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4(2015)년 5월 6일 로동신문
위대한 당을 따라 승리와 영광의 천만리 해방산기슭이 전하는 불멸의 당창건업적
우리 당이 창건된 때로부터 어느덧 70년, 승리와 영광으로 수놓아온 장장 수십성상의 갈피갈피를 뜨거운 추억과 깊은 감회속에 돌이켜보는 천만군민의 마음과 마음이 제일먼저 달려가는 곳이 있다.우리 당이 창건되던 나날을 수십년세월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대로 간직하고있는 해방산기슭의 당창건사적관이다. 봄의 훈향을 싣고 불어오는 바람이며 푸른 잎새를 펼친 갖가지 나무들,조국의 하늘을 담아싣고 조용히 설레이는 못가의 푸른 물마저도 잊을수 없는 사연들을 속삭이는듯싶어 력사의 땅을 밟는 우리의 마음은 마냥 숭엄해진다. 얼마나 하많은 이야기들이 이 해방산기슭과 더불어 력사에 새겨졌는가. 여기에서 조선로동당의 빛나는 력사가 시작되였고 바로 여기에 주체로 존엄높고 자주로 번영하는 우리 조국의 빛나는 오늘이 다 비껴있는것 아닌가. 해방후 당을 창건하시고 조선혁명을 승리에로 이끄신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이 깃든 이 해방산기슭을 떠나서 백전백승하는 조선로동당의 영광과 존엄에 대하여,이 땅에 펼쳐진 무수한 창조물들과 나날이 꽃펴나는 인민의 만복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다. 위대한 령도자 《조선로동당은 위대한 수령 당창건사적관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해방직후 친히 계시면서 당을 창건하시고 새 조국건설을 승리에로 령도하신 불멸의 사적이 깃들어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조국에 개선하신 첫 시기부터 계시며 정력적으로 사업하시던 이 건물이 당창건사적관으로 개관된것은 주체59(1970)년 10월이였다. 2층으로 된 사적관의 낯익은 건물앞에서 우리와 만난 관장 권미림동무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미 1960년대에 우리 당창건사적관을 당력사교양의 거점으로 꾸릴데 대한 여러차례의 가르치심을 주시였으며 45년전 2월 1일에는 오랜 시간 설계도면까지 보아주시며 로고를 바치시였습니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손수 연필로 도면에 수정까지 해주시면서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청사의 구조와 방배치상태를 하나하나 고증해주시였다.처음 쓰던 방은 2층 북쪽에 있던 작은 방이였다고,그런데 그 방은 해빛도 잘 들지 않고 큰길쪽에 있었기때문에 다른 방으로 옮겨야 되겠다고 하여 2층 동쪽에 있는 방으로 옮기였다고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고 중요한 회의들이 많이 진행되였던 회의실과 응접실에 대해서도 교시하시며 설계도면을 바로잡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당중앙위원회 해당 일군들에게 당창건사적관을 빨리 꾸리도록 과업을 주시겠다고,시간을 내여 현지에 나가보시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2월 10일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수십년전의 잊지 못할 추억이 깃들어있는 해방산기슭에 나오시였다. 뜻깊은 그날 청사의 1층에서 2층까지 매 방들을 하나하나 보아주시는 우리 수령님의 감회는 그 얼마나 깊었던가. 지금도 그려보느라면 흙먼지가 날리고 망치소리가 요란한 작업현장과 추억깊은 건물의 안팎을 일일이 돌아보시던 어버이수령님의 모습이 어려오고 자신께서 사업하신 집무실들과 응접실,회의실 등 방들의 비품과 그 배치상태,여러 부서사무실들의 위치,계단과 복도의 형태와 구조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시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들려오는듯싶어 심장은 세차게 높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책동지의 아들과 김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시던 때에 대하여,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제2차 확대집행위원회의와 과학자,기술자대회를 진행한데 대하여,봉산탈춤을 보신데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려주시고 고증도 해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를 앞두고 당창건사적관을 당시의 원상그대로 영구적인 사적건물로 복구하기 위한 투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졌다.그해 10월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사적을 후손만대에 길이 전할 력사의 집으로 훌륭히 꾸려져 문을 열게 되였다. 원래 해방산은 상서로운 기운이 도는 산이라는 의미에서 서기산이라고 불렀다.해방후 서기산기슭에 당중앙조직위원회청사가 자리잡고 백두산3대장군을 모시게 되면서부터 인민들은 서기산을 해방산이라고 불렀다. 눈에 보이는 모든것이 결코 무심히 안겨오지 않았다. 키높이 자란 저 나무가 우리 수령님께서 당창건위업을 구상하시며 새벽을 맞으시던 순간들을 간직하고있는 나무는 아닌지.길옆에 놓인 저 하얀 조약돌에 어버이수령님의 따스한 체온이 깃들어있지는 않는지. 항일혁명투쟁의 피어린 나날에 벌써 혁명적당창건의 빛나는 전통을 창조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해방후 지체없이 당을 창건하기 위한 사업에 착수하시였다. 온 나라 인민의 열광적인 환호도 마다하시고 조용히 평양에 도착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을 새 형의 혁명적당,인민의 리익을 옹호하는 우리 당의 창건을 위하여 어버이수령님께서 바쳐오신 심혈과 로고를 어떻게 한두마디로 다 이야기할수 있겠는가. 앞으로 창건될 당의 조직,정치로선도 손수 작성하셔야 했고 일군들을 양성하기 위한 대책도 세우셔야 했다.복잡하게 얽힌 정세의 실마리를 풀기 위하여 사색을 집중하시다가도 때없이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시여 나아갈 길을 밝혀주시였고 각 도에 파견되여 활동하는 항일혁명투사들의 사업도 지도하시였다. 《항일무장투쟁의 긴긴 나날 건강이 념려되여 하루밤만이라도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면 조국이 해방된 다음 푹 쉬자고 늘 말씀하시던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그런데 조국땅에 개선하시여서도 날마다 밤을 새우시니 어버이수령님께서 다문 얼마만이라도 편히 쉬셨으면 하는 우리의 소원은 언제 가면 이루어질것인가.》 이것이 그때 어버이수령님을 받들어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쳐온 투사들 누구나의 한결같은 생각이였다. 주체34(1945)년 10월 10일과 더불어 전해지는 이야기 오늘도 만사람을 세차게 격동시킨다. 바로 그전날 스무해 긴긴 세월 꿈속에서도 그리시던 고향 만경대를 지척에 두시고 강선의 로동계급을 찾아 복구건설의 불길을 지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온종일 쌓인 피로도 푸실 사이없이 저녁에는 당창립대회의 보고집필을 하시였다. 끼니마저 잊으신채 새벽까지도 집필에 전념하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한 일군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새날이 밝아온다고,잠시나마 쉬셔야 하겠다고 말씀올리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제는 습관이 되여 일없다고,새벽시간이 자신께는 제일 귀중한 시간이라고 하시였다.그이께서 잠시의 휴식도 없이 당창립대회보고의 마지막집필을 끝내시였을 때에는 어느덧 아침해가 떠오르고있었다.창가에 서시여 밝아오는 동녘하늘을 바라보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교시하시였다. 동무들,파란곡절과 준엄한 시련을 겪던 우리 나라 혁명운동력사에 새 페지를 기록할 시간이 다가오고있소.… 70년전 10월 10일의 아침은 이렇게 밝아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창립대회에서 우리 나라에서의 당건설과 당의 당면과업에 대한 력사적인 보고를 하시였다.대표들은 당의 조직로선과 정치로선을 한결같이 지지하고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의 창설을 전적으로 찬동하면서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러 격정의 환호성을 터뜨리였다. 연단에 높이 서시여 당창건을 엄숙히 선포하시던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러 격정을 터뜨리던 사람들의 숨결소리가 금시라도 들려오는듯싶어 우리의 눈굽이 젖어든다. 우리 당의 창건,진정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 시기부터 혁명적당을 창건하기 위하여 벌려오신 정력적인 투쟁의 결실이였으며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하고 항일의 혁명전통을 계승한 주체형의 혁명적당의 탄생이였다. 들을수록,새길수록 어버이수령님의 영원불멸할 당창건업적이 어려와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로 이곳에서 우리 당의 기관지인 《정로》의 창간사업을 세심히 이끌어주시였고 여러곳에 나가 하실 연설문들과 토지개혁을 비롯한 민주개혁실시를 위한 법령초안들을 준비하시였다.당중앙조직위원회안에 첫 세포를 내오도록 하시고 평당원이 되시여 당조직관념의 숭고한 모범을 보여주신 곳도 그리고 북조선로동당창립대회보고를 비롯한 수많은 고전적로작들을 집필하신 사적들이 깃들어있는 장소도 바로 여기 해방산기슭이다. 백두에 날리던 붉은 기폭에 마치와 낫과 붓을 빛나게 아로새긴 당기발을 바라보고 또 보시며 《ㅌ.ㄷ》가 결성되던 화전의 휘발하강가며 첫 당조직이 결성되던 진명학교의 수수한 교실,국내당조직을 결성하시던 때의 사연들도 다시금 추억하시던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우리는 사적관에서 서쪽으로 약 100m 떨어진 곳에 있는 수수한 2층집도 돌아보았다. 당창건의 나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제2의 빨찌산병실과도 같은 이 집에서 백두산시절처럼 투사들과 함께 지내시면서 사업하시였다.배식구가 달린 온돌방의 나무식탁에 허물없이 마주앉으시여 대원들과 꼭같이 잡곡밥을 드시였으며 옷차림도 수수한 군복차림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회고록에 감회깊이 쓰신 따바리잠에 대한 이야기도 이 집에서 있은 사실이다. 해방직후 지방공작을 하던 리오송동지가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오려고 이곳으로 찾아왔다.경위대원시절 사령관동지와 늘 한 모포를 덮고 자던 그는 그날도 취침시간이 되자 장군님과 같이 잘 때에는 따바리잠을 자야 한다고 하면서 이불을 와락와락 밀어제꼈다.위대한 수령님의 팔을 끌며 그는 《장군님,오늘만은 백두산시절처럼 따바리잠을 자보시지 않겠습니까?》 하고 말씀드리였다.그리고는 다짜고짜로 《장군님의 오른쪽에 김책동지가 누우시고 그옆에 최현동지,장군님의 왼쪽 옆자리는 내 자리입니다.》 하면서 잠자리들을 억지로 잡아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를 돌이켜보시며 이 어처구니없는 지령때문에 김책동지도 옴짝달싹 못하고 《따바리》속에 끌려들어갔다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그처럼 소탈하신 인민적풍모를 지닌분이시기에 해방후 우리 수령님을 만나뵈온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진정을 터놓고 그이를 우러러 격정을 아낌없이 터치였다. 강원도 평강군의 리수덕포수부부와 문맹퇴치운동의 선구자로 내세워주신 리계산녀성이며 한생을 반공으로 살아온 지난날과 단호히 결별하고 애국위업의 한길에 나선 남조선의 인사들을 비롯하여 각계각층의 인민들이 스스럼없이 어버이수령님의 넓은 품에 안겨 새 사회건설에 떨쳐나섰다. 우리 수령님께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도 금고속에 소중히 보관하고계시던 김책동지와의 뜻깊은 기념사진도 이 당창건사적관의 수수한 응접실에서 찍으신것이였으니 어찌하여 우리 당이 인민이 가장 신뢰하고 따르는 인민적당으로 될수 있었는가에 대한 대답을 오늘도 해방산기슭은 소리높이 전하고있다. 진정 뜨락은 넓지 않아도 온 나라 인민을 품어안고 승리에로 향도하는 조선로동당이 태여난 력사의 땅이여서 이곳 일군들과 강사,종업원들의 심정 또한 류다른것이다. 교양과장 심미화,강사들인 김원경,리금주동무들은 우리 당의 혁명전통,조선혁명의 명맥을 지켜간다는 숭고한 사명감을 간직하고 해설강의수준을 높이기 위해 이악하게 노력하고있다.들끓는 현실에 들어가 진행하는 이동강의를 통하여서도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당창건업적과 우리 당의 빛나는 혁명력사를 당원들과 근로자들에게 깊이 심어주고있다. 오랜 세월 영광의 초소를 지켜 충정의 구슬땀을 흘리고있는 관리원들인 김강수,홍의분,최광일,정혜영동무를 비롯한 종업원들모두가 혁명사적물들의 보존관리와 사적지구역을 훌륭히 꾸리기 위한 사업에 뜨거운 지성을 아낌없이 바쳐가고있다. 력사는 계승되여야 더욱 빛난다. 그 이름도 빛나는 경애하는 본사기자 백영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