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4(2015)년 3월 16일 로동신문

 

북핵이야기

중국인터네트신문 《1코리안뉴스》에 실린 글

 

중국인터네트신문 《1코리안뉴스》는 우리 나라가 2005년 2월 10일 핵보유국이라는것을 선언한 때로부터 10년이 되는것과 관련하여 2월 10일부터 15일까지의 기간에 《북핵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을 련재하였다.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0년전 2005년 2월 10일 조선외무성은 세계를 향해 핵무기보유를 선언했다.조선이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이미 제조했다는것이다.

그 성명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이 핵몽둥이를 휘두르면서 우리 제도를 기어이 없애버리겠다는 기도를 명백히 드러낸 이상 우리 인민이 선택한 사상과 제도,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고를 늘이기 위한 대책을 취할것이다.

우리는 이미 부쉬행정부의 증대되는 대조선고립압살정책에 맞서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단호히 탈퇴하였고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

우리의 핵무기는 어디까지나 자위적핵억제력으로 남아있을것이다.》

미국주도의 세력들이 조심스럽게 밟아가던 핵얼음판에 또다시 《돌》이 던져졌고 이 공식적인 천명은 최대의 파고를 그리며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이 《돌》이 력사에 끼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완화》,믿지 않았다

 

그때 미국은 조선에 긴장완화의 신호를 보내고있었다.부쉬 2기(2005년 2월 2일)임기 첫 년두국정연설이 그 대표적실례이다.국무장관 라이스가 이미 조선에 대해 《폭압정치의 전초기지》라고 발언했던것을 부쉬는 반복하지 않았다.부쉬는 국정연설에서 조선을 격분케 한 그 표현을 쓰지 않았다.1월 20일 취임사에서 《폭정의 종식》과 《자유의 확산》을 강조했던것과도 달랐다.이것은 조선에 대한 미국의 완화신호와 같은것이였다.

완화의 신호를 보낸것은 미국만이 아니였다.2004년말 미국과 유럽 각국을 순방한 로무현은 미국이 조선에 대해 강경책을 실시하는것을 찬성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언명했다.일본도 마찬가지였다.《랍치문제》때문에 여론들이 들끓었지만 수상 고이즈미 즁이찌로는 조선에 대한 경제제재를 발동하지 않겠다고(부쉬가 친서에서 권고한데 따라) 동의약속했다.중국과 로씨야도 미국측에서 신축성있는 태도를 취할것과 각측이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위해 노력할것을 줄곧 호소하였었다.

세계가 조선의 립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바로 이러한 시기에 조선은 6자회담참가를 무기한 중단한다는것과 함께 핵무기를 가지고있다는것을 선포함으로써 전혀 예상밖의 승부수를 던졌다.

모두가 이것을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보았다.그러나 세차례 진행된 6자회담과정과 그즈음 벌어진 북미간의 사건들을 살펴보면 이것이 돌발적인 행동이 아님을 잘 알수 있다.

그 당시 잡지 《민족 21》은 《1,2차 6자회담에서 미국은 〈북핵의 완전하고,검증가능하며 돌이킬수 없는 핵페기〉(CVID)라는 북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다.》며 《3차회담에 와서야 3개월시한의 〈다단계의 포괄적비핵화안〉을 제시했지만 그것도 회담후 넉달을 넘기지 못하고 〈북한인권법〉을 채택하고 〈망명정부설〉을 류포하는 한편 소형라지오살포 등 대북심리전을 강화하면서 북을 압박하였다.》고 론평하면서 《〈붕괴론〉을 대신한 〈정권변형론〉을 제시하는 한편 주한미군은 휴전선근방의 공중정찰 등을 통해 공공연히 무력시위를 벌리고 최근에는 미행정부 고위관리가 북이 정제된 우라니움을 리비아에 수출한 증거가 있다며 또 한번 분위기를 험악하게 몰아갔다.부쉬 2기행정부의 련이은 강경발언도 6자회담복귀를 촉구하는 미국의 본심을 의심케 하는것이였다.》고 분석하였다.

이 분석은 결국 북이 부쉬가 2월 2일 국정연설에서 보여준 다소 유화된 태도에도 불구하고 《북과의 공존이나 대조선정책전환》이라는 《충분한 조건과 분위기》가 마련되지 못했다고 최종결론을 내린것에 대한 당위성을 충분히 제공하고있다.

전 주《한》미대사인 도날드 그레그는 《내 생각에는 그들이 6자회담에서 정말로 의미있는 그 무엇이 나올것이라고 확신하기 전까지는 6자회담에 참가하고싶지 않다는것을 알린것이라고 본다.》고 하면서 실망을 표시했다.

부쉬 미국대통령과 뿌찐 로씨야대통령은 슬로벤스꼬의 수도 브라찌슬라바에서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조선핵보유반대에 합의했다.고이즈미수상도 중의원예산위원회에서 조선이 6자회담에 돌아올것을 요구했다.

조선이 진짜 핵을 보유하고있는가 하는 의혹이 사람들의 머리속에 자리잡으려 하고있을 때 미국방성 국방정보국의 보도가 발표되였다.조선이 12개에서 15개 정도의 핵무기를 가지고있다는것이였다.

그후 조선은 6자회담탁에 앉았다.

6자회담에 참가한 조선대표를 보면서 대국들은 다소 안도의 숨을 내쉬였으나 그들은 이미 북핵스트레스에 깊숙이 빠져들고있었다.조선은 그 어떤 경우에도 《완화》라는 설을 믿지 않았으므로…

 

아시아의 독특한 핵보유국

 

그후 일들은 6자회담의 온기와는 다르게 전개되였다.

2006년 10월 9일 조선이 핵시험성공을 발표한것이다.

2005년 핵보유를 선언한지 1년 8개월이 경과된 후였다.진도 3.9에 폭발력 1kt이라고 언론들은 보도했다.

북핵스트레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보려 했던 미국은 불시에 고슴도치가시에 찔려 놀라 벌떡 일어섰다.

세계지축이 지진처럼 격렬하게 흔들렸다.모든 통신,방송들이 동아시아뿐아니라 세계를 위협하는 중차대한 사건이라고 대서특필했다.

조선이 핵을 보유하면 일본과 남조선도 핵보유를 지향하게 된다는 도미노현상을 일으킬것이라고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한쪽에선 조선의 이러한 행동이 핵전파방지체계자체를 흔들리게 만들고있다고 거세게 주장했다.

그러나 방사능류출없이 지하핵시험을 성공한 조선은 핵무기보유를 공식선언하면서 승리를 기뻐하는 열기로 전국이 뜨거웠다.

세계언론들은 2006년 10대뉴스에 《핵시험성공》을 놓았다.

조선의 핵시험성공으로 가장 위기의식을 가진것은 미국이였다.조선이 핵시험을 계속 진행하면 북의 힘에 대한 신뢰도에 변화가 생기기때문이였다.미국을 괴롭히는 또 다른 문제거리가 대두되였는데 조선의 핵문제를 국제화하는데 걸리는 난관이였다.

제재가 국제사회의 의사를 모아내는 면에서는 중요하지만 만능처방은 아니라는 새로운 견해가 백악관의 문을 두드렸다.미국이 아무리 조선의 핵문제를 가지고 여론을 동원해도 지구의 아주 많은 나라들은 자기들이 북핵위협을 직접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기때문이다.

미국은 이제 다른 묘수를 짜내야 했는데 그것이 바로 《핵협조설》이였다.

미국정부는 핵전문가들을 내세워 조선이 이란이나 수리아,파키스탄 등의 나라들과 핵밀매를 하고있다는 여론을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그 여론이 미처 확산되지 못했는데 《북핵협조설》을 강하게 비난하는 조선외무성 대변인성명들이 발표되였다.북조선은 《핵협조설》을 여론화하는 서방언론들을 규탄하는 목소리의 강도를 계속 높여나갔다.

몇개월뒤 미국의 VOA방송에 따르면 탐사보도전문기자로 유명한 미국의 허쉬기자는 2008년 2월 11일 미국의 VOA방송과의 전화인터뷰에서 북-수리아핵협력설은 근거가 약하다고 말했다.

이런 속에서 미국대통령 죠지 부쉬가 김정일국방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다.2001년 부쉬행정부출범이래 처음 있는 사변이 터진것이였다.

관념을 깨뜨리는 정황은 관념을 무너뜨리는 정황으로 계속 확대되여갔다.

조선핵문제에 관한 제5차,제6차 6자회담이 진행되고 조선이 녕변핵시설을 페쇄하고 국제원자력기구 성원들이 필요한 감독과 검증을 진행하도록 하는데 동의했다는 보도가 날았다.이어서 2007년 6월 26일에 조선은 유엔에 《핵프로그람신고서》를 제출하며 세계이목을 집중시켰다.

6자회담침체의 최대의 장애물이였던 《핵프로그람신고서》문제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미국은 안도의 숨을 쉬였고 남조선언론은 《북핵 어물쩍 넘어가는가?》라며 북의 핵보유가 기정사실로 인정되는것은 아닐가 하고 전전긍긍하였다.

속담에 걱정이 현실을 부른다는 말이 있다던가?…

그 시기 조선을 다녀온 프리챠드 전 미국대북특사는 《미국은 핵무기를 보유한 북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데 더 익숙해져야 한다.》라고 한 조선전문가들의 주장을 천연스럽게 소개까지 했다.

미국은 벌써 북핵보유국인정궤도에 진입한셈이 되였다.

이런 흐름속에서 조선이 CNN 등 미국방송들이 중계하는 가운데 2008년 6월 27일 5MW원자로의 랭각탑을 폭파하는 장면을 세계에 보여줬다.후일 얼핏 보면 조선이 핵보유를 포기하는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고도의 외교행보였다고 정객들은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한 사건이였다.

신흥핵국가들이 실제로 등장할수 있는가?

북핵문제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은 이것을 생각하였다.

세계에 핵보유국으로 인정된 나라들말고도 핵폭탄을 제조할수 있는 과학자들과 기사들,하부구조를 가지고있는 나라는 40여개에 달한다.

그러니 핵보유국을 인정해주고말고 하는것은 사실상 의의가 없는 일이다.

조선사람들은 처음부터 이 원리를 알고있었다.그리고 이에 대한 대응을 정정당당하게 하고싶어했다.이 정정당당한 대응을 위하여 조선은 정세관리를 매우 치밀하게 계획하고 계획적으로 진행할뿐이였다.

2009년을 맞이한 조선에서는 《변이 나는 해》라는 색다른 표현이 나타났다.그 《변》에 대하여 조선사람들은 비날론이나 주체철,CNC기술과 같은 기술 및 경제문제들로 꼽고있었지만 속으로는 따로 세워놓은것이 있었다고 본다.

그들이 맞이한 진짜 《변》은 핵문제에서의 《변》이 아니였을가?…

그런데 그 《변》에 직접 물을 대준것이 바로 미국자신이라는 사실이 의아스럽다.

미국방성은 2008년 년례보고서를 통해 북을 처음으로 핵보유국에 포함시켰다.이 보고서는 아시아대륙연안에는 이미 5개의 핵보유국이 있다면서 중국과 인디아,파키스탄,조선,로씨야를 영문순서에 따라 차례로 명기했다.

지금까지의 미국정부립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건이였다.

미국정부는 조선을 핵보유국으로 명기한 보고서내용이 실수한것이라고 변명했지만 조선이 어떤 경우에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것이라는 미당국의 인식이 반영됐다는 점에 여론은 일치되였다.

조선의 대중보도수단들은 《미국이 처음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핵무기보유국으로 인정하였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보고서가 나간 뒤 미국방성은 《전적으로 실수였다.》며 한발 물러났고 국방성대변인은 《정책적으로 우리는 북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동맹국들에 사과했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미국방성산하 합동군사령부보고서와 로버트 게이쯔국방장관의 《포린 어페어즈》지 기고문에 이어 미국국가정보위원회보고서도 조선을 《핵무기보유국》으로 표기했음이 뒤늦게 또 밝혀졌던것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잡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는 조선은 핵무기 1~2개를 만들수 있는 플루토니움을 가진 국가로부터 8개의 핵무기를 만들수 있는 플루토니움을 가진 나라로 되였다고 밝히면서 《조선은 2006년에 핵폭탄 1개를 시험함으로써 핵보유국이 됐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폭스 뉴스》TV방송은 《세계의 첩보기관들과 군사전문가들이 조선을 완전한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있다.그들이 조선이 핵무기개발계획을 가지고있다는것을 인정하는것으로부터 이미 완전한 핵보유국이 되였다는것을 인정하는것으로 인식을 바꾸었다는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평하였다.

타이신문 《아시아 뉴스 네트워크》는 《새로운 핵무기보유국》이라는 제목으로 조선은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지역의 미군기지들을 재더미로 만들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였다,조선의 핵무기보유국지위는 남북관계와 지역의 정치정세를 급변시켰다고 주장했다.

영국신문 《더 타임스》는 《조선,완전한 핵무기보유국》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면서 국제적으로 조선을 완전한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날이 갈수록 증대되고있다고 전했다.

《이쯤되면 미국의 동맹국들로서는 미국이 비공식적으로 핵보유국 북과 공존하기로 결정했다고 생각한다.》는 《워싱톤 포스트》지의 지적은 충분한 타당성을 보여준것으로 되였다.

조선사람들은 만인의 인정을 받는것을 량민보증이라고 말하는데 이 사건들을 핵문제에서 세계의 량민보증을 받은것으로 여긴다.

【조선중앙통신】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