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4(2015)년 3월 7일 로동신문

 

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영생하는 신념과 의지의 전형

조선인민군 종군기자였던 비전향장기수 리인모동지의 투쟁행로를 더듬어

 

혁명의 수도 평양의 통일거리에는 떠나간 혁명전사에게 가장 값높은 영생의 삶을 안겨주시려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은정깊은 사랑에 의해 세워진 불굴의 통일애국투사 리인모동지의 반신상이 있다.

조국통일상 금메달이 부각되여있는 화강석대돌우에 34년간의 옥중고초가 슴배여있는 수인복차림으로 철쇄에 묶인 두주먹을 억세게 틀어쥐고있는 리인모동지의 모습은 사람들로 하여금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한없이 뜨거운 동지애,의리의 세계와 함께 절해고도에서도 변심없이 혁명적지조를 지켜 견결히 싸운 그의 불굴의 삶에 대하여 돌이켜보게 한다.

리인모동지는 전생애를 통하여 혁명가는 자기 수령,자기 당을 어떻게 받들어야 하며 당과 혁명앞에 다진 맹세를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는가를 실천으로 보여준 강의한 신념과 의지의 전형이였다.

 

신념의 억센 줄기를 자래워준 품

 

어떻게 산 인생이 가장 영광스럽고 행복한 삶으로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게 되는가.위대한 당과 생사운명을 함께 하며 시련의 천만고비를 넘고 헤쳐온 우리는 그에 대해 세상에 대고 소리높이 말한다.당과 수령을 따르는 길에서는 기쁨도 슬픔도 시련도 영광이라는 신념을 굳게 간직하고 그것을 끝까지 지켜 싸우는 혁명가의 생이 가장 긍지높고 빛나는 인생이라고.

리인모동지를 비롯한 비전향장기수들의 삶과 투쟁이 오랜 세월 력사의 기억속에 길이 남아 빛을 뿌리고있는것은 그들이 당과 수령께 무한히 충직한 혁명가들로서 언제나 변함없이 깨끗하고 굳센 송죽같은 절개의 소유자,꺾일지언정 절대로 굽히지 않는 신념과 의지의 강자들이기때문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조선인민군 종군기자였던 비전향장기수 리인모로인은 신념과 의지의 화신입니다.》

리인모동지는 타고난 신념의 강자가 아니였다.하다면 그토록 강직한 그의 신념과 의지는 과연 어떻게 싹트고 자라난것인가.

리인모동지가 산 시대는 1917년부터 2007년까지의 범상치 않은 나날이였다.바로 여기에 우리 민족사의 사변들이 기록되여있다.일제식민지통치의 무거운 암운,삼천리를 뒤흔든 조국해방의 환호성,가렬처절한 3년간의 조국해방전쟁,지속되는 민족분렬의 비극…

리인모동지는 이 시대의 한복판에서 살아온 사람이였다.일제식민지통치의 암담한 시기 량강도 김형권군의 가난한 화전농의 가정에서 태여난 그는 나라잃은 망국노의 설음이 무엇인가를 뼈에 사무치게 체험하며 자랐다.

개마고원의 궁벽한 벽촌에 파묻혀있던 10대의 어린 가슴에 커다란 충격을 준것은 1930년 8월에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권선생님께서 울리신 파발리의 총성이였다.풍산땅 파발리 일제경찰관주재소에서 악질순사부장 《오빠시》놈을 처단한 김형권선생님께서는 모여든 군중앞에서 우리는 일제놈들을 몰아내고 조국을 되찾기 위한 각오로 싸우는 백두산의 김일성장군부대라고 하시면서 조국해방의 신심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힘있는 연설을 하시였다.식민지조선에 전설적인 장군이 출현하였다는 희한한 소식은 일본도를 차고 거들먹거리는 왜놈들만 보면 증오심이 불같았으나 어떻게 울분을 터칠지 몰라 모대기던 리인모의 가슴에 비껴든 한줄기의 서광이였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그는 흥분으로 하여 온밤 잠들수 없었다.

(조선민족은 싸우고있다.가자,조국해방을 위해 싸우시는 김일성장군님의 항일무장부대를 찾아가자.)

이렇게 되여 그는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슬하에서 싸울 결심을 품고 동북땅으로 달려가 김일성장군님을 찾아헤매였다.그때로부터 몇해가 지난 1937년 6월 력사적인 보천보전투를 승리에로 이끄신 김일성장군님께서 동포들에게 저 불길을 보느냐고,조선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선언하신 소식은 리인모동지의 가슴속에 민족구원의 위대한 태양이신 장군님에 대한 존경과 흠모심이 더욱 끓어번지게 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에 리인모동지는 뜻밖에도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를 만나뵙게 되였다.보천보전투가 끝난 직후 풍산땅에 나오시여 조국광복회조직을 친히 무어주시고 지도해주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를 따뜻이 만나주시고 김일성장군님께서 창건하신 조국광복회 창립선언과 10대강령의 내용에 대하여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도 해주시며 장군님을 높이 받들어 조국을 해방하고 대를 이어가며 부강발전시켜야 한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그러시면서 그가 조국광복회 회원으로 활동하는데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귀중한 가르치심과 활동방향까지 세세히 일깨워주시였다.

김정숙어머님의 손길을 따라 혁명의 진리를 깨닫고 투쟁의 길에 나선 리인모동지는 조국광복회 풍산지구혁명위원회 서부지구 책임자로 활동하면서 조직을 확대하고 김일성장군님의 전민항쟁로선을 관철하기 위하여 헌신적으로 싸웠다.그 나날은 리인모동지의 가슴속에 싹트고 자란 혁명적신념과 의지가 억센 줄기로 성장한 잊지 못할 나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 대해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이렇게 쓰시였다.

《…리인모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이 아니였다.그를 세계적으로 이름난 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 만들어준것은 조국광복회조직이였고 그 조직의 씨앗을 삼천리 방방곡곡에 뿌리기 위해 천신만고를 다한 백두산의 투사들이였다.》

리인모동지에게 있어서 위대한 수령님은 곧 우리 당이였고 당은 곧 그의 신념의 기둥이였다.리인모동지는 백두산절세위인들을 따르며 자래운 신념을 위대한 우리 당만을 믿으며 억척같이 굳혔다.하기에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영광스러운 우리 당을 창건하신 그해에 수령님과 당을 한생토록 받드는 혁명의 전위투사가 될 굳은 결심안고 당에 들었다.

리인모동지가 당원의 영예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며 당을 받들어 변함없이 살 각오에 넘쳐있었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결혼한 후 안해가 조선로동당에 입당했을 때였다.리인모동지는 너무 기뻐 퇴근하는 길로 부엌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며 안해를 덥석 그러안고 이렇게 말하였다.

《잊지 마오! 당원의 영예를 지닌 오늘을 그리고 당원증번호를 말이요.당원증은 조선로동당의 한 전사임을 말해주는 증표요.당앞에서 맹세했다는 증표란 말이요.당신이나 나나 이걸 잊으면 사람이 아니지.》

그날 리인모동지는 안해와 함께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위대한 수령님과 조선로동당의 충직한 전사로 살며 설사 죽어도 당을 받들어 떳떳이 죽을것을 굳게 다짐했다고 한다.

 

죽어도 혁명신념 버릴수 없다

 

신념의 진가는 시련을 통해 검증되는 법이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는 리인모동지에게 닥쳐온 첫 시련이였다.미제침략자들이 전쟁을 도발하자 손에 총과 붓을 들고 종군기자로 활동하면서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을 영웅적투쟁과 위훈에로 고무추동하던 리인모동지는 일시적후퇴시기를 맞게 되였다.그의 앞에는 대오를 따라 후퇴하여 북으로 가겠는가 아니면 지리산에 들어가 빨찌산투쟁을 하겠는가 하는 두갈래의 길이 놓여있었다.운명적인 선택의 시각 그는 무장을 들고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길,가장 어려운 적후투쟁의 길을 택하였다.

지리산인민유격대에서 용감히 싸우던 그는 불행하게도 1952년 1월 총상을 입고 적들에게 체포되였다.그의 옥중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이때에도 그에게는 전향문을 쓰고 나가느냐 아니면 모진 옥중고초를 이겨내며 신념과 지조를 지키느냐 하는 두 길이 있었다.신념을 버릴 마음을 먹으면 전향문에 지장을 찍는데는 불과 1초도 안 걸린다. 그러나 그는 추악한 변절이고 배신인 전향을 끝까지 거부하고 감옥에 남는 길을 서슴없이 택하였다.

리인모동지에게도 소중한 꿈이 있었다. 삶에 대한 애착과 행복에 대한 지향은 누구보다 강렬하였다.하지만 삶이냐 죽음이냐 하는 엄혹한 나날 그의 심장속에는 언제나 당원증을 가슴에 품고 한생을 수령의 전사로 충직하게 살며 싸울것을 다짐한 그 맹세,조선로동당의 당원이라는 자각이 맥박치고있었다.

리인모동지의 기나긴 옥중생활을 어찌 글로 다 옮길수 있으랴.

그가 갇혀있은 감방은 손으로 재여 너비 다섯뽐반,길이 열세뽐짜리 해빛 한줄기 스며들지 않는 먹방이였다.교형리들은 그를 이런 캄캄한 독감방에 가두어넣고 《전향 안한 빨갱이들은 영원히 해빛을 못 보게 해야 한다.》고 떠벌이며 뼈가 부서지고 살점이 짓이겨지는 야수적고문을 가하였다. 추운 겨울날 옷을 벗긴 알몸에 얼음같은 랭수를 퍼붓고 꽁꽁 묶어 공중에 매달아 두들겨패는 고문,고문대에 묶어놓고 코에다 물을 부어넣는 고문,무리로 달려들어 몽둥이로 사정없이 때리는 고문…

사람들이여,잠시라도 자신을 그의 한생이 흘러간 그 캄캄하고 비좁은 독감방에 세워보라.그리고 해볕을 받고 땅을 밟을 권리마저 빼앗긴채 갖은 악형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숨쉬는 화석의 고통을 되새겨보라.그러면 그 모진 고초를 과연 무슨 힘으로 이겨낼수 있었는가 하는 물음이 저절로 생겨날것이다.

서울형무소를 거쳐 대전형무소로,거기에서 다시 광주형무소,부산형무소로 이송되며 34년,날자로만 세여도 그것은 1만 2,400여일에 달한다.이 나날은 그대로 전향과 비전향사이의 치렬한 싸움이였다.전향공작반깡패들이 매일같이 가하는 중세기적인 고문과 갖은 회유기만,비렬한 모략과 끈질긴 위협공갈속에 참기 어려운 배고픔과 추위가 엄습하는 감옥생활은 이루 형언할수없이 처절한것이였다.

육체와 정신을 사정없이 파고드는 극도의 고통을 리인모동지는 우리 수령님을 생각하고 우리 당을 생각하고 어머니조국을 생각하며 견디여냈다.

(내가 아무리 고통스럽다 해도 항일의 혈전만리길에서 겪으신 우리 수령님의 풍상고초에 어찌 비길수 있겠는가.그리고 당원의 량심과 두고 온 고향,사랑하는 부모처자를 어찌 배신할수 있겠는가.)

그의 뇌리에는 항상 이 생각이 고패쳤다고 한다.

《캄캄한 먹방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며 다리도 못 펴고 웅크리고있느라면 나도 사람인데 그만 전향서에 손도장 하나 찍어주고말가 하는 생각이 왜 들지 않겠는가.

그런데 육체적고통에서 벗어나고싶은 본능이 나올 때 저절로 풍산에서,흥남에서 새 조국건설사업에 신바람나게 뛰여다니던 시절이 못 견디게 그리웠다.》

《나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면서도 이를 악물었다.〈나는 그 맹세를 지켜야 한다. 이 시련을 이겨내야 한다.나는 굴복하지 않는다.〉고 다짐했다.》

《우리를 고문한자들은 전향하지 않은 우리들에게 〈악질,독종빨갱이〉라고 했다.그리고 〈사상을 버리지 않겠다니 빨갱이사상이 무섭긴 무섭다.〉고 했다.》

이것은 리인모동지가 쓴 수기의 몇토막들이다.

바로 그것이였다.위대한 수령님과 당앞에 다진 맹세,풍산에서 김정숙어머님으로부터 받은 각별한 믿음과 사랑,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은 정녕 세인을 놀래운 그의 완강한 신념과 의지의 버팀목이였다.

비록 원쑤들은 그의 육체는 파괴하였지만 정신은 어쩌지 못하였다.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정치적생명을 지켜 굴함없이 싸워 수령님과 당을 받드는 조선로동당원의 고결한 혁명정신과 강의한 의지를 온 세상에 과시하였다.

신념을 지키는 싸움은 감옥밖에서도 계속되였다.리인모동지가 인생의 귀중한 시절을 철창속에 다 묻고 감옥문을 나섰을 때는 70고령의 나이였다.

원쑤들은 그가 출옥한 후에도 탄압과 박해를 계속하였다.

하지만 리인모동지는 장기간의 감옥살이로 페인이 되고 뇌출혈로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자기가 조선로동당의 한 성원임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그리고 지리산에서 《조국통일 만세!》를 웨치며 싸운 동지들의 투쟁을 기록해 후세에 전하는것이 당적분공을 수행하고 종군기자로서의 임무를 다하는것으로 여긴 그는 기억들을 하나하나 더듬어 수기들을 썼고 그 나날에도 통일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조국은 당과 수령,조국과 혁명에 충실한 아들을 수십년세월 어느 한시도 잊지 않고있었다.남조선에서 옥중고초를 겪으면서도 끝까지 신념과 지조를 지킨 그를 잊지 않으시고 적극 내세워주시며 조국의 품으로 데려오기 위해 온갖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신분은 다름아닌 위대한 김정일동지이시였다.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어머님께서 리인모동지에게 백절불굴의 혁명신념을 안겨주시였다면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를 온 세상이 다 아는 신념과 의지의 강자로 높이 내세워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동지애와 고결한 혁명적의리에 의해 리인모동지의 귀환을 위한 투쟁이 각 방면에 걸쳐 적극 진행되여 그는 40여년간의 적구투쟁을 마치고 그립고그리운 어머니조국의 품에 안길수 있게 되였다.

그무렵 서울에서 왔다는 어느 한자가 그에게 찾아왔다.그는 북으로 돌아가는것을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보는것이 어떻겠는가고 하면서 지금 모스크바도 넘어지고 사회주의도 다 없어지는데 북으로 꼭 가야 하겠는가고 빈정거렸다.

그때 리인모동지는 이렇게 단호히 말하였다.

《내 조국은 북이지 남이 아니다.시국이 어떻든 내가 내 조국으로 가자고 하는데 무슨 상관인가.내 길을 막지 말라.》

한생을 위대한 수령님과 당을 받들어 신념과 지조를 지켜온 리인모동지는 자신의 온몸을 정치적신념의 고향에 묻고싶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동지애와 고결한 혁명적의리에 의해 리인모동지는 주체82(1993)년 3월 19일 드디여 어머니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리인모동지에게 신념과 의지의 화신이라는 고귀한 칭호와 함께 공화국2중영웅칭호,공화국의 최고훈장인 김일성훈장,조국통일상을 비롯한 높은 국가표창을 안겨주시여 그의 삶을 값높이 내세워주시였다.

얼마전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천품을 그대로 지니시고 동지애로 시작되고 동지애로 승리하는 우리 혁명의 자랑스러운 력사를 줄기차게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선군령도의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리인모동지를 다시금 회고하시며 그를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 시대가 낳은 신념과 의지의 전형으로 높이 내세워주시고 온 나라가 그의 정신세계를 따라배우도록 하시였다.

정녕 경애하는 원수님이시야말로 당과 수령,조국과 인민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친 혁명전사들을 언제나 잊지 않으시고 그들의 한생을 영원히 빛내여주시는 위대한 삶의 은인,혁명적동지애의 최고화신이시다.

리인모동지의 삶과 투쟁은 우리모두에게 죽어도 혁명신념을 버리지 말라,그러면 최후승리자가 되고 당과 수령,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영생한다는 고귀한 인생철리를 가르쳐주고있다.

본사기자 라설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