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4(2015)년 7월 9일 로동신문

 

수령님 모시고 천년만년 살아가리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이신 우리 수령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하늘도 땅도 뜨겁게 달아오르는 내 조국의 7월이다.어버이수령님을 한없이 그리며 만수대언덕과 각지에 모신 수령님의 동상과 태양상을 찾고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낮에 이어 밤에도 쉬임없이 이어진다.행복의 요람속에 인민을 재우시고 깊은 밤에도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러 《수령님,밤이 퍽 깊었습니다.》라고 절절히 아뢰이던 이 나라 군대와 인민이 지금 이 시각도 수령님을 못 잊어 잠 못 든다.기나긴 인류력사의 그 어느 갈피에 우리 수령님처럼 80평생의 순간순간을 하루와 같이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고 인민대중의 힘에 의거하여 조국과 혁명을 령도하여온 위인이 있었던가.

태양같이 환히 웃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영상을 우러를수록 인민행렬차의 기적소리 높이 울리시며 조국땅 방방곡곡에 인민사랑의 발자취를 아로새기시던 인민의 위대한 어버이에 대한 가지가지의 가슴뜨거운 추억들이 세월의 언덕넘어 물결쳐온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동지의 한생은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사상과 령도에 구현하여 현실로 꽃피우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이민위천,이 세상 누구도 지녀본적 없는 어버이수령님의 좌우명에 대하여 생각할 때면 수십년전에 있었던 하나의 사실이 돌이켜진다.

여러날째 어느 한 도를 현지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도 밤이 깊도록 문건을 검토하고계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하루밤만이라도 편히 쉬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안고 한 일군이 우리 나라를 방문한 어느 한 나라 대표단의 반영자료를 그이께 올리였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나라 국가수반은 1년에 한두번 국가행사에나 나타나고는 휴양지에 가있기때문에 우리 정부성원들도 좀처럼 그를 만나보기가 어렵다.

우리는 쌓아올리신 공적으로 보나 년세로 보나 김일성주석께서 응당 쉬시면서 사업하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영자료를 다 보고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웃으시며 그 나라 국가수반은 어떻게 일하는지 알수 없지만 우리는 그렇게 일할수 없다고 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에 일군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수령님,밤이 깊었습니다.》라고 말씀올리였다.

하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없다고,산에서 싸울 때부터 늘 잠을 적게 자다보니 이제는 버릇이 되여서 피곤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시며 나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라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그러시고는 다시 일감을 손에 잡으시였다.

진정 잊지 못할 그날처럼 늘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에서 잠시의 휴식도 없이 불철주야로 헌신하신분이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돌이켜보면 항일전의 나날로부터 어버이수령님 언제 한번 편히 쉬신적이 있으시였던가.

눈덮인 밀림의 우등불가에서,때로는 사령부천막에서 등잔불심지를 돋구시며 원쑤격멸의 령활한 작전을 무르익히시던 그때처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직후의 첩첩한 애로와 난관도 앞장에서 헤치시며 건국의 초행길을 열어나가시였다.그이께서는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지켜 전쟁의 시련도 앞장에서 헤치시였고 전후복구건설의 나날에도 언제나 인민들속에 계시며 그들을 영웅적위훈에로 불러일으키시였다.나라의 경제토대가 튼튼히 다져지고 인민생활이 몰라보게 펴이게 된 때에도 우리 수령님께서는 휴식을 잊고 헌신하시였다.

사회주의 우리 조국을 빛내이고 사랑하는 인민에게 더 큰 행복을 안겨주시기 위하여 분초를 아끼시며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우리 수령님께 있어서 언제나 모자라는것이 시간이였다.그리하여 그이의 일과는 낮에 이어 밤과 새벽으로 이어지군 하였다.

우리 수령님께서 깊은 밤에도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며 잘살 방도를 의논해주신 단위는 얼마이며 소문없이 들리시여 뜨거운 어버이사랑을 부어주신 평범한 로동자,농민,사무원의 가정은 얼마나 되는가.진창에 빠진 승용차를 몸소 미시며 인민들을 찾아가신 이야기며 인민소비품도안들을 보아주시느라 깊은 밤도 잠 못 이루신 이야기,잠든 주인을 깨울가 저어하시여 집밖에서 날밝기를 기다리신 이야기들은 또 얼마나 모두의 가슴을 울려주는가.

그이께 있어서 명절날,휴식일은 따로 없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오래동안 국가의 중요부문에서 일해온 한 일군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어버이수령님의 안녕과 휴식을 바라면서 우리 인민이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라는 노래를 삼가 지어드린 이후 어느날이라고 생각됩니다.그날은 토요일이였는데 평양대극장무대에서는 인민의 념원속에서 태여난 노래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울려퍼지고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각 수도의 거리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타신 차가 조용히 달리고있었습니다.일요일을 앞둔 토요일 그밤에 수령님께서는 또다시 현지지도의 먼길을 떠나시였던것입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날밤을 꼬박 차안에서 보내시고 다음날 새벽에야 목적지에 도착하시였습니다.우리들이 먼길에 쌓인 피로를 잠시나마 푸실것을 절절히 말씀올렸건만 수령님께서는 곧장 현지에서 그곳 사업을 지도하시였습니다.우리 수령님께서는 한평생 이렇게 일해오시였습니다.》

사람들이여,인류력사에 우리 수령님처럼 하루를 백날,천날맞잡이로 분투하시며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신 그런 위인이 있었던가.인민들의 절절한 마음을 담아 시계에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라는 노래도 넣어 시간이 되면 울리도록 해드렸건만 우리 수령님께서 오히려 그것을 인민의 고무로,기대로 여기시고 한밤을 꼬박 지새우시며 헌신하신줄 우리 진정 알았던가.

어느해인가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진행된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 련환공연무대에서는 외국의 한 녀가수가 부르는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깊은 밤에도 쉬지 않으시고 인민의 행복을 위해 현지지도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며 그길에서 기쁨을 찾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한평생이 뜨겁게 안겨오고 수령님께서 단 하루라도 편히 쉬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우리 인민의 념원이 흘러넘치는 노래는 첫 순간부터 관중의 심금을 틀어잡았다.노래가 끝나자 《수령님,수령님,밤이 퍽 깊었습니다.》라고 격정을 터치는 녀가수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지였다.어버이수령님께서 만면에 환한 미소를 담으시고 손을 흔들어주시자 온 극장안이 세찬 격정의 열기로 끓어번지였다.

수령님,밤이 퍽 깊었습니다!

진정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이 더없이 귀중하기에,우리의 혁명위업이 그렇듯 성스러운 위업이기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인민의 절절한 마음을 한평생 심장속에 간직하시고 인민을 위한 그길에서 고귀한 한생을 빛내이시였다.

57만 8 000여㎞,

어버이수령님께서 조국이 해방된 직후부터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근 반세기동안 이어가신 현지지도로정의 총연장길이를 우리 어떻게 쉽게 외울수 있겠는가.바로 여기에 한평생 인민행렬차의 기적소리높이 줄기차게 달려오신 어버이수령님의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위대한 헌신의 심원한 세계가 비껴있다.

어버이수령님의 이민위천의 사상을 필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신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그처럼 어려웠던 고난의 시기에 강성국가건설의 튼튼한 토대가 마련되였고 인민을 위한 창조물들이 수많이 일떠섰다.

《모든것을 인민을 위하여,모든것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라는 구호를 제시하시고 인민존중,인민사랑의 력사를 수놓아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해 오늘 우리 조국은 그 모습을 더욱 일신하고있다.

자정이 넘도록 부강조국건설의 원대한 구상을 무르익히시며 끝없이 헌신하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거룩한 모습에서 천만군민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인민사랑의 력사를 다시금 새겨안고있다.

어버이수령님 모시고 천만년 살려는 인민의 마음을 담아 충정의 노래 더 높이 울린다.

하루라도 한시라도 편히 쉬시옵기를

수령님 수령님 인민들은 바라옵니다

본사기자 백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