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4(2015)년 5월 8일 로동신문

 

인민들속에서

인민들에게 털끝만 한 부담도 주지 않으시려고

강덕수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원수님께서는 조선인민군 제7차 선동원대회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인민군군인들은 아무리 곤난한 일이 있어도 인민들의 재산을 바늘 하나,실 한오리,새끼 한오리도 다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이 귀중한 가르치심을 가슴에 되새길 때마다 조국해방전쟁의 일시적후퇴시기에 어버이수령님께서 언제나 인민들의 생명재산을 귀중히 여기도록 우리들을 교양하시고 몸소 그 모범으로 이끌어주시던 일들을 감회깊이 회상하게 된다.

1950년 10월이였다.

우리 인민과 인민군군인들은 조국해방전쟁에서 일시적인 전략적후퇴의 간고한 시련을 겪게 되였다.

이무렵 횡포한 미제침략자들의 발악은 절정에 이르고있었다.

그러나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는 경애하는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아래 용기백배,기세충천하여 전투에서 전투에로 나아갔고 어려운 정황속에서도 조그마한 주저도 없이 혁명적락천성을 지니고 준엄한 시련을 과감히 맞받아나아갔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그 준엄한 시련의 시기에 무비의 혁명적담력과 드놀지 않는 강철의 의지를 지니시고 태연자약하게 새 작전의 승리를 마련하고계시였다.

그러던 10월 어느날이였다.

우리는 경애하는 수령님을 모시고 새로운 지점으로 떠나게 되였다.이미 최고사령부의 작전조성원들이 새 지점들을 정찰하기 위하여 떠났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들의 도착을 기다리지 않으시고 곧 출발할것을 지시하셨으므로 우리는 서둘러 떠날 준비를 갖추고 그이를 따라나섰다.

자동차는 쾌속으로 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타신 자동차가 산굽이길을 막 돌아서려고 할 때 전방에서 자동차 한대가 나타났다.

이미 선발대로 파견되였던 최고사령부의 작전조성원들이 탄 자동차였다.그들은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대로 최고사령부가 이동할 지점들을 정찰하고 돌아오는 길이였다.

작전조성원들은 경애하는 수령님께서 타신 자동차를 보자 인차 차를 세우고 길섶에 내려서서 그이께서 도착하시기를 기다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작전조성원들의 앞에 이르시여 차를 세우시고 그들을 부르시였다.

작전조성원들이 달려와 경애하는 수령님께 정중히 보고를 올리자 그이께서는 《수고하였소.》 라고 하시며 그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고 《그곳 정형을 좀 이야기해보시오.》 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들은 그간 자기들이 한 사업에 대하여 상세한 보고를 올리고 최고사령부의 일부 국들을 지방인민들의 집에서 당분간 거처하게 하였다고 말씀드리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보고를 다 들으시고 한참동안 아무 말씀도 없이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시고나서 그들의 얼굴을 둘러보시며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말씀을 하시였다.

나라의 정세가 아무리 긴장하다 하더라도 인민들에게 불편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지금 인민들은 전쟁의 어려운 형편에서 많은 시련을 겪고있습니다.그러므로 인민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이동조직을 잘하여야 합니다.지휘부는 필요에 따라 또 옮길수도 있으니 그곳 인민들을 많이 옮기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기에서 잠시 말씀을 끊으시였다.그러시고는 그들의 구겨진 군복차림을 바로잡아주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인민군대는 말그대로 인민의 군대입니다.우리에게는 인민의 생명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나라의 정세가 어려울수록 인민들을 더 잘 도와주어야 합니다.인민군대가 인민들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며 그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할 때 그들은 모든것을 아끼지 않고 인민군대를 성심성의로 도와나설것입니다.

우리는 시련속에서도 당을 따라오고있는 인민들에게 정치교양사업을 잘하여야 하겠습니다.인민들에게 당의 정확한 령도를 받고있는 우리 인민군대가 인차 반공격으로 넘어가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고 반드시 전쟁의 종국적승리를 달성한다는것을 잘 알려주어 그들이 승리의 신심을 가지고 준엄한 시련을 이겨나가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온 나라가 준엄한 시련을 겪고있는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인민들의 생명재산에 털끝만 한 손해도 주지 않게 하시려고 일부러 가시던 길을 멈추시고 인민들과 접촉함에 있어서 군인들이 류의해야 할 점들을 하나하나 일깨워주시고 그들에게 조그마한 불편도 없게 하라고 당부하시는 어버이수령님,언제 어디서나 인민을 위하시고 인민을 먼저 생각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의 고결하고 높으신 덕성에 커다란 충격을 받은 작전조성원들은 크나큰 감격에 휩싸여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인민의 생명재산을 귀중히 여기며 오직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바쳐 싸울 각오를 굳게 하는것이였다.

그날 밤 자정이 훨씬 지나서였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이미 최고사령부 작전조성원들이 현지정찰을 하고 자리를 잡아놓은 곳이였다.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선 한가운데로 맑은 여울물이 흘러내리고 그 변두리에 집들이 하나둘 보이였다.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북방의 늦가을밤은 추웠다.

우리는 밤이 깊었으므로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이미 정해진 집으로 갔다.

집마당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차에서 내리시여 그 집이 무슨 집인가를 알아보시고 이렇게 큰집이 필요하겠는가고 하시며 우리는 언제나 인민들과 함께 있는것이 제일 좋으니 밤이 깊기는 하였지만 이제라도 림시숙소를 다른데 정하자고 말씀하시였다.

우리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마을로 내려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차안에서 전조등에 비친 초가집을 보시며 언제나 소박한 인민들속에 같이 있는것이 제일이다,우리가 항일무장투쟁을 할 때에도 오직 인민들을 굳게 믿고 그들과 혈연적련계를 가지고있었기때문에 언제나 적들과 싸워이겼다,그때 우리는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는것처럼 유격대가 인민을 떠나서 살수 없다.》고 하면서 인민들과 함께 지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 집 앞마당에 차가 멎자 나는 서둘러 집주인을 찾아들어가서 사정을 이야기하였다.집주인은 어서 오시라고 하면서 집을 내주었다.

이때 어버이수령님께서 집뜨락으로 들어서시였다.

나는 어버이수령님을 이 작은 농촌집에 어떻게 모시랴싶어 망설이였다.어버이수령님께서는 오히려 우리들을 위로하시듯 우리도 이런 집에서 나서자란 사람인데 괜찮다고 하시면서 방에 들어가서 앉으시였다.

그러시고는 집주인들에게 불편을 주어서 안되였다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자신께서는 불편을 느끼시면서도 인민들에게 조그마한 불편도 없게 해주시려는 그 크나큰 보살피심,멀고먼 밤길을 달려오신 피곤보다도 곤히 잠들었던 집주인들에게 페를 끼치는것을 못내 걱정하시는 그 마음이 어찌 한 농민만을 위한것이겠는가.그것은 일시적인 전략적후퇴의 어려운 시련을 겪고있는 우리 인민들모두에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끝없는 사랑이고 심려이며 보살피심이였다.

일찌기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날부터 장구한 나날을 오직 인민을 위하여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의 준엄한 시기에도 언제나 인민들과 함께 계시면서 기쁨도 슬픔도 그들과 함께 나누시는것이였다.참으로 인민을 위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의 그 위대한 사랑에 나는 가슴뜨거워짐을 금치 못하였다.

그 이튿날 아침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집주변과 골짜기를 돌아보시고나서 집주인에게 페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개울가에서 아침밥을 짓자고 우리들에게 말씀하시였다.

한없이 겸허하시고 고결하신 인민적풍모앞에서 우리는 그저 머리를 깊이 숙였을뿐 아무 말씀도 더 올리지 못하고 누기찬 개울가에서 아침밥을 지었다.

그날 아침 늦게야 이 모든 사실을 안 집주인은 죄송한 마음을 누를길 없어 눈물이 글썽해서 달려왔다.

그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집주인에게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시는것이였다.

《…복잡한 전쟁시기에 와서 이렇게 괴로움만 끼쳐서 미안합니다.》

《아니 장군님,제가 그만…》

집주인은 어버이수령님의 사랑,그이의 보살피심이 너무도 뜨겁고 지극하여 자꾸만 눈물을 흘리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날 아침 끝내 그 개울가에서 늦은 아침식사를 검소하게 하시였다.

인민을 위하시고 인민의 재산을 귀중히 여기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보살피심은 헤아릴수 없이 극진한것이였다.

그때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날 점심녘이였다.이곳 마을인민들은 어버이수령님께 아무것도 대접하지 못하는것이 더없이 가슴아프고 안타까와 모여앉아서 의논한 끝에 돼지 한마리를 선물로 가져왔다.

인민들에게 조그마한 페도 끼치지 않으시며 사소한 불편도 없게 하시려는 어버이수령님의 그 높으신 뜻을 잘 알고있는 우리들은 인민들의 성의를 선뜻 받아들일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전체 마을농민들의 성의이니 꼭 받아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억지로 떠맡기다싶이 하고 돌아갔다.

그래서 우리는 하는수없이 그 돼지를 받아놓게 되였다.

그런데 그날 저녁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새 이 사실을 아시고 나를 부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들과의 관계를 알아보시고 혹시 동무들이 요구하여 그 돼지를 가져온것이 아니냐고 엄하게 따져물으시였다.

나는 마을농민들이 선물로 가져온것이라고 사실대로 말씀드리였다.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안색을 달리하시며 적들의 만행으로 우리 농민들의 집짐승이 많이 없어진것만도 가슴아픈 일인데 우리들이 어떻게 인민들이 보내는 돼지라고 해서 잡아먹겠는가고 하시였다.그러시면서 마을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오늘중으로 그 돼지를 돌려주라고 하시였다.

그날 나는 그 돼지를 인민들에게 돌려보내면서 많은것을 생각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명심하고 그날그때까지 인민을 위하여 성심성의 일해오느라고 하였지만 사실 수령님께서 바라시는것처럼 그렇듯 뜨겁고 열렬하게 인민을 생각하며 사랑하지 못하였던것이다.

이것은 비단 나만이 느끼는 가책이 아니였다.그때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전쟁의 준엄한 길을 함께 걸은 우리 친위전사들모두의 뉘우침이였다.

바로 그무렵에 최고사령부의 친위중대에서 있었던 소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들의 자책감을 더욱 크게 하였다.

어려운 후퇴가 계속되고있던 어느날이였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 몸소 조직하시고 친솔하시던 친위중대의 어린 대원들이 마을에 나가서 송아지 한마리를 사왔다.소를 잡아서 위대한 수령님의 식사도 보장하고 행군으로 하여 피로한 중대동무들을 한끼 푸짐히 해먹이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소를 나무밑에 세워놓고 당장 잡을 차비를 서둘러댔다.

바로 이때였다.부대가 주둔한 마을을 돌아보고계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 그곳으로 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린 친위대원들이 서두는 심상치 않은 광경을 보시고 어떻게 된 소인가고 물으시였다.

한 나어린 대원이 마을에 나가 사온 소인데 잡으려 한다고 솔직히 말씀드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포동포동 살이 찐 송아지의 등판을 쓸어보시면서 《잡아먹자고?…》라고 혼자말씀처럼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소옆에서 얼마간 물러서시더니 옆에 서있는 어린 대원들을 바라보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 대원에게 물으시였다.

《이 소가 이제 얼마나 있으면 밭갈이를 할수 있겠소?》

《1~2년후면 능히 밭갈이를 할수 있겠습니다.》

어린 대원이 힘있게 대답을 올리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더니 지휘관들을 둘러보시며 《소를 절대로 잡아먹어서는 안되오.곧 소임자에게 돌려주시오.》라고 엄하게 말씀하시였다.

소를 끌고왔던 어린 대원과 방금 소를 잡으려고 서둘던 동무들은 그 순간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깊이 수그렸다.

어린 친위중대원들이 몹시 당황해하며 자책감에 머리를 들지 못하는것을 보시고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이르시듯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말씀을 하시였다.

동무들은 오늘 인민앞에 큰 죄를 지을번 했다.인민군대가 아무리 어려운들 어떻게 인민의 소를 잡아먹겠는가.동무들도 말했지만 이 송아지는 이제 1~2년후면 밭갈이를 할수 있다.

지금 우리 농촌에는 전쟁때문에 소가 많이 없어졌다.미국놈들이 들어와 때려잡아먹고 또 놈들의 폭격에 많이 죽었다.

그런데 동무들까지 소를 잡아먹으면 어떻게 되겠는가.전쟁은 계속된다.전쟁이 몇년이고 더 계속된다 해도 농사는 농사대로 지어야 한다.

이 겨울이 가고 얼음이 풀리면 다시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한다.그런데 소가 없이 농사를 어떻게 짓겠는가.

소는 농민들의 귀중한 재산이다.

우리는 인민군대인것만큼 농민들의 귀중한 재산을 털끝만큼이라도 다치지 말고 아끼고 보호하여야 한다.설사 끼니를 넘기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인민군대라는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전에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동무들의 아버지,어머니,형님,누나들이 바로 그렇게 하였다.그들은 굶어죽으면 죽었지 인민의 재산에 해를 주는 일이 절대로 없었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지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있었다는 약수동마을인민들의 소이야기를 상기하였다.위대한 수령님께서 인민을 사랑하시고 인민의 생명재산을 극력 보살펴주신 그 높고 고결하신 인민적풍모에 가슴뜨거워옴을 금할수 없었다.

이리하여 친위중대원들이 사온 소는 소임자에게 다시 돌려졌는데 그때 소임자는 어버이수령님의 그 높으신 뜻에 감격하여 눈물을 머금었었다.

이것이 바로 친위중대에서 있었던 소사건이였다.

그후 우리는 회의를 열고 인민의 재산을 귀중히 여길줄 모르며 그것을 함부로 침해하려는 그릇된 견해에 대하여 심각히 비판하고 인민의 생명재산에 털끝만 한 손해도 주어서는 안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철저히 집행할 굳은 결의를 가다듬었다.

그후 우리는 전쟁의 전기간에 어버이수령님의 그 귀중하신 가르치심을 명심하고 한건의 군중규률위반도 없이 오직 인민을 위하여,인민의 리익을 자기 생명처럼 귀중히 여기며 맡은 임무를 영예롭게 수행하였다.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인민을 위하시고 따뜻한 혈육의 정으로 그들의 생명재산을 귀중히 보살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고결하신 인민적풍모는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헌신적복무의 구감으로 세월이 갈수록 우리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고있다.

1978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