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4(2015)년 8월 20일 로동신문

 

미제의 야수적만행을 낱낱이 발가놓는 력사의 고발장

반제반미교양,계급교양의 거점 신천박물관을 찾아서(1)

 

원쑤에 대한 환상은 곧 죽음

 

땅도 그 땅,하늘도 그 하늘이였다.사백어머니와 백둘어린이의 묘도 원암리 밤나무골의 그 자리에 오늘도 옛 모습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찾은 곳은 소년단넥타이를 휘날리던 시절부터 눈에 익혀온 어제날의 그 신천이 아니였다.나무와 풀,공기와 물마저도 달라진 땅이였다.

우리의 혁명진지,계급진지의 사상적보루로 새롭게 일떠선 신천박물관,그와 더불어 신천은 그자체가 증오이고 분노였으며 원쑤에 대한 복수심과 적개심의 거대한 응어리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국해방전쟁의 일시적후퇴시기 미제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에서 인민들의 피가 흐르지 않은 곳이 없었으나 신천군이 제일 참혹한 피해를 당하였습니다.》

한계단,두계단…

언덕은 나지막하고 계단은 높지 않았으나 우리는 쉽게 오를수 없었다.숙연해지는 마음으로 계단을 톺아 사백어머니묘,백둘어린이묘,애국자묘에 추모의 꽃송이를 얹고나니 새로 일떠선 신천박물관의 자태가 우렷이 안겨왔다.

력사의 고발자,증견자인 신천박물관은 피젖은 쇠사슬을 얼기설기 휘감고 신천땅 어디서나 보이는 언덕에 거연히 솟아있었다.

우리는 참관자들과 함께 박물관현관을 지나 중앙홀에 들어섰다.홀의 정면벽에는 《미제살인귀들을 천백배로 복수하자!》라는 글발과 함께 그날의 참변을 말해주듯 피빛을 배경으로 분노와 슬픔에 몸부림치는 녀인들과 아이들의 부각상이 형상되여있었다.

이어 총서관에서 우리는 강사로부터 신천박물관에 깃든 백두산절세위인들의 불멸의 령도업적과 박물관의 연혁에 대한 해설을 들은 다음 전시실-1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사는 박물관의 첫 전시실에서 참관자들에게 말하였다.

《이 전시실에는 이미 백수십년전부터 신천과 재령지역에 침략의 검은 마수를 뻗쳐온 미국놈들과 그 주구인 계급적원쑤들의 악랄한 책동에 대한 자료가 전시되여있습니다.》

해방전 선교사의 탈을 쓴 미국놈들은 교통의 중심지,삼각지대라고 말할수 있는 신천과 재령지역에 물밀듯이 쓸어들었다.

놈들은 신천땅 곳곳에 학교와 병원,례배당을 차려놓고 사람들속에서 민족자주의식을 마비시키고 미국에 대한 환상과 굴종사상을 불어넣기 위해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또한 앞으로 우리 나라에 대한 침략의 길잡이로 써먹을수 있는자들을 긁어모아 그놈들에게 철저한 반공사상,숭미사상을 주입시켰다.

강사의 해설을 들으며 전시된 사진자료들을 주의깊게 돌아보던 참관자들은 어느 한 전시물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것은 윌리암 헌트를 비롯한 미국선교사놈들에 의해 길들여진 김익두놈과 계급적원쑤들이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신천서부교회당 지하실에서 공화국을 반대하는 무장폭동음모를 꾸민데 대한 그림과 사진자료였다.

참관자들은 지하실의 어두컴컴한 구석에 들어박혀 폭동음모를 꾸미고있는 계급적원쑤들의 음흉한 몰골을 통하여 하나의 사실을 똑똑히 깨달을수 있었다.

왜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다른 곳도 아닌 신천땅에서 두달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군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만 5 000여명씩이나 학살되는 치떨리는 참변이 일어나게 되였는가를.

그것은 신천지역이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나라를 식민지화,노예화하려고 미쳐날뛴 미제와 그 주구들에 의해 반공과 숭미사상이 그 어느 지역보다 더 깊이,더 폭넓게 전파된 곳이기때문이였다.

미국에 대한 뿌리깊은 환상과 굴종의식때문에 신천에서는 김익두놈을 비롯한 착취분자들뿐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건달을 부리며 불평불만을 일삼던 허필순놈과 같은 불량배들에 의해 짐승도 낯을 붉힐 끔찍한 참사가 빚어졌던것이다.

참관자들은 미제에 대한 환상과 굴종이 어떤 후과를 낳게 되는가를 전시실-2를 통하여 뼈저리게 체험할수 있었다.

《여기서는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이 당시 신천군당방공호와 그 주변에서 감행한 야수적인 학살만행에 대하여 보여주고있습니다.》

강사의 해설에 의하면 군당방공호에서 감행된 학살만행은 신천땅에서 감행된 첫 대학살만행이였다고 한다.

강점 첫날부터 신천군안의 수많은 인민들을 체포하여 군당위원회청사에 감금하고 야수적인 고문을 해대던 놈들은 1950년 10월 18일 그들의 옷을 벗겨 머리에 씌운 다음 5~6명씩 결박하여 방공호에 몰아넣고 불태워죽이였다.

미제살인귀들은 불과 40여㎡밖에 안되는 좁은 방공호에서 불에 탄 인민들의 시체우에 또다시 사람들을 몰아넣고 불을 지르는 방법으로 무려 900여명의 애국적인민들을 악착하게 학살하였다.

전시실에 펼쳐진 대형반경화는 그날의 참상을 생동하게 보여주고있었다.

불타는 방공호와 그속에서 몸부림치는 무고한 인민들,너털웃음까지 터뜨리며 사람잡이에 미쳐날뛰는 미제승냥이놈들…

더우기 방공호앞에서 인간도살만행을 지휘하고있는 미군장교놈과 그옆에 선 치안대놈을 형상한 랍상은 그놈들이 금시라도 눈앞에 살아있는듯 하여 보는 사람마다 저도모르게 두주먹을 불끈 틀어쥐게 하였다.

학살현장에는 피젖은 책가방이며 필갑이 딩굴고있었다.

그것을 보느라니 해방된 조국땅에서 마음껏 터치던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노래소리가 금시라도 들려오는듯싶었고 억울하게 스러져간 그 수많은 생명들앞에서 우리 세대가 뼈저리게 자각해야 할 교훈과 반드시 수행해야 할 의무가 무엇인가를 깊이 새겨안을수 있었다.

신천의 참변,그것은 《박애》와 《자선》,《문명》과 《자유》를 부르짖는 미제의 악랄한 사상문화적침투책동의 진상이였다.

오늘 미제는 반공화국,반사회주의책동을 끊임없이 강화하고 우리 내부에 썩어빠진 부르죠아사상문화와 생활양식을 류포시키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있다.

참관자들은 원쑤들의 사상문화적침투책동을 철저히 짓부셔버리지 않는다면 이 땅에서 또다시 신천의 참상,신천의 교훈이 되풀이될수 있다는것을 심장에 아로새기며 다음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글 본사기자 리남호
사진 본사기자 전성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