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4(2015)년 3월 19일 로동신문

 

력사에 길이 전해갈 숭고한 동지애의 전설

신념과 의지의 화신 리인모동지와 그의 가족에게 베풀어주신
백두산절세위인들의 뜨거운 은정에 대한 이야기

 

지난 1월 애국렬사릉에서 만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적인 화폭이 펼쳐졌다.불굴의 통일애국투사인 리인모동지의 부인 김순임동지의 유해를 안치하는 의식이 진행된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김순임녀성이 사망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못내 가슴아파하시면서 친히 자신의 명의로 된 화환을 보내주시고 유해를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며 장의를 잘해주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리인모동지는 이미전에 우리곁을 떠나갔다.하지만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의 부인의 사후문제에 대해서까지 깊은 관심을 돌리시며 각별한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절세위인의 숭고한 동지적사랑과 혁명적의리의 세계앞에 유가족과 비전향장기수들 아니 온 나라 인민은 솟구치는 격정을 금치 못하였다.

 

어머니조국은 장한 아들을 잊지 않는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당과 우리 공화국은 인민들을 사랑과 믿음으로 이끌어주고 보살펴주며 그들의 운명을 지켜주는 가장 친근한 어머니당이고 어머니조국이며 당과 조국의 품은 인민들의 참다운 삶과 행복의 요람으로 되고있습니다.》

주체82(1993)년 3월 19일,력사의 땅 판문점에서는 인류사가 지금껏 알지 못한 사변이 펼쳐졌다.신념과 의지의 전형인 불굴의 통일애국투사 리인모동지가 판문점분리선을 넘어 꿈결에도 그리던 어머니조국의 품에 안긴것이다.

이날 민족의 장한 아들을 맞이하기 위해 수십리 연도에 꽃바다를 펼치고 《불사조 리인모!》를 목청껏 웨치던 환영군중의 목소리는 오늘도 우리의 귀가에 어제런듯 쟁쟁히 울려온다.

그 어느 영웅호걸도 받아본적 없는 열광적인 환영속에 조국의 품에 안긴 그를 보며 세상사람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당시 언론들은 이 광경을 보도하며 인권유린에 대한 인도주의의 승리,반통일책동에 대한 통일로선의 승리,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의 빛나는 승리라고 찬양하였다.

이 놀라운 세계사적사변을 안아오신분은 다름아닌 우리의 위대한 김일성동지김정일장군님이시다.

리인모동지가 생존하여 원쑤들과 싸우고있다는 기적같은 소식이 전해진것은 그의 수기가 남조선의 한 출판물에 실린 1989년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장군님께서는 수십년간의 모진 옥중고초를 당하면서도 당과 혁명앞에 다진 맹세를 끝까지 지켜 신념과 지조를 조금도 굽히지 않은 리인모동지가 남녘땅에서 아직도 정신육체적고통을 겪고있는데 대해 가슴아파하시였다.혁명전사 한사람한사람을 천금보다 귀중히 여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장군님께서는 리인모동지의 투쟁을 높이 평가하시며 그를 조국의 품으로 데려오기 위해 온갖 로고와 심혈을 기울이시였다.이 나날 우리 수령님께서와 장군님께서 리인모동지를 생각하시며 지새우신 밤은 그 얼마였는지 모른다.

리인모동지의 귀환을 위한 대책이 적극적으로 취해지던 주체81(1992)년 9월 6일이였다.

이날 《아세아의 평화와 녀성의 역할》(당시)에 관한 제3차 평양토론회에 참가한 대표들을 만나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표들속에 리인모동지의 딸 리현옥동무가 있는것을 알게 되시였다.리인모동지가 두고간 딸,이제는 벌써 어머니가 된 그를 보시는 순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잃었던 혈육을 다시 찾으신듯 이윽토록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시였다.이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등을 두드려주시며 너의 아버지를 아직 데려오지 못하여 안됐다고,우리 꼭 아버지를 데려오자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동지를 위해서라면 천리길도 헤쳐가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의리와 동지애의 풍모를 이어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리인모동지의 귀환을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밀고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그이께서는 남측대표단과 회담을 할 때마다 리인모동지를 데려오는 문제를 상정시키도록 하시였으며 세계의 량심을 불러일으켜 리인모귀환투쟁을 벌리며 안해와 딸이 그에게 편지를 보내여 용기를 내게 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가르쳐주시였다.어느해 정초에는 올해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리인모를 꼭 데려와야 한다고,그의 생명이 위급하다는데 그냥 남쪽에 있으면 죽을수도 있으니 빨리 조국에 데려다 살려야 한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그리고 그가 처자와 만나 살면서 손자,손녀를 앞세우고 모란봉에도 오르고 평양의 거리를 거니는 모습을 보아야 마음을 놓겠다고 이르시였다.

각박한 세상에서 인정이 그리운 그에게 해외의 인사들과 동포들이 련일 찾아가 고무격려해주었고 세계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리인모귀환을 요구하는 운동이 활발히 벌어졌다.여기에도 리인모동지의 귀환을 위해 그토록 마음쓰신 우리 장군님의 자애로운 손길이 어리여있었다.

리인모동지의 딸 리현옥동무는 아버지의 귀환을 위해 한없는 로고를 바쳐가고계시는 위대한 장군님께 뜨거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삼가 편지를 올리였다.

그의 편지를 보시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신념과 의지의 화신 리인모동지를 우리 당은 잊지 않고있습니다

김 정 일

1993.2.24.》

라는 은정넘친 친필서한을 보내주시였다.

그 고귀한 친필속에는 모진 악형을 당하면서도 한번 다진 혁명신념을 버리지 않고 꿋꿋이 싸운 리인모동지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높은 평가와 믿음,전사를 기어이 당의 품으로 데려오시려는 그이의 철석의 의지가 그대로 집약되여있었다.

리인모동지가 돌아온 시기로 말하면 핵문제를 둘러싸고 우리와 적들사이의 치렬한 대결이 벌어지고있던 때였다.적대세력의 악랄한 반공화국압살책동에 대처하여 준전시상태가 선포된 이 준엄한 시기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리인모동지를 데려오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작전을 펼치시였다.

아무리 정세가 긴장하고 준전시상태라고 하여도 리인모동지를 데려와야 한다.우리를 믿고 30~40년을 싸워온 동지인데 우리가 그를 구원하지 않으면 누가 구원하여주겠는가.

위대한 장군님의 이 말씀을 새겨안으며 일군들은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그이의 고결한 혁명적동지애와 의리의 세계를 다시금 깊이 느끼였다.

사람들은 리인모동지가 조국으로 돌아올 때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를 위하여 얼마나 마음쓰시였는가 하는것을 다는 모를것이다.리인모동지의 귀환을 국가적행사로 잘 조직할데 대해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느라고 밤을 꼬박 새우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판문점분리선을 넘어설 때 병약한 그의 신변에 있을수 있는 여러가지 정황에 대처한 모든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천연암반도 녹여내는 백두산절세위인들의 그 뜨겁고 열렬한 동지적사랑과 은정이 있어 마침내 리인모동지는 살아서는 안길수 없다고 생각했던 조국,꿈결에도 그리던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였다.

 

생의 젖줄기,영생의 품

 

판문점분리선을 넘을 당시 리인모동지의 건강상태는 죽음의 계선을 넘나들고있었다.심장기능은 극도로 쇠약해지고 페농양이 왔으며 운동기능상태는 령에 가깝고 심한 언어,호흡장애까지 겹쳐있었다.이로부터 남조선의사들은 그가 조국으로 간다고 해도 며칠을 넘기지 못할것이라고 장담하였었다.점적관을 통하여 방울방울 떨어지는 액체로 실날같은 생명을 유지하고있는 리인모동지의 모습은 그야말로 마지막호흡을 삼키는 림종의 모습이였다.

하지만 혁명전사들을 위해서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와야 한다는 우리 장군님의 뜨거운 동지적사랑은 죽어가던 인간에게 재생의 활력을 부어준 불사약이였고 죽음을 밀어내고 삶을 이어준 생의 젖줄기였다.

드디여 사랑의 대지에서 리인모동지는 꺼져가던 생을 되찾았다.원쑤들의 모진 악형에 의해 숨쉬는 화석,시들어버린 고엽처럼 되였던 그는 전설과도 같이 살아났다.그에 대해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하였다.정말 기적이였다.

너무도 사려깊고 자애로운 위대한 태양의 뜨거운 사랑과 은정에 리인모동지는 기나긴 옥중투쟁의 나날에도 보이지 않던 눈물을 끝내 쏟고야말았다.

의료일군들의 정성과 노력에 의해 그의 병세가 점차 호전되여간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누구보다 기뻐하신분은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주체82(1993)년 4월 15일,만민의 축복을 받으셔야 할 이 뜻깊은 태양절날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만나주시려 몸소 병원에 나오시였다.

수십년세월 자나깨나 위대한 수령님과 우리 당만을 생각하며 신념을 지키고 생명을 지탱하여온 리인모동지였다.그는 한생을 바쳐 신념의 기둥으로 받들며 그토록 뵙고싶어하던 위대한 수령님앞에서 몸을 일으켜세울수 없는 죄스러움에 어찌할바를 몰랐다.

하지만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심정을 헤아리시고 허리를 굽히시여 전사를 뜨겁게 포옹해주시였다.이어 리인모동지의 두손을 꼭 잡으시고 동무는 원쑤들의 온갖 고문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혁명적지조와 절개를 지켜 용감히 싸워이겼다고,조선로동당원의 고결한 혁명정신과 숭고한 풍모를 온 세상에 과시하였다고 분에 넘치는 치하를 주시였다.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인모동지에게 그가 해방직후 입당할 당시의 당원증번호와 자신의 존함이 새겨진 조선로동당 당원증을 몸소 수여해주시고 고문으로 뼈까지 탈린 그의 가는 손목에 금시계도 채워주시였다.그러시고는 그의 곁에 서시여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데 있단 말인가.최고의 단상에 편히 모셔야 할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신채 사진을 찍으시다니…)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런 생각으로 울먹이는 전사의 어깨를 다독여주시며 원쑤와 싸워이긴 불굴의 투지와 신념을 가지고 병치료를 잘하여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고 조국해방전쟁승리 40돐기념 열병식장에 나서자고 뜨겁게 고무하여주시였다.

그날 리인모동지는 40여년동안이나 가슴에 품고싶었던 그 당원증에 얼굴을 묻은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파란많은 인생고초를 겪으면서도 어느 한시각도 잊어본적 없는 당원증이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고귀한 정치적생명을 지켜 육체가 만신창이 되는 속에서도 자기 생일을 우리 당이 창건된 날로 고쳐부른 그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장군님께서는 최악의 역경속에서도 당만을 믿고 변함없이 싸운 그를 영광의 단상에 높이 세워주시였다.남조선에서 투쟁하고있을 때 벌써 영웅의 금별메달 수훈자로 내세워주시고 조국의 품에 안기였을 때에는 공화국의 최고훈장인 김일성훈장을 수여해주도록 하신 크나큰 믿음,리인모동지의 고향에 있는 인민학교(당시)에 그의 이름을 달게 하신 뜨거운 은정…

어찌 그뿐이랴.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리인모동지를 전승 40돐을 맞으며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되는 전국로병대회와 경축열병식장의 주석단에도 내세워주시였다.

앞가슴에 김일성훈장과 영웅의 금별메달을 달고 주석단에 앉은 리인모동지는 문득 평양에서 진행된 전쟁승리를 경축하는 열병식소식을 전해듣고 그 승리자의 열병대오에 자신을 세우며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승리자로서 참되게 살아나갈 결심을 다지던 일이 생각났다.그토록 서고싶던 승리자의 단상에 리인모동지는 40년세월이 흘러 비로소 서게 되였다.

그는 숨쉬는 화석으로 불리우던 자기에게 새 삶과 정치적생명을 안겨주시고 인생의 모든 영광과 행복을 다 베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와 장군님께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드리면서 앞으로도 영원히 당을 따라 혁명의 천만리길을 꿋꿋이 걸어갈 불타는 결의를 다지였다.

리인모동지는 자기의 맹세를 실천하는 길은 조선인민군 종군기자로서의 임무를 끝까지 수행하는것이라고 믿었다.하여 그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안겨주신 사랑의 힘으로 붓대를 잡았다.

창작전투가 계속되는 속에 헌시 《나의 운명을 두고》,《사랑에 대한 생각》,《신념과 의지의 찬가》,가사 《당신만 있으면 우리는 이긴다》를 써낸 그는 자기의 충정이 어린 작품들을 위대한 장군님께 삼가 올리였다.

이렇게 시와 가사를 쓰는것으로부터 창작활동을 시작한 리인모동지는 절세의 위인들이신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을 모시여 우리 인민이 누리고있는 긍지와 자랑,행복을 노래한 《우리는 수령복이 있습니다》라는 글을 완성하여 《로동신문》에 게재하였다.련이어 《우리는 정말 수령복이 있습니다》,《우리 나라에 당복이 차넘칩니다》,《우리 민족의 대행운은 장군복입니다》,《우리는 태양복에 삽니다》라는 글을 써내여 우리 군대와 인민을 백두산절세위인들을 높이 모신 크나큰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에 넘쳐 위대한 당을 따라 주체혁명의 한길로 힘차게 투쟁해나가도록 고무추동하는데 적극 이바지하였다.

리인모동지의 이러한 창작성과를 두고 누구보다 기뻐하신분은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그이께서는 리인모동지가 글을 아주 잘 썼다고 치하하시면서 그는 수령복과 당복에 대한 글을 비롯하여 좋은 글을 많이 써냈다고 높은 평가를 주시였다.

돌이켜보면 위대한 장군님께서 돌보셔야 할 일,관심하셔야 할 대상들이 얼마나 많았던가.하지만 그이께서는 리인모동지를 언제나 잊지 않으시고 전선시찰과 현지지도의 바쁘신 길에서도 그의 병상태를 놓고 마음쓰시며 끝없는 사랑을 부어주시였다.2층에 있던 그의 침실이 아래층으로 옮겨진것도,위생실과 목욕탕이 침실곁에 새로 꾸려진것도,출입문이 개조되고 집안의 문턱들이 모두 없어진것도 다 위대한 장군님의 다심한 보살피심을 떠나 결코 생각할수 없다.

그가 입맛을 잃을세라 희귀한 남방과일과 물고기도 보내주시였으며 건강과 영양상태를 유지하도록 각종 보약들과 고급영양제들을 안겨주시였다.남녘의 감방에서 추위에 떨어야 했던 리인모동지의 정상이 그리도 가슴아프시여 인민들이 지성담아 올린 선물새털이불마저 그에게 보내주시고 외국에서 병치료를 받도록 해주신 우리 장군님의 그 사랑은 또 얼마나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었던가.

리인모동지는 그 열렬하고 무한대한 장군님의 사랑속에서 조국에로의 귀환후 불과 며칠밖에 못산다던 남조선의학계의 진단을 부정하고 14년간이나 행복속에 보람찬 삶을 누릴수 있었다.

그러던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못내 애석해하시며 자신의 명의로 된 화환을 보내주시고 그의 장의식을 인민문화궁전에서 우리 당과 조국력사에 있어본적이 없는 인민장으로 하며 유해를 애국렬사릉에 안장하도록 해주시였다.

그리하여 그의 삶이 신념과 의지의 화신이라는 고귀한 칭호와 더불어 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영생하도록 해주시였다.

정녕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은 리인모동지의 정치적생명을 빛내여주시고 그에게 생의 기적과 영생의 삶을 안겨주신 위대한 은인이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장군님께서 개척하시고 빛내여오신 동지애의 력사는 또 한분의 절세의 위인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높이 모시여 오늘도 변함없이 이어지고있다.리인모동지의 부인 김순임녀성이 받아안은 뜨거운 사랑은 열렬한 동지애,인민사랑의 세계를 수놓아오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고매한 천품을 그대로 체현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을 높이 모신 내 조국에서만 찾아볼수 있는 감격적인 화폭이다.

리인모동지와 그의 부인이 받아안은 전설같은 사랑의 이야기는 동지애의 최고화신이신 백두산절세위인들에 대한 열화같은 찬가로 길이길이 전해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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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수령,위대한 당이 안겨준 사랑과 믿음,고귀한 정치적생명이 있어 혁명전사들의 불굴의 신념과 의지가 있고 빛나는 삶과 영광이 있거늘 백두의 천출위인을 령도자로 모시여 우리 군대와 인민의 혁명신념은 언제나 변함없으며 인생의 삶도 무궁토록 영광스럽고 행복한것이다.

본사기자 라설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