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4(2015)년 3월 14일 로동신문

 

백두의 칼바람이여,영원한 조선의 정신을 안고 폭풍치라

혁명의 성산 백두산을 찾아서

 

백설을 날리며 세기의 하늘높이 솟아있는 백두산은 그 언제나 우리 천만군민의 마음이 달려가는 혁명의 성산이다.

김일성민족,김정일조선의 불굴의 기상인 백두의 혁명정신,백두의 칼바람정신이 여기 백두산에서 세차게 뿜어지며 온 나라를 끝없이 정화시킨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넋이 깃들어있고 선군조선의 기상이 응축되여있는 조종의 산,혁명의 성산입니다.백두산은 조선혁명의 발원지이고 승리의 상징이며 선군혁명의 영원한 등대입니다.》

얼마전 우리는 사나운 눈보라길을 헤치며 백두산에 올랐다.눈보라 몰아치는 한겨울의 백두산에 오르면서 우리는 쉽게는 부를수 없는것이 백두의 칼바람정신이며 이 불굴의 정신으로 부닥치는 난관과 시련을 맞받아나갈 때 당창건 70돐,조국해방 70돐을 맞는 뜻깊은 올해의 승리는 확정적이라는것을 깊이 느끼게 되였다.

주체시대의 려명이 밝아온 20세기와 더불어 보다 광명할 새로운 주체100년대의 필승의 상징인 백두산!

약동하는 내 조국의 새날이 제일먼저 시작되고 온 나라를 진감하는 혁명신념의 칼바람이 고귀한 시원을 둔 여기 혁명의 성산에서 김일성민족,김정일조선의 백승의 전통과 막강한 국력,광활한 미래에 대한 가장 명백한 대답이 울리고있다.

 

멈출수 없는 혁명의 길

 

삼지연군 신무성로동자구는 해발높이가 천수백m나 되는 백두산아래 첫 동네이다.이곳에서 백두산까지는 70리가량 된다고 한다.

흰눈계절에 여기 백두산의 초입에 서면 한겨울의 백두산에는 누구나 쉽게 오를수 없음을 절로 느끼게 된다.때없이 하늘을 메우며 내려 두텁게 쌓이는 눈때문에 백두산으로 향한 자동차길은 물론 걸음길마저도 이 동네에서 끝나 없어지는것이다.

백두산에로의 행군길은 눈으로 다져진 외통길에 앞사람이 낸 발자욱을 짚으며 걸어야 하는 힘겨운 로정이였다.조금만 잘못 발을 디디여도 순간에 무릎까지 눈속에 빠져들었고 그러면 움직일수록 허리까지 눈이 올라와 저도모르게 당황해지는것이였다.울울창창한 밀림속눈길을 따라 1월의 눈보라를 헤치며 걷느라니 지금까지 백두의 행군길에 대해 너무도 쉽게 말해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백두산으로 가는 길,얼마나 위대한 력사가 담겨있는 성스러운 혁명의 길인가.

백두산은 결코 마음만 내키면 아무때건 갈수 있는 곳이 아니였다고,가고싶어도 마음대로 갈수 없다는 여기에 백두산이 가지는 참의미가 있었고 가지 못할수록 더 가고싶어진다는 여기에 바로 백두산이 가지는 참매력이 있었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록의 구절들이 떠올랐다.

세차게 휘뿌리는 눈보라속에 한자욱 또 한자욱 걸음을 옮길수록 숭엄해지는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경애하는 원수님의 불멸의 혁명사상과 령도업적,백절불굴의 기상과 숭고한 풍모를 그대로 체현하고있는 력사의 증견자 백두산은 조선혁명의 발원지이고 선군혁명의 영원한 등대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조선혁명의 닻을 올리신 때로부터 20성상 백두의 험산준령을 넘고넘으시며 항일혁명투쟁을 승리에로 이끄시고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시였다.

백두산청년장군을 따라 혁명의 길에 나선 항일혁명선렬들은 고난의 행군과 무송원정,북만원정과 같은 시련에 찬 행군길을 걷고걸으면서 수령결사옹위의 빛나는 전통을 창조했고 죽어도 살아도 내 나라,내 민족을 위해 만난을 헤쳐 싸우는 혁명적신념의 고귀한 본보기를 마련하였으며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맞받아 뚫고나가는 완강한 공격정신,백번 쓰러지면 백번 다시 일어나 끝까지 싸우는 견결한 투쟁정신이 어떤것인가를 귀중한 산모범으로 보여주었다.

어제날까지만 해도 까막눈의 꼴머슴이였고 불쌍한 꽃분이들이였던 그들을 이런 사상과 신념의 강자,도덕과 의리의 강자로,백두산야를 주름잡는 빨찌산의 영웅들로 억세게 자라도록 떠밀어준것이 다름아닌 항일혁명의 행군길에 쉬임없이 몰아치던 백두의 칼바람이였다.

하기에 보천보로부터 청봉과 건창,삼지연,백두산밀영과 대홍단을 비롯한 유서깊은 혁명전적지들을 돌아볼 때에 우리가 새삼스럽게 느낀것은 백두의 칼바람이야말로 백두산에 뿌리를 둔 항일의 거세찬 바람이며 민족을 백두산에로 이끌어주는 혁명의 바람이라는 소중한 사상감정이 아니였던가.

우리는 사납게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실려오는 밀림의 설레임소리를 들으면서 력사에 비낀 백두산의 상징적의미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우리 인민은 예로부터 조종의 산 백두산을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는 민족사의 발상지로 여기며 백두산에 대한 숭상을 곧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여겨왔다.

백두산이 안고있는 민족의 력사에 대해 생각하느라니 문득 지난해 가을 백두산에 올랐을 때 이곳 사람들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회고하신 사실이라고 하면서 들려주던 이야기가 되새겨졌다.

백두산 장군봉밑의 천지기슭바위의 비석에는 《대태백 대택수 룡신비각》이라는 글이 새겨져있다고 한다.나라의 생존이 심히 우려되였던 20세기초에 대종교나 천불교의 관계인물인 천화도인에 의하여 세워졌다는 그 비석에도 밝혀져있는것처럼 우리 민족은 백두산을 지키는 천지의 룡신이 이 나라 사람들을 무궁토록 안정하게 해줄것을 기원하였다.

이렇게 민족의 존엄으로,나라의 흥망성쇠의 근본으로 우러르던 조종의 산이 봉건관료배들과 왜적의 무리에게 수난을 당해야 했을 때 백두산의 몸부림에 얼마나 비통한 피눈물이 온 나라를 강물처럼 적시였던가.

력사의 풍운속에 그 귀중한 존재마저 엄중히 위협당하던 백두산이 영원한 조선의 상징으로,민족의 넋으로,혁명의 발원지로 빛을 뿌리도록 하여주신분은 절세의 애국자이신 위대한 김일성동지이시다.

겨레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위대한 태양으로 솟아오르신 희세의 천출위인을 모시여 백두산은 민족의 재생을 알리고 주체시대의 려명을 안아온 혁명의 성산으로 자기의 성격을 달리하게 되였다.조상들처럼 백두산마루를 하늘로 통하는 길이 아니라 조국의 대문으로,인민들속으로 들어가는 교두보로 보신 우리 수령님께서 혁명의 길에 나서시여 백두산을 타고앉으신 때로부터 사화산이던 이곳에서 분출한 항일혁명의 용암은 2천만동포의 주목을 끌게 되였으며 백두산은 어디서나 보이는 민족해방의 활화산,혁명의 성산으로 되였다.

그래서 인민은 혁명의 성산이 전하는 우리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세세년년 전하기 위해 백두산정에 혁명사적기념비를 정히 세운것 아니던가.

그렇다.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과 더불어 백두산은 새로 태여났다.성스러운 조선혁명이 있어 백두산이 위대한것이다.

항일전의 빨찌산 김대장의 모습으로 거연히 솟아 빛나는 백두산을 그려보며 우리는 생각하였다.

백두산으로 가는 길은 조국해방의 위대한 은인이신 백두산청년장군을 찾아가는 길이며 순간도 멈출수 없는 영원한 혁명의 길이다.

해는 서산너머로 기운지 이미 오랬고 끊임없이 윙윙거리는 눈바람과 강추위에 강산은 얼어들었지만 백두밀림은 항일의 전역에 차넘쳤던 원쑤격멸의 대교향곡을 오늘도 전해주며 우리들의 마음을 정화시켜주고있었다.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말라

 

무두봉에서 하루밤을 지낸 우리는 아침일찍 행군길을 떠났다.뜻깊은 2월의 첫날에 백두산에 오른다는것으로 하여 우리의 가슴은 몹시도 부풀었다.

맑은 하늘에서는 갓 떠오른 태양이 눈부신 빛을 쏟고있었다.

밀림의 아침은 장관이였다.백두산에서 줄기차게 뻗어내린 하얀 산발들,가지마다 흰 연기같은 송라들을 줄줄이 드리운 거목들,깨알같은 보석들을 쫙 뿌려놓은듯 유난히도 반짝이며 황홀경을 펼친 눈의 세계…

상쾌함과 정갈함으로 특징적인 이런 신비경의 아침은 아마도 백두산일대에서만 볼수 있을것이다.

우리는 흰눈을 한웅큼 쥐였다.가벼웠다.하지만 이 눈이 백두산바람에 실리면 세상의 모든 악과 불의를 지구밖으로 내동댕이치는 혁명의 눈보라가 되고 그것이 소복이 쌓이면 은빛의 설경으로 어디에도 비길수 없이 아름답고 황홀한 천하의 절경을 펼친다.자연의 생명수에 적셔지면 투명하고 정결한 얼음이 되여 만물을 거울처럼 비쳐주고 따뜻한 봄날이면 고스란히 녹아 대지에 자양분으로 스며든다.

이렇듯 백두산에 시원을 두고 이 나라를 포근히 감싸주며 사람들에게 참다운 인생의 리치를 깨우쳐주는 정갈한 흰눈을 어찌 가볍다 하랴.

이런 생각에 잠겨 걸음을 옮기는데 백두산을 배경으로 모셔진 위대한 장군님의 명제비가 눈앞에 안겨왔다.백두산에서부터 18km 되는 지점이였다.

명제비에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밀림속을 지나 이렇게 백두산을 눈앞에 바라보며 걸으니 고향집대문을 열고 뜰안에 들어서는것만 같습니다라고 하신 교시가 력력히 새겨져있었다.

백두산의 문주와도 같은 명제비에서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를 새겨안느라니 가슴은 절로 벅차올랐다.

밀림속의 고향집대문,결코 누구나 느낄수 있는 사상감정이 아니였다.조선혁명이 생사결단의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하고 새로운 력사적전환기를 맞이하던 때,세계제패를 꿈꾸던 제국주의침략자들이 전쟁의 불도가니속에서 마지막발악을 하고있던 1940년대초 눈보라치는 2월에 백두산밀영귀틀집에서 백두광명성으로 탄생하신 우리 장군님께서만이 체험하실수 있는 크나큰 격정이였다.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헤쳐가신 백두의 행군길을 따라 백두산뜰안에 들어서는 심정으로 걸음을 다그쳤다.

백두산을 가까이할수록 눈보라는 더욱 세차졌다.방금전까지만 해도 잠풍한 날씨였는데 갑자기 백포자락이 날려오듯 커다란 눈바람이 내리꼰졌다가는 타래지어올랐다.맵짠 바람이 눈갈기를 날리면서 대기를 후려칠 때마다 수천수만개의 반짝이는 은빛칼날들이 휙휙소리를 내며 날려가는것 같았고 나무들도 넘어질듯이 우리를 향해 흔들렸다.

산림한계선을 지나니 깊은 골짜기들은 눈에 메워져있었지만 릉선마다에는 백두산고산지대특유의 갖가지 떨기나무들과 이곳 사람들이 정담아부르는 기발나무들이 아직 자기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하고있었다.하지만 그것들도 얼마 못 가 자취를 감추고 백두산부사땅우에 듬성듬성 눈무지를 다져놓은 평야지대가 나졌다.

백두산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이해에는 어떻게 된 일인지 눈이 오면 쌓일새 없이 백두산바람이 다 날려보낸다고 하는것이였다.

백두의 칼바람이 이 나라 천만군민의 가슴마다에 백두의 넋과 정신을 더욱 깊이 심어주기 위해 백두산에 내리는 흰눈을 온 나라에 휘뿌리는것은 아닌지.

백두산으로 오르는 길에서 사나운 바람이 휘몰아친다고 하여 중도에서 멈추거나 돌아서면 안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백두의 혁명정신,백두의 칼바람정신은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맞받아 뚫고나가는 완강한 공격정신이며 백번 쓰러지면 백번 다시 일어나 끝까지 싸우는 견결한 투쟁정신입니다.》

백두산으로 가는 길은 백두의 칼바람을 맞으며 걷는 혁명적신념의 길이다.항일의 혁명선렬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따르는 길에서 언제나 마음속으로 백두산에 오르면서 백두의 칼바람으로 자기의 신념과 의지를 억세게 벼리였기에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고 영생의 값높은 삶을 누릴수 있었으며 이 정의의 강풍에 겁을 먹고 주저앉거나 물러선자들은 맥없이 백두산을 내리였기에 혁명의 배신자,변절자가 되여 끝끝내 더러운 개죽음을 당하였음을 조선혁명의 신념의 력사가 잘 말해준다.

우리는 서로 팔을 꽉 끼고 백두의 강풍속을 헤치면서 혁명적동지애의 밑뿌리에 대하여 생각하였고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말라는 투사들의 절절한 당부를 심장에 새기였다.난관을 맞받아 뚫고나가는 완강한 공격정신이 무엇이고 백번 쓰러지면 백번 다시 일어나 끝까지 싸우는 견결한 투쟁정신이 어떤것인가가 페부로 느껴지는듯싶었다.그러느라니 입에서는 저도모르게 유격대행진곡이 울려나왔고 가슴은 절로 후더워졌으며 걸음도 느닷없이 빨라지는것만 같았다.《휘익-》 하고 귀전을 스치는 바람소리도 백두산호랑이가 날아가는 소리로 들리였고 얼굴을 때리는 눈보라도 백두산이 뿌려주는 꽃보라로 안겨들었다.

그렇게 한참 걷는데 언제 그랬던가싶게 바람이 뚝 멎고 밝은 해살묶음이 쏟아져내렸다.사나운 눈바람을 또 한차례 이겨낸 우리에게 따뜻한 축복을 보내는듯 백두산날씨는 참으로 천변만화하였다.

흰눈덮인 골짜기들을 보니 금방 바람이 지나간 자리가 눈파도처럼 력력히 새겨져있었다.백두의 눈보라,백두의 칼바람은 자기의 자리길을 남기는것이다.무심히 볼수 없었다.우리 장군님의 눈보라한생이 숭엄히 어려왔다.백두산의 위대한 아들이시였기에 우리 장군님의 마음속에서는 한평생 백두의 칼바람,백두의 눈보라가 언제 한번 멎은적 없었고 빨찌산식으로 이어가신 선군혁명령도의 그 길우에 백두의 혁명정신이야말로 영원한 조선의 정신이라는 숭고한 진리가 흐르게 되였다.정치,경제,군사,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백두의 눈보라가 세차게 일도록 하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 조국과 혁명앞에 쌓으신 불멸의 업적이 그대로 백두산의 높이와 무게로 여겨져 우리의 격정은 자못 컸다.

그것을 증명하듯 백두산정에 오르는 우리의 눈앞에 향도봉에 정히 새겨진

《혁명의 성산 백두산 

김 정 일

이라는 불멸의 글발이 거연히 안겨왔다.뜻깊은 글발을 가슴에 새길수록 어느해인가 일군들과 함께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헤치시면서 백두산에 오르시여 영원히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살며 싸워나가자! 이것이 오늘 백두산에 올라 더욱 굳게 다지게 되는 결의이고 또 동무들에게 하고싶었던 말이라고 교시하시던 위대한 장군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귀전에 들려오는듯싶었다.

백두산에 태줄을 묻은 이 나라 민족이 자기의 근본을 언제나 잊지 않고 온 나라에 항일의 불길속에서 창조된 백두의 혁명정신이 꽉 차넘치도록 하시기 위해 몸소 앞장에서 백두산에로의 답사길을 개척하시였고 혁명의 성산을 찾는 답사자들의 편의까지 생각하시며 답사뻐스로부터 백두산정의 지상궤도식삭도와 공중려객삭도에 이르기까지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신 위대한 장군님,

그이께서 백두의 위대한 손길로 천만의 심장마다에 심어주신 꺾일지언정 신념을 버리지 않는 고결한 정신,백번 쓰러지면 백번 다시 일어나 싸우는 견결한 투쟁정신인 백두의 혁명정신이 오늘은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말라고 떠미는 백두의 칼바람정신에 실려 새로운 주체100년대를 진감하고있다.백두산의 위대한 아들이신 우리 장군님의 거룩한 영상으로 빛나는 혁명의 성산이 당창건 70돐,조국해방 70돐을 맞는 뜻깊은 올해의 승리를 축복하고있다.

우리는 또다시 휘몰아치는 눈보라속을 뚫고 백두산정에 오르면서 백두산이 자기의 고귀한 혁명정신으로 새겨주는 절절한 당부를 다시금 가슴깊이 새기였다.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말라!

 

조국의 새날이 여기서 밝는다

 

잦을줄 모를상싶던 백두산의 눈바람은 우리가 백두산정에 거의 오를 때쯤에야 겨우 수그러들기 시작했다.해가 서산으로 기울무렵이였다.

백두산!

얼마나 오르고싶고 안기고싶던 혁명의 성산인가.

백두산정에 올라 천하를 굽어보느라니 사람의 한생에서 이렇듯 마음이 정화되고 숭엄해지는 순간이 과연 몇번이나 될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백두의 정갈한 공기를 한껏 들이키며 흰눈덮인 천지를 바라보아도 우리 조국의 천하제일경개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구나 하는 격정으로 가슴은 부풀었다.

열백번 쓰러져도 기어이 혁명의 성산에 올라 백두의 넋과 정신을 가슴에 새기리라는 각오를 안고 마침내 백두산정에 선 긍지와 자부가 마음을 진정할수 없게 하였다.

백두산에 저녁해가 지면서 온 천지가 아름다운 노을로 붉게 물들기 시작하였다.처음 보는 백두산의 저녁노을장관이였다.검푸른 하늘로 붉게 퍼져가는 백두의 저녁노을의 형상은 제국주의자들의 압살의 검은 마수를 풍지박산내고 시대의 온갖 찌꺼기들을 여지없이 날려보내는 선군의 붉은 칼처럼 우리들에게 안겨들었다.

우리는 백두산기상관측소에서 성지에서의 하루밤을 보내게 되였다.그 과정에 얼마나 감동깊은 력사의 순간순간이 여기 백두산정에 뜨겁게 새겨졌는가를 더 잘 알게 되였다.

주체103(2014)년 10월 하순 어느날,그날은 혁명의 성산이 또 한분의 백두산장군을 맞이한 뜻깊은 날이였다.

이날 장군봉에 오르시여 백두산의 눈보라는 백두의 칼바람이며 백두의 기상이라는 유명한 정식화를 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혁명가들은 백두의 칼바람맛을 알아야 한다고,백두의 칼바람은 혁명가들에게는 혁명적신념을 더 굳게 벼려주고 모든 기적과 승리를 가져다주는 따스한 바람이지만 혁명의 배신자,변절자들에게는 돌풍이 되여 철추를 내리는 예리한 바람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백두의 혁명정신,백두의 칼바람정신은 우리 군대와 인민이 심장속에 영원히 품어안고 살아야 할 숭고한 정신이며 온 세상 금은보화를 다 준다고 해도 절대로 바꾸지 말아야 할 제일 귀중한 정신적재보입니다.》

백두의 칼바람정신,정녕 그것은 새로운 주체100년대를 진감하고 추동하며 이끌어갈 위대한 조선의 정신이다.백두의 혁명정신,백두의 칼바람정신을 안고 살면 세상에 무서울것도 없고 못해낼 일도 없다.

우리는 기상관측소의 관측원들로부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맞으신 백두산칼바람이 어떤 광풍이였는가를 잘 알게 되였다.백두의 눈발이 사납게 흩날리던 그날의 바람속도는 초당 거의 30m였다고 한다.이런 바람이 터졌을 때에는 주먹만 한 돌덩이들도 눈송이처럼 날리고 자동차문은 물론 건물의 출입문도 열기 힘들어서 백두산사람들도 밖에 나설념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누구나 피하려고 하고 두려워하는 이런 백두산칼바람을 우리 원수님께서는 기꺼이 맞으시며 신념과 의지를 더욱 굳게 벼리시였고 최후승리의 그날을 확신하시였다.

눈보라치는 백두산에 올라 백두의 칼바람을 맛보아야 백두산의 진짜맛을 알수 있으며 조선혁명을 끝까지 완성하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지게 된다고 하시면서 칼바람부는 백두산정에 거연히 서신 경애하는 원수님,

정녕 칼바람부는 백두산은 경애하는 우리 원수님의 기상이고 위대한 김일성민족,김정일조선의 영원한 정신적재부이다.

우리는 다음날 새벽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그리도 만족해하신 흰눈계절의 백두산의 해돋이를 보기 위해 장군봉에 올랐다.

얼마후 온 천지를 붉게 물들이면서 멀리 앞쪽에서 진한 불덩어리가 불쑥 솟구치더니 어둠을 밀어내며 대지를 밝히기 시작했다.선군조선의 아침이 여기서 시작되고 그 광명한 미래가 여기서부터 밝아오고있는것이다.

장군봉이라고 쓴 표식주에 손을 얹고 흰눈을 배경으로 백두의 붉은 기폭이 휘날리는것만 같은 해돋이장관을 바라보느라니 백두산의 참모습은 역시 겨울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을 적셔주었다.

백두산의 해돋이처럼 백두의 칼바람정신은 여기 성산의 상상봉에서 줄기차게 뿜어져나와 온 나라를 정화시킨다.백두산에 오르면 누구나 수령을 알고 조국을 알게 되며 혁명을 락관하고 미래를 믿게 된다는 철리가 페부로 안겨든다.

백두산해돋이를 바라보며 한참이나 서있었으나 이상하게도 바람 한점 불지 않았다.오히려 따뜻한 기운이 백두산정을 휩싸안고있었다.2월의 봄은 백두산에서부터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소중히 갈마들었다.

함께 올라온 기상관측소의 관측원은 1년치고 이렇게 좋은 날씨는 정말 드물다고 하면서 이런 때에 우리 원수님을 또다시 백두산에 모시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하며 멀리 평양하늘가를 우러르는것이였다.

그러더니 우리를 이끌고 어느 한 곳으로 갔다.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백두산칼바람을 맞으시고 백두산의 해돋이를 부감하신 장소였다.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맞으시였던 그날의 칼바람앞에 자신들을 세워보며 과연 우리가 진짜칼바람을 맛보았는가 하는것을 되새겨보았다.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하지만 백두의 칼바람이 안고있는 만단사연은 우리의 심장속에 더욱 소중히 자리잡았다.

조선혁명의 발원지이고 승리의 상징이며 선군혁명의 영원한 등대인 백두산에 불어치는 혁명의 칼바람,

우리의 귀전에 백두의 칼바람을 맞으시며 혁명적신념을 더욱 벼려주고 최후승리의 앞길을 밝혀주는 백두의 칼바람을 안고 혁명의 길을 끝까지 걸어나가야 합니다라고 하시던 경애하는 원수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금시 들려오는듯싶었다.

그렇다.우리 군대와 인민에게는 백두산형의 천출위인께서 안겨주신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않을 결사의 의지를 백배해주는 사상정신적기둥,백두의 혁명정신,백두의 칼바람정신이 있다.

백두산이 혁명의 칼바람으로 이 땅의 천만군민을 소리쳐부르고있다.위대한 당의 령도따라 백두의 혁명정신,백두의 칼바람정신으로 조선혁명을 끝까지 완수하자라고.

본사기자 김준혁
특파기자 전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