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4(2015)년 6월 14일 로동신문

 

높은 실력으로 자기 단위의 오늘과 래일을 책임지자

무산광산련합기업소 당위원회 책임비서 차종범동무의 사업을 놓고

 

철산봉!

저 멀리 백두산이 지켜보는 이 봉우리에서 우리는 단숨에의 정신으로 비약하는 조국의 축도를 보고있다.

북방의 한끝에서 소문없이 많은 일을 해제끼며 수령의 유훈관철전,당정책옹위전의 앞장에서 힘차게 내달리는 무산광산련합기업소,

쿵쿵- 지심을 흔드는 발파소리에서 전진의 벅찬 숨결을 호흡하며 우리는 오늘의 시대의 요구에 대답을 주는 귀중한 경험에 대하여 말하게 된다.

그 주인공이 바로 기업소당위원회 책임비서 차종범동무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이 잘되는 단위들을 보면 어느 단위나 할것없이 일군들의 책임성이 높고 실력이 있는 단위들입니다.》

단위의 발전에서 책임일군들의 역할이 그 어느때보다 중시되고있는 오늘 우리 당은 일군들이 자기 단위 사업을 당과 국가앞에 전적으로 책임질것을 요구하고있다.

당정책에 대한 민감성과 완강한 실천력,풍부하고 다방면적인 지식을 소유한 실력가형의 당책임일군만이 자기 단위를 강성국가건설의 전렬에 떳떳이 세울수 있다.

일군의 실력은 곧 단위의 운명문제!

최근년간 비약의 지름길을 질풍같이 달려온 무산광산련합기업소의 발전행로우에 소리없이 찍혀진 당책임일군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며 우리는 이것을 다시금 확신하게 된다.

 

발은 자기 땅에,마음은 당중앙위원회 뜨락에

 

당정책에 대한 민감성과 대중을 조직동원하여 끝장을 보는 완강한 실천력은 차종범동무의 사업에서 찾아보게 되는 중요한 특징이다.

차종범동무가 무산광산련합기업소 당위원회 책임비서로 임명된것은 지금으로부터 6년전이였다.

그때 차종범동무는 철산봉이 통채로 내려앉는듯 한 중압감에서 벗어날수 없었다.단위의 전반실태는 격동적인 현실과 너무도 먼거리에 있었던것이다.더우기 심각한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기업소를 다녀가신 때로부터 여러해가 흘렀으나 현지교시집행에서 성과가 거의 없는 상태에 놓여있는것이였다.

차종범동무는 그 원인을 객관적조건이나 실무적인 문제에서 찾지 않았다.물론 어려운 조건에서 국가대상건설과 맞먹는 방대한 과업들을 수행한다는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였다.

하지만 그우에 놓이는 근본원인이 있었다.수령의 사상과 뜻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받들려는 일군들의 결사의 각오와 의지가 부족한것이였다.언제나 철산봉을 당중앙위원회 뜨락과 하나의 혈맥으로 잇고 삶의 순간순간을 령도자와 뜻도 숨결도 발걸음도 함께 하는 기풍이 체질화되지 못한데 있었다.

수령의 발걸음에 따라서지 못하는 단위,수령의 사상과 의도를 관철하지 못하는 당일군은 존재가치가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차종범동무는 곧 통이 큰 작전을 펼치였다.김일성김정일주의연구실을 비롯한 사상교양거점들과 10여개의 령도업적단위들을 개건하며 위대한 장군님의 현지교시를 관철하기 위한 방대한 공사들을 동시에 립체적으로 벌릴 대담한 목표였다.

사상공세의 된바람이 철산봉에 휘몰아치는 속에 김일성김정일주의연구실이 짧은 기간에 훌륭히 개건되고 령도업적단위들의 면모가 일신되였다.일군들과 종업원들은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과감히 헤치며 방대한 1호대형원추형파쇄장건설과 2선광장 5개 계통기술개건 및 한개 계통증설공사를 불과 한해사이에 끝냄으로써 기업소를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 커다란 만족을 드리였다.

이렇게 혁명적수령관으로 일관된 첫걸음을 내짚은 차종범동무는 당사업의 한자욱한자욱이 그대로 철산봉을 수령결사옹위,결사관철의 성새로 치솟게 하는 고귀한 성돌이 되도록 하기 위해 애써왔다.

현시기 당의 의도가 무엇이겠는가,당사업의 화력을 어디에 집중하며 무엇을 놓치지 말아야 하겠는가를 두고 그는 늘 사색하군 한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평양애육원,육아원을 현지지도하시면 곧 탁아소,유치원들에 나가보고 원수님께서 어느 단위의 연혁소개실에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면 지체없이 기업소의 연혁소개실에 달려나가 미흡한 점이 없는가를 직접 확인해보며 김정숙평양방직공장 로동자합숙에 대한 현지지도소식에 접하면 그 즉시 만사를 제치고 로동자합숙부터 찾았다.이처럼 경애하는 원수님의 발걸음을 자욱자욱 따르며 일감을 찾는것은 그의 공고화된 사업방식이다.

여기에 차종범동무의 당정책에 대한 민감성을 보여주는 사실이 있다.

국가계획 40.1정보,기업소자체계획 200정보,수행정형 227정보.

이것은 올해 기업소의 산림복구전투와 관련한 자료이다.

짧은 기간에 온 나라의 산들을 푸른 숲으로 뒤덮게 하시려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구상을 받드는 길에서 결코 국가계획을 수행하는것으로 만족할수 없었던 차종범동무였다.하여 그는 본래계획의 5배에 달하는 통이 큰 작전안을 세우게 되였고 긴장한 생산전투가 벌어지는 속에서도 대중의 정신력을 발동하여 산림복구전투에서 자랑할만 한 성과를 거둘수 있게 하였다.

사색도 숨결도 발걸음도 경애하는 원수님과 함께!

차종범동무의 한걸음한걸음에는 이런 강렬한 지향이 고동치고있다.

차종범동무는 현장에 나가면 일군들보다 로동자들을 먼저 만나군 한다.오랜 기능공들,제일 어려운 부문에서 일하는 로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생산에서 걸린 고리들을 찾고 생활형편도 구체적으로 알아본다.그가 아래단위 일군들도 미처 모르는 사실들에 이르기까지 속속들이 알고 대책들을 세울수 있은것은 인민을 존중하고 인민의 리익을 최우선,절대시할데 대한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뜻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당사업실천에 구현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한 결과이다.

당책임일군인 자신이 수령의 의도를 모르면 자기 단위가 수령에게서 멀어지게 된다는 자각,단위의 운명이 자신의 어깨우에 놓여있다는 책임감이 차종범동무로 하여금 몸은 수도에서 수천리 떨어져있어도 마음은 언제나 당중앙위원회 뜨락에 얹고 살도록 하는것이다.

당일군에게 있어서 능숙한 조직적수완과 혁명적전개력은 매우 중요한 실력이라고 할수 있다.

대중을 조직동원하여 당정책을 끝까지 관철해나가는 차종범동무의 완강한 실천력에서 무엇보다 주목되는것은 작전이다.

차종범동무는 당정책을 접수하면 우선 그 진수를 파악하기 위해 사색하고 연구한다.그에 기초하여 작전안을 세운다.그 다음공정은 협의회이다.그는 이 공정을 매우 중시한다.대중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여 이미 세운 작전안을 검토하고 보충완성하며 그것은 즉시 당결정으로 채택되게 된다.이렇게 깊은 사색과 연구,집체적협의를 거친 작전안을 열쇠로 틀어쥐면 열지 못할 대문이 없는것이다.

대중발동에는 묘술이 있다.

차종범동무의 사업과정은 하나하나가 그대로 당정책선전과정으로 되고있다.위대한 수령님들의 교시와 경애하는 원수님의 말씀사상들을 토 한자 놓침이 없이 그대로 심장에 새기고있는 그에게 있어서 당정책해설의 시간과 공간,격식과 틀이 따로 없다.회의를 지도할 때에도,현장에 나가 정치사업을 할 때에도,사람들과 무릎을 마주하고 담화할 때에도 당의 사상과 의도를 알려주는데로 화제가 이어지군 한다.그의 발길이 닿는 그 어디나 당정책선전마당으로 되는것이다.바로 이것이 사람들의 심장을 움직이는 그의 독특한 묘술의 하나라고 볼수 있다.

대중의 정신력을 발동하는데서 차종범동무가 일관하게 견지하고있는 원칙은 이신작칙과 믿음과 정에 의한 사람과의 사업이다.

3호대형원추형파쇄장건설이 한창이던 지난 1월 어느날이였다.

공사장으로 향한 길이 온통 얼음강판이여서 물동을 실은 자동차들이 선뜻 떠날념을 못하고있었다.이때 자동차행렬의 맨앞으로 나가는 승용차가 있었다.책임비서의 차였다.경사급한 눈길을 한치한치 톺아오르는 승용차의 뒤를 따라 자동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실천으로 《나를 따라 앞으로!》의 구령을 친셈이였다.

차종범동무는 현장에 도착한 즉시 화선식정치사업으로 공사장을 들었다놓게 하였다.그리고는 슬며시 돌격대원들의 침실을 찾았다.

침실의 싸늘한 공기는 대번에 그의 마음을 얼어들게 하였다.령하 30℃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속에서 전투를 벌리는 돌격대원들에게 따뜻한 잠자리를 마련해주지 못한 자책감으로 가슴이 미여졌다.그는 곧 땔감보장대책을 세웠다.그리고 돌격대원들에게 솜옷과 솜신,모포를 시급히 보장해주기 위한 긴급조치를 취하였다.

떵떵 얼어붙은 대지에서 결사전을 벌리는 돌격대원들의 가슴가슴을 후덥게 달구어준 당책임일군의 말없는 정치사업은 한달로 예견했던 기초공사를 보름만에 끝내는 기적을 창조하게 하였다.

끝장을 볼 때까지 내미는 완강한 기질은 실천가형의 일군의 중요한 징표이다.

차종범동무는 일단 시작한 일을 중도에서 포기한적이 없다.그의 실천과정에는 불가능이란 없으며 오직 무조건이라는 개념만이 있을뿐이다.

수십년세월 수입에 의존해오던 1지하파쇄갱의 왕복식급광기유압뽐프를 기업소자체의 힘으로 생산하던 사실을 놓고보자.

왕복식급광기유압뽐프는 선광장의 첫 공정에 리용되는것으로서 생산전반을 좌우하는 중요한 부속품이다.그것을 위해 비행기를 띄우지 않으면 안되였던 사실은 이 부속품의 국산화를 실현하는것이 기업소의 운명과 관련되는 심각한 문제라는것을 보여주고있었다.

차종범동무는 기업소자체의 힘으로 유압뽐프를 만들것을 발기하였다.

기술일군들은 도리머리를 저었다.전문공장도 아닌 기업소에서 유압뽐프를 자체로 만든다는것은 불가능하다는것이였다.

그러나 기업소가 언제까지나 남에게 명줄을 걸고 살수는 없었다.국산화를 실현할데 대한 당정책을 외면하고 한숨이나 쉰다면 기업소의 전도는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차종범동무로 하여금 용단을 내리게 하였다.

그 실현과정은 간단치 않았다.유압뽐프의 구조가 복잡한데다가 재질과 가공정밀도를 보장하는것이 당시 기업소의 조건으로 볼 때 하늘의 별을 따는 격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러나 차종범동무는 물러설수 없었다.당책임일군인 자기가 주춤하면 기업소는 영원히 자립의 문턱을 넘지 못하겠기에 그는 결사의 정신으로 완강하게 내밀었다.하여 끝끝내 성공의 열매를 안아왔다.

이런 완강한 실천력으로 차종범동무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을 하나하나 관철해나갔다.

1호대형원추형파쇄장과 2호대형원추형파쇄장건설,2선광장 5개 계통 기술개건과 한개 계통 증설,1지하파쇄갱 수직승강기설치,장거리벨트콘베아 《나》선공사,조광처리용 3호대형원추형파쇄장건설,5,000㎥페석광사공사…

국가적대상건설과 맞먹는 방대한 공사들을 단 몇해사이에 해제낌으로써 수령의 유훈관철전,당정책옹위전의 앞장에 떳떳이 서게 된 무산광산련합기업소의 현실은 당책임일군의 당정책에 대한 민감성과 완강한 실천력이 단위의 비약적발전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를 잘 보여주고있다.

 

과학기술룡마의 고삐는 누가 쥐여야 하는가

 

차종범동무의 사업에서 찾아보게 되는 또 하나의 특징은 비상히 높은 과학기술실력으로 단위를 이끌어나가는것이다.

과학기술의 시대인 오늘 그 어느 당책임일군이나 과학기술을 생명선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실력전을 벌리자고 호소도 한다.

그러나 매 단위의 성과는 꼭같지 않다.무엇때문인가.

그것은 당책임일군이 실력전의 1번수의 위치에 서있는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데 달려있다고 볼수 있다.

기업소의 곳곳에서 우리는 스스럼없이 울려나오는 책임비서에 대한 이야기를 듣군 하였다.그 내용은 서로 달랐지만 일군들과 종업원들이 종당에 내리군 하는 결론은 하나같았다.우리 책임비서는 만능박사,움직이는 백과사전이라는것이였다.

그 호칭은 대중이 차종범동무에게 안겨준 증서없는 학위이다.

그가 오늘과 같이 실력전의 1번수로 대중의 인정을 받게 되기까지에는 참으로 많은 노력이 깃들어있다.

차종범동무가 기업소에 갓 임명되여왔을 때였다.

생산에서 제기되는 많은 기술적문제들은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에게 있어서 너무도 생소하였다.우선 지질학을 알아야 했고 채굴공학도 알아야 했으며 금속,전기,자동화,화학부문 등에 대한 지식도 필요했다.

생산만이 아니였다.건설부문과 후방부문을 추켜세우자고 해도 설계,시공,농산,축산,수산부문에 박식해야 했다.

기업소의 전반사업을 지도해야 하는 그에게 있어서 다방면적인 지식을 소유하는것은 필수적인 요구로 나섰다.모르고서는 한걸음도 전진할수 없는 오늘 기업소를 당의 의도대로 이끌어나가자면 첫째도 둘째도 높은 과학기술지식을 소유하여야 했다.

실력제고는 곧 당일군의 존재문제,기업소의 운명문제라는 의식은 그로 하여금 비상한 각오를 가지게 하였다.

그는 학습을 운명을 판가름하는 전투로 자기자신에게 선포하였다.

새로운 화선일과표가 생겨났다.밤에 현장을 돌고 사무실에 들어오면 그는 책을 스승으로 하는 학생이 되군 하였다.스스로 선정한 교재의 내용은 다양했다.

채굴공학,자동화공학,돼지기르기,버섯재배,강냉이농사,논벼농사…

그는 책방에 들어오는 새 도서들의 첫 독자였다.현장이든 사무실이든 어디나 교실로 여겼고 담화나 협의회 등 모든 공간이 배움의 마당이였다.집에서도 승용차안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을줄 몰랐다.매일 2시간이상 책을 읽는것을 철칙으로 여기였고 과학기술적문제를 진지하게 파고들다가 납득이 안되는것이 있으면 전문가들을 찾아가 허심하게 배우군 하였다.

그 과정에 그의 지식의 보물고는 나날이 풍부해졌다.

그의 다방면적인 지식을 보여주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어느 한 단위의 연혁소개실을 돌아보신 소식에 접한 차종범동무는 그길로 연혁소개실에 나가보았다.빈구석이 없는가를 주시해보던 그의 시선이 조명에 닿았다.조명이 어두워보였던것이다.그는 동행한 기술일군에게 그 방도를 찾아볼데 대한 과업을 주었다.

다음날에 열린 협의회에서 차종범동무가 전날에 과업을 주었던 일군에게 연혁소개실의 비침도문제를 두고 이야기할 때였다.아마 실내는 300lx,복도는 100lx정도 보장되여야 할것 같다는 당책임일군의 말에 협의회참가자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과업을 받았던 일군자체도 놀라움을 금치 못해하였다.평양조명기구공장에 알아본 내용과 신통히도 일치하였던것이다.

전문기술일군들도 책임비서앞에서는 진땀을 뽑는 경우가 많다.그럴 때면 그들은 매번 새로운 눈으로 책임비서를 바라보군 한다.

《우리 책임비서앞에서는 저도 모르게 학생이 되군 한다.》,《회의를 하다가도 언제 어떤 질문이 날아들지 몰라 가슴을 조이군 한다.》는 기술일군들의 고백에는 오늘의 시대 당일군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있다.

많은 단위들에서 당일군들이 주요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에 나가 기술자,로동자들과 밤도 같이 지새우고 후방사업도 하면서 고무해주지만 응당한 결실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당일군들이 과학기술을 모르면 걸린 고리가 무엇이고 어디에 힘을 집중해야 하는가를 알수 없으며 그러한 정치사업,조직사업은 과녁을 명중시킬수 없는것이다.

대중은 힘을 내자고 호소하는 당일군보다 도면을 놓고 함께 방도를 모색하는 당일군을 더 존경하며 기술자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는 그의 모습에서 새로운 자각과 분발심을 가지게 된다.이것이야말로 열백마디의 말로써도 대신할수 없는 가장 위력한 정치사업이 아니겠는가.

이런 현실의 요구를 심장깊이 새긴 차종범동무였기에 과학기술룡마에 남먼저 올라 고삐를 든든히 틀어쥔것이다.

아는것만큼 지도의 실효를 높일수 있고 대중을 발동시킬수 있다.

차종범동무가 과학기술보급실을 시대의 요구에 맞게 꾸리도록 한 사실을 놓고보자.

차종범동무는 과학기술보급실을 단위의 비약적발전과 전망을 과학기술적으로 담보하는 보루로 꾸릴것을 발기하고 여기에 많은 품을 넣었다.과학기술보급실을 공업기술연구소와 한건물에 꾸리도록 하여 기술자들이 임의의 시각에 과학기술자료들을 열람하면서 연구사업을 진행할수 있게 하고 과학기술보급과 원격대학운영,세계적인 기술교류 등을 원만히 할수 있게 설계하고 건설하였다.말하자면 이 건물을 연구기지,보급기지,교육기지,교류기지 등 다기능화된 과학기술거점으로 전환시킨것이다.

차종범동무는 모든 사업을 포치하고 지도함에 있어서 방향을 그어주는 정도가 아니라 세부적인 방도에 이르기까지 가르쳐주군 한다.기업소의 사업체계와 운영방식은 물론 생산공정에 이르기까지 원리적으로 따져보며 단위의 실정에 맞게,실리가 있게 과학적으로 짜고들고있다.

5,000㎥페석광사공사때였다.

현장을 돌아보던 차종범동무는 콘베아에 대형감속기를 설치하려 한다는 기술자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였다.대뜸 콘베아운영에 필요한 감속기의 능력을 속으로 타산해본 그는 꼭 대형감속기를 설치할 필요가 없을것 같다고 말하였다.그러면서 그 근거를 원리적으로,수자적으로 론증하였다.

기술자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사실 그들이 대형감속기를 설치하려 한것은 기성설계의 요구를 그대로 따른것이였다.물론 그보다 작은 감속기로써도 콘베아운영에 지장이 없으리라는것을 모르는바가 아니였지만 안전성을 충분히 고려한다는 의미에서 그런 여유를 조성했던것이다.그러나 현장파악이 깊고 기술적문제들에 해박한 책임비서앞에서 그런 불필요한 여유가 통할리 만무하였다.

하여 무턱대고 대형감속기를 수입하려던 계획은 취소되였고 기업소에 있던 감속기를 콘베아에 설치하여 정상운영을 보장할수 있게 되였다.

무산광산련합기업소의 약동하는 숨결에서 우리가 분명히 느끼게 되는것은 이 단위는 오늘도 그러하지만 래일은 더욱 흥할것이라는 확신이다.

그 담보가 무엇인가.바로 인재의 대부대가 있는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기업소의 가장 큰 힘이고 자랑이며 이런 거대한 잠재력을 키운것이야말로 당책임일군의 실력중의 실력,성과중의 성과라고 할수 있다.

차종범동무는 땅속의 광석을 캐내듯이 기업소의 곳곳에 보석과 같이 묻혀있던 인재들을 하나하나 찾아냈다.

인재를 보는 눈은 실력이다.

차종범동무는 동력부문에서는 누구,자동화부문에서는 누구,후방부문에서는 누구라고 단숨에 내리꼽을 정도로 기업소의 인재들을 손금보듯 장악하고있다.

그들을 기업소의 오늘만이 아니라 래일도 떠메고나갈 기둥감으로 키우기 위해 많은 품을 들이고있는 그의 진취적이고 량심적인 일본새는 기업소의 운명을 책임진다는것이 어떤것인가를 두고 깊이 생각케 한다.

차종범동무는 자체의 기술력량을 튼튼히 꾸리는것을 기업소의 전망과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로 보고 여기에 큰 힘을 넣었다.

1호대형원추형파쇄장과 2선광장의 콤퓨터화를 실현할 때였다.

차종범동무는 어느 한 성에 기술방조를 의뢰하였다.콤퓨터화를 하루빨리 실현하자는데도 목적이 있었지만 중요하게는 CNC화를 위해 새로 조직한 기업소 기술집단의 안목을 틔워주기 위해서였다.성의 기술자들과 함께 어려운 기술적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에 기업소 기술집단의 키는 부쩍 자랐다.

차종범동무는 이 기술집단을 기업소의 기술력량강화를 위한 불씨로 삼았다.얼마후 그 불씨는 각 부문의 유능한 기술자들을 망라한 정보기술도입실이라는 불길로 타올라 2호대형원추형파쇄장과 조광처리용 3호대형원추형파쇄장의 콤퓨터화 등을 자체의 힘으로 실현하게 되였다.

차종범동무는 새 도서의 첫 독자일뿐아니라 보급자이기도 하다.새로 나온 도서들을 먼저 읽어보고 이 책은 공업기술연구소의 누구에게 주고 이 책은 설계연구소의 누구에게 주라는 식으로 구체적인 과업을 주군 한다.

동력과 지령장에게는 이런 추억이 있다.

언제인가 그는 책임비서가 보내준 새 기술도서를 받게 되였다.그로부터 며칠후 책임비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 책에서 어떤 내용들이 주목되는가를 물은 책임비서는 그에게 어느 부문을 다시 구체적으로 보라고 일깨워주는것이였다.그때 지령장이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모른다.전문가인 자신보다 퍽 앞에 서있는 스승을 보았던것이다.

이렇게 차종범동무는 자신이 직접 스승이 되여 대중에게 높은 요구성을 제기하고 걸음걸음 이끌어주며 그들을 실력의 강자들로 키워나갔다.

인재들의 능력을 최대로 발동시키기 위한 사업에서 차종범동무가 놓치지 않은것은 평가사업이다.

차종범동무는 공로있는 기술자,기능공들에 대한 정치적평가를 잘해주는것과 함께 해마다 열리는 과학기술성과전시회에서 순위권에 든 대상들에 대한 물질적평가를 통이 크게 조직하는데 당위원회가 깊은 관심을 돌리도록 하였다.또한 기술자들에게 새 살림집을 우선적으로 배정해주고 그들의 건강을 위한 여러가지 우대조치들을 취해주도록 함으로써 누구나 높은 의욕과 야심만만한 배짱을 가지고 실력전의 한복판에 뛰여들도록 하였다.

혼자서는 룡마를 힘껏 몰아갈수 없다.고삐를 틀어쥔 당책임일군을 따라 모든 종업원들이 하나의 호흡으로 박차를 가할 때 그 룡마가 비약의 나래를 한껏 펴고 천리마,만리마가 되여 내달을수 있다는것을 무산의 현실은 뚜렷이 실증해주고있다.

당이 맡겨준 한개 단위에 대한 비상한 책임감을 안고 기업소의 발전의 길에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바쳐온 실력가형의 당일군의 고뇌와 헌신의 자욱자욱을 더듬어보며 우리는 생각한다.

과학기술룡마를 타고 힘차게 전진해온 나날에 많은 종업원들이 발명증서와 창의고안증서를 받았지만 차종범동무에게는 그 어떤 학위나 증서도 없다.

그러나 그는 대중의 가슴속에 참된 스승으로,모든 부문에 정통한 박사로 소중히 새겨져있다.

그렇다.기업소가 이룩한 모든 성과들,그것이 바로 당일군의 진정한 자격증이 아니겠는가.

일군들은 높은 실력으로 자기 단위의 오늘과 래일을 책임지자!

이것이 온 나라에 울려가는 철산봉의 메아리,시대의 메아리이다.

본사기자 김영철
본사기자 김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