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4(2015)년 6월 29일 로동신문

 

위대한 태양의 품에서 인생을 꽃피운 로동계급출신당일군

조세웅동지의 값높은 한생에 수놓아진 고귀한 믿음과 은정

 

조선로동당의 70년사는 걸출한 위인들의 손길아래 펼쳐진 인간성장의 아름다운 화원속에 위대한 동지애의 서사시가 엮어진 성스러운 나날이기도 하다.

혁명적동지애의 최고화신이신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품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열혈의 인간,충직한 혁명가로 자라났는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생전에 늘 당의 기초를 쌓던 시기로부터 깊은 인연을 맺으신 동지들을 추억하시며 그들을 영광의 단상에 내세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각별히 품을 들이고 손때를 묻혀 혁명의 지휘성원으로 내세워주신 당의 기초축성시기 일군들중에는 로동계급출신의 당일군이였던 조세웅동지도 있다.

위대한 김정은시대와 더불어 오늘도 영생의 값높은 삶을 누리는 조세웅동지에 대한 이야기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품이야말로 평범한 일군도 당과 인민이 영원히 기억하는 훌륭한 혁명가로 키워주는 은혜로운 태양의 품이라는것을 력사에 깊이 새겨주고있다.

 

크나큰 영광의 절정에서

 

주체63(1974)년 2월 1일이였다.금성뜨락또르공장에서 당사업을 하던 조세웅동지는 뜻밖에도 위대한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이를 만나뵙는 크나큰 행운을 지니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커다란 감격에 휩싸여 몸둘바를 몰라하는 그에게 친히 자리를 권하시며 《날씨가 퍽 찬데 오느라고 수고했습니다.》라고 따뜻이 말씀하시였다.그러시고는 동무에 대한 말은 많이 들었지만 오늘 이렇게 처음 만나게 되여 반갑다고 못내 기뻐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을 뵈옵는 첫 순간부터 조세웅동지는 태양의 인력으로 온 세계를 틀어잡는것만 같은 그이의 위인적풍모에 매혹되여 끝없는 흠모의 정을 금치 못하였다.

비범한 예지와 기지가 가득히 넘치고 뛰여난 총명과 슬기가 번뜩이는 빛나는 눈길,천지를 진감할 기백과 담력이 넘쳐나면서도 인자하고 근엄하신 준수한 모습…

우리 시대에 또 한분의 태양이 솟아올랐다는 커다란 환희와 끝없이 밝고 창창한 조선의 미래에 대한 한없는 기쁨으로 조세웅동지의 가슴은 세차게 끓어번지였다.천이면 천,만이면 만 누구나가 그 품에 안겨들 때면 저도 모르게 끓어오르는 위인흠모의 뜨거운 격정이 그 시각 행복한 전사의 심장속에서 활화산처럼 세차게 타번지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러한 조세웅동지에게 오늘 동무에게 당중앙위원회 비서국회의 결정을 알려주려고 오라고 하였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당중앙위원회 비서국에서는 수령님의 제의에 따라 동무를 당중앙위원회 부부장으로 비준하였습니다.…

조세웅동지는 한순간 어리벙벙하여 자기의 귀를 의심하였다.상상도 해본적 없는 믿음과 영광이 불쑥 차례진것이였다.

(내가 어떻게 감히 그처럼 중요한 사업을 맡을수 있단 말인가.)

그의 가슴속에서는 밀물처럼 차오르는 감사의 정과 함께 맡은 임무를 제대로 감당해낼수 있겠는가 하는 위구심이 하나로 어울려 끓고있었다.

워낙 속에 있는것을 감추지 못하는 솔직하고 고지식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그는 자기가 이토록 중요한 직책을 과연 감당해낼수 있겠는가 하는 위구심으로 하여 어려움도 잊고 자리에서 일어나 위대한 장군님께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새로 맡게 될 직무를 무겁게 대하는 조세웅동지의 진지한 태도가 마음에 드시는듯 은근한 미소를 지으시고 한동안 그를 바라보시였다.

처음 만나보시는 그였지만 볼수록 믿음직스럽고 대견하며 정이 가는 일군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동무가 새로 맡게 되는 당중앙위원회 부부장의 임무는 매우 중요하며 책임도 무겁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당의 사상과 의도대로만 일하면 맡겨진 임무를 원만히 수행할수 있습니다.》

크나큰 믿음에 접한 조세웅동지의 가슴속에서는 뜨거운 심장의 목소리가 울리고있었으나 그는 한마디도 입밖에 낼수 없었다.

조세웅동지가 몹시 흥분하고있다는것을 헤아리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앉아서 좀더 이야기하자고 하시였다.그러시고는 동무는 수령님께서 당중앙위원회 부부장으로 추천하시였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하시면서 전날에 있은 당중앙위원회 비서국회의때의 일을 알려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한자리에 모시고 진행된 그 회의에서는 우리 당의 강화발전을 위한 중요한 문제가 토의되였었다.

그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당의 질적공고화와 관련한 교시를 주시다가 조세웅동지의 이름을 부르시며 로동계급출신일군인 그를 당중앙위원회 중요직책에서 사업하도록 하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회의참가자들은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뜨락또르공장의 당비서를 혁명의 최고참모부의 중요한 부서 부부장으로 임명한다는것은 전례없는 일이였던것이다.

어떤 사람이기에 우리 수령님께서 데리고다니면서 키우겠다고까지 하시며 직접 추천하시는것일가.

회의참가자들의 얼굴에서 이러한 속생각을 읽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용히 웃으시며 조세웅동지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가 해방후부터 오래동안 청년사업을 한 일이며 여러 부문에서 당사업을 하면서 헌신적으로 투쟁한 사실,위병때문에 몸이 약하기에 몇번 약을 보내주신데 대해서까지 일일이 알려주시였다.그러시면서 조세웅동무는 수령에게 충실한 동무이다,그가 여러 부문의 사업을 하면서 단련되였기때문에 도와주면 일을 잘할수 있다,그를 당중앙위원회에 데려다 같이 일해보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때 우리 당의 기초를 튼튼히 다지는 력사적위업의 전렬에 로동계급출신의 당일군을 내세워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깊이 새기시며 조세웅동지에 대한 남다른 기대와 정을 소중히 간직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들으며 조세웅동지는 이름할수 없는 격정에 휩싸여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어버이수령님의 각별한 믿음과 사랑속에 위대한 장군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일하는 최상의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는것을 새삼스럽게 느낀 그는 자신을 다잡을수가 없었다.

조세웅동지는 해방전 룡천군의 자그마한 산골마을에서 지주집의 묘를 보아주며 생계를 유지하던 가난한 산당집의 맏아들로 태여났다.어릴적부터 남달리 대바른 성격에 의협심이 강했던 그는 부자집자식들이 놀려대는 《꼬맹이산당지기》라는 수모에서 벗어나보려고 산골에서 뛰쳐나와 여러 공사판들을 돌아다녔다.하지만 망국노의 설음이 안겨주는 피눈물나는 고역은 그에게 버림받은 막돌인생길만을 열어주었다.

철이 들면서부터 왜놈들의 채찍에 살점을 뜯기우며 갖은 천대와 멸시를 받아야 했던 불쌍한 소년이 우리 혁명의 최고참모부에서 크나큰 영광의 절정에 서게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수 있었으랴.

백두산위인들의 불같은 믿음과 사랑이 꽉 차흐르는 뜻깊은 그 시각 조세웅동지는 위대한 장군님께 온넋을 맡긴채 행복에 젖어있었다.그의 가슴속에서는 로동계급출신답게 그 어떤 준엄한 시련이 앞을 가로막아도 오직 우리 당만을 끝까지 믿고 따를 신념의 맹세가 불타오르고있었다.

주체혁명위업의 새시대와 더불어 격동적인 변혁의 서사시가 엮어지던 그 나날 조세웅동지는 절세의 위인의 품에 안겨 이렇게 극적인 인생전환기를 맞이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세웅동지가 당에서 맡겨준 중책을 훌륭히 감당수행하도록 하시기 위해 늘 깊이 관심하시며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대담한 결심과 명철한 예지,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우리 당사업에서 거창한 변혁의 새 력사가 펼쳐지던 나날에 있은 일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느날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된 조세웅동지를 부르시여 곧 함경북도에 내려가 도안의 전반적인 사업을 료해하고 보고서를 준비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어버이수령님께서 근심하시는 문제를 풀어드리기 위한 책임적이고도 중요한 임무를 맡겨주시는 그이의 안광에는 크나큰 믿음의 정이 뜨겁게 흐르고있었다.

조세웅동지는 몇몇 일군들과 함께 즉시 현지로 내려갔다.원래 아무 일에서나 깐깐하고 치밀하였던 그는 이전보다 도수를 더욱 높여 도의 전반적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였다.그리고 그 정형을 위대한 장군님께 보고드리였다.

송수화기에서 울리는 그의 보고를 오랜 시간에 걸쳐 다 들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부족되는 점들을 바로잡아주시고 보고서작성방법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면서 동무들이 만들어올리는 보고서가 함경북도의 실태를 정확히 반영함으로써 수령님께 기쁨을 드리기를 바란다고 거듭 강조하시였다.

수령님께 드리는 기쁨,바로 여기에 조세웅동지를 당과 수령에게 충직한 직업적인 혁명가로 키우시기 위해 그토록 중요한 과업을 맡겨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웅심깊은 의도가 있었고 수령님의 사업을 최상의 수준에서 보좌해드릴수 있는 원칙적인 방향과 방도가 있었다.

조세웅동지는 또다시 밤을 새워가면서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김책제철련합기업소와 무산광산(당시)에 모를 박고 보고서를 다시 작성하였다.기업소들의 생산공정을 따라가면서 제기되는 자료들을 결부하기도 하고 보고서의 매 문구,모든 자료가 정확하면서도 분석적이도록 하기 위해 애썼다.그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주신 방향대로 다시 완성된 보고서를 어버이수령님께서 함경북도에 도착하시자마자 그이께 드리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 보고서를 보시고 함경북도에 내려오는 길로 이곳 실태를 손금보듯 알게 되였다고 대단히 만족해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값높은 성장의 첫걸음을 뗀 조세웅동지를 더욱 세련시키시기 위하여 현지지도하실 때마다 데리고다니시며 당사업방법도 배워주시였고 중요공장,기업소들에 파견하여 생산에서 걸린 고리를 포착하고 풀어나가는 묘리도 체득하도록 하시였다.그가 일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모대기고있을 때에는 새로운 방법론도 가르쳐주시며 뚫고나갈 돌파구를 열어주시였고 때로는 하루종일 승용차를 함께 타고 다니시면서 일하는 방법까지 배워주기도 하시였다.그의 사업에서 어느 정도 성과가 이룩되였을 때에는 공들인 보람이 있구만라고 하시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였고 때로 발을 헛디디였을적에는 정을 쏟아 로숙하고 세련된 당일군으로,다정다감한 인간으로 키워주신 위대한 어버이의 크나큰 믿음과 은정의 세계를 어찌 다 전할수 있으랴.

그 나날에 조세웅동지는 예리한 분석판단력과 혁명적전개력,높은 조직적수완을 갖춘 능력있는 당일군으로,투철한 혁명적수령관의 체현자로 자라나게 되였다.

 

진짜배기혁명가가 되라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세웅동지와 자리를 같이하신 기회에 나는 동무를 손때묻혀 키우고있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진짜배기혁명가의 한생을 살데 대한 귀중한 교시를 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때 이렇게 강조하시였다.

나는 오직 자기 수령만을 알고 수령을 위하여 목숨을 내댈줄 아는 진짜배기혁명가만을 인정하고 사랑합니다.

진짜배기혁명가,이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조세웅동지를 위해 기울이신 끝없는 심혈과 아낌없는 정력,무한한 동지애의 세계에 대하여 단마디로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견결한 당적원칙성과 비타협적인 투쟁정신,철저한 로동계급적립장을 지니고 당과 수령을 충직하게 받든 조세웅동지의 강직한 성품을 무엇보다도 귀중히 여기시였다.

그이께서 늘 잊지 못해하신 하나의 사실이 있다.어버이수령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였다.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15차전원회의가 있기 전인 1960년대 중엽의 어느날이였다.구성시를 찾으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어구에서부터 사람들이 붐비면서 돌을 날라다 제방을 쌓는 광경을 보게 되시였다.수행한 일군들에게 여기서는 국토환경보호사업을 하고있다고 대단히 기뻐하시던 그이께서는 그 공사가 조세웅동지의 견결한 혁명적원칙성과 로동계급적배짱에 의하여 시작되였다는것을 알게 되시였다.

얼마전에 있은 일이였다.하루는 조세웅동지가 당사업을 하고있던 어느 한 기계공장에 지도사업을 내려왔다는 중앙의 한사람이 여기서는 왜 《향토꾸리기 10개년계획》을 받아물지 않는가고 하면서 당장 집행하라고 강다짐으로 내리먹이였다.

그의 《지시》가 당의 목소리와 다르다는것을 대번에 간파한 조세웅동지는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7개년계획밖에 모른다.련못을 팔 힘이 있으면 수령님께서 과업을 주신 수원지를 건설해서 수도화를 하겠다.》고 하며 단호하게 맞서 당정책을 옹호하였다.그리고는 우리는 누가 뭐라고 해도 어버이수령님과 우리 당을 받드는 신념만은 절대로 변치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 그날로 사람들을 동원하여 수원지공사를 벌려놓고 며칠째 제방을 쌓고있었다.

이러한 사연을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당에 대한 충실성과 혁명적원칙성,대바르고 고지식한 인간적면모를 갖춘 또 한명의 로동계급출신일군을 알게 된것이 무척 기쁘시여 그에게 당의 유일사상체계가 확고히 선 동무이라는 높은 평가를 안겨주시였다.

후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시면서 조세웅동지와 같이 자기 수령을 위해서라면 칼끝에도 올라서는 대바른 품성을 지닐데 대하여 강조하군 하시였다.장군님으로부터 이러한 사연을 전해들은 한 항일혁명투사가 언제인가 지나가는 조세웅동지를 붙들어세우고 《동무 정말 간단치 않은 사람이야.내 투사들의 이름으로 감사를 주오.》라고 한 사실은 혁명선배를 감탄시킨 그의 투철한 혁명적수령관에 대한 일화로 지금도 전해지고있다.

조세웅동지가 우리 당이 잊지 못하고 인민이 추억하는 당과 국가의 활동가로 값높은 한생을 수놓을수 있은것은 평범한 로동계급출신인 그를 수령님의 참된 혁명전사,진짜배기혁명가로 걸음걸음 이끌어준 자애로운 스승의 손길이 있었기때문이다.

조세웅동지가 늘 가슴에 품고 다니던 사업수첩에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그에게 하신 다음과 같은 교시가 정중히 모셔져있었다.

《나는 동무가 로동계급출신이고 공장에서 단련되였기때문에 누구보다도 로동계급적립장에 튼튼히 서서 나라의 경제발전과 인민의 복리증진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리라고 봅니다.》

로동계급출신이라고 각별한 믿음을 담아 하신 위대한 스승의 이 귀중한 교시는 조세웅동지의 심장속에 평생토록 깊이 새겨져있었다.

주체66(1977)년 12월은 조세웅동지에게 있어서 영원히 잊지 못할 또 한차례의 영광의 시기였다.위대한 장군님의 추천에 의하여 당중앙위원회 비서로 임명된것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세웅동지를 몸가까이 부르시여 동무는 지난 기간 당의 기초축성을 위하여 적극 노력하였으며 나를 도와 많은 일을 하였다고 하시면서 새로운 직무에서 사업하게 된것을 축하해주시였다.그러시고는 동무에 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은 한없이 큽니다,수령님께서는 동무를 로동계급출신당일군이라고 하시면서 당중앙위원회 부부장으로 사업하도록 직접 추천하시였고 이번에 내가 당중앙위원회 비서로 추천한데 대하여서도 기뻐하시였습니다라고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조세웅동지의 가슴은 끝없는 격정으로 세차게 설레이였다.그는 절세의 위인의 그 믿음,그 은정이 너무도 고맙고 은혜로와 끝내 장군님의 품에 얼굴을 묻고야말았다.

조세웅동지는 그날 자애로운 스승의 품속에서 흘러온 값높은 성장의 행로가 되새겨져 온밤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조세웅동지가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하면서 경제부문에 대한 깊은 파악을 가지게 된것은 혁명적대고조의 불길이 세차게 타번지던 70일전투때였다.

나라의 경제건설에서 혁명적인 전환의 계기를 열어놓으시기 위하여 이 거창한 전인민적인 전투를 직접 발기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공장 당비서사업밖에 해보지 못한 조세웅동지에게 현지에서 70일전투를 지휘하도록 크나큰 신임을 안겨주시였다.

조세웅동지는 천리혜안의 과학적통찰력으로 70일전투의 중심과녁을 명확히 정해주시고 대담하고 통이 큰 작전과 과단성있는 지휘,빛나는 예지와 탁월한 령도수완으로 사회주의대건설전투를 승리에로 이끄시는 위대한 장군님을 보좌해드리면서 한두번만 매혹의 격정을 터뜨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수송문제때문에 고심하던 조세웅동지는 뜻밖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 친히 걸어주시는 전화를 받게 되였다.그이께서는 조세웅동지의 건강이 어떠한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고나시여 항들에 왁새기중기를 놔주어야 하겠는데 몇대나 만들수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조세웅동지는 생각을 더듬으며 큰 마음을 먹고 잘하면 10대정도 만들수 있다고 말씀드리였다.

잠시 동안을 두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달사이에 50대정도 만들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나는 동무가 로동계급출신이기때문에 배짱이 있는가 했더니 그렇지 못한것 같습니다라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그러시고는 혁명가는 심장이 커야 한다,그래야 당과 혁명앞에 어려운 일이 제기되여도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난관을 맞받아 돌파구를 열어제끼고 힘차게 전진해나갈수 있다고 하시며 자신께서 적극 뒤받침해주겠으니 대담하게 전개해보라고 고무해주시였다.

조세웅동지는 비범한 담력으로 통이 큰 작전을 펼치시고 과단성있게 내밀어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교시를 받아안으며 가슴속에서 쿵- 하고 울리는 충격을 저도 모르게 느끼였다.밤낮 책상앞에만 마주앉아있다나니 어느새 자기 몸에서 로동계급의 진물이 빠지고 사무실화되였다는 자책감이 뼈아프게 들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은 로동계급의 본태를 잊을번 한 조세웅동지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고 그의 심장을 보답의 열도로 끓어번지게 하였다.치밀한 조직정치사업과 완강한 실천력으로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을 실천해가는 과정에 그는 어느 고전이나 대학에서도 배울수 없었던 경제지도방법과 당사업원리를 또 한차례 깊이 터득하게 되였다.

위대한 령도자의 손길아래 거창한 변혁의 새 력사를 체험하던 나날과 더불어 조세웅동지는 높은 안목으로 온 나라의 경제를 굽어보는 눈을 틔우고 당일군으로서의 자질과 실무도 풍만히 갖추어나가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가 경제부문에 대한 당적지도를 맡아볼 때에도 경제사업은 수학과 같다는것을 명심하고 나라살림살이를 물감장사처럼 하는 깐진 일본새를 지니도록 하시기 위해 깊이 마음쓰시였다.

주체67(1978)년 4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세웅동지를 몸가까이 부르시여 어려운 직무를 맡겼는데 애로되는것은 없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조세웅동지는 지식도 경험도 부족하다나니 올리뛰고 내리뛰느라고 하지만 튀여나가는것이 많다고 사업에서 겪고있는 고충을 그대로 말씀드리였다.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뜻있는 미소를 지으시더니 품속에서 소형전자수산기를 꺼내드시고 이 전자수산기를 동무에게 주자고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하시는것이였다.

순간 조세웅동지는 사랑하는 전사에게 새로운 직무를 맡겨주시고 당의 뜻대로 일 잘하도록 늘 마음쓰시였을 그이의 살뜰한 보살피심이 사무쳐와 형언할수 없는 심정에 휩싸였다.

뜻깊은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 전자수산기처럼 정확하고 진실하게 수령님을 받들어모시고 나라의 경제를 과학적으로 관리운영하도록 당적지도를 잘하여야 합니다.》라고 하신 귀중한 교시는 조세웅동지의 가슴속에 한생토록 소중히 간직된 전자수산기에서 심장의 박동소리처럼 언제나 울리며 그가 뚜렷한 생의 자욱을 남길수 있도록 힘있게 떠밀어주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위대한 장군님의 슬하에서 씨알박히고 능력있는 일군으로 몰라보게 성장한 조세웅동지를 두고 못내 대견해하시며 그가 나라의 경제사업을 맡아볼 때에는 《조세웅부총리는 일을 잘하기때문에 당에서 아끼는 동무입니다.》라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조세웅동지는 자기 령도자의 믿음에 보답할 열망으로 자나깨나 피끓이며 자신을 깡그리 바친 우리 당의 참된 일군,진짜배기혁명가였다.

그가 여러 도들에서 도당책임비서를 하는 나날에 백두산위인들의 거룩한 발자취가 어린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를 더 잘 꾸리기 위해 뿌린 땀은 위대한 은인에게 바치는 한 전사의 고결한 충정의 분출이기도 하였다.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은정이 인민들에게 그대로 가닿도록 하기 위해 흙냄새,기름냄새,물고기비린내를 풍기며 아글타글 애쓰던 전사의 깨끗한 량심과 의리는 인민들이 정담아 전하는 가지가지의 일화들에 실려 지금도 소중히 전해지고있다.당과 국가의 책임적인 일을 하면서도 늘 아래사람들과 한가마밥을 먹은 그에게서 당정책관철에 대한 무조건성의 정신과 로동계급적인 성격과 배짱,일군으로서 갖추어야 할 인간적풍모와 자질을 배우게 되였다고 많은 사람들이 추억하고있는것도 결코 우연치 않다.

언제인가 평안북도당 책임비서를 하던 조세웅동지의 사업정형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요즘 평안북도당 책임비서에 대한 반영이 좋습니다,도당책임비서가 늘 작업복차림으로 다니면서 군중속에도 들어가고 농촌에 가서는 농민들과 마주하고 새끼도 꼬며 정치사업을 한다고 합니다,평안북도당 책임비서가 사업을 바로하는것 같습니다라고 믿음어린 평가의 말씀을 하시였다.

정녕 위대한 장군님은 조세웅동지에게 있어서 령도자이시기 전에 다심한 어버이이시고 걸음걸음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는 자애로운 스승이시였다.

 

영원한 사랑의 전설

 

혁명의 길에서 한번 인연을 맺은 동지들에게 한생토록 불같은 사랑을 부어주시고 영원한 의리를 지키시는것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고결한 천품이시였다.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은혜로운 품속에서 흐른 조세웅동지의 한생은 병약한 육체적생명까지도 왕성한 청춘으로 꽃피운 복받은 인생행로였다.

조세웅동지에 대하여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를 보고 몸은 약해도 《강팀》이였다고 추억하군 한다.그들이 스스럼없이 말하는 이 《강팀》이라는 두 글자속에 조세웅동지를 위해 기울이신 절세의 위인들의 사랑과 은정이 얼마나 뜨겁게 깃들어있는지 사람들은 다는 모를것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달리 체질이 약한 그가 로동계급의 불같은 성미 그대로 일은 많이 하면서도 제몸을 전혀 돌보지 않는것때문에 늘 마음쓰군 하시였다.

주체70(1981)년 5월 어느날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조세웅동지의 병치료와 관련한 자료를 보시며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였다.자료에는 의사들가운데 조세웅동지를 수술해야 한다는 주장과 현재는 일없으니 경과를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서로 엇갈려 수술결론을 내리지 못하고있다는 내용이 씌여져있었다.

오래동안 생각에 잠겨계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송수화기를 드시고 한 일군을 찾으시였다.그이께서는 조세웅부총리의 수술문제를 가지고 협의회를 하겠습니다라고 하시면서 보건부문의 책임일군과 담당의사들을 비롯하여 해당 일군들을 부르도록 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협의회에서 조세웅동지의 수술가능성에 대해 과학적근거를 들어 설명하시면서 해방직후 외국의 한 군사일군이 같은 병증상으로 우리 나라에 와서 수술을 하고 완쾌된데 대하여 실례를 드시였다.협의회참가자들은 그이의 론리적이면서도 해박한 과학적식견에는 물론 환자를 위해 근 40년전의 일까지도 생동하게 그려내시는 비상한 기억력에 놀라움과 격정을 금치 못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협의회에서 나는 조세웅부총리가 로동계급출신일군이기때문에 그를 아끼고있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수술을 잘하기 위한 대책도 세워주시고 친히 집도의사까지 선정하여주시였으며 수술을 대담하게 진행하도록 힘과 용기도 안겨주시였다.

그리하여 한 나라의 수령이 평범한 일군의 건강을 위해 력사에 없는 의사협의회를 조직하고 보건부문의 최고권위자가 집도를 하는 경이적인 사랑의 전설이 생겨나게 되였다.

조세웅동지는 하늘땅도 감복할 그 사랑이 너무도 고마와 끝없이 울고 또 울었다.몸이 약하다고 늘 걱정하시면서 때없이 진귀한 보약들을 보내주시였고 속병이 도졌을 때에는 친히 약처방까지 써주시였으며 또 언제인가 멀리 지방출장의 길에서 쓰러졌을 때에는 유능한 의료일군들을 현지에 파견하여주시던 위대한 수령님들의 은혜로운 사랑이 걸음걸음 자기의 병약한 육체적생명을 지켜주고있는것이였다.

세상에 다시 없을 감동깊은 사연속에 마련된 수술대에 올랐을 때 우리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 오랜 시간에 걸치는 수술전기간 얼마나 깊은 관심을 돌리고계시였는지 그가 어찌 다 알수 있었으랴.

수술준비에 자그마한 빈틈이라도 있을세라 수십차례나 간곡한 가르치심을 주시였고 수술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였을 때에는 친히 휴양지들까지 정해주시며 그의 건강회복을 위해 그토록 마음쓰신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

은혜로운 태양의 손길에 이끌려 또다시 대지를 활보하게 되던 날 그의 심장속에서는 크나큰 격정이 한껏 터져올랐다.

아,내 언제면 절세의 위인들의 하늘같은 그 은정에 조금이라도 보답할수 있으랴.

위대한 장군님께서 조세웅동지의 건강때문에 얼마나 깊이 마음쓰시였는가를 말해주는 이런 사실도 있다.

어느해 경사스러운 4월의 봄명절이였다.

뜻깊은 경축연회장에 나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참가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시다가 조세웅동지가 없는것을 알게 되시였다.그이께서는 못내 서운해하시며 한 일군에게 어서 가서 그를 데려오라고 이르시였다.

일군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그때 큰 수술을 하고 안정치료를 받고있던 조세웅동지는 식욕이 떨어져 음식은커녕 맹물조차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있는 상태였다.위대한 장군님께서도 이것을 잘 알고계시였다.며칠전에도 병원에 전화를 걸어 그의 건강상태를 알아보시다가 식사를 못한다는것을 아시고 몹시 걱정하시였다.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연회장으로 그를 부르시는것이였다.

이 소식을 받은 조세웅동지는 건강때문에 장군님께 걱정을 끼쳐드리면 어쩌랴 하는 근심보다 그이를 뵙고싶은 마음이 너무도 강렬하여 허둥지둥 연회장으로 달려갔다.

조세웅동지를 반갑게 맞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얼굴이 퍽 축갔다고 근심하시며 그를 부축하고 식탁으로 이끄시였다.그러시고는 한 일군에게 부탁했던 료리를 가져오라고 하시였다.처음 보는 색다른 료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료리접시들을 그의 앞에 놓아주시면서 이 료리가 동무의 병에 아주 좋다기에 내가 직접 과업을 주어 준비한것입니다,그러니 내가 보는데서 다 들어야 합니다라고 거듭 권하시였다.

조세웅동지는 격정을 애써 누르며 료리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했다.그 어떤 음식도 한두숟가락 넘기기 어려웠는데 이 료리는 잠간사이에 한접시를 다 비웠던것이다.

그 모습을 눈여겨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너무도 기쁘시여 《됐습니다.됐습니다.이제는 동무가 살았습니다.동무의 병은 완치될수 있습니다.》라고 하시더니 그 료리를 다 가져오라고 이르시였다.

사랑하는 일군의 신병때문에 오죽이나 마음쓰시였으면 우리 장군님께서 료리접시를 비운것을 보시고 그토록 만족해하시랴.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료리접시를 더 들여오자 조세웅동지에게 약인데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들어야 한다고 하시며 그가 료리를 다 들 때까지 지켜보시였다.그 료리의 신비한 효험으로 해서인지 무슨 약을 써도 소용없던 조세웅동지의 식욕은 인차 회복되였다.천지를 감복시키는 위대한 장군님의 위대한 동지애가 이 땅우에 또 하나의 기적을 낳아 의사들은 물론 본인까지도 단념했던 그의 생명의 불은 다시금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러하던 조세웅동지가 썩 후날 불치의 병에 걸려 또다시 침상에 누웠을 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새로 조직된 내각사무국 당위원회(당시)의 책임비서직책까지 맡겨주시며 생명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하기 위해 온갖 조치를 다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혁명의 리익이라면 가시덤불길에도 진펄길에도 서슴없이 뛰여들줄 알고 엎어놓아도 매달아놓아도 한본새로 변함이 없던 조세웅동지가 세상을 떠나자 못내 애석해하시며 그의 령전에 화환을 보내주시였고 자식들을 아버지와 같은 훌륭한 당일군으로 키울데 대한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정녕 백두산위인들께서 조세웅동지에게 베푸신 믿음과 사랑,은정의 세계는 마를줄 모르는 샘과도 같이 그 시작과 끝을 헤아릴수가 없었고 지심속용암에도 만리대양에도 비길수 없이 뜨겁고 깊은것이였다.

로동계급출신의 일군인 조세웅동지의 한생은 누구나 절세의 위인의 품에 안길 때만이 혁명의 첫걸음도 성스럽게 뗄수 있고 생애의 마무리도 빛나게 장식할수 있으며 영생의 값높은 삶도 누릴수 있다는 인생철리를 천만의 심장마다에 깊이 새겨주고있다.

수령과 전우들사이에 맺어지는 숭고한 혁명적도덕의리의 뉴대,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혈연적관계는 어제도 오늘도 래일에도 영원히 변함없는 우리 혁명의 본태이며 억척불변한 승리와 영광의 근본초석이다.

혁명적동지애를 혁명철학,정치철학으로 내세우시고 선군혁명의 위대한 장을 펼치시는 또 한분의 걸출한 위인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당의 최고령도자로 높이 모시여 조선혁명의 성스러운 동지애의 력사는 새로운 주체100년대를 진감하며 더욱 줄기차게 흐르고있다.

우리 천만군민을 한전호속에서 생사를 같이하는 진정한 혁명전우로 굳게 믿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위대한 동지애의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값높은 삶을 누리고있는것인가.

경애하는 원수님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사랑하는 인민이 있고 천만군민은 누리에 붙는 불이 되여 그이를 충정으로 높이 받들어모시는 내 조국의 자랑찬 현실,

주체혁명위업의 격동의 새시대를 열어나가던 1970년대 당의 기초축성시기의 일군들처럼 경애하는 원수님만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원수님의 참된 혁명동지가 되는것보다 더 큰 영광,더 큰 행복은 없다.

혁명적동지애의 최고화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하신 절절한 말씀이 천만의 심장을 두드린다.

혁명의 길에서 생사운명을 같이한 전우들에 대한 숭고한 도덕의리는 혁명을 추동하고 전진시키는 원동력이다!

우리 당은 앞으로도 혁명적동지애의 위력으로 주체혁명위업의 최후승리를 이룩할것이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위대한 심장에서 뿜어지는 혁명적동지애의 눈부신 열과 빛,전사들에 대한 고귀한 믿음과 사랑이 천만군민을 참되고 억세게 키워주기에 사회주의 내 조국은 휘황한 미래를 향해 보란듯이 나아가고있는것이다.

본사기자 김준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