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4(2015)년 8월 8일 로동신문

 

우리 나라의 표준시간까지 빼앗은 극악무도한 범죄행위

해당 부문 일군들과 나눈 이야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과거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조선사람들을 식민지노예로 만들려는 목적밑에 〈내선일체〉요,〈동조동근〉이요 하면서 우리 나라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민족문화를 외곡하고 유린하였으며 우리의 말과 글,조선사람의 이름과 성까지 빼앗으려고 하였습니다.》

조국해방 70돐과 일제패망 70년이 되는 력사의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있는 시기에 우리의 표준시간을 제정함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이 발표되였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해당 부문 일군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자:우리 선조들이 표준시간을 어떻게 제정하여 리용하였는가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었으면 한다.

국가과학원 평양천문대 대장 정석:일찌기 고대시기에 세계5대문명의 하나인 대동강문화를 창조하고 꽃피워온 우리 민족은 아주 오래전부터 천문관측을 통하여 정확한 시간을 측정하고 우리 나라의 지리적위치에 맞는 시간제도를 제정하여 리용해왔다.

세계적으로 보면 시간관측기구로서 고대시기에 해시계가 나온 다음에 물시계와 모래시계 등이 나오고 중세시기에 흔들이추에 의한 자동시계가 나왔으며 근대와 현대에 이르러 보다 발전된 시계들이 출현하였다.

우리 선조들도 일찍부터 태양이 비칠 때 생기는 물체들의 그림자의 길이와 방향에 따라 시간을 재는 해시계를 만들어썼으며 그후 물시계도 만들어 리용하였다.

기자:시간은 천문현상과 밀접한 련관성을 가진다고 하는데 그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었으면 한다.

정석:우리 나라에는 고구려왕궁터인 안학궁옆의 첨성대(천문대)와 고려의 개성 만월대옆의 첨성대,신라 경주의 첨성대 등 많은 천문관측기지들이 있었다.

우리 선조들은 이러한 천문관측기지들에서 태양,달,별의 관측,기상기후관측 등을 진행하였는데 특히 태양의 관측은 시간측정과 밀접히 련관되여있었다.

그것은 태양이 비칠 때 생기는 지구상의 물체들의 그림자의 길고짧음을 보고 시간을 측정한것과 관련된다.

우리 나라의 해시계로서 제일 유명한것은 앙부일구였다.태양을 관측하여 측정하는 시간은 해가 제일 높이 떴을 때 즉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거나 제일 작아질 때를 정오로 보았다.정오는 태양이 지평선우에서 자오선을 지나가는 순간(12시)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써온 시간기준으로 하면 해가 제일 높이 떴을 때의 시간이 정오가 되지 않는다.우리 선조들이 제정한 표준시간에 의한 정오는 지금 리용하고있는 시간보다 30분 늦은 시간이였다.우리 나라에서는 조선봉건왕조시기까지 바로 이 시간을 표준시간으로 써왔다.

기자:우리 나라는 지리적으로 볼 때 국제적으로 규정한 시경대의 어느 구간에 위치하고있으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들에서는 자기 나라의 표준시간을 어떻게 정하고있는가?

정석:우리 나라는 지리적으로 볼 때 8경대와 9경대사이에 위치하고있다.

8경대에는 평양과 서울을 비롯하여 우리 나라 륙지면적의 55%(약 12만㎢)가 속하며 9경대에는 45%(약 10만㎢)가 속한다.

경대시란 지구겉면을 경도선을 따라 24개의 구역으로 나누고 매개 구역에서 그 구역의 중심자오선에 해당한 지방시를 통일적으로 쓰도록 한것을 말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둥그런 지구의 360°를 15°씩 갈라 24개의 경대로 구분하고 한경대사이를 1시간씩 차이나게 정한것을 경대시라고 한다.

1884년이전까지 지구상에 있는 매개 나라들은 자기 지역의 자오선에 해당한 지방시를 써왔다.

이리하여 한 나라안에서도 각 지방마다 시간이 달랐고 국제적으로도 매 나라마다 시간규정이 통일적으로 되여있지 못하기때문에 사람들의 개인생활과 국가사회활동에서 여러모로 불편을 느꼈다.

이러한 편향을 없애기 위하여 1884년에 세계의 천문학자들이 모여 진행한 국제자오선대회(혹은 국제경도대회라고도 함)에서는 지구를 경도에 따라 24개의 구역으로 등분하고 한경대사이를 1시간씩 차이나게 정한 경대시체계를 리용하기로 규정하였다.

1884년에 규정한 경대시체계에서는 영국의 그리니치천문대를 지나는 자오선을 기준자오선으로 정하였다.

이에 따라 매개 나라에서는 자기 나라의 수도와 인구,령토의 대부분이 놓이는 경대의 시간을 자기 나라의 표준시간으로 정하고 리용하여왔다.

그러나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이 경대시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인것은 아니다.

일부 나라들에서는 국제적인 경대시체계에 준하면서도 자기 나라가 지구우에 놓여있는 구체적인 위치와 기타 조건들을 보다 충분히 고려하여 경대시와 30분 혹은 그이상 차이나는 독자적인 시간체계를 리용하고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봉건왕조시기까지 지구우에 우리 나라가 놓여있는 위치상특성으로부터 8경대와 9경대사이의 동경 127°30′에 해당한 지방시를 표준시간으로 리용하여왔다.

기자:일제는 우리 나라의 표준시간을 언제 어떻게 강탈하였는가?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소장 조희승:일제는 1905년 11월 저들의 침략무력을 동원하여 조선왕궁을 포위하고 온갖 협박과 모략으로 강도적인 《을사5조약》이라는 허위문서를 날조하여 조선의 외교권을 강탈한 다음 1906년부터 우리 나라에 설치한 저들의 침략적거점들인 모든 통치기관들에서 일본의 표준시간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일본의 표준시간은 조선의 표준시간보다 30분 빠른 시간이다.일본의 표준시간은 9경대시간으로서 한양에서의 정오(12시)를 우리 나라에 설치한 일본통치기관들에서는 12시 30분경으로 취급하였다.

이것은 일본의 표준시간에 조선사람들이 점차적으로 《익숙》되게 하려는 일제의 교활한 술책의 결과였다.한 나라안에 서로 다른 두가지 시간제도가 존재함으로써 생기는 혼란을 막기 위하여 조선봉건정부는 나라의 자주권을 지켜보려는 시도의 하나로서 1908년 2월 동경 127°30′을 기준자오선으로 하는 표준시간을 설정할데 대한 황제칙령 제5호를 발포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실록인 《순종실록》에 이에 대한 기록이 있다.

《종래 늘 써오던 한양의 시간은 영국의 그리니치천문대의 자오선을 중심으로 한것으로서 그 기본은 동경 127°30′을 기준한것이였다.이것을 표준시간으로 삼아서 륭희2(1908)년 4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하였다.》라고 기록된 이 내용은 우리 나라가 일본과 30분의 시간차이를 둔 종래의 시간을 법적으로 고착시켰다는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일제는 1910년 조선을 군사적으로 완전히 강점한 다음 조선의 령토와 재부를 깡그리 강탈하는것과 함께 시간마저 완전히 빼앗아 우리 나라의 표준시간을 저들의 시간에 맞추어 30분 빠르게 하였다.

일제는 1911년 11월 《조선총독부》고시 제338호를 공포하여 우리 나라의 모든 지역,기관들과 사람들속에서 1912년 1월 1일부터 조선표준시간대신에 일본표준시간을 무조건 사용하도록 강요하였다.

이에 대하여 일제가 조선강점 25년과 30년을 《기념》하여 만든 1 000페지가 넘는 특간도서인 《시정 25년사》와 《시정 30년사》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여있다.

《명치39(1906)년 6월 2일이래 반도에 있어서 일본제국의 여러 관청만은 일본표준시간을 사용하고 명치41(1908)년 4월 1일이후는 반도에 있어서 일한량국관청은 다같이 제국(일본)중앙표준시간에 대하여 30분의 시차를 두고 표준시간으로 하였으나 병합후 내지와의 관계가 더욱더 밀접해지고 상호의 교통이 빈번해지는데 따라 이것을 통일할 필요성을 인정하여 명치45(1912)년 1월 1일부터 조선의 표준시간은 중앙표준시간에 의거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동경 127°30′을 기준자오선으로 하는 조선표준시간대신에 동경 135°를 기준자오선으로 하는 일본표준시간이 강제로 사용되게 되였다.

기자:일제가 우리 나라의 표준시간을 빼앗은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조희승:일제의 음흉한 목적은 조선에 대한 착취와 략탈을 제놈들의 시간기준에 맞추어 보다 쉽게 하며 영원히 우리 민족을 노예화하고 조선의 모든것을 일본의것으로 만들어 조선을 지구상에서 영원히 없애버리자는데 있었다.

시간은 인간생활과 뗄래야 뗄수 없이 련관되여있다.종주국인 일본에 있어서 식민지인 조선의 표준시간이 일본과 같아야 강도적인 제놈들의 지령을 아무러한 제한과 구속이 없이 보다 《원활》하게 내려먹일수 있고 조선민족을 노예화하는 시간을 앞당길수 있었다.

시간의 중심이 조선이 아니라 일본이 되여야 하며 식민지인 조선은 자기의 독자적인 시간을 가질 권리조차 없다고 본 일제는 《내선일체》와 《동조동근》을 부르짖으면서 《황국신민화》를 다그치려고 악랄하게 책동하였다.일본에서 정오(12시)에 고동이 울리게 되면 조선에서도 같은 시각에 고동이 울리면서 일본국민이나 조선인민이 다같이 일본의 력대 왕들이 살았다는 궁성을 향하여 《궁성요배》를 하도록 강요하였다.이러한 《궁성요배》는 조선민족의 넋과 얼을 뽑아버리고 저들에게 《충실》한 《황국신민》으로 만들기 위한 책동의 한 고리였다.

일제가 조선의 표준시간을 강탈함으로 하여 우리 민족은 남의 나라 시간에 맞추어 《정오묵도》와 《궁성요배》를 강요당하고 남의 나라 시간에 맞추어 노예로동을 강요당하였다.

일제가 조선의 령토와 재부를 깡그리 략탈하다 못해 조선민족의 말과 성,풍습과 문화를 빼앗았으며 나중에는 조선표준시간까지 빼앗고 이 땅에 흐르는 분과 초도 일본의 시간으로 흐르도록 한 극악무도한 만행은 우리 나라와 민족을 시공간적으로 완전히 말살해버리려는 놈들의 악랄성과 야만성의 로골적인 표현이며 일제의 대조선식민지동화정책의 직접적인 산물이다.

지금까지 침략과 략탈을 일삼고 다른 민족을 식민지노예로 만들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거리낌없이 감행하여 악명을 떨친 제국주의자들은 많았어도 일본제국주의자들처럼 조선인민의 성과 이름,말과 글은 물론 나라의 표준시간까지 강탈하고 저들의 표준시간을 강요한 그야말로 지독하고 파렴치한 제국주의자들은 찾아볼수 없다.

이것은 일제야말로 우리 나라를 세계지도에서 영원히 없애버리고 우리 인민의 민족성을 말살하기 위해 피눈이 되여 미쳐날뛴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백년숙적이라는것을 다시한번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천추만대를 두고도 씻을수 없는 일제의 죄악을 반드시 결산할것이다.

기자:조국해방 70돐과 일제패망 70년을 맞는 력사적인 시기에 일제에 의해 빼앗겼던 조선의 표준시간을 다시 찾아 평양시간으로 명명한것은 천만번 정당한 조치이다.

평양시간의 명명은 시간리용에서 뿌리깊이 남아있던 일제의 식민지잔재를 가슴후련히 청산한 력사적사변이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앞으로 조선의 표준시간인 평양시간에 맞추어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더욱 튼튼히 확립하고 당과 수령의 령도따라 최후승리의 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더 힘차게 전진해나갈것이다.

본사기자 백성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