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4(2015)년 5월 30일 로동신문

 

로동당의 딸-강선땅의 《처녀어머니》

20살 처녀의 몸으로 부모없는 7명의 아이들을 맡아 키우고있는

남포시 천리마구역사회급양관리소 로동자 장정화동무에 대한 이야기

 

얼마전 평양에서 진행된 제2차 전국청년미풍선구자대회의 높은 연단에 올라섰던 토론자들중에는 부모없는 아이들을 맡아 키우고있는 강선땅의 20살 난 처녀 장정화동무도 있었다.토론자들중에서도 제일 나이어린 그가 《처녀어머니》라는 희한한 부름과 더불어 우리 시대 청년미풍선구자들의 제일 앞자리에 떠받들려 나서게 될줄은 사람들 누구나 생각지 못했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특히 20살 꽃나이에 7명의 부모없는 아이들을 친혈육의 정으로 애지중지 키우고있는 〈처녀어머니〉의 소행은 만사람을 감동시키는 훌륭한 미덕입니다.》

대회가 끝난 후 기념사진촬영에 앞서 모범적인 청년미풍선구자들을 만나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부모없는 7명의 아이들을 데려다 정성껏 키우고있는 장정화동무의 소행을 높이 평가하시면서 《처녀어머니》라는 말은 오직 우리 나라에서만 생겨날수 있다고,다른 나라들에서는 이런 아름다운 소행을 상상도 하지 못할것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에만 있는 《처녀어머니》!

이것은 위대한 조선로동당과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 우리 제도의 품속에서 교양육성된 조선청년들만이 발휘할수 있는 위훈과 미덕의 상징이며 인간사랑,미래사랑의 대화원이 끝없이 만발하는 영광스러운 김정은시대가 낳은 또 하나의 아름다운 시대어이다.

 

강선의 딸

 

강선사람들은 천리마의 고향에서 《처녀어머니》가 나온 사실을 몹시 자랑스럽게 여기고있다.

비옥한 대지에서 알찬 열매가 맺히듯이 건전하고 고상한 환경과 가풍은 미덕의 꽃송이를 피우고 가꿔주는 훌륭한 토양이다.우리의 주인공 장정화동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먼저 온 나라에 소문난 강선사람들의 륜리와 가풍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수 없다.

강선사람들의 고유한 륜리와 가풍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수령의 걱정과 아픔을 자기의것으로 여기며 나라의 짐을 자기 어깨에 떠메려고 애쓰는 맏아들의 성품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정화가 어릴적에 그의 할머니는 늘 이렇게 말하군 했다고 한다.

《쇠물을 많이 뽑아야 집도 공장도 더 많이 짓고 우리 나라를 지키는 총과 대포도 더 꽝꽝 만든다.길가의 파철 한쪼각이라도 다 모아서 전기로에 보내줘야 한다.》

천리마구역도로보수관리대에서 일하고있는 정화의 아버지도,정화와 한일터에서 일하고있는 그의 어머니도 강선땅의 모든 가정,남녀로소모두가 그러하듯이 늘 강선사람의 자각을 안고 크든작든 강철증산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가지라도 하기 위해 애쓰는 평범한 로동자들이였다.

가정일보다 나라일을 더 중히 여기는 할아버지,할머니세대와 아버지,어머니세대의 그 모습들은 순결한 정화의 눈에 또렷하게 찍혔다.그가 자라면서 유치원이나 학교,가정에서 늘 듣는 이야기도 강철이야기였고 파철을 싣고,지원물자를 안고 어머니와 함께 제일 많이 걸은 길도 제강소구내길이였다.

불을 다루는 고장이여선지 강선사람들은 인정 또한 뜨거웠다.그래서 강선에는 부모없는 아이들을 스스로 데려다 키우는 녀성들도 적지 않았고 그중에는 로력영웅이 된 녀인도 있었다.정화는 이런 땅에 태를 묻고 성장하였다.

피눈물의 12월의 그날 용해공들에게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제손으로 만든 빵과 콩물을 안겨주었던 중학시절의 정화의 모습,위대한 수령님들의 동상을 더 잘 모셔달라고 멀리 돌가공공장까지 찾아갔던 그 모습을 사람들은 잊지 못해하고있었다.

천리마구역사회급양관리소 로동자로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뗀 정화가 18살 되던 두해전 1월 어느날이였다.

그날도 그는 어머니가 명예전투원으로 일하고있는 정든 강철직장에 지원을 나가게 되였다.그런데 현장을 지나던 정화의 눈에 뜻밖에도 소년단넥타이를 맨 아이들이 비껴들었다.

(직장에 웬 아이들이?)

알고보니 그 세 자매의 아버지는 강철직장에서 로동자로 일하다가 병으로 돌아갔고 같은 직장에서 일하던 어머니마저도 현장에서 순직하였다는것이였다.의리를 귀중히 여기는 강철직장 로동자들은 자기 직장 로동자부부의 자식들은 자기들이 맡아 키워야 한다고 하면서 부모가 되여 그들을 돌봐주고있었다.아버지,어머니의 일터를 떠나지 않겠다는 아이들의 마음도 리해되였다.그럴수록 훌륭한 로동자부부가 남긴 자매들의 모습이 정화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더우기 엄마를 찾으면서 우는 어린 두 동생들을 부둥켜안고 그래도 언니라고 맏이구실을 하느라 애쓰던 소녀의 모습은 정화의 마음을 꼭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그걸음으로 그는 어머니와 마주앉았다.

《제가 현장에 나가서 삽 몇삽 뜨고 파철 몇㎏을 가져다주는것보다 그 아이들을 맡아 잘 키우는것이 용해공들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강철을 더 생산하는 길이 아니겠나요.은정이네 형제들을 데려오자요.어머니도 친자식이 아닌 저를 이렇게 잘 키워주지 않았나요.》

딸을 이윽토록 바라보던 로춘복녀성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 몸도 변변치 않아 네가 고생인데… 이 에미손이 가지 못하면 어떻게 그애들을 키우겠니.》

잠자리에 누웠지만 정화의 눈앞에는 세 자매의 모습이 그냥 얼른거렸다.동생들을 꼭 껴안고있던 맏이의 눈물이 글썽한 얼굴과 그들을 위해 왼심을 쓰던 강철직장 로동자들의 근심어린 모습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문득 그의 귀전에는 강선에서 무연탄가스화대상공사가 벌어질 때 가두녀성들앞에서 제일선참으로 불같이 토론했다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70이 넘은 내가 힘이 있어 힘으로 강선을 지원하겠습니까,기술이 높아 기술을 바치겠습니까.내 모든걸 다 바쳐서라도 우리 용해공들을 돕겠수다.그것이 우리 장군님을 하루빨리 강선에 기쁘게 모시는 길이 아니겠소.》

그렇다면 나는 강선을 위해,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수 있을가,애들의 밥이나 빨래를 해주고 숙제공부도 봐주는 그런 일이야 내가 할수 있지 않을가 하고 곰곰히 생각하던 정화의 눈앞에는 육아원과 애육원의 원아들때문에 늘 마음쓰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영상이 어려왔다.

(혹시 원수님께서 문득 강선에 오셨다가 저 아이들을 보신다면?!)

정화는 소스라쳐 일어났다.

(내가 엄마구실은 못해도 그애들의 큰언니구실이야 할수 있지 않는가.)

정화는 단호하게 결심했다.

은정이네 세 자매를 집으로 데려온 다음달에 정화는 또 4명의 부모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문턱을 넘어섰다.그애들속에는 2살짜리 자명이도 있었다.

수령의 걱정,당의 걱정을 자기 아픔처럼 생각하는 고결한 충정은 6만t능력의 분괴압연기에서 12만t의 강재를 생산해내는 영웅적장거만이 아니라 고향도 피줄도 다른 사람들을 한집안식솔로 만드는 숭고한 미덕에서도 표현된다.7명의 아이들을 품어안으면서 장정화동무는 자기의 엄청난 결심과 행동이 그 무슨 미덕이라고는 꼬물만큼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다.꽤 해낼수 있겠는가고 따져보지도 않았다.그저 《쇠물집》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강선의 딸의 본능으로,당의 부름에 물불을 가리지 않겠다고 굳게 맹세한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원의 깨끗한 량심으로 그것을 꼭 자기가 해야 할 일로 여겼을뿐이다.이렇게 정화는 평범한 청년들이 쉽게 생각지 못할 미덕의 첫걸음을 떼였다.

자명이의 몸에 온통 퍼진 종처를 치료해주느라 정화가 매일 밤을 꼬바기 새우다싶이 하던 어느날 사회급양관리소 일군들이 아이들에게 안겨줄 학용품과 함께 국수까지 말아가지고 찾아왔다.함께 일하고있는 정화가 부모없는 아이들을 여럿이나 데려다 키운다는 말은 들었지만 정작 집을 찾아와 제눈으로 직접 본 그들의 감동은 참으로 컸다.

잔손질이 끝없는 철부지아이들을 한둘도 아니고 여럿을 아글타글 피나게 돌보고있는 정화의 수고도 놀라왔지만 자식 한번 낳아보지 못한 애어린 처녀가 보통녀인들도 견디기 힘든 부담을 묵묵히 이겨내면서 집단에 손 한번 내밀지 않고 소문없이 아이들을 키우고있는 그 웅심깊은 마음이 더 눈물겨웠다.터갈라진 정화의 험한 손을 어루쓰는 지배인 박명학녀성의 눈가에 뜨거운것이 맺혔다.

《제가 낳은 친자식도 고왔다 미웠다 하는데 18살 네가 이 아이들을 품어안고 얼마나 고생이 많겠니.우리 함께 이애들을 키우자.》

정화네 아이들에 대한 사연은 차츰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였다.

남새상점에서도,식료품상점에서도 우선적으로 남새와 기초식품들을 정화네 집으로 보내주었다.동에서도 늘 관심하는 정화의 집에서는 인민반회의도 자주 열리였다.

한 처녀가 부모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강철직장에 지원사업을 나오군 한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온 구역청년동맹위원회를 비롯한 청년동맹일군들의 마음은 얼마나 극진했고 조용히 찾아와 정화네 집일감을 덜어주군 하던 도로보수관리대 일군들과 로동자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따뜻했던가.

때없이 집문을 두드리던 구역인민위원회 일군들은 아이들의 겨울옷도 선참으로 마련해주었다.정화의 어머니는 딸이 심하게 앓자 너무 급해서 저도 모르게 구역당위원회에 전화를 걸어 책임비서의 승용차가 달려오던 일을 눈물 절반,웃음 절반으로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아이들을 집에 데려온 후 첫 운동회날이 왔다.

자식들을 키운 부모라면 누구나 체험했을 일이겠지만 운동회날을 명절날보다 더 즐거운 날로 여기는 아이들은 기뻐서 잠을 못 잔다면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운동회준비로 밤을 새우군 한다.

정화는 여섯 학생의 어머니였다.서너가지 반찬만 하자고 해도 큰 가마를 세번네번 갈아대야 하였다.땀을 철철 흘리며 준비한 여러개나 되는 음식꾸레미를 들고 정화는 학교로 종종걸음을 쳤다.

서로 떨어져있는 학교를 3개씩이나 돌며 사진까지 찍어주니 아이들은 너무 좋아 어쩔줄 몰라했다.정화가 땀범벅이 된 얼굴로 맏이인 은정이네 학교로 막 달음박질치고있던 그 시각 은정이는 운동장에 꽉 들어찬,아이들보다 더 많은 학부형들을 부러움의 눈길로 바라보고있었다.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면…)

문득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온몸이 땀에 푹 젖은 큰언니가 사진사와 함께 서있었다.

《동생들의 학교를 다 돌고나니 이제야 왔구나.》

은정이는 쿡 솟구치는 눈물을 감추느라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은정이네 담임선생님은 정화를 보자 펄쩍 뛰며 말했다.

《은정이 점심은 학교에서 준비해준다고 그애한테 단단히 말했는데…》

정화는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이나 동무들이 준비해준 음식도 좋지만 그래도 내 손으로 해주고싶어서요.》

녀교원은 목이 메서 정화를 바라보았다.

(내 나이의 절반도 안되는,내 막내딸보다도 더 어린 저 처녀의 가슴에 어쩌면 저렇듯 큰 사랑과 힘이 넘쳐나고있는것인가.)

은정이네 교실은 학부형들과 학생들로 가득찼다.이때 교실문이 활짝 열리더니 《큰언니,큰누나!》 하는 목소리들이 또랑또랑 울리였다.귀에 익은 그 소리에 정화도 은정이도 돌아보았다.동생들이였다.

《함께 점심먹고싶어 왔어요.》

은정이네 형제에 대한 사연을 잘 알고있는 학부형들과 선생님도,학급 학생들도 모두 그들을 에워쌌다.제일 맛있는 음식들이 은정이네 형제앞에 가득가득 펼쳐졌다.정화는 목이 꽉 메였다.

(이래서 우리 나라를 사회주의대가정이라고 하댔구나.)

점심식사가 끝난 후 교실에서는 오락회가 벌어졌다.모두들 정화부터 짚었다.군중앞에 나서서 별로 노래를 불러본적 없는 정화였지만 그날은 어쩐지 꼭 노래를 부르고싶었다.

《동생들과 함께 부르겠어요.》

정화곁에 아이들은 나란히 섰다.은정이가 《세상에 부럼없어라》노래의 선창을 뗐다.정화와 형제들이 목소리를 합쳤다.

그 광경을 보는 학부형들과 교원들의 눈시울은 젖어들었다.부모없는 아이들의 입에서 《세상에 부럼없어라》노래가 저렇듯 행복스럽게 울려나올 때까지 저 18살 처녀가 얼마나 많은 눈물과 땀을 흘렸을것인가.

그 다음날,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자 정화는 준비했던 음식꾸레미를 들고 그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영문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정화는 이야기했다.

《오늘이 은정이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이란다.우리모두 은정이어머니를 찾아가자꾸나.》

은정이어머니묘소앞에서 정화는 말했다.

《은정이어머니는 강선을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 바친 훌륭한 로동자였다.은정아,부디 어머니를 잊지 말거라.》

은정이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지금껏 목을 메우고있던 마음속웨침을 그는 어머니를 향해 터쳤다.

(어머니,걱정하지 마세요.우리에게 좋은 새 엄마가 있어요.)…

정화네 아이들이 두번째로 맞는 개학날이였다.그날 점심 정화네 집으로는 구역청년동맹 일군들,청년동맹초급일군들과 함께 인민반장이 찾아왔다.

《정화동무,생일을 축하합니다!》

정화는 4월 1일을 아이들의 개학날로 기억하고있었지만 동지들과 이웃들은 《처녀어머니》의 생일날을 잊지 않고있었다.뒤이어 꽃다발을 한아름씩 안은 아이들이 와르르 들어왔다.《생일을 축하해요!》

꽃다발속에 끼여있는 종이장에는 수채화로 성의껏 그린 꽃송이들이 그려져있고 뒤장에 이런 글이 씌여져있었다.

《우릴 위해 고생많은 사랑하는 우리 언니,오늘 하루만이라도 이 꽃을 보면서 환하게 웃으세요.》

은정이는 슬며시 그의 손에 새 양말 3컬레를 쥐여주며 울먹울먹 말했다.

《언닌 우리때문에 언제 한번 새 양말 신어본적 없었지요.》…

천리마시대의 고결한 인간관계의 상징과도 같은 강선의 《쇠물집》가풍은 우리 나라 사회주의대가정의 륜리와 가풍의 축소판이라고도 말할수 있다.어제도 오늘도 줄기차게 이어져오고있는 그 가풍은 강선의 후대들에게 백옥처럼 순결하고 정직한 정신과 량심을 대대로 물려주고있으며 오늘은 우리 나라에만 있는 《처녀어머니》를 낳아 이 땅의 청춘들이 너도나도 따를 미덕의 거울로 시대앞에 내세워주었다.

 

안아주고싶었습니다!

 

미덕에 대한 이야기들로 충만된 우리 사회에서 당과 국가의 걱정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며 부모없는 아이들을 자기 자식으로 품어안아 키우는 고마운 어머니들의 소행은 어느덧 례사로운 일처럼 여겨지고있다.그러나 금방 학교문을 나선 18살 어린 처녀가 7명의 부모없는 아이들을 키운다는것은 보통일이 아니였다.하여 우리의 《처녀어머니》의 작은 몸에는 모성애를 초월하는 사랑이,어머니들도 감동을 금치 못해하는 헌신과 희생의 정신력이 용암처럼 자리잡게 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부모없는 아이들을 데려다 키운 어머니들 누구나 겪는 육체적부담에 대한 이야기는 구태여 말하려 하지 않는다.

《빨래나 밥하는건 밤새워 해도 괜찮았습니다.그런데… 언니나 누나벌이 겨우 되는 어린 내가 진짜로 엄마구실하기가 참 힘들었어요.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 아이가 아이를 키운다구 혀를 차기까지 했어요.》

정화에게 제일 힘겨웠던것은 그와 나이차이가 별로 없는 7명 아이들이,그것도 서로 혈육도 아닌 애들이 자꾸만 엇서나가는것이였다.

어떤 애는 점심밥을 가방에 넣고 학교에 간다고 꾸벅 인사까지 하고도 실컷 놀다가 집으로 돌아와서는 학교에 갔다왔다고 거짓말을 하군 했다.집에 찾아온 은정이네 담임선생님은 그애가 며칠째 학교에 안 나오는데 무슨 일인가고 묻기까지 하였다.

몇번이나 타일러도 보고 욕도 해보았지만 점점 더 엇나갔다.정화와 은정이는 기껏해서 몇살차이였다.정화는 그만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너 왜 언니말 안 듣니?》

분을 참지 못해 쌔근거리던 은정이가 휭하니 웃방으로 뛰쳐올라갔다.

잠자리에 누우니 정화는 절로 눈물이 났다.며칠전 아침에 있었던 일도 생각났다.부엌에서 아이들의 점심밥곽을 준비하는데 방안에서 밥을 먹던 은설이가 경희에게 슬그머니 하는 말이 들려왔다.

《밥 좀더 달라고 하렴.》

저런 말을 벌써 몇번째나 듣는 정화였다.더 참을수 없었다.

《더 먹고싶으면 네 입으로 말하지 왜 남을 시키니!》

은설이도 곁의 아이들도 목을 움츠렸다.

(그렇게 정을 주는데 왜 내 마음을 몰라줄가?)

정화의 눈앞에는 웃방으로 뛰쳐올라가던 은정이,고개를 떨어뜨리고 밥상에서 일어나던 은설이의 모습들이 번갈아 떠올랐다.가슴이 서늘해졌다.

(애들이 눈치밥을 먹는건 내가 살뜰한 어머니로 보이지 않기때문이야.난 아직 철이 없어.참았어야 했는데…)

훌륭한 품성은 결코 나이가 절로 가져다주는것이 아니다.정화는 이렇게 자기를 이겨내고 자기를 스스로 수양하는 힘겨운 일로부터 《처녀어머니》가 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디였다.그 이악한 노력끝에 처녀는 비록 18살밖에 안되였지만 점차 자신의 감정과 고충을 묵묵히 참고 이겨낼줄 아는 인정많고 강의한 어머니로 변모되기 시작하였다.아이들과 정화는 점점 친혈육처럼 가까와졌다.

정화가 심하게 앓아누웠던적이 있었다.큰언니는 앓는 법을 전혀 모르는줄 알고있었던 아이들이 겁이 더럭 나서 그날 저녁은 일곱 아이가 병아리들처럼 정화의 머리맡에 오구구 둘러앉았다.정화가 늘 밤이면 아이들에게 그러했던것처럼 이번에는 아이들이 정화에게 저저마다 물었다.

《큰누나,내가 옛말 해달라요?》

《언니,뭘 먹고싶나요?》

그다음 아이들은 정화가 제일 사랑하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날이 갈수록 차츰 정화는 단순히 아이들을 먹여주고 입혀주는 큰언니구실이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을 키워주는 어머니구실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절감하게 되였다.말 한마디,행동 하나 지어 글씨 하나까지도 아이들의 거울이 되기 위하여 그는 얼마나 피타게 노력했던가.

우리와 만난 한 교원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매일 아이의 숙제장에 적어넣는 〈어머니 보았습니다.〉라는 정화동무의 수표가 점점 고와지는것을 나는 놀랍게 느끼게 되였습니다.사연을 알아보니 글쎄 정화동무가 어머니의 수표글씨가 아이들의 글씨에 본보기가 되여야 한다고 하면서 남몰래 펜글련습을 시작했다는것이 아니겠습니까.그런 학부형을 저는 처음 보았습니다.》

아이들의 숙제장에 매일 례사롭게 남기는 어머니의 수표,그 별치않은 작은 세부에서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에 거울처럼 비낄 어머니의 고운 글씨를 생각하며 몰래 펜글련습을 했다는 그런 이야기를 우리도 처음 들었다.어뜩새벽에 일어나 아이들의 밥을 지어주고 등교준비를 살펴주며 아직 오줌갈이를 하지 못한 2살짜리 철부지막내와 6명의 아이들의 빨래를 하느라,숙제검열을 하느라 하루 3~4시간밖에 차례지지 않는 그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금방 우리 글을 배우는 소학생처럼 네모칸학습장을 펼치고 《어머니 보았습니다.》라는 여덟 글자를 쓰고 또 썼을 모습을 그려보는 우리의 눈시울은 저도 모르게 뜨거워졌다.

훌륭한 어머니라고 해서 누구나 다 훌륭한 교육자가 될수 있는것은 아니다.

정화네 집에서는 자주 오락회가 벌어지군 한다.아이들이 기다리는 그 오락회시간에도 사연이 있다.

성격도 취미도 제나름인 아이들속에는 남달리 성격이 꽁하고 아이들과 섭쓸리기 싫어하는 은설이라는 처녀애도 있었다.어느날 밤이 깊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는 은설이를 찾아 허겁지겁 헤매며 찾다가 보니 그애가 학교수영장구석에 홀로 쪼그리고 앉아있었다.열번나마 물어보아서야 겨우 한마디 한다는 소리가 아이들에게서 음치라고 놀림을 받았다는것이였다.

그 다음날 저녁부터 정화의 집에서는 오락회가 벌어졌다.짚기도 하고 빙 돌아가기도 하면서 한 아이씩 노래를 불렀다.은설이까지도 차츰 활기를 띠고 주저없이 일어나 노래를 불렀다.정화는 은설이와 함께 한곡의 노래를 열번스무번씩 부르군 했다.

단순히 한 아이의 우울함을 가셔주고 꽁한 성격을 고쳐주어 밝고 명랑하게 키우려는 그런 생각에서만이 아니였다.자기가 맡아 키운 7명모두가 알찬 열매가 되고 든든한 기둥감이 되여야 한다는 책임감에서였다.그래서 그는 은설이에게 정확한 음감을 키워주는것을 어머니의 분공으로 스스로 받아들이고 기타까지 배웠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정화는 언니이기 전에 교양원이였고 소년단지도원이기도 하였다.

정화네 집앞에는 아담한 꽃밭이 있다.원래는 인민반에서 가꾸던것을 정화가 자기 형제들이 가꾸겠다고 제기해서 인민반꽃밭은 그의 집 꽃밭처럼 되였다.아이들이 거리에서 꽃을 꺾어가지고 왔을 때 정화는 이렇게 타일렀다.

《꽃 한송이,풀 한포기도 제손으로 가꾸고 사랑할줄 알아야 이다음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될수 있단다.》

정화는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대동강가에 나가 고운 조약돌도 주어왔다.애국은 자기 집뜰안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말씀의 깊은 뜻을 정화는 이렇게 자기의 소박한 진정으로 아이들의 작은 가슴에 꽃씨처럼 심어주었다.그렇게 가꾼 꽃으로 꽃다발을 엮어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찾아가군 하였다.

강선의 훌륭한 청년동맹원 장정화의 순결하고 깨끗한 정신세계는 소년단원들의 순진한 마음속에 이렇게 붉게붉게 스며들었다.

《처녀어머니》가 겪은 그 무수한 힘에 부친 체험속에서도 제일 견디여내기 힘들었던 체험이 있다.

정화도 한창나이의 처녀였다.자기또래 처녀들처럼 고운 옷을 떨쳐입고 놀러 가고도 싶었고 춤추러 가고도 싶었다.그러나 18살에 일곱 아이의 어머니가 된 그는 다른 처녀들이 마음껏 누리는 꿈많고 노래많은 즐거운 처녀시절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였다.

어느 명절날 친한 녀동무가 그를 찾아왔다.

《정화야,춤추러 가자.》

정화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나에겐 아이들이 있지 않니.》

자기와 동갑나이에 엄마구실을 하느라 고생하는 《처녀어머니》,자기보다 열갑절 더 커보이고 어른스러워보이는 정화의 모습을 녀동무는 눈물겹게 바라보았다.2살짜리 막내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정화를 보고 벌써 애기어머니가 되였는가고 놀라와하던 동창생총각들의 눈길을 피하느라 어쩔줄 몰라하던 그 모습이 가슴아프게 떠올랐다.

그날 두 처녀는 온종일 함께 아이들의 빨래도 하고 집도 거두었다.일을 끝내고났을 때 녀동무는 정화에게 물었다.

《힘들지 않니?》

《힘들어.어떤 땐 네가 부럽기도 해.하지만 난 이젠 어머니가 아니냐.》

단 한번 정화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일터에서 어쩌다 들어온 어머니에게 이렇게 간청한적이 있었다.

《어머니,나 딱 한번만 춤추러 가고싶은데…》

정화의 마음속고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어머니는 흔연히 그의 등을 떠밀었다.

강철증산을 위한 지원사업을 잘하여 위대한 장군님의 감사를 여러차례나 받아안은 어머니의 모습에서 정화는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바치는것이 곧 미덕이라는 생활의 진리를 배웠으며 딸애가 참된 어머니구실을 할수 있도록 말없이 떠밀어주고 보살펴준 그 진정에서 큰 힘을 얻군 하였다.

《어서 다녀오너라.내가 있지 않니.》

하지만 정화는 겨우 반시간도 안되여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보통 그 나이의 처녀라면 아직도 어머니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응석받이나 다름없다.하지만 정화는 처녀시절의 모든 락을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다 바치고 18살에 어머니가 되였다.

《처녀어머니》!

꿈많은 처녀시절이라고 어머니조국이 아름다운 노래까지 꽃다발로 엮어 안겨준 그 시절에 부모없는 아이들을 위해 자기 꿈을 바친 처녀,위훈의 창조자로 마음껏 이름을 떨칠수 있는 청춘의 권리도 고스란히 바쳐 우리의 사회주의대가정의 화원에 한줄기 미덕의 뿌리가 되여준 훌륭한 녀성애국자앞에 우리는 머리를 숙이지 않을수 없었다.

우리가 취재과정에 들은 그 무수한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여기에 다 적을수는 없다.하지만 한가지 이야기만은 꼭 덧붙이고싶다.

취재가 끝나갈무렵 장정화동무는 우리앞에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꺼내놓고 매 아이들의 얼굴을 짚어가며 말했다.

《은정이는 제 소원대로 인민군대에 입대할거예요.우리 막내는 조금 더 크면 축구선수로 키우고 은향인 성악가로 키우겠어요.》

그때 우리의 귀전에는 평양애육원을 찾으시고 원아들을 잘 키워 앞으로 이들속에서 이름난 과학자,체육인,예술인,군인도 나오고 영웅도 나오게 하여야 한다고 절절하게 이르시던 경애하는 원수님의 그 음성이 쟁쟁히 울려왔다.인간에 대한,미래에 대한 우리 원수님의 지극한 사랑의 세계가 어떤것인가를 만사람의 가슴속에 새겨주는 그 자애로운 음성이 바로 장정화동무의 인생을 그렇듯 고결한 헌신과 희생,신념과 의지로 쉬임없이 불타게 하여준 불꽃이 아니였던가.

그는 우리 원수님의 그 고귀한 말씀을 다름아닌 어머니당이 청년동맹원 장정화에게 준 영원한 인생의 분공으로 받아안았다.

우리의 주인공 장정화동무의 인생관은 단순하고 명백하다.경애하는 원수님과 나라앞에 부모없는 일곱 아이를 바로 자기가 책임졌다는 그 비상한 각오로 충만된 불굴의 정신력은 그로 하여금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든 그 모든 정신육체적괴로움을 꿋꿋이 이겨내고 불과 2년동안에 뭇사람들이 20년을 두고도 오르기 힘든 아득한 정신도덕적높이에 그를 오르게 하였다.그 정신력이 20살 처녀를 교원들도,의사들도,어머니들도 감복하는 《처녀어머니》로 억세게 성장시켜 우리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활짝 피여나게 해주었다.

소박한 들꽃처럼 강선땅에 소문없이 피여난 한떨기 미덕의 꽃을 보며 우리는 당이 부르는 가장 어렵고 힘든 일터와 초소들에서,남들의 눈에 별로 띄우지 않는 학교와 마을들에서 청년영웅으로,청년미풍선구자로 진한 향기를 풍기고있는 수천수만의 장한 청춘들,그들의 모습을 그려보았다.당에서 바라고 걱정하는 일이라면 할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기 전에,그 짐의 무게를 가늠하기 전에 로동당의 청춘인 자기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며 어렵고 힘겨운 인생길을 스스로 택하고있는 청년들,그들의 심장마다에서 울려나오는 《당의 부름에 물불을 가리랴!》,《당을 따라 곧바로,힘차게 앞으로!》라는 웨침이 우리 가슴을 세차게 흔들었다.

 

* *

 

제2차 전국청년미풍선구자대회이후에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장정화동무의 소행에 대하여 다시금 높이 평가하시면서 그를 안아주고싶었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안아주고싶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원수님께서 제일 마음쓰시며 아침저녁 보살펴주고싶으신 부모없는 아이들을 스스로 품어안은 기특하고 대견한 처녀에게 령도자이시기 전에 인간으로서 아낌없이 주고싶으신 어버이의 진정이였다.

안아주고싶었습니다!

그것은 내 나라의 푸른 하늘아래 만발하게 피여나 미덕의 향기를 풍기는 《처녀어머니》와 같은 수천수만의 젊은이들을 금방석에 앉혀주고싶으신 우리 원수님의 웅심깊은 마음속고백이였다.

수백만 청춘모두를 아들딸로 품어안고 참되고 용감하게 키워 조국앞에 내세워주고있는 어머니당의 넓고 따사로운 품속에서 《처녀어머니》가 태여나고 20여년간을 청년돌격대에서 위훈을 떨치고있는 미더운 녀성돌격대원,용감한 처녀선장과 최전연섬초소학교를 지켜가는 처녀교원들이 늘어나고있다.이렇듯 로동당의 참된 아들딸들의 군상이 바로 우리의 청년강국이다.

글 본사기자 조향선
사진 본사기자 강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