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4(2015)년 3월 8일 로동신문
절세의 위인들과 조선의 3.8절
3.8국제부녀절! 그것은 착취와 억압,사회적불평등과 온갖 예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지향한 전세계녀성들의 세기적인 열망의 산물이였고 인류와 력사가 녀성들에게 줄수 있은 가장 큰 선물이기도 하였다. 온 세계의 녀성들이 105번째의 국제부녀절을 나라와 민족의 정치제도와 구체적인 사회환경에 따라 기념하고있다. 3.8절을 뜻깊게 맞이하고있는 우리 조선녀성들의 감개와 기쁨,격정과 흥분은 지구상 그 어느 나라 녀성들도 느낄수 없는 열렬한것이다. 위대한 령도자 《녀성운동의 빛나는 력사를 가지고있는 우리 나라에서는 국제부녀절을 크게 기념하여야 합니다.》 이 나라 녀인들에게 있어서 3.8절은 위대한 은인,자애로운 어버이의 품을 떠나서 말할수 없는 조선녀성의 명절이다.백두산위인들께서 찾아주신 조선의 3.8절은 이 땅의 모든 녀성들에게 생의 환희를 주는 명절일뿐아니라 이 나라 녀성들의 운명사를 돌이켜보게 하는 력사의 날이다.
8.15가 있어 3.8절이 있다 -해방조국의 첫 기슭에서-
주체34(1945)년 8월 15일,이날은 우리 민족사에 조국해방의 날로 기록되여있다.아마도 8.15의 참다운 의미를 누구보다 뼈에 사무치게 느낀 사람들은 이 나라의 녀성들일것이다. 기나긴 중세의 암흑속에서 무지와 몽매,천대와 멸시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던 불쌍한 조선녀성들이였다.녀자로 태여난 《죄》를 숙명처럼 감수해야만 했고 온갖 봉건적악습과 페풍에 얽매여 눈물과 한숨속에 시들어갔다. 3.8국제부녀절이 제정된 1910년 우리 조국은 간악한 일제의 식민지로 완전히 전락되였다.망국의 조선녀성들에게는 3.8절이 없었다. 나라잃은 치욕과 불행이 녀성들에게만 들씌워지는듯 수많은 녀성들이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가 무참히 유린당해도 누구도 그들의 운명을 지켜주지 못하였다. 3월 8일이면 이 행성의 녀인들이 국제부녀절을 즐겼건만 조선의 녀성들중에는 그러한 명절이 있다는것조차 아는 녀성들이 얼마 없었다.지어 자기의 이름도 생일도 모르는 녀성들이 수다하였다.3.8절은 조선의 불쌍한 녀인들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듯싶었다. 그러한 조선녀성들에게 8.15해방은 3.8절을 가져다주었다. 주체34(1945)년 11월 1일 당보의 창간호에는 이런 표어들이 실려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20세이상 남녀의 선거권을 힘있게 살리자!》 《남존녀비의 모순된 사상과 규중녀자란 봉건적사상을 배격하자!》 《봉건적생활인습을 버리고 녀성도 국가산업건설에 적극 참가하자!》 《남녀평등의 법률제도를 확립하라!》 《산전후 각 3주간 휴양을 주고 휴양기간의 임금을 지불하라!》 어버이수령님께서 《정로》가 나왔습니다,우리 당보가 말입니다,보았습니까? 자,우리 당보를 보시오,우리가 그처럼 애써 준비해온 당보가 드디여 나왔습니다,이것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라고 말씀하시며 펼쳐드시던 당보의 창간호,력사적인 그 신문에 새 조선의 녀성들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실렸던 그날의 감격을 우리 정녕 잊을수 없다. 언제부터였던가.울밑의 봉선화마냥 속절없이 시들어가던 이 나라 녀성들이 자기 운명을 자기의 힘으로 구원하기 위한 투쟁에서 조선녀성의 기개와 강의성,아름다움과 슬기를 떨치던 그 나날은.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도 남녀평등문제를 한조항으로 새겨넣으시며 녀성해방의 길을 열어나가신 민족의 영웅 푸성귀나 가꾸며 팔자를 한탄하던 수많은 녀성들이 용약 혁명의 피바다에 뛰여든 력사적변혁에 대한 사연들이 우리 수령님께서 몸소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에 담겨져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그것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조선혁명사에 깊이 새겨주신 녀성해방의 첫 서사시와도 같았다. 《피바다》창작에 대하여 감회깊이 추억하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이렇게 쓰시였다. 《녀성들이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적변혁운동에 뛰여든것은 하나의 혁명이였다.나는 이 혁명의 주인공들에 대해서 다함없는 존경과 사랑을 느끼였다.그들을 지지하고 동정하는 과정에 나의 머리속에서는 희생된 남편의 뒤를 이어 혁명의 길에 나선 한 녀인과 그의 자식들의 형상이 무르익어갔다.》 우리 수령님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는 눈물과 수난의 피바다에서 통곡하던 조선녀성들을 혁명의 피바다에로 불러주었다.불후의 고전적명작과 함께 을남이어머니가 다시 태여났듯이 참다운 조선녀성들은 숙명의 울타리를 단호히 박차고 자기의 운명을 지키기 위한 성전에 과감히 떨쳐나섰으며 두눈을 원쑤에게 잃고서도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고 웨치는 백절불굴의 녀성투사들의 대오가 억세게 자라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해방된 조국땅에서 당창건위업을 실현하신 다음 지체없이 진행하신 사업이 민주녀성동맹의 결성이였다.새 조국건설로 낮에 밤을 이어 사업하시던 우리 수령님의 집무실흑판에 해방전 녀성로동자들의 처지를 각이한 면에서 구체적으로 분석한 자료가 기록되여있었다는 사실을 새 세대 녀성들이여,과연 알고있는가. 새 조선의 첫 녀성잡지제호를 몸소 《조선녀성》이라고 달아주시고 친히 축사까지 써주신 위대한 스승의 손길아래 지난날 문전출입도 제대로 못하던 녀성들이 새 사회건설에 궐기해나섰다.우리 당의 목소리인 당보가 처음으로 발간된 때로부터 한해동안에만 하여도 녀성들과 관련한 기사가 무려 100건이 넘게 실리였다고 하니 력사밖에 밀려났던 우리 녀성들의 운명이 얼마나 몰라보게 달라졌는가를 어렵지 않게 알수 있다. 녀성들이 자기들의 동맹을 뭇고 나라의 수령께 직접 감사의 편지를 올리게 되리라고 그들이 언제 상상이나 해보았던가. 전세계녀성들의 국제적명절인 3.8절에는 국경이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조국을 떠나,그 조국의 위대한 은인을 떠나 조선녀성들은 결코 3.8절을 론하지 않는다. 해방된 조국에서 맞이한 새 조선의 첫 3.8국제부녀절을 우리 진정 잊을수 없다. 3.8국제부녀절이 제정된지 36년만에 조선녀성들은 처음으로 자기들의 명절을 당당히 기념할수 있게 되였다.당시 당보에는 《3.8을 기념하면서 조선녀성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이런 글이 실렸다. 《8.15의 조선민족해방은 조선녀성의 해방을 가져왔다.해방된 조선녀성이 3.8국제부녀절을 기념하기는 처음이다.…3.8절은 전세계녀성이 녀성의 사회해방과 인권의 평등자유를 위한 녀성의 투쟁일이며 녀성들의 힘을 한데 뭉치여 사회국가건설에 참가하기를 맹세하고 실천하는 날이다.》 해방된 조국에서 첫 3.8절을 맞으며 출판물들을 꽉 채웠던 수많은 글들은 그대로 새 조선의 당당한 주인으로 등장한 이 나라 녀성들이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러 터치는 고마움과 맹세의 분출이 아니였던가. 그러나 그때까지 누구도 몰랐다.새 조선의 첫 3.8국제부녀절을 뜻깊게 기념한 때로부터 몇달후 조선녀성들의 운명에서 력사적전환을 가져온 분기점으로 되는 남녀평등권법령이 발포될줄을. 아직은 인민의 새 나라,자주독립국가를 창건하는 세기적위업도 앞에 있던 그때 우리 수령님께서는 남녀평등권법령을 놓고 긴긴 밤을 지새우시였으니 주체35(1946)년 7월 30일,조선녀성들의 운명에서 력사적전환을 가져온 그날을 이 땅에 태를 묻고 사는 녀성이라면 눈에 흙이 들어간들 어찌 잊을수 있으랴. 진정 어버이수령님은 이 나라 녀성들의 운명을 구원해주시고 존엄과 행복을 안겨주신 절세의 은인이시였다. 8.15가 있어 우리 녀성들의 자유와 해방의 새 세계,광명의 세계가 동터왔고 조선의 행복한 3.8절도 있음을 이 나라 녀성들이여,영원히 잊지 말자.
값높은 칭호-녀성혁명가 -믿음의 최절정우에서-
여기에 외국의 한 저명한 인사가 쓴 글이 있다. 《조선의 영웅적수도 평양의 중심부에는 머리를 높이 쳐들고 미래를 향하여 줄달음쳐나가는 날개달린 말,천리마의 동상이 솟아있다. 이 동상은 조선인민의 영웅적기상을 상징하고있으며 남성들과 함께 조선녀성들이 나라의 주인으로 등장하고있다는것을 보여준다.》 천리마동상에 있는 녀성기수는 어느 개별적인물이 아니다.남자들과 꼭같이 위대한 천리마시대를 안아온 녀성들,사회주의건설의 머나먼 행정에서 남자들과 함께 혁명의 기관차를 억세게 몰아 나라와 민족의 영예를 떨친 전체 조선녀성들의 상징이다. 력사의 갈피를 번져보느라면 조국과 력사앞에 이름을 남긴 녀성들에 대한 이야기가 적지 않다.16살 처녀의 몸으로 무장을 갖추고 침략자들을 반대하는 투쟁을 앞장에서 이끌어 민족이 기마상까지 세워준 녀성영웅도 있고 한생을 고심참담한 과학연구에 바쳐 세상을 놀래우는 화학원소를 발견한 녀성과학자도 있으며 인류문화의 보물고에 무시할수 없는 명작을 남기고 력사에 이름을 새긴 녀류소설가도 있다. 조선녀성들은 인류사에 자기들의 가장 값높은 이름을 하나의 성스러운 칭호로 거룩하게 새겨넣었다. 녀성혁명가! 이것은 우리 조선녀성들이 제일 사랑하는 자기들의 이름이며 당과 수령이 이 나라의 녀인들에게 안겨준 가장 큰 믿음이며 영광이다. 《혁명의 한쪽수레바퀴》라는 유명한 명제로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녀성들의 지위와 역할을 통속적으로 천명하신 우리 수령님, 조선혁명의 첫 기슭에서 반일부녀회를 무으시여 우리 나라 녀성운동의 시초를 열어놓으신 조선의 어머니 강반석녀사와 수령결사옹위의 최고화신이신 백두산녀장군 김정숙동지의 한생은 녀성혁명가의 참된 삶의 귀감으로 오늘도 우리 나라 녀성운동사에 눈부신 해발처럼 빛나고있다. 조선의 녀성혁명가들의 첫 세대들이며 이 나라 녀성해방운동의 선구자들인 항일의 녀투사들처럼 녀성들모두를 남자들과 동등한 사회적인간으로,새 조국건설의 믿음직한 주인으로 내세워주시려 우리 수령님 기울이신 심혈을 무엇으로 다 헤아리랴. 오늘도 사람들은 예술영화 《어머니는 포수였다》의 원형인 평강의 녀성포수 리수덕에 대하여 기억하고있다. 해방후 그들부부를 만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리수덕녀성의 피눈물나는 과거에 대하여 들으시고 녀성들이 모두다 새 조국건설에 떨쳐나선다면 실로 큰일을 할수 있다고,해방된 조선의 녀성들은 남자들과 함께 새 조국건설의 튼튼한 기둥이라고 말씀하시였다.그러시고는 자신의 존함으로 된 표창장을 직접 수여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 안겨주신 이런 믿음이 있어 리수덕녀성은 전화의 나날 유격대를 조직하고 수령님께서 선물로 주신 총을 잡고 원쑤들과 용감하게 싸웠다. 우리 수령님의 품속에서 자기의 존엄을 찾은 이 나라 녀인들이였기에 수류탄을 품고 적땅크밑에 서슴없이 뛰여들면서도,사형장에서도 《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요 《녀성의 노래》를 깊은 추억속에 들으시며 녀성들을 꽃이라고 노래만 부를것이 아니라 혁명의 꽃을 피워나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거듭 이르시던 어버이수령님,그이의 이런 믿음의 손길에 떠받들려 수천수만의 녀성들이 전설의 천리마기수로 이 땅우에 사회주의기둥을 받들어세울수 있었다. 어버이수령님의 녀성운동사상과 업적을 빛나게 계승발전시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선군혁명의 폭풍속에서 우리 녀성들의 삶을 최상의 높이에 올려세우시였다. 혁명가극 《당의 참된 딸》이라는 기념비적명작과 더불어 이 나라 녀성들의 이름을 시대의 기폭에 아로새겨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손길아래 수많은 로동당의 참된 딸들이 이 땅우에 아름다운 삶의 꽃을 피워올렸다. 피눈물의 해를 보내고 맞이한 주체84(1995)년 3월 8일 위대한 장군님께서 발표하신 불후의 고전적로작 《녀성들은 혁명과 건설을 떠밀고나가는 힘있는 력량이다》는 우리 녀성들이 그 어떤 천지풍파속에서도 당을 따라 주체혁명의 천만리길을 억세게 걸어나갈수 있게 고무추동한 전투적기치였다. 전선시찰의 길에서 녀성군인들을 보실 때마다 조국보위초소에서 한몫 단단히 하고있는 녀성혁명가들이라고,이런 훌륭한 녀성혁명가대군을 가지고있는것은 우리 당과 인민의 커다란 자랑으로 된다고 하시던 위대한 장군님이시다. 수십년전 위대한 장군님께서 한 녀성과학자를 만나시였을 때였다. 그의 전공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과학분야를 탐구해나가는 녀성과학자로서 한번 명성을 떨쳐보라고 고무해주시였다.그러시고는 처녀시절에는 꽃을 피우다가도 결혼만 하면 희망도 포부도 다 버리고 주저앉는 녀성들이 적지 않은데 절대로 그래서는 안된다고,박사가 되였다는 기쁜 소식을 기다리겠다는 크나큰 기대를 표시하시였다.그후 녀성과학자가 50고개를 바라보는 나이에 드디여 박사학위를 수여받은 소식을 담아 위대한 장군님께 편지를 올리였을 때에는 반갑다고,앞으로 과학연구사업에서 큰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는 친필서한을 보내주시였다. 우리 장군님 펼치신 선군시대의 벅찬 흐름속에 군관의 안해들이 시대의 전형으로,최고사령부 작식대원으로 사랑을 받고 두메산골의 평범한 도로관리원이 선군시대의 태성할머니로 불리웠으며 아이를 많이 낳아 키우고있는 어머니들이 모성영웅으로 떠받들리울수 있었다. 천리마의 기수가 되여 질풍같이 내달리던 우리 녀성들의 지위는 오늘 경애하는 오늘 첫 녀성추격기비행사들이 태여난것은 온 나라가 축복해줄 경사이다.동무들은 모두 자랑스러운 조국의 딸,인민의 장한 딸들이며 불굴의 녀성혁명가들이다.… 고향은 어디이며 부모들은 무슨 일을 하는가 다정히 물어주시고 조국보위초소에 내세운 귀한 딸들이 조선녀성을 대표하는 녀성추격기비행사로 자라난 소식을 부모들이 알면 얼마나 기뻐하겠는가,훌륭한 딸을 둔 부모들에게도 보내주고 온 나라에 크게 소개하자고 하시며 한장한장 사진까지 찍어주신 우리 원수님이시다. 군인가족들을 자신의 사랑하는 전우들의 안해들,총잡은 남편들과 한전호에서 우리 혁명을 사수해나가는 믿음직한 혁명의 부사수들로 불러주신 은정,제4차 전국어머니대회 참가자들과 함께 계시며 고결한 충정과 불타는 애국심을 안고 조국과 민족앞에 지닌 시대적본분을 다해나가는 훌륭한 어머니들이라고 내세워주신 최상최대의 믿음속에 온 나라 녀성들이 시대의 혁명가들로 남자들과 어깨겯고 총공격전의 앞장에서 나아가고있다. 일찌기 우리 나라를 방문한 외국의 저명한 작가는 자기의 인상담에서 조선에서 받은 가장 큰 충격은 국가적인 행사장의 맨 앞줄에 녀성들이 서있는것이라고 한바 있다.오늘 우리 녀성들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각급 주권기관 대의원으로서 국사를 론하는 마당에서 자기의 발언권을 당당히 행사하고있으며 영웅으로,선군시대공로자로,일군으로 한몫 단단히 하고있다. 3.8국제부녀절이 세상에 태여난지 한세기가 넘는 오늘날에 와서도 세계인구의 반수를 차지하고있는 녀성들의 운명문제가 여전히 심각한 사회정치적문제로 제기되고있지만 조선녀성들은 더욱 높아지고 더욱 아름다와진 자기들의 존엄과 가치를 가슴벅차게 느끼고있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면서도 《 그들의 목소리는 조선의 3.8절이 왜 세기를 이어가면서도 그리도 행복스럽고 긍지높은가를 세계앞에 터치는 이 나라 녀성들의 심장의 노래이다.
어버이와 딸 -사랑의 꽃바다우에서-
인민의 운명,녀성들의 운명을 책임진 령도자는 정치가이기 전에 위대한 인간이여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인간에 대한 사랑,녀성들에 대한 사랑을 천품으로 지니시고 이 땅우에 녀성중시,녀성존중의 첫 정치를 펼치신 자애로운 어버이,그이는 위대한 수령 뜨거운 추억이 뜻깊은 3월과 더불어 봄물마냥 물결쳐온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도 자주 추억하며 보군 하시던 한상의 사진이 있다.주체50(1961)년 4월 검덕광산(당시)을 찾으신 우리 수령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녀성로동자들속에 계시는 뜻깊은 사진이다. 마치도 친아버지를 한자리에 모신 딸들마냥 그이의 옷자락에 매달려 행복과 기쁨에 겨워 어쩔줄 모르는 녀성로동자들,어버이수령님을 얼마나 뵙고싶었으면,우리 수령님과의 혈연의 정이 얼마나 뜨거웠으면 그들의 얼굴에 그렇듯 무한한 행복과 기쁨이 웃음꽃으로 활짝 피여났으랴. 기념사진이기 전에 가족사진과도 같다.우리 수령님과 녀성들의 관계는 이렇듯 국가수반과 녀성공민들사이의 관계이기 전에 아버지와 딸의 혈연적관계였다. 사랑을 위해 태여나고 정을 위해 사는것이 녀성이라면 아마도 우리 조선녀성들처럼 위대한 수령들의 그렇듯 자애로운 사랑,따사로운 정을 받아안으며 살아온 녀성들은 이 세상에 더는 없을것이다. 녀성들을 가정일의 무거운 부담에서까지 완전히 해방시켜주시려 이 문제를 3대기술혁명과업의 하나로 당대회에서까지 토론하도록 하시고 미국놈들에게 속아 나라앞에 죄를 지은 남편들때문에 기를 못 펴고 살아가던 녀성들을 몸소 만나주시고 눈물로 가득찼던 그들의 가슴에 밝은 해빛을 안겨주신 우리 수령님 같으신 위대한 어버이가 이 세상 어디에 또 있었던가. 언제인가 개천군(당시)의 한 농장을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곳에서 일하던 처녀작업반장이 다른 농장의 관리위원장으로 임명받은 사실을 알게 되시였다.처녀관리위원장을 몸가까이 부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말 용타고,처녀의 몸으로 관리위원장사업을 하자면 헐치 않을것이라고,예로부터 우리 부모들은 자기 딸자식을 시집보낼 때 례장감을 마련해주었다고 하시였다.그러시고는 우리도 례장감을 마련하자고,관리위원장으로 일하게 된 동무에게 뜨락또르를 보내주자고 하시며 그의 앞날을 축복해주시였다. 18살의 농장처녀가 말씀올린 빈봉투농장에 대한 이야기를 잊지 않으시고 농장을 대규모남새생산기지로 전변시켜주신 이야기,이른새벽 두부공장을 찾으시고 몸소 그 맛까지 보아주시며 녀성들의 가정일까지 관심해주신 하많은 이야기들을 우리 녀성들은 진정 못 잊는다. 어버이수령님 그토록 사랑하시고 내세워주시던 녀성들의 삶을 최상의 경지에서 빛내여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품은 또 얼마나 넓고 따사로왔던가. 3.8국제부녀절 100돐에 대한 잊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주체99(2010)년 2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멀지 않아 3.8국제부녀절 100돐을 맞이한다고 하시면서 3.8국제부녀절을 그 어느때보다 의의깊게 기념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이날에 즈음하여 위대한 장군님께서 보내신 축하는 녀성들뿐아니라 온 나라 인민을 격동시키였다. 나는 당과 수령에게 무한히 충실하고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하여 헌신하며 고상한 사상정신적풍모를 지닌 우리 녀성들을 크나큰 자랑으로 여기며 조선녀성들의 력사적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이번 기회에 온 나라 전체 녀성들에게 열렬한 축하를 보냅니다.… 누구의 가슴엔들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은정에 대한 가슴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지 않겠는가.구호나무를 구원하기 위해 불속에 뛰여들어 화상을 입은 한 녀강사의 얼굴을 더 아름답게 하여 내세워주신 사연,나라가 어려움을 겪는 시기에도 우리 녀성들의 몸단장을 위해 비단옷감과 화장품생산문제에도 깊이 마음쓰신 이야기,지휘관들도 미처 헤아려보지 못한 녀병사들의 바다바람에 튼 얼굴을 념려하시여 약크림을 보내주신 사실들이 선군조선의 녀성들이 무슨 힘으로 시련의 언덕들을 웃으며 헤쳐올수 있었는가를 웅변으로 말하여주고있다. 위대한 대원수님들과 우리 녀성들사이의 정과 정으로 이어진 한식솔,혼연일체의 화폭이 오늘은 경애하는 원수님과 우리 녀성들의 혈연의 뉴대속에 더 아름답게 펼쳐지고있다. 이 세상에서 우리 원수님처럼 녀성들을 아끼고 존대하시며 무한히 사랑하시는 그런 열의인,정의인을 우리는 더는 모른다. 주체101(2012)년 어버이장군님을 잃은 상실의 아픔이 이 나라 모든 녀성들의 마음속에 아직도 피눈물로 응어리져있던 때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3.8국제부녀절을 기념하는 음악회를 성대하게 마련하여 명절을 맞는 온 나라 녀성들을 축복해주실줄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해마다 국제부녀절을 맞는 녀성들을 축하하여 황홀한 무대도 펼쳐주시고 사랑의 선물도 가득 안겨주시며 뜨거운 정을 기울이시는 그이이시기에 평양산원 유선종양연구소를 최상의 수준에서 꾸려주시고 녀성들의 양말과 화장품에 대하여서까지 깊이 마음쓰시며 하늘의 별을 따오는것과 같은 사랑의 서사시를 수놓으시였다. 사람들이여,물어보자. 세상 그 어디에 녀성들이 신게 될 신발의 무게까지 몸소 저울에 달아보시는 위인,새 집에 이사한 평범한 가정들에 녀성들이 좋아하는 부엌세간까지 가지고 가시여 안겨주시는 위인이 있었는가.녀성로동자들이 대부분인 김정숙평양방직공장에 궁궐같은 로동자합숙을 일떠세우도록 하시고 5.1절경축 로동자연회까지 마련해주신 경애하는 원수님을 우러러 누군들 격정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랴. 우리 원수님의 한없이 넓고 따사로운 그 품속에 감나무중대의 녀성군인들이 안기였고 자강도의 녀성공로자들이 안기였으며 녀성과학자,녀성예술인,녀성체육인 아니 이 나라 녀성들모두가 안기였다. 하기에 우리 녀성들모두가 스스럼없이,긍지높이 한목소리로 웨친다. 우리는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딸,경애하는 원수님의 딸이다! 정녕 대대로 누리는 수령복이 있어 조선의 3.8절은 이 세상에서 가장 존엄높고 아름답고 행복한 녀성들의 제일 큰 명절로 되고있다. 그렇다.이 땅에서 울려나오는 3.8절찬가는 조선녀성들의 은인이고 어버이이신 절세위인들께 드리는 가장 열렬하고 진실한 송가이다. 우리 녀성들을 두번다시 태여나게 해준 조국해방 일흔돐,이 나라 녀성들모두가 어머니라고 부르며 따르는 조선로동당의 창건 일흔돐이 되는 주체104(2015)년의 뜻깊은 3.8절을 맞으며 가정과 일터마다에서 녀성들에게 안겨주는 축하의 꽃송이들이 가득가득 쌓이고있다. 하지만 위대한 대원수님들과 경애하는 원수님에 대한 가장 뜨거운 감사의 정에 넘쳐 우리 녀성들은 이 세상 제일 아름답고 진귀하고 향기그윽한 꽃송이들을 고르고골라 삼가 엮은 3.8절의 꽃바구니를 안고 대원수님들의 동상을 찾는다. 본사기자 백영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