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4(2015)년 6월 4일 로동신문

 

백두의 칼바람정신이 천만군민을 부른다

보천보전투승리기념일을 맞으며

 

6월 4일,이날은 사람들속에 보천보전투승리기념일로 널리 알려져있다.

어느덧 78년세월이 흘렀다.어제날 이 력사적인 전투에 참가했던 투사들도,그날의 타오르는 홰불앞에서 백두산청년장군을 우러러 만세의 환호성을 터치던 목격자들도 지금은 거의 남지 않았다.하지만 오늘 붉은넥타이 날리는 소년단원으로부터 머리에 백발을 얹은 전쟁로병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가슴마다에는 보천보전투의 거대한 의의가 교과서의 글줄이나 지나간 력사로가 아니라 민족자존의 불멸의 기념비로 깊이 새겨져있다.

보천보전투는 조선을 건드리는자는 파멸을 면치 못한다는 민족의 기개와 우리 인민은 절대로 그 누구의 노예로 살지 않는다는 민족적자존심을 내외에 선포한 력사적인 전투였다.누구나 보천보전투를 말할 때면 조선은 죽지 않았다,조선의 정신은 살았다,조선의 심장도 살았다,불을 지르라,원쑤의 머리우에 불을 지르라는 보천보의 불길에 어린 력사의 웨침을 생각한다.

새로운 주체100년대의 진군길에서 맞는 보천보전투승리기념일은 천만군민에게 보천보의 불길에서 나래치는 백두의 칼바람정신을 깊이 새겨주고있다.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몸소 여러차례나 백두산에 오르시여 맞으신 백두의 칼바람이 보천보의 불길에 오늘의 시대적의미를 더해주며 거대한 생활력을 떨치게 하고있다.

보천보전투의 승리는 바로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밑에 조선인민혁명군이 백두의 혁명정신,백두의 칼바람정신으로 안아온 고귀한 결실인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백두의 혁명정신,백두의 칼바람정신은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맞받아 뚫고나가는 완강한 공격정신이며 백번 쓰러지면 백번 다시 일어나 끝까지 싸우는 견결한 투쟁정신입니다.》

백두의 칼바람은 항일전의 나날 혁명의 길에서 언제 한번 멎은적 없이 불어친 신념의 강풍이다.그것은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을 온갖 시련과 난관앞에서도 비관을 모르는 불굴의 강자들로 키워주며 그들을 조국진군,조국해방의 길로 힘있게 추동하였다.

얼마전 백두산지구를 찾았던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천보전투후 조선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신 뜻깊은 곳을 돌아보았다.

78년전 환호하는 인민들앞에서 연설하시던 어버이수령님의 모습을 그대로 형상한 동상이 정중히 모셔져있는 이곳에는 지금도 조선혁명 만세의 함성 드높던 그날의 크나큰 격정이 그대로 흐르고있는듯싶었다.

백두의 밀림인양 분비,가문비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선 정교한 숲을 배경으로 으스러지게 틀어쥐신 주먹을 높이 추켜드시고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을 우러르느라니 하나의 불길로 온 조국강산에 혁명승리의 홰불을 지펴올리시던 절세위인의 불멸의 업적이 가슴뜨겁게 안겨들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지휘하신 보천보전투는 한마디로 말하여 생리별을 당한 어머니와 그 자식들의 상봉과 같은 사변이였고 망국사의 흐름을 해방에로 돌려세운 결정적인 계기의 하나였다고도 할수 있었다.

지금도 보천보를 둘러싼 곤장덕이며 려수덕의 푸른 숲을 그려보느라면 조국의 품으로 달려오는 유격대원들의 그리움에 젖은 모습이 어디선가 보일듯싶고 130여개의 총탄자리가 력력한 경찰관주재소며 소방회관,면사무소들은 혁명선렬들의 애국의 열기로 화염에 휩싸이던 잊을수 없는 그날 밤이 눈앞에 펼쳐지게 하는듯싶다.그러느라면 《보천보야 조국이 아닙니까!》라고 자신있게 웨치던 투사들의 절절한 목소리가 쟁쟁히 들려오는것만 같다.

보천보전투를 앞두고 있은 지휘관회의에서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성된 정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시면서 이런 문제를 제기하시였다.

…보천보를 치자면 여러가지로 타산을 해보아야 한다.첫째로,수백명에 달하는 부대가 적의 조밀한 국경감시망을 번개처럼 뚫고들어가 적을 치고 번개처럼 빠져나오는 전격전을 할수 있는가? 둘째로,이 전투는 단순한 화력전이 아니라 국내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주는것을 주요한 과제로 삼고있는것만큼 화력전을 하면서 강력하고 신속한 정치선동을 동시에 해야 하는데 이런 신속한 선전선동이 가능한가? 셋째로,우리는 이번 기회에 혁명군무력과 지하조직이 하나의 목표를 놓고 련합작전을 하는 모범을 창조하려고 하는데 그것을 실행할수 있겠는가?

이 세가지는 다 헐치 않은 전제들이였다.

그러나 투사들은 그 어떤 성공여부나 담보에 앞서 해낼수 있습니다,명령만 내리십시오라고 사령관동지께 말씀올리였다.

무송원정을 통해 백두의 칼바람속에서 어엿한 혁명가로 성장한 신념의 인간들에게 다른 대답은 있을수 없었다.

바로 강도 일제를 쥐락펴락하시는 백두산위인께서 직접 조직지휘하시는 전투이며 그처럼 가고싶던 조국에로의 길이였기때문이였다.

그때 지휘관들의 절절한 심정이 《보천보야 조국이 아닙니까!》라는 이 한마디 말에 다 담겨있었다.

조국진군,그것은 조선인민혁명군의 정치군사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지향점이였다.백두의 칼바람을 맞받아헤치며 시련과 난관을 이겨내고 지어 목숨까지도 각오해야 할 간고한 행로였다.

력사적인 무산지구전투의 승리가 고난의 행군이라는 값비싼 대가로 이루어진것이라면 보천보전투의 승리는 무송원정의 피어린 결전의 결과로 마련된것이였다.

간고성과 엄혹성에 있어서 고난의 행군과 더불어 그 류례를 찾아보기 힘든 무송원정은 로대원들에게 있어서조차 이를 악물고 이겨내지 않으면 안되였던 엄청난 시련이였다.추위에 시달리고 굶주림에 쪼들리고 수면부족으로 고통을 당하고…

무슨 고생인들 없었겠는가.싸움을 련속 하다나니 피도 많이 흘렸고 가슴아픈 희생도 있었다.

간고한 행군과정에 잃었던 미투리가 해토가 되여 다시 나올 때 이깔나무정수리에 걸려있은것을 찾았다는 기막힌 이야기도 이때 생겨났다.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자!

기어이 살아서 조국으로 진군하자!

우리 수령님의 심장에 끓어넘치는 이 불굴의 신념은 유격대원들의 가슴마다에서 그대로 맥박쳤고 항일무장대오는 한치한치 조국에로의 길을 열어나갔다.

조국진군,보천보전투에로 잇닿은 무송원정은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맞받아 뚫고나가는 완강한 공격정신이 무엇이고 백번 쓰러지면 백번 다시 일어나 끝까지 싸우는 견결한 투쟁정신이 어떤것인가를 다시한번 력사에 아로새기였다.

무송원정의 그 험난한 길에서 투사들에게 백절불굴의 혁명적의지를 북돋아준 백두의 혁명정신,백두의 칼바람정신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시련과 난관을 견결히 이겨낸 신념의 강자,불굴의 인간들에게 조국진군의 크나큰 꿈을 이루게 해주었고 보천보전투승리의 진미를 맛보게 해주었다.

백두의 혁명정신,백두의 칼바람정신으로 만난시련을 이겨낸 조선인민혁명군은 보천보전투를 통하여 절세의 위인을 모신 조선은 언제나 죽지 않으며 침략자들이란 칼로 내려치면 동강이 나고 불을 지르면 짚검불이나 북데기처럼 타번지는 일종의 페기물같은 존재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보천보전투의 승리가 그후 구시산전투와 간삼봉전투에서의 쾌승의 메아리를 안아왔고 적들이 《후두부를 꽝 하고 강타를 당한것 같다.》느니,《천날동안 베여들인 새초를 한순간에 태워버린듯 한 한을 남겼다.》느니 하면서 아우성을 쳤으며 국내외의 수많은 신문,통신들도 이 소식을 전하는데 지면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하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첫 혁명전적지답사행군대오를 이끄시고 보천보를 찾으시였을 때에도 어버이수령님의 혁명력사를 더 깊이 연구하고 따라배워야 한다고 그리도 간곡히 교시하신것이리라.

백두산의 기질을 천품으로 타고나시여 위대한 수령님들의 불멸의 자욱어린 보천보를 언제나 마음속에 안고계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은 백두의 칼바람정신으로 우리 민족과 인류의 운명을 수호하시는 걸출한 령도자이시며 일당백의 무적강군을 수하에 거느리신 위대한 최고사령관이시다.

우리에게는 백두산형의 천출위인이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계시고 백두의 혁명정신,백두의 칼바람정신으로 심장을 끓이는 강의한 인민이 있으며 보천보전투에서의 빛나는 승리와 같은 위대한 혁명전통이 있다.

우리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거룩한 자욱이 어려있는 보천보를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며 위대한 당의 령도따라 백두의 혁명정신,백두의 칼바람정신으로 타오르는 혁명적신념의 홰불,최후승리의 홰불을 영원히 높이 추켜들것이다.

백두의 혁명정신,백두의 칼바람정신이 보천보의 불길에서 빛발치는 백승의 진리를 새겨주며 천만군민을 부른다.

글 본사기자 김준혁
사진 본사기자 김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