에서 유구한 력사를 수놓으며 단일민족의 피줄을 이어온 우리 인민이 왜 수십년세월 민족분렬의 비극을 겪지 않으면 안되고있는가.

미국때문이다.

우리 민족을 둘로 갈라놓고 70년 긴긴세월 분렬의 고통을 들씌워온 미국때문에 5천년이상 형성되고 공고화된 민족적공통성과 단일성이 훼손당하고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북과 남의 모든 노력이 응당한 결실을 맺지 못하고있다.

미국은 1945년 해방의 기쁨에 들끓던 우리 민족을 둘로 갈라놓았으며 전쟁을 도발하여 민족분렬의 깊은 상처를 남겨놓았다.

1960년대에 《가자 북으로,오라 남으로,만나자 판문점에서!》라는 구호밑에 남조선에서 련북통일기운이 급격히 높아지자 《5.16군사쿠데타》를 조작하여 통일열기를 짓밟았다.

1970년대에 7.4공동성명이 발표되여 온 겨레의 통일지향이 강렬해지자 분렬주의적인 《두개 조선》정책과 《유신》독재《정권》을 조작하였다.

1980년대에 북과 남사이에 여러 갈래의 대화가 시작되고 예술단과 고향방문단이 오가게 되자 범죄적인 《교차승인론》과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의 확대로 그에 제동을 걸었다.

1990년대에 《북남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협력,교류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되여 조국통일운동이 북과 남,해외의 전민족적범위로 확대되자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의 재개와 반공화국핵소동으로 북남관계개선에 장애를 조성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와 두차례에 걸쳐 력사적인 북남수뇌상봉이 이루어지고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 발표되여 온 겨레와 전세계를 격동시키였을 때에도 이에 전면적으로 도전해나섰다.

북남경제협력사업이 활발해지자 《퍼주기》니,《투명성》이니,《군사전용》이니 하면서 시비를 걸었는가 하면 북남철도,도로련결에 대해서는 《유엔군사령부》허가를 구실로 비틀어대며 뒤다리를 잡아당겼다.

지난해에는 우리 공화국의 적극적인 평화제안에 대규모적인 핵전쟁연습으로 대답하면서 남조선에 반통일분위기를 고취하였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통일적발전을 요람기에 짓밟고 북남관계가 개선의 국면을 맞이할 때마다 악착하게 훼방을 놀아온 미국의 죄악의 력사를 하나하나 따져가며 계산하지 않을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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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분렬은 해방과 함께 시작되였다.

전대미문의 일제식민지통치를 끝장내고 해방을 맞이한 민주조선의 앞길에는 민족적발전의 밝은 전망이 열려져있었다.

만일 미국이 《해방자》의 탈을 쓰고 남조선에 기여들지만 않았다면 조선은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자주독립국가의 발전의 길을 순조롭게 걸어나갈수 있었을것이다.

원래 미국은 남조선만이 아닌 전조선반도를 타고앉을 야망을 품고있었다.아시아에서 군사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조선반도를 발판으로,군사교두보로 삼고 아시아와 나아가서 전세계에 대한 지배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벌써 19세기 중엽부터 조선반도에 대한 침략정책을 추구해온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시기부터 조선에 대한 지배정책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었다.

1942년 미국대통령 루즈벨트는 《전후세계구조연구위원회》라는 기구를 조작하고 그를 통하여 조선이 독립하려면 미국의 신식민주의적체계내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이른바 《조선독립방안》이라는것을 꾸며냈다.

조선에 대한 신식민주의적인 통치안에 기초하여 루즈벨트는 1943년 3월 워싱톤에서 영국외상과 진행한 전후처리문제에 대한 회담에서 조선은 4개 나라의 관리밑에서 통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1943년 11월 까히라회담에서는 일본의 지배하에 있던 조선에 대하여 즉시독립이 아니라 《적당한 시기》에 독립이 허용될것이라는 조건을 붙이였다.

그후 쏘미영수뇌자들의 테헤란회담에서는 《조선인민이 완전한 독립을 얻기 전에 약 40년간의 후견기간을 필요로 한다.》고 하였으며 1945년 2월에 열린 얄따회담에서도 필리핀의 경우를 상기시키면서 조선의 경우 적어도 20~30년간의 후견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의 이러한 신식민주의적통치의 명분은 일제의 군사통치하에 있던 우리 민족이 《자치능력》을 가지고있지 못하기때문에 대국들의 공동관리하에서 《자치능력》을 키운 다음 조선에 독립을 부여한다는것이였다.

1945년 8월 일제의 무조건항복으로 정세가 급변하자 미국은 조선반도의 절반땅이라도 차지하기 위하여 38゜선을 고안하고 일본군의 무장해제라는 구실밑에 1945년 9월 8일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남조선을 강점하였다.

미국은 삼천리강토를 둘로 가른것도 모자라 북남사이의 민족적뉴대와 혈맥을 끊고 불화와 반목을 강요해나섰다.이것은 미국이 조선민족앞에 저지른 죄악중에서도 가장 큰 죄악이다.

미국이 처음부터 북남관계발전을 필사적으로 가로막아나선것은 북과 남이 단합된 힘으로 남조선에 대한 저들의 식민지통치를 뒤집어엎고 자주독립국가를 일떠세우게 되면 조선반도에 대한 지배는 물론이고 전세계에 대한 제패를 실현할수 없었기때문이다.

이로부터 미국은 남조선에 《군정》을 선포하고 38゜선 이북지역과의 교통,운수,체신 등 래왕의 길을 모두 차단하고 민족적단합과 통일을 위해 투쟁하는 남조선의 애국력량을 무차별적으로 탄압해나섰다.

미국은 1946년 1월 18일 우익반동테로단을 내몰아 려운형선생이 당수로 있던 인민당청사와 이 당 기관지 《조선인민보》사 그리고 부녀총동맹사무소를 습격,파괴하였으며 다음날 새벽에는 좌익청년단체였던 《학병동맹》본부를 습격하고 이 동맹 성원들을 학살하였다.

1946년 5월에는 히틀러의 《국회의사당방화사건》을 모방한 《정판사위조지페사건》을 조작하고 《공산당이 활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위조지페를 발행》하였다는 거짓선전을 하면서 남조선에서 민주세력에 대한 일대 탄압선풍을 일으켰다.

《군정법령》 55호,72호,88호로 민족적단합과 북남관계발전을 지향하는 민주주의적정당,사회단체들을 해산시켰으며 진보적인 신문,잡지들을 페간하고 인민들의 언론,집회,시위의 자유를 빼앗았다.1947년에 공산당이 비법화된데 이어 민족자주통일과 민주주의적리익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던 인민공화당,조선로동조합 전국평의회,전국농민총련맹,조선민주애국청년동맹,남조선문화단체총련맹을 비롯한 민주주의적정당,단체들이 비법화되였다.미제의 탄압책동으로 말미암아 8.15후 1949년말까지 해체된 정당,단체들은 무려 162개에 달하였다.

또한 미국은 《한국독립당》 당수 김구선생이 남조선에서의 《단선,단정》을 반대하고 미군철수와 조국통일을 주장하였다고 하여 1949년 6월 26일 그를 암살하였다.

1949년 한해동안에만도 민주주의와 북과 남의 단합과 통일을 요구해나선 11만 8 000여명의 애국적인민들을 체포하였다.

남조선인민들속에서 공화국북반부에서 실시되는 시책들에 대한 동경과 지지기운이 고조되고 통일정부수립을 지향하는 열망이 강렬해지자 미국은 1947년에 조선문제를 비법적으로 유엔에 상정시켜 《유엔감시하의 선거》안을 강압적으로 통과시켰다.

특히 미국은 해방후 민족분렬의 영구화를 막고 조국의 완전자주독립을 이룩하기 위해 소집되였던 력사적인 4월남북련석회의를 파탄시키려고 갖은 발악을 다하였다.

당시 미국은 남조선의 애국적인 정당,사회단체인사들이 평양으로 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남조선강점 미군사령관의 명의로 특별성명을 발표하여 북남협상에 호응하는 남조선의 정계인사들을 《착각을 가진 용공분자》로 몰아대고 《무사치 못할것》이라느니,《북에 가면 과거를 추궁받고 연금될것》이라느니 하면서 련석회의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미국은 그후 1948년 5월 남조선에서 군사적폭력으로 《단독선거》를 실시하고 리승만을 비롯한 저들의 노복들을 긁어모아 남조선《정권》을 조작함으로써 북과 남의 단합된 힘으로 통일적민주주의정부를 수립하려던 우리 인민의 념원을 짓밟았다.

남조선에서 《정부》를 조작한 미국은 북조선의 《남침》이요,《공산화》요 하면서 북남사이에 리간을 조성하고 군사적대결을 부추겼다.

결국 북과 남은 해방의 기쁨을 얼마 나누지도 못한채 서로 갈라져 민족분렬의 고통을 겪어야 했고 전쟁의 참화까지 입지 않으면 안되였다.

우리 민족은 미국에 의해 강요당한 분렬과 고통의 대가를 두고두고 계산할것이다.

본사기자 리철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