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4(2015)년 7월 10일 로동신문
강철의 령장의 위대한 발자취 력력한 력사의 땅 고산진(1) 서문거리혁명사적지,림성골혁명사적지를 찾아서
우리 조국은 멀지 않아 승리의 7.27을 맞게 된다. 우리의 전승절, 세세년년 찾아오는 기념일이지만 천만군민에게 언제나 승리에 대한 가슴벅찬 추억을 주고 조국수호정신을 벼리여주는 경사로운 명절이다. 승리의 력사에 대한 추억은 언제나 신성한것이다. 머리에 흰서리를 얹은 전쟁로병들은 력사의 진실을 우리 새 세대들에게 이렇게 전하여주었다.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는 위대한 승리의 기치이신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 위대한 년대의 승리자들의 추억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우리는 취재길에 올랐다.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이끄신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한 자욱자욱을 따라서는 우리의 가슴에서는 크나큰 사명감이 불타고있었다. 우리의 취재지는 고산진이였다. 고산진혁명사적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해방전쟁의 가장 준엄한 시련의 시기 전쟁의 종국적승리를 위한 재진격을 구상하시고 전국의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올 원대한 전략전술적방침을 내놓으시였으며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을 승리의 한길로 이끄신 불멸의 혁명업적이 깃들어있는 유서깊은 력사의 고장이다. 위대한 령도자 《고산진은 수령님께서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재진격을 구상하시고 준비하신 력사적의의가 깊은 곳입니다.》 만포시에 도착한 우리가 고산진혁명사적지로 향한것은 해가 중천에 뜬 낮이였다. 만포시내를 벗어나 압록강을 옆에 끼고 달리던 취재차는 어느덧 고산진혁명사적지에 이르렀다. 사적지는 120리구간에 다섯개의 혁명사적지들로 꾸려져있었다. 우리를 교양과장 김정희동무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의 안내를 받으며 우리의 발길이 처음으로 가닿은 곳은 서문거리혁명사적지였다. 우리는 먼저 최고사령부지휘소를 찾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9(1950)년 11월 4일부터 7일까지 여기에 계시면서 조국땅 깊숙이 기여든 미제침략자들에게 최후의 징벌을 내릴 반공격의 구상을 무르익히시였다. 우리는 지휘소의 내부와 혁명사적물들을 돌아보면서 교양과장으로부터 잊지 못할 그 나날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일군들의 협의회를 여시였다. 협의회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우리가 여기까지 온 목적은 우리의 력량을 집결하고 부대를 재편성하여 반공격준비를 철저히 하자는데 있으며 전략적위치로 보아서 여기가 그를 실현하는데 유리하기때문이라고 밝혀주시였다.그리고 군대안에서 당의 령도적역할을 높이고 당원들이 핵심이 되여 당대렬을 더욱 강화하며 각계각층 군중들을 우리 당 주위에 굳게 묶어세워 굴할줄 모르는 전투대오로 만들데 대한 문제,군인들속에서 정치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하여 군대안에 혁명적인 규률을 세우는 동시에 하루속히 력량을 다시 편성하고 정비하며 훈련을 강화할데 대한 문제,빠른 시일안에 안전한 지대에서 공장들이 생산을 정상화하여 전선에 무기와 탄약을 제때에 보내주며 군인들에게 빨리 겨울옷을 만들어 공급할데 대한 문제,인민들과 군인들이 호상련계를 잘 가지도록 할데 대한 문제들에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제2차 평화옹호세계대회에 파견할 우리 대표단성원들을 친히 이곳으로 부르시여 그들이 대회에 가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가르치시였다. 6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업적이 되새겨져 끓어오르는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오직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불멸의 로고를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의 숭엄한 모습을 마음속으로 경건히 우러르며 우리는 최고사령부 작전국을 찾았다. 작전실에 들어선 우리의 눈앞에는 작전지도를 펼치시고 삼천리강토를 훑어보시며 빠른 시일안에 반공격에로 넘어가기 위한 전략전술적방침을 제시하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이 숭엄히 어려왔다. 신심에 넘쳐있는 일군들을 바라보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언제나 전투승리의 조건을 수적,기술적우세로만 보지 말고 반드시 인민군전사들의 고상한 애국심과 희생성 그리고 원쑤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바로 이것이 백만대군의 힘보다 더 크다는것을 이미 항일무장투쟁시기 일제와의 싸움에서 실증하였다고 힘주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유히 흐르는 압록강을 이윽토록 바라보시였다. 압록강,잊을수 없는 강이였다.10대의 어리신 나이에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비장한 맹세를 다지시며 우리 수령님 건느시였던 강,원쑤격멸의 총성을 울리시며 우리 수령님 헤치신 항일대전의 피어린 자욱자욱이 새겨진 강이였다.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언하시듯 우리는 이곳에서 결정적인 반공격에로 넘어가는 작전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작전국옆에는 력사의 증견자인 스무나무가 잊지 못할 그날의 사연을 전하려는듯 푸른 잎새를 펼치고 설레이고있었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압록강을 바라보시며 필승의 신념을 굳히신 장소를 돌아본 다음 대공전투장소로 향하였다. 2포좌지에 이른 우리의 감정은 숭엄해졌다. 한몸의 위험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고사포진지로 몸소 나오시여 대공전투를 지휘하신 위대한 수령님, 그날 전투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지휘밑에 적비행기를 두대나 쏴떨구는 전과를 거두었다. 그후 중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밝혀주신 적비행기잡는 방법들을 전투마다에서 철저히 구현하여 많은 적비행기를 쏴떨구는 전과를 거두었다. 서문거리혁명사적지를 돌아본 우리는 림성골혁명사적지로 향하였다. 지명그대로 숲이 무성한 곳이였다. 골짜기입구 좌측 구봉산기슭에 위대한 수령 사적비문을 읽는 우리의 마음은 준엄했던 1950년대의 그 나날들로 달리고있었다. 맞은켠에는 2층짜리 고산진혁명사적관이 있었다. 강사 김주련동무의 해설을 들으며 사적관을 돌아본 우리는 림성골최고사령부지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문거리에 자리잡았던 최고사령부지휘소를 림성골의 바로 이 집으로 옮겨오게 하시였다. 이곳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요한 회의문건들을 몸소 집필하시였고 여러 부문의 일군들을 부르시여 전략전술적문제들과 전시생산을 강화할데 대한 문제,인민생활을 안정시킬데 대한 문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문제들을 토의하시였다. 돌아볼수록 무심히 대할수 없는 집이였다. 이 자그마한 집에서 우리 혁명과 조국해방전쟁력사에서 획기적인 의의를 가지는 사변들이 구상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기에 계시는 기간 불철주야의 로고를 바치시였다. 반공격을 위한 준비로서 인민군부대들을 정비재편성하고 예비군을 튼튼히 꾸릴데 대한 문제,제2전선부대들의 적후투쟁을 강화할데 대한 문제,인민군대를 정치사상적으로 더욱 강화하기 위한 문제 등 전쟁의 승리를 위한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이뿐이 아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출판보도사업에 특별한 의의를 부여하시고 여기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전전,전파전도 원쑤격멸을 위한 전투라고 하시면서 생사운명을 판가리하는 그처럼 준엄한 시련의 나날에도 여기 만포땅에서 중앙통신과 중앙방송의 전파가 세계를 향하여 중단없이 날고 각종 신문들이 련일 찍혀나와 전선과 후방으로 배포되여나가도록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산악지대에서 적후활동을 하던 한 인민군부대의 군인들은 최고사령부와 련락이 끊어져 안타까운 나날을 보내다가 고산진에서 울려퍼지는 중앙방송을 듣고 너무도 기뻐 눈물을 흘리면서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관철할 결의를 굳게 다지였다.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자신께서는 모든 정력을 깡그리 바치시면서도 언제나 혁명전사들을 위하신 사랑의 이야기며 집주인에게 페를 끼칠세라 너무도 검소하게 생활하신 이야기는 또 얼마나 우리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는가. 깊은 감명을 받으며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림성골에 계시는 기간 사용하시였으며 언제인가 이곳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보아주신 샘물터,운전수들의 생활을 보살펴주시기 위하여 여러차례 찾으시였던 운전수들의 병실,사령관도 인민의 아들이라 하시던 항일대전의 그 나날처럼 전화의 나날에도 도리깨를 잡으시고 농민들과 마당질을 하신 마당질터 등을 돌아보았다. 우리는 강사와 함께 승리봉에 올랐다. 지금은 봉우리로 오르는 길이 참관자들에게 편리하게 포장되여있지만 우리 수령님께서 오르신 그날에는 길이 몹시 가파로왔고 미끄러웠다. 그런 험한 길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군인들을 찾아 오르시였던것이다. 봉우리의 정점에는 고사기관총좌지가 있었다. 전선과 후방의 전반사업을 령도하시는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지우에 오르시여 몸소 기관총을 잡으시고 군인들에게 사격방법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봉우리이름에 사연이 있을상싶어 우리는 그것을 강사에게 물어보았다. 강사는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것이였다. 원래 이 봉우리는 전쟁시기까지만 해도 닭알모양처럼 생겼다고 하여 알봉이라고 불리웠다.그러던것이 승리봉으로 불리우기 시작한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47(1958)년 8월 1일 전쟁시기 최고사령부지휘소로 정하시였던 림성골의 농민의 집을 찾으신 때부터였다. 력사의 그날 집주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집맞은켠 알봉을 오래도록 바라보시였다.그이께서는 이곳은 우리가 와있으면서 전쟁의 승리를 마련한 곳이기때문에 알봉을 승리봉으로 부르는것이 좋겠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리 높지 않은 자그마한 봉우리에도 우리 당의 백승의 전통과 위대한 전승의 력사가 력력히 아로새겨져있다고 생각하니 조국의 모든 산과 들,나무 한그루,풀 한포기도 무심히 대하게 되지 않았다. 어느덧 승리봉이 저녁노을빛으로 서서히 물들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앞으로 찾게 될 혁명사적지들로 마음달리며 취재를 마쳤다. 본사기자 김철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