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4(2015)년 6월 5일 로동신문
성스러운 백두의 행군길 꿋꿋이 이어가리라
백두의 붉은기 높이 만난시련을 과감히 헤치며 도도히 전진하는 선군혁명대오에 힘차게 울려퍼지는 노래가 있다. … 가리라 가리라 백두산으로 가리라 우리를 부르는 백두산으로 가리라 노래 《가리라 백두산으로》,그것은 노래이기 전에 백두산장군을 높이 모신 우리 군대와 인민의 신념의 선언으로 시대를 진감하고있다.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길을 개척하시여 영원한 백승의 길을 열어놓으신 위대한 위대한 령도자 《백두산과 같은 혁명의 성산을 가지고있는것은 조선의 자랑이며 조선인민의 더없는 긍지입니다.》 백두산,세대와 년대를 넘어 어제도 오늘도 천만군민의 대오가 성스러운 혁명의 성산으로 도도히 굽이쳐흐르는 선군조선의 현실이 새겨주는 력사적의미는 참으로 심오하다. 지금으로부터 59년전 6월,위대한 장군님께서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길을 개척하시여 혁명의 명맥을 굳건히 이어놓으신 력사적업적이 더욱 빛을 뿌린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평양제1중학교 학생들로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에 대한 답사행군을 조직할것을 결심하신것은 1950년대 중엽이였다.준엄한 시기였다.미제의 반공화국압살책동이 극도에 달하고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이 감히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거세말살하려고 책동하고있던 엄혹한 때였다. 바로 그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을 조직할것을 결심하시였다.대용단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결심을 아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참 좋은 생각을 했다고 하시면서 우리 나라 속담에 《첫 새벽문을 열면 오복이 들어온다.》는 말이 있는데 혁명전적지에 대한 첫 답사가 바로 그렇다,초행길인것만큼 마음을 먹고 한번 걸어보라고 적극 고무격려하시였다. 어중이떠중이들의 훼방을 단호히 물리치시고 주체45(1956)년 6월초 평양제1중학교 학생들로 혁명전적지답사행군대를 조직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력사적인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길에 오르시였다.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혁명전적지답사단이였다. 그날은 6월 5일이였다. 삼도왜적을 벌벌 떨게 하시던 빨찌산 김대장이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생생히 간직되여있는 천고밀림,일제의 백만대군을 삼대베듯 쓸어버리던 격전장들과 조국에로의 진군나팔소리가 금시라도 쟁쟁히 울려올듯싶은 울창한 수림들… 답사기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발자취가 어려있는 혁명전적지들을 돌아보시며 실로 많은것을 절감하시였다. 보천보에 도착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에 경건히 인사를 드리시고 수령님께서 보천보전투를 지휘하신 장소의 황철나무며 일제의 경찰관주재소건물과 소방회관,면사무소,우편국,산림보호구자리들을 일일이 돌아보시며 포악한 일제를 쳐부시고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실현하신 우리 수령님의 업적을 깊이 체득하시였다. 그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혁명전적지답사로정을 앞으로는 백두산마루까지 련결시켜놓으실 철석의 의지를 굳히시였다. 보천보를 떠나 삼지연못가에 이르시여서도 우리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업적을 길이 빛내이실 숭고한 뜻으로 가슴 불태우시였다.삼지연못가에서 숭엄히 안겨오는 혁명의 성산 백두산을 바라보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수령님께서 혁명의 홰불을 높이 지펴올리신 백두산은 온갖 시련을 헤쳐온 조선혁명의 력사를 길이길이 전하며 높이 솟아 빛날것이라고 선언하시였다. 답사행군대오가 삼지연못가를 떠나 갑무경비도로에 들어섰을 때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답사단성원들에게 동무들,이제부터 우리는 항일유격대원들이 일제의 삼엄한 경계속을 뚫고 대낮에 보무당당히 행군한 갑무경비도로로 가게 된다고 하시면서 이 력사적인 길로 우리가 어떻게 차를 타고 지날수 있겠는가,우리도 항일유격대원들처럼 행군하자고 말씀하시였다.위대한 장군님 따라 답사행군대오가 전진하는 길우에 《유격대행진곡》의 노래소리가 울려퍼지였다. 그 나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답사단이 항일유격대식으로 생활하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친히 밥도 지으시며 항일의 전구에 불멸의 자욱을 새기시였다.위대한 장군님의 직접적인 발기와 령도아래 우리 당력사에 빛나게 아로새겨진 우리 나라에서의 첫 혁명전적지답사는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그 나날과 더불어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길이 개척되고 그 길을 따라 우리 인민은 백두산으로 오르고 또 오르며 백두의 행군길을 끝까지 이어갈 결의로 가슴 불태웠다.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길을 개척하시던 그때 우리 장군님은 10대이시였다.누구나 걸을수 있는 길,누구나 개척할수 있는 길이 결코 아니였다. 전후시기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이 감히 우리 당의 혁명전통,백두의 혁명전통에 오가잡탕을 끌어넣으려고 음으로양으로 책동할 때 백두산에로의 답사길을 개척하신 위대한 장군님이시다. 력사의 그 길이 있어 우리 당의 혁명전통의 순결성을 어지럽히려던 온갖 궤변이 산산이 부서지고 백두산은 혁명의 성산으로 변함없이 높이 솟아 빛을 뿌리였다. 위대한 장군님 개척하신 그 길을 따라 온 나라의 천만군민이 세대와 년대를 이어,세기와 세기를 이어 백두산으로 올랐다.한 평범한 처녀로동자가 심장의 고백을 터친것처럼 우리 인민들은 언제 어디서나 백두산에 오르려는 불같은 열망,백두의 혁명정신으로 시련을 맞받아뚫고 기어이 최후승리를 떨치려는 철석의 신념과 의지로 피를 끓이였다.기쁠 때도 어려울 때도,어제도 오늘도 백두산에 오르고올라 백두의 넋과 기상을 심장에 간직하고 애국의 열정으로 가슴 불태우며 부강조국건설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길을 개척하심으로써 그 어떤 모진 풍파가 휘몰아친대도 어버이수령님께서 이룩하신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키며 우리 혁명의 명맥을 굳건히 이어나가는데서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게 되였다. 참으로 10대의 시절 위대한 장군님께서 개척하신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길은 력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위대한 장군님께서 한평생 헤치신 백두의 행군길이야말로 승리와 영광의 길임을 진리로 확증하였다.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강국,일심단결의 강국,무적의 군사강국 … 이 모든것은 위대한 수령님들을 따라 우리 군대와 인민이 혁명의 성산 백두산으로 오르고오르며 떠올린 고귀한 혁명의 산아이다. 또 한분의 백두산장군이신 경애하는 지난 4월 18일 새벽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조선인민군 전투비행사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행군대 성원들과 함께 혁명의 성산 백두산에 오르시였다. 백설을 날리며 세기의 하늘높이 솟아있는 백두산정에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말씀하시였다. 눈보라치는 백두산에 올라 백두의 칼바람을 맛보아야 백두산의 진짜맛을 알수 있으며 조선혁명을 끝까지 완성하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지게 된다! 백두산으로 오르는 길은 그 어떤 핵무기의 위력에도 비할수 없는 귀중한 정신적량식을 안겨주는 길,백두의 혁명전통을 빛내여가는 길,영광넘친 조선혁명의 명맥을 꿋꿋이 이어가는 길이다! 백두산에서 영원한 백승의 진로를 다시금 밝혀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우러르며 온 나라의 천만군민은 백두산장군을 높이 모신 크나큰 영광과 긍지를 절감하였다.그리고 맹세다지였다. 경애하는 원수님 따라 백두의 행군길을 끝까지 이어가리라! 그렇다.우리 군대와 인민은 경애하는 원수님 따라 위대한 수령님들의 한생이 어린 붉은기를 억세게 추켜들고 백두의 혁명정신,백두의 칼바람정신으로 모든 시련과 난관을 짓부셔버리고 기어이 최후승리를 떨치고야말것이다. 본사기자 김인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