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4(2015)년 7월 28일 로동신문

 

[정세론해설]

우리의 발밑에 양키의 항복서가 있다

 

승리자의 긍지높이 돌이켜보는 우리의 7. 27이 왔다. 위대한 년대의 주인공들이 안아온 전승은 어떻게 마련된것이였던가.

지금도 귀전에 들려온다.

1950년 6월 25일 내각비상회의장에 들어서시며 놈들이 어리석기 짝이 없소, 미국놈들이 조선사람을 잘못 보았소라고 하시던 강철의 령장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침략자 미제가 도발한 조선전쟁의 승패는 그때에 벌써 결정되였다. 조선의 운명이 《72시간내에 결판》나게 된다던 미제의 호언장담은 그 72시간이 수백번도 더 반복된 3년후에 항복서로 바뀌여졌다.

정전협정조인후 방송마이크앞에 나타난 당시 미국대통령 아이젠하워는 구슬픈 어조로 《대가는 컸다. 이것은 비극적인것이였고 쓰라린것이였다.》고 토설하였다.

서방의 한 종군기자는 미국력사에서 항복서에 서명한 첫 패전장군이 된 클라크의 얼굴에서는 《종전의 그 당당한 기개도 위용도 위신도 간곳없이 사라지고 두줄기의 눈물만이 흘러내렸다.》고 자기의 글에 썼다.

《불패의 거인》으로 불리우던 미제의 《강대성》의 신화를 산산이 깨뜨려버리고 력사상 처음으로 내리막길의 시초를 열어놓은 조국해방전쟁에서의 빛나는 승리는 위대한 령장을 수령으로 높이 모시고 전체 인민이 수령의 두리에 강철같이 뭉친 나라, 자기 위업의 정당성을 굳게 믿고 떨쳐나선 인민이 이룩한 력사의 필연이였다.

비극은 미국이 아직까지도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있는데 있다.

전조선반도에 대한 지배야망을 버리지 못하고있는 미국은 정전후에도 새 전쟁도발책동을 일삼으면서 우리와의 정면대결을 계속 추구하여왔다.

세계를 뒤흔들어놓았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과 《EC-121》대형간첩비행기사건이 그 대표적실례이다.

우리의 령해에 기여들었던 《푸에블로》호는 영웅적조선인민군에 의해 나포되였으며 《EC-121》대형간첩비행기는 고공에서 격추되였다.

미국은 《푸에블로》호가 나포되자 함선과 그 선원들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보복조치》로 원산항을 폭격하고 봉쇄하겠다느니, 원산을 공격하고 그 배를 빼앗아가겠다느니 하면서 어마어마한 침략무력을 동원하여 사태를 전쟁접경에로 몰아갔다. 그러나 오만무례하게 날뛰던 미제는 백두산의 기상과 담력을 지니신 위대한 령장의 멸적의 기상앞에 굴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사죄할줄 모른다.》고 하던 미제는 머리를 푹 수그리고 우리에게 사죄문을 가져다바치지 않으면 안되였다.

어디 그뿐인가. 1994년 12월 미군정찰직승기사건때에는 우리의 령공 불법침입을 인정하고 조종사들을 돌려보내달라고 사죄하였다. 미국의 도발에 의한 첨예한 조미군사적대결전들은 매번 미국의 항복과 사죄로, 우리의 승리로 결속되였다.

미국은 지나온 조미대결력사가 보여준 심각한 교훈을 똑똑히 새겨야 한다.

만일 미제가 우리에게 항복서를 바쳐온 패배의 전통을 망각하고 이 땅에 또다시 전쟁의 불을 지른다면 그것은 미국자신의 최종멸망을 앞당기는것으로 될뿐이다.

위대한 선군령장이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동지를 진두에 높이 모신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는 승리의 7. 27만이 있을것이다.

미제의 항복서는 영원히 우리의 발밑에 있다.

김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