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4(2015)년 6월 17일 로동신문
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 영생하는 불굴의 인간
오늘도 우리 당의 숭고한 혁명적의리와 동지애의 상징으로 빛나고있는 애국렬사릉을 찾는 사람들은 공화국2중영웅이며 조국통일상수상자인 리인모동지의 묘비앞에서 오래도록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정히 다듬어세운 화강석비돌에 빛나는 영웅의 돌사진,그밑에 새겨진 글발들… 주체96(2007)년 6월 16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불굴의 통일애국투사 리인모동지가 우리곁을 떠났다는 비보에 접하게 되시였다. 온 세상이 다 아는 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 그토록 내세워주시던 전사에 대한 생각으로 못내 가슴아파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명의로 화환을 보내주시였으며 장의식을 아직 우리 당과 조국의 력사에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새로운 형식인 인민장으로 하도록 하시고 그의 유해를 애국렬사릉에 안장하도록 크나큰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절세의 위인들의 슬하에서 혁명을 알고 위대한 태양의 품에 안겨 가장 값높은 영생의 단상에 오른 렬사,금시 살아 반길것만 같은 영웅의 돌사진을 보느라면 우리 장군님께서 절절하게 하신 교시가 깊은 감회속에 되새겨진다. 《세상에 리인모처럼 신념이 확고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은 없을것입니다.그는 전향문 한장만 쓰면 오래동안 감옥생활을 하면서 고생하지 않을수도 있었지만 그 길을 택하지 않았습니다.그가 무슨 힘으로 수십년동안 적들에게서 갖은 고초를 당하면서도 조금도 굴복하지 않고 혁명가의 지조를 꿋꿋이 지켰겠습니까.그것은 그가 당과 수령이 있는 한 우리 혁명은 승리하고 조국은 반드시 통일된다는것을 믿고있었기때문입니다.》 당과 수령의 추억속에,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불사신의 영웅,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 별처럼 빛나고있는 리인모동지! 그의 고결한 생은 당과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혁명승리에 대한 드팀없는 확신을 간직할 때 그 어떤 시련과 난관속에서도 신념과 지조를 지킬수 있고 원쑤들과의 싸움에서 최후승리자가 될수 있다는 진리를 가르쳐주고있다. 지리산인민유격대에서 적후투쟁을 벌리던 리인모동지는 총상을 입고 적들에게 체포되였다.원쑤들은 34년간이라는 기나긴 세월 그를 감옥에 가두고 전향을 강요하며 뼈를 부스러뜨리고 살을 저며내는 악착한 고문을 가하였다.너비가 다섯뽐반,길이가 열세뽐밖에 안되는 작고 캄캄한 독감방에서 겪은 소름끼치는 고통,국그릇에 담긴 쥐까지 건져먹지 않으면 안되였던 기막힌 이야기,추운 겨울날 찬물을 뿌려 꽁꽁 얼군 알몸을 몽둥이로 사정없이 내리치는 야수적인 전향강요고문… 그러나 리인모동지는 불사조마냥 굴하지 않고 싸웠으며 가슴속깊이 간직한 당과 수령에 대한 충정의 신념과 의지를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그가 감옥살이에서 풀려났을 때는 어느덧 인생의 황혼기였다.70살이 넘은 고령인데다가 오랜 감옥살이로 페인이 된 몸이였다. 그때 그가 생각한것은 과연 무엇이였는가.그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사회주의조국의 품,어머니품에 기어이 안겨야 한다는것이였다. 리인모동지의 옥중수기에는 이런 시구절이 적혀있다. … 청춘을 헛되이 보내지 않은 기쁨이여 영광이여 네 뼈마디에 마지막기름이 마르고 네 가죽이 백골보다 앙상한 뼈를 감쌀 때까지 네 심장이 마지막맥박을 칠 때까지 조국을 위한 싸움을 계속하라 … 멀건 소금국물에 비친 앙상한 얼굴을 바라보며 지었다는 이 시에 그의 송죽같은 신념과 의지가 얼마나 진하게 비껴있는가. 조선의 혁명가들에게는 하나의 강의한 신념이 있다.그것은 위대한 수령을 높이 모시고있기에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필승의 신념이다. 이 불굴의 신념을 리인모동지는 어린시절 고향 풍산땅 파발리에 진출했던 조선혁명군의 총성을 듣고 싹틔웠으며 해방후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인생의 참된 보람과 행복을 느끼며 뼈와 살에 새기였다.실체험을 통하여 가슴속에 깊이 간직한 혁명신념이였기에 그는 수십년동안이나 철창속에 갇혀 중세기적인 고문을 당하면서도 그것을 꿋꿋이 지켜냈다. 리인모동지의 출옥후 한 작가가 그를 찾아와 《남과 북중 조국을 어디라고 생각하는가?》,《남쪽은 조국이 아닌가?》라고 물은적이 있었다.그때 리인모동지는 《남쪽은 내 조국이 아니다.》라고 당당히 웨쳤다. 리인모동지가 공화국의 품으로 돌아오기 전에 이런 일도 있었다.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정체불명의 한 요원이 그에게 북으로 가는것을 한번 깊이 생각해보는것이 어떻겠는가고 하면서 지금 모스크바도 넘어지고 사회주의도 다 없어지는데 북으로 꼭 가야 하겠는가고 빈정거렸다.그때 리인모동지는 그자에게 격한 심정으로 《내 조국은 북이지 남이 아니다.시국이 어떻든 내가 내 조국으로 가자고 하는데 무슨 상관인가.내 북행길을 막지 말라.》고 면박을 주었다. 자기 수령,자기 조국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변함없는 충정의 마음을 간직하지 못한 사람은 원쑤들의 소굴에서 결코 이렇듯 의롭게 행동할수 없다.혁명가의 고결한 신념과 의지가 심장속에 꽉 들어찼기에 리인모동지는 뇌출혈까지 겹쳐 극히 병약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당과 수령의 품,조국의 품에 기어이 안기고야말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혁명가는 절해고도에서도,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당과 수령앞에 다진 맹세를 변치 말아야 한다.변함없는 신념,굴함없는 투쟁속에 혁명가의 참된 삶과 인생의 보람이 있다. 리인모동지의 투쟁은 그것을 뚜렷이 보여준 빛나는 모범으로서 오늘도 우리 인민을 끝없이 감동시키고있다. 그의 옥중투쟁 수십년간은 순간순간이 그야말로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이어진 참기 어려운 나날이였다.하다면 그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모진 고초를 무슨 힘으로 이겨냈는가.그것은 다름아닌 수령에게 다진 맹세,입당할 때의 맹세였다. 리인모동지는 내가 갈 길은 죽으나사나 한번 택한 혁명의 길,다진 맹세를 지키는 길이다,감옥살이가 두렵고 교수대가 무서워서 당과 수령,조국과 인민을 배반한다면 나는 사람이 아니다,그런 배신자,인간추물이 될수 없다,한생을 감옥에서 사는 한이 있더라도,누가 모르게 죽는 한이 있더라도 떳떳이 살고 깨끗하게 죽자라고 심장으로 웨치며 옥중고초를 서슴없이 맞받아나갔으며 긴긴세월의 수난과 고통을 강의한 의지로 이겨냈다. 지금도 들려온다.통일애국투사 리인모동지가 옥중에서 늘 외우던 말이. -조국을 배신한 변절자는 지은 죄때문에 악몽속을 헤매며 하루도 발편잠을 못 잡니다.푸른 하늘아래 얼굴을 들고다닐수도 없고 죽어 묻힐 한치의 땅도 없습니다. 그의 이러한 혁명적신념과 불굴의 의지를 높이 평가해주신분은 우리의 위대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언제인가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우리가 리인모동무를 높이 평가하고 내세우는것은 그가 전향서 한장만 쓰면 고생을 면할수도 있었지만 자기의 당적량심을 더럽힐수 없고 혁명적신념을 저버릴수 없어 34년동안이나 무서운 옥고를 치르면서도 혁명가의 절개와 지조를 꿋꿋이 지켰기때문이다.리인모동무는 당과 수령,조국과 인민앞에 부끄럽지 않게 잘 싸웠기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 당의 품에 떳떳이 안길수 있었다.… 어머니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불사신의 영웅 리인모동지는 그후에도 불편한 몸이지만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당과 수령의 믿음과 사랑에 보답하기 위하여 불같은 삶의 자욱자욱을 수놓아왔다.그는 변함없는 종군기자의 자세와 열정으로 당과 수령의 위대성을 칭송하는 문필활동을 정력적으로 벌리였으며 조국의 자주적통일을 위하여 적극 투쟁하였다. 한생을 티끌만 한 량심의 그늘도,순간의 변심도 없이 오직 자기 수령,자기 당을 끝까지 믿고 따른 리인모동지의 인생행로는 얼마나 값있고 빛나는것인가. 리인모동지는 비록 우리곁을 떠났어도 그가 지녔던 수령에 대한 열화같은 충실성과 흠모심,투철한 혁명적신념과 절개는 누구나 따라배워야 할 귀감으로 되고있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신념과 의지의 화신인 리인모동지를 본받아 당과 수령을 따르는 길에서 죽어도 혁명신념을 버리지 않을것이며 조국과 민족의 운명이신 경애하는 본사기자 라설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