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4(2015)년 4월 20일 로동신문

 

천출명장 김일성:미국을 슬프게 하다

나딸리야 벨로꼬삐또바

 

전세계를 뒤덮고있던 두번째 세계대전의 화약내가 사라지자 유럽언론계에서는 격전장을 체험한 사람만이 전쟁에 대하여 론할 도덕적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자주 울려나왔다.

그렇다.타당한 주장이라고 본다.그런데 어찌하여 폭음소리 한번 듣지 못한 이 로씨야녀성필자가 그 도덕적권리를 뛰여넘어 지난 세기 50년대의 조선의 전승에 대한 글을 쓰게 되였는가고 물을수 있다.다년간의 언론활동과 사회활동경력이 그 도덕적권리를 벗어나게 하였는가.아니다.

1992년 4월 조선의 수령이신 김일성주석 탄생 80돐 경축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우리 《근로하는 로씨야》운동대표단성원들은 김일성주석의 접견을 받았다.나는 지금도 그이의 걸출한 위인적풍모에 매혹되여 탄복하던 그때를 잊지 못한다.

나는 김일성주석 탄생 100돐 경축행사때에도 조선을 방문하였다.

평양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과 조선전쟁시기 전투가 벌어진 곳들에 대한 여러차례의 참관,많은 전쟁로병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그리고 조선전쟁에 관한 자료들과 인류전쟁사를 연구하면서 조선의 1950년대의 전승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그 깊은 인상의 파도가 군사가도,전쟁사가도 아닌 나로 하여금 도덕적권리를 초월하여 모스크바에서 《7.27-승리하는 조선》이라는 제명의 도서를 집필발행케 하였다.하지만 나의 심중에서는 조선전쟁승리의 비결이 김일성주석의 출중한 령도에 있었다는 사실과 전승의 세계사적의미를 세상에 크게 전하고싶은 충동이 더욱 커갔다.그것이 나로 하여금 다시 붓을 들게 하였다는것을 서두에서 부언하게 된다.

 

1.수천년을 흔들어놓은 중대사변

 

나는 이 글을 세계현대사에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기록된 중요시각에 대한 서술로부터 시작하고저 한다.

력사의 벽시계는 지금으로부터 60여년전인 1953년 7월 27일 22시를 가리키고있었다.

조선의 전승과 미국의 패전이 온 지구에 선포되는 력사적인 순간이 흐르고있었다.

바로 이 시각에 조선의 천출명장이신 김일성주석께서 조선정전협정조인문건에 친히 비준을 하시였던것이다.

이 력사적순간의 목격자,기록자가 되여 그것을 세상에 제일먼저 전한 외신기자들중에는 당시 쏘련기자도 있었다.

1952년부터 조선주재 《쁘라우다》지 특파기자로 활약한 울라지미르 똘스찌꼬브였다.그는 자기의 회상록에 이렇게 썼다.

《나와 나의 안해 따마라는 내가 50여년전에 찍은 조선정전협정문에 비준하시는 천재적령장이신 김일성원수의 사진을 가보로 고이 보관하고있다.그이께서는 흰 원수례복을 입고계시였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으로부터 협정문이 들어있는 문서철을 받으시고 비준하시였다.장내에서는 기쁨과 감격의 파도가 굽이쳤다.모두가 김일성원수를 열렬히 축하하였다.

내가 영광스럽게도 력사에 남긴 김일성주석의 모습은 이른바 〈세계적인 강대국〉과 맞서 청소한 공화국을 굳건히 지켜내신 20세기의 영웅,위대한 정의의 수호자의 모습이였다.》

그렇다.조선의 전승은 천출명장 김일성주석께서 이룩하신 승리였다.

72시간안에 조선을 정복할것이라고 장담하던 미국은 조선언론인들이 평했듯이 그 72시간이 수백번도 더 반복되여 2만 7,000여시간으로,날수로 1,129일로,년수로 3년이 되여 저들이 패할줄은 몰랐다.

《강대성》의 신화를 황금모자처럼 들고 다니며 자랑하던 대아메리카제국이 조선인민앞에 흰기를 들게 되고 내리막길의 시초에 들어서는 최대의 정치군사적비극을 통감할줄은 더더욱 몰랐다.정전협정조인후 방송마이크앞에 나타난 당시 미국대통령 아이젠하워는 구슬픈 어조로 《대가는 컸다.이것은 비극적인것이였고 쓰라린것이였다.》고 토설하였다 한다.

서방의 한 종군기자는 미국력사에서 항복서에 서명한 첫 패전장군이 된 클라크의 얼굴에서는 《종전의 그 당당한 기개도,위용도,위신도 간곳없이 사라지고 두줄기의 눈물만이 흘러내렸다.》고 썼으며 정전협정조인문건에 수표한 후 클라크는 슬피 울었다고 그의 늙은 어머니가 회고하였다 한다.

세계가 본것처럼 미국의 《강대성》의 신화를 슬픔으로 바꾸어놓은 중대사변이 바로 조선에서 일어났던것이다.

조선의 1,129일의 전승이야말로 인류 수천년사의 중대사변이라고 나는 주장하게 된다.

이제부터 그렇게 주장하게 되는 세가지 근거에 대하여 서술해보고저 한다.

조선의 전승은 작은 나라가 대국을 이기는 력사의 서막을 열어놓았다.이것이 첫번째 근거이다.

스웨리예와 인디아학자들은 지난 수천년기간에 세계적으로 1만 4,500여차의 전쟁이 일어났다고 밝히였다.

그렇다면 1만 수천차의 전쟁은 대체 어떤 전쟁들이였는가.제국들의 침략전쟁,정복전쟁이 기본이였다고 본다.

바꾸어 말해보면 인류전쟁사는 대국이라고 자처하는 나라들이 정치적으로나 군사경제적으로 힘이 약한 나라,작은 나라들을 침략한 전쟁사였다고도 말할수 있다.

수천년 전쟁사의 이 거치른 흐름속에서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력대 제국들의 창과 검,총과 대포앞에 무서운 재난을 당하여왔는가.

인류는 1만 수천차의 전쟁에서 총 36억 4,000여만명을 잃었다.전쟁사가들은 손실된 물질문화적재부를 금으로 환산하면 너비 75㎞,두께 10m되는 금띠로 지구를 한바퀴 돌릴수 있다고까지 분석하고있다.전쟁으로 인한 손실의 거의 전부가 작은 나라들의것이였다는것은 론박할 여지도 없다.

재난이 이처럼 컸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들은 제국들앞에 정복당하고 굴복당하며 머리숙이고 사는것을 력사의 숙명처럼 감수하여왔다.물론 제국들의 침략과 정복을 반대하여 일어난 작은 나라들의 피어린 봉기들,폭동들,전쟁들이 력사의 전진에 큰 자욱을 남겼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수천년이 흐르는 장구한 기간 인류는 작은 나라라도 대국을 이기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기를 애타게 기다려왔다.이 갈망에 대답한것이 조선의 전승이였다.

20세기 력사의 대하에 사색의 노를 저어보자.

조선반도가 화염속에 잠겼을 때 행성의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였는가.

대국의 정복의 력사가 조선에서 또다시 반복되는것이 아닐가 하는 불안이였다.리유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1세기에는 로마제국,13세기에는 몽골제국,19세기에는 대영제국,20세기에는 도이췰란드제국이 수많은 나라들을 침략한 피의 력사를 결코 잊지 않고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수천년동안의 이 재난의 반복을 마침내 멈춰세운것이 바로 조선의 전승이였다.

이 전승이 수억만 사람들의 불안과 우려를 가셔주었던것이다.

그렇다.

조선의 전승은 비록 나라는 크지 않아도 위대한 령도자를 모시면 대국도 이길수 있다는것을 이 행성에 장엄히 선언하였다.

그렇다면 중대사변으로 보게 되는 두번째 근거는 무엇인가.

원자탄 하면 사람들은 미국대통령 트루맨을 먼저 상기할것이다.트루맨은 1945년 8월에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자탄투하명령을 내렸다.

동서방의 언론들은 트루맨이 원자탄을 투하한 목적이 일본을 항복케 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매듭지으려는데 있었다고 분석을 가하였다.

허나 나는 그것이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이 아니라 앞으로 미국이 핵으로 조선을 정복하고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핵전쟁준비에 목적을 두고있었다는데 대하여 더 강조하고싶다.

전자의 의미보다 후자의 의미는 결코 가벼운것이 아니였다.

사실상 미국은 조선전쟁을 1950년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포성이 멎기 전에 시작하였던것이다.그후의 사태발전이 이것을 립증해준다.

미국이 일본의 나가사끼에 원자탄을 투하한 다음다음날인 1945년 8월 11일 미국무성과 륙군성,해군성의 《3성조정위원회》가 38°선을 경계선으로 하여 조선의 이남지역을 강점할 비밀모의를 한 사실,중요하게는 미국이 1945년 7월 첫 원자탄시험을 한 때로부터 그 생산에 박차를 가하여왔다는 사실이 큰 무게를 가지고 그것을 실증하고있다.

더 중요한것은 무엇인가.조선전쟁을 개시한 트루맨이 원자탄사용을 내용으로 하는 핵공갈성명을 발표하였다는것과 제3차 세계대전준비를 위한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 사실이다.

여기에 《크리스마스총공세》가 총퇴각으로 역전되였을 때 트루맨과 기자들사이에 있었던 문답의 일부를 적어본다.

《대통령,조선의 사태에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조선의 새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지난 시기 언제나 그렇게 하여왔듯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온갖 수단을 다 취할 용의가 있다.》

《그 수단에는 원자폭탄도 포함되는가?》

《우리가 소유하고있는 온갖 무기가 다 포함된다.》

《당신은 소유하고있는 무기의 전부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원자폭탄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고려한다는것을 의미하는가?》

《원폭에 대해서는 언제나 적극적인 고려가 돌려지고있다.…》

기자회견후 《미국 원자탄사용을 적극 고려》라는 내용의 기사들이 즉시에 세계에 전해져 사람들을 격분케 하였다.

이처럼 당시 미국은 조선에서의 원자탄사용을 공공연히 떠들었다.

여기서 언급하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로씨야교수 까챠놉스끼가 밝힌 자료에 의하면 제2차 세계대전후 미국은 쏘련의 대도시 20개를 원자탄으로 공격할것을 중요내용으로 하는 전쟁을 1949년에 시작할것이라는 극비문건을 만들었다.이것을 알아차린 쏘련은 전후복구사업이 마무리되지 못하였지만 군사경제적잠재력을 총동원하여 1949년에 원자탄시험에서 성공하였다.

이 사실은 미국이 조선전쟁을 세계화하고 핵전쟁화한다면 쏘련이 어떻게 대응하겠는가를 너무나 명백히 해주고있다.

다시 본문제이야기로 넘어가자.

외신들은 트루맨이 조선전쟁을 시점으로 조선과 중국,쏘련을 핵으로 타격하여 7억의 인구를 전멸시킬것을 계획하였다고 전하였다.

미군사기밀기관들이 공개한 문건들에는 미국대통령 아이젠하워도 조선전쟁에서의 원자탄 즉시사용을 5차례나 주장하였다고 기록되여있다.

그러나 미국의 핵전쟁기도는 조선의 전승으로 산산이 부서져나갔다.

미국은 전쟁에서 심대한 타격을 받을 때마다 《원자탄 즉시사용》이라는 최후통첩장을 내흔들면서 패배의 진펄에서 벗어나보려고 모지름을 썼다.그렇지만 원자탄위협앞에 놀랄 조선이 아니였다.굴복할 조선은 더욱 아니였다.

조선의 전략전술적위력과 사상정신적위력이라는 두 힘이 미국의 원자탄최후통첩장을 락엽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귀결이 나온다.

조선이 자기의 전승으로 미국의 핵전쟁기도를 짓부시지 못하였더라면 세계에 핵참화가 휩쓸었을것이다.반복컨대 제2차 세계대전의 재더미가 가셔지기도 전에 핵전쟁이 일어나 한순간에 인류문명을 구석기시대로 되돌아가게 하는 무서운 《핵겨울》이 닥쳐왔을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보면 세계적인 판도에서 핵버섯구름을 미리막고 평화의 푸른 하늘을 지켜낸 조선전승의 의미는 참으로 거대한것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중대사변으로 보는 세번째 근거를 론할 차례가 되였다.

세계문학사가 남긴 두가지 주장을 먼저 언급하고싶다.

18세기 영국작가 스위프트의 정치론설 《동맹자들의 행동》이 영프전쟁을 종결시켰다는 주장이며 19세기 미국의 녀류작가 스토우의 소설 《톰아저씨의 집》이 남북전쟁을 폭발시켰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두 주장은 사상정신적문제가 전쟁에 일정한 영향을 준다는 군사가들의 견해에 대한 반증으로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사상정신력의 역할은 수천년 차요시되여왔다.

반대로 전쟁에서 무기가 결정권을 가진다는 《무기만능론》이 인류전쟁사의 수천년을 지배하여왔다는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근대로부터 조선전쟁시기까지의 세계전쟁사의 페지만을 번져보아도 그렇게 말할수 있다.영국의 《함대우세론》,히틀러의 《땅크우세론》,미국의 《항공우세론》이 그에 대한 실증으로 된다고 본다.

그렇다면 조선의 전승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조선의 전승은 사상정신력이 전쟁승리에서 결정적역할을 한다는것을 과시한 위대한 전승이였다.

다시금 확언하건대 조선의 전승은 전쟁의 운명은 무기가 결정하는것이 아니라 사상정신력이 결정한다는 진리를 처음으로 깨우쳐준 력사적사변이였다.(조선병사들과 인민들이 발휘한 사상정신력의 숭고한 세계에 대해서는 편의상 다음체계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저 한다.)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통치로부터 해방된지 얼마 안되며 무기도 매우 부족하였지만 사상정신력이 전쟁에서 결정적인 힘이 되여 미국의 대포와 땅크,함선과 비행기를 짓부셔버리는 군사적기적을 창조하였다.

결국 조선의 사상정신만능론이 미국의 《무기만능론》을 무릎꿇게 만들었다.

세계는 조선의 전승에서 사상정신만능론이 승리하는 새시대를 보았다.

그렇다면 여태껏 서술한 세가지 근거는 무엇을 결론케 하는가.

천출명장 김일성주석께서 안아오신 조선의 전승이야말로 거대한 정치군사적무게를 가지고 인류사의 수천년을 크게 흔들어놓은 중대사변이라는것이다.

 

2.3대승리철학으로 이기다

 

조선반도에서 총소리가 멎었다.그러자 백악관과 펜타곤은 미국을 슬프게 한 전쟁의 책임을 두고 옥신각신하고있었다.이때 미국 《뉴욕 타임스》지에 실린 한 서방군사평론가의 론평이 워싱톤의 책략가들에게 훌륭한 《훈시》를 주었다.

《조선전쟁이 왜 실패하였는가.월가의 상인들이 애초에 북조선을 우습게 여긴것부터가 돌이킬수 없는 오유였다.그들이 약자인가? 아니다.전쟁행정이 보여주다싶이 그들은 무장장비는 렬세했어도 특이한 전략과 전술,변화무쌍한 전법에 의거하여 싸우는 강자였다.미국의 장군들만이라도 때늦게나마 상대한 군통수 김일성이 풍부한 경험을 갖춘 유격전의 능수라는 점에 응당한 주목을 돌려야 했다.》

매우 타당성있는 주장이였다고 생각한다.

김일성주석은 벌써 1930년대와 1940년대의 항일대전에서 천재적인 군사전략가로,천출명장으로 명성을 떨치신분이시였다.

주석께서는 아직 세상이 알지 못하는 전략과 전법,뛰여난 령군술로 일본의 100만대군과 싸워 이기시였다.

기고만장의 독술에 취한 미국의 장성들이 이에 대하여 알수 없었다.패전의 슬픈 눈물은 이 무지가 실어다준것이였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조선전쟁에서 탁월한 군사사상을 초석으로 하는 3대승리철학으로 제국주의대군을 굴복시키시였다.

그이께서는 무엇보다 조선식의 전략과 전법으로 이기는 승리철학으로 전승을 안아오시였다.주석께서 창시하신 몇가지 전략부터 보자.

기존병법에는 적의 불의의 침공을 맞받아나가는 전략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씌여져있다.

인류전쟁사의 녹이 쓴 철문을 열어제끼면 다음의 사실이 첫눈에 띄운다.

제2차 세계대전시 프랑스,네데를란드,벨지끄,그리스,유고슬라비아(당시)를 포함하여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히틀러군의 불의의 첫 침공을 막아내지 못하였다.하여 몇주일 지어 며칠만에 점령이라는 치욕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조선전쟁에서 기성의 군사공리를 따르지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적들의 불의의 침공을 즉시적인 반공격으로 맞받아나가시였다.미국이 조선전쟁을 확대하는데 필요한 큰 병력과 군사장비들을 끌어들이자면 한달이상 시일이 걸려야 한다는것을 통찰하시고 적의 대무력이 남조선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전 전선에서 즉시적인 반공격전으로 넘어갈데 대한 명령을 주시였다.이것은 참으로 령활무쌍한 전략이 아닐수 없다.

주석의 적후 제2전선전략도 어느 병법에서 옮겨놓은것이 아니였다.

병술에는 제2전선을 보조적인 전선으로 설명하고있었다.1812년의 로프전쟁사의 갈피를 번져보아도 로씨야에서 기병이나 농민으로 조직된 적후전선이 형성되여 전쟁수행에서 보충적인 역할을 하였다.주석께서는 조성된 군사정세와 산악이 많은 조선의 조건을 고려하시고 최고사령부의 통일적인 지휘밑에 정규군련합부대들로 적후에 강력한 제2전선을 형성하도록 하시였다.이 전략 또한 비범한것이였다.

적극적인 방어전략 역시 전례를 따른것이 아니였다.

전쟁사의 페지들에는 방어전은 은페호와 참호,교통호,공병장애물에 의한 싸움으로 씌여져있다.적의 공격에 쉽게 무너진 프랑스의 《마지노선》을 보아도 총길이 380㎞의 방어선상에 5,000여개의 영구화력시설물들로 이루어진 《완성된 방어진지의 표본》으로 알려져있었다.주석의 전략은 이와 다르시였다.그이께서는 현대전쟁의 특성을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산이 많은 조선의 지형에 맞게 갱도를 기본으로 하는 요새화된 방어진지를 굴설하고 적을 칠데 대한 적극적인 진지방어전략을 세우시였다.이것 역시 독창적인 전략이다.

이번에는 주석께서 창조하신 많은 전법중 몇가지에 서술의 키를 옮겨보겠다.

세 전투의 승리에 대해서만 주목해보자.

첫번째는 조선해군의 어뢰정 네척이 미국의 중순양함 《볼티모》호함선집단을 기습하여 단 세발의 어뢰로 이 함을 침몰시킨 승리이고 두번째는 하루사이에 조선의 프로펠러식비행기 2대가 미전략폭격기 《B-29》들과의 싸움에서 《공중요새》를 2대나 격추한 승리이다.

세번째는 조선인민군 용사들이 쫓겨가는 적들이 《림시수도》로 정해놓고 미24보병사단무력을 진입시켜 방어하고있던 대전을 하루밤사이에 완전히 포위하고 적들을 섬멸한 승리였다.

세 전투승리의 군사적크기는 서로 다르지만 그 승리의 요인은 하나,김일성주석의 기묘한 전법의 승리라는것이다.

바다에서의 승리부터 보자.

주석께서는 적의 함선집단에 대한 공격은 대규모타격무력의 협동공격으로만 가능하다고 하는 지난 시기의 군사교범을 초월하시였다.밤이면 적함선집단이 부두나 연해에 정박하고있다는것을 파악하시고 깊은 밤에 접근전,기습전으로 적함선집단을 타격할데 대한 명안을 내놓으시였던것이다.이 명안이 《바다의 움직이는 섬》을 수장시켰다.

하늘에서의 승리도 그렇다.

제2차 세계대전시기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공중전들은 프로펠러식비행기들간의 공중전이였다.조선전쟁시기 분사식비행기의 대대적인 출현은 새로운 공중전법을 기다렸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이에 대하여서도 명쾌한 해답을 주시였다.그이께서는 분사식비행기가 속도가 빠른 반면에 선회반경이 크다는 약점을 통찰하시고 그것을 리용하여 선회반경이 작은 프로펠러식비행기로 분사식비행기를 떨구는 새로운 전법들을 쓰시였던것이다.이 전법들이 《공중요새》들을 태평양건너의 제 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땅우에서의 승리도 마찬가지로 분석된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병서들에는 포위전법은 정면에서 공격하는 부대들과 량익측에서 타격하는 부대들이 일정한 종심에서 합치는 방법으로 실현하는것이라고 서술하고있었다.

그러나 주석께서는 기존병법에 구애되지 않으시고 령활무쌍한 우회전법으로 야간에 미24보병사단을 불의에 신속히 완전포위하고 소멸할데 대한 전법을 쓰시였다.이 전법이 《상승사단》의 운명을 괴멸로 결정지었던것이다.

이처럼 조선은 자기식의 전략과 전법으로 이기는 승리철학을 세계에 보여주었다.

다른 하나의 승리철학을 서술할 차례이다.

국제협약들에는 전장에서는 적의 병력과 군사시설물만 공격대상으로 되여야 한다고 밝혀져있다.그러나 제국들에 있어서는 민간인의 희생과 창조물에 대한 파괴가 문제로도 되지 않았다.그때문에 세상사람들이 깊이 잠든 4시,이 4시에 히틀러가 쏘련을 침공했다.바로 미국도 이 4시에 조선침략의 첫 총소리를 냈던것이다.그것은 인간증오의 4시,인간멸살의 4시였다.

그렇다면 조선의 경우는 어떠하였는가.

김일성주석께서는 서울해방을 위한 총공격시간을 5시로 할것을 명령하시였다.(대전해방을 위한 총공격시간도 5시로 할것을 명령하심.) 그이께서는 적들이 서울에 집중되여있는 조건에서 밤에 전투를 하게 되면 인민들의 생명재산에 피해를 끼칠수 있고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들이 파괴될수 있다고 하시면서 서울해방을 위한 공격을 날이 밝은 시간으로 정해주시였던것이다.

어두운 4시와 밝은 5시는 단순히 60분이라는 시간상차이만을 표현하지 않는다고 본다.

인간증오의 4시와 인간사랑의 5시이다.

제국들의 침략전쟁,정복전쟁에 있어서는 천년이 가도 그 4시가 5시로 될수 없다는것이 나의 주장이다.

나는 두 수자를 생각하며 조선전쟁 첫 기슭에서부터 미국이라는 전쟁마차는 인간증오라는 부정의로 하여 패전의 길로 굴러갔으며 조선이라는 수호의 기관차는 인간사랑이라는 정의로 하여 전승의 궤도를 달렸다고 확신하게 되였다.

사랑의 5시가 증오의 4시를 이기고있었다.

김일성주석의 사랑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적비행기 3대를 쏴떨군 17살의 한 인민군전사가 부모형제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아시게 된 그이께서는 적구에 있는 그의 고향마을에 친히 한개 련대를 보내여 영웅의 부모와 다섯동생을 구출해오도록 하시였다 한다.이 구출소식은 온 나라를 눈물로 적시게 하였다고 당시 조선언론들은 대서특필하였다는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한창이던 어느날 그토록 사랑하시고 믿어오시던 가장 가까운 전우인 김책내각부수상 겸 산업상이 뜻하지 않게 서거하였다는 비보에 접한 김일성주석께서는 비통함을 금치 못하시며 떠나간 그를 위해 하실수 있는 모든것을 다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가렬한 전쟁시기라는것을 고려하시여 전우의 령구를 극비밀리에 지방의 어느 한 굴간에 잘 안치하도록 하시고 몇년동안 특별위수구역으로 엄격히 봉쇄하도록 하시였다 한다.그리고 전쟁의 승리가 확정되였을 때에야 굴속에 안치하였던 전우의 령구를 평양에 옮겨오도록 하시였다 한다.

이 이야기들은 사랑과 정을 보석처럼 안고사는 이 녀성필자의 마음도 격정으로 젖게 한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차디찬 병영생활속에,전쟁의 폭풍속에 사랑과 정이 파묻혔던 세계군력사,전쟁사에 종지부를 찍으시였던것이다.그이는 사랑과 정의 열쇠로 병사들의 심장의 문을 열고 인민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신 천출명장이시였다.

무기는 누구나 가질수 있다.하지만 명장의 사랑과 인민의 보답으로 이루어지는 단결의 성새는 그 어느 나라나 가질수 없다.조선만이 가진 성새였다.

조선은 또 하나의 승리철학,사랑과 정으로 이기는 승리철학을 세계에 보여주었다.

또 다른 하나의 승리철학을 론해보자.세번째 승리철학이다.

조선방문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을 참관하면서 알게 된 한 영웅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떠오른다.

그의 이름은 리수복이였고 나이는 18살이였다.무명고지탈환전투에서 그는 가슴으로 적의 화구를 막은 육탄영웅이였다.

그가 화염속에서 썼다는 시구들을 잊을수 없다.

 

《…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

둘도 없는 목숨이지만

나의 청춘을 바치는것처럼

그렇게 고귀한 생명,

아름다운 희망,

위대한 행복이

또 어디 있으랴》

 

고리끼문학대학에서 배운바에 의하면 시는 인간의 사상감정의 분출이라고 하였다.영웅의 심장에서 뿜어져나온 그 애국정신이 불줄기가 쏟아져나오는 적의 화구를 가슴으로 막게 하였다.영웅의 그 숭고한 정신세계가 나의 가슴을 친다.

한 육탄영웅과 그를 취재한 종군기자에 대한 이야기도 떠오른다.적의 중기화점을 가슴으로 막고 진격로를 연 영웅은 가슴에 11발의 총탄을 맞고 살아남은 영웅이였다.

이때껏 전쟁사에 이런 육탄영웅은 없었다고 본다.

그런데 눈과 얼굴에 중상을 입고 온통 붕대를 감고있는 한 종군기자가 이 육탄영웅에 대한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였다 한다.종군기자는 전혀 볼수 없는 형편이였지만,또 담가에 실린 몸이였지만 끝내 영웅을 취재하여 세상에 전하였다.

쏘도전쟁때도 쏘련의 많은 기자들이 종군활동을 하였다.일리야 에렌부르그가 종군하며 쓴 글을 보고 그의 《글마디들의 신랄성은 까츄샤의 일제사격과 같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 조선기자의 위훈을 어떻게 격찬하여야 할것인가.

중상당한 기자가 눈과 얼굴을 온통 붕대로 감은채 불사신의 영웅을 취재하여 병사들과 인민들을 크게 고무한것도 싸우는 조선의 기상이고 기적이 아니겠는가.

다른 하나의 이야기는 굴하지 않은 섬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극동군사령관 맥아더는 세계를 향해 《크로마이트 100-B계획》이라는 암호를 가진 인천상륙작전을 기어코 성사시킬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이 작전수행을 위해서는 0.66㎢밖에 안되는 조선의 작고도 작은 섬인 월미도를 점령하여야 하였다.

싸움은 1개의 해안포병중대와 1개의 보병중대로 이루어진 조선인민군과 5만여명의 병력과 수백척의 함선,1,000여대의 비행기를 가진 미군과의 격전이였다.조선의 위급지휘관과 미국의 5성장군과의 대결이기도 하였다.

당시 조선언론들은 작은 섬은 불바다에 잠기고 바위들이 부서져 가루가 되였으며 바다가 끓고 태양도 검은 화염속에서 보이지 않았다,그러나 조선인민군 해군용사들의 필사전으로 하여 미군의 월미도점령기도는 3일간이나 좌절되였다고 전했다.

세계가 이 좌절에서 본것은 무엇이였는가.

미국의 《무기만능론》의 패배와 조선의 사상정신만능론의 승리를 보았다.

미국도서 《맥아더의 수수께끼》의 저자가 조선전쟁의 실상을 랭철하게 들여다보았다면 패전의 책임을 지고 52년간의 군인생활의 종말을 긋게 된 맥아더의 비극의 대답,조선전쟁에서의 미국의 패전의 대답을 이 작은 섬의 영웅정신에서도 찾을수 있었을것이다.

조선은 또 하나의 승리철학,사상정신력으로 대적을 이기는 승리철학을 세계에 보여주었던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에서의 주되는 력점은 무엇인가.

단언컨대 독창적인 전략과 전법으로 이기는 철학과 숭고한 사랑과 정으로 이기는 철학,불굴의 사상정신력으로 이기는 철학,이 3대승리철학이 조선으로 하여금 미국을 이기는 군사적기적을 가져오게 하였다는것이다.

3대승리철학은 동방조선만이 가지고있는 보검이며 백승을 담보하는 특허무기이다.

오늘 세계는 조선전승의 계승을 현실로 보고있다.

1950년대 총포성속의 전쟁에서 3대승리철학으로 대적과 싸워 이기신 김일성주석처럼,근 60년간의 총포성없는 전쟁에서 선군정치로 대적을 무릎꿇게 하신 김정일령도자처럼 김정은원수께서는 이 시각에도 탁월한 선군령도로 조선의 사회주의수호전을 최후승리에로 이끄신다.

장기간의 조미대결사는 세계에 무엇을 보여주었는가.

된타격을 받고 녹아난것이 미국의 수치스러운 전통이고 횡포한 미국의 도전을 걸음마다 통쾌하게 짓부셔버리기만 한것이 조선의 자랑스러운 전통이라는것을 웅변으로 보여주고있다.이 두 전통은 결코 달리될수 없는 력사의 필연이며 법칙이다.이 전통들의 최후의 재현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있다.

미국이 끝끝내 조선땅에서 또다시 총포성을 울린다면 조선의 무서운 타격앞에 1950년대 전쟁때보다 더 비통하고 쓰라린 마지막패전의 슬픔을 맛보게 될것이다.

이제는 글을 마무리할 때가 되였다.

김정은원수는 21세기 승리의 태양이시다.

천출명장들의 나라 조선은 3대승리철학과 선군정치,선군령도가 있어 강대한 백승국으로 세계에 빛날것이다.

나는 조선에서의 최후승리사를 쓰고저 다시한번 평양비행기에 오르리라.

2015년 4월 모스크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