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4(2015)년 8월 14일 로동신문
조국해방의 최후공격작전을 승리에로 이끄시여
일제는 아시아의 《맹주》가 되려는 야망밑에 침략의 길에 나섰으나 결코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인민들을 굴복시킬수 없었으며 저들이 저지른 침략전쟁의 불길속에서 망하고말았다. 위대한 수령 《조국광복의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하여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군사정치활동을 더욱 강화하여 자체의 혁명력량을 더욱 튼튼히 꾸리고 전민족을 일제와의 최후결전에 총동원될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합니다.》 1940년대 위대한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조국해방3대로선은 첫째로,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으로 일제침략군에게 섬멸적인 타격을 주며 둘째로,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에 호응하여 전인민적봉기를 일으키며 셋째로,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에 배합하여 전민항쟁조직들의 배후련합작전을 벌리는것이였다. 조국해방3대로선은 최후결전을 위한 준비를 다그치고 자체의 힘으로 조국해방의 위업을 이룩할수 있는 길을 명시한 강령적지침이였다.이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의 최후결전과 전인민적항쟁준비가 튼튼히 갖추어지게 되였다. 일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최후공격작전을 막아보려고 조선북부와 압록강,두만강일대에 《정예》를 자랑하던 관동군무력과 조선강점군을 대대적으로 들이밀었다. 조선인민혁명군의 최후공격태세에 겁을 먹은 일제의 《대본영》은 1945년 5월 또다시 관동군의 주력을 조선북부국경지대에 이동시켜 지구전을 벌리라는 작전계획을 하달하였다. 《대본영》은 또한 《만주 전지역을 버려도 좋으나 제국전반의 상황을 놓고볼 때 조선은 〈최후의 1선〉으로서 절대적으로 틀어쥐고있는것이 필요하다.》(《관동군》,중앙공론사,1967년,189페지 참조)고 하면서 《조선을 사수하라.》는 명령을 떨구었다.이리하여 조선은 멸망에 직면한 일제에게 있어서 《최후의 1선》으로 되였으며 일제는 조선북부와 국경일대에 무력을 집중하게 되였다. 일제침략군은 조선의 북부국경일대에 구름처럼 밀려들었으며 조선인민혁명군의 공격을 막아보려고 2중방어진지를 구축하고 두만강,압록강일대의 《국경요새》를 더욱 강화하기에 미쳐날뛰였다. 일제는 《국경요새》,《항구요새》들을 《철통의 방어진》으로 꾸리고 멸망의 위기를 모면해보려고 마지막발악을 다하였다. 천리혜안의 예지와 선견지명으로 일제의 기도를 환히 통찰하신 위대한 위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최후공격명령을 받들고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강도 일제침략군을 격멸소탕하면서 노도와 같이 조국에로 진군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령활무쌍한 작전지휘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국경요새》와 《항구요새》에 대한 선제타격,지상부대와 해안상륙부대의 협동작전을 들이대며 일제침략군무리들을 격멸소탕하였다.국내에 파견되여 활동하던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들과 정치공작원들은 인민무장대들과 무장봉기조직들,광범한 인민들을 무장폭동에로 힘있게 조직동원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군사적지략과 신묘한 전략전술에 의하여 《정예》를 자랑하던 관동군과 조선강점군은 이르는 곳마다에서 산산쪼각이 나고 침략군부대들은 헤여날수 없는 궁지에 빠져 갈팡질팡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최후공격명령을 받들고 조선인민혁명군이 최후공격작전을 개시한것과 때를 같이하여 쏘련군도 일제침략자들에 대한 총공격을 개시하였다. 일본본토에 대한 상륙작전을 회피하면서 일본에 두차례의 원자폭탄공격을 감행하고서도 일제의 항복을 받아내지 못하여 초조해하던 미제는 조선인민혁명군이 일제침략군에 대한 최후격멸전을 벌리면서 조선 전지역을 해방할 기세로 진격하고 전국도처에서 전민항쟁의 불길이 타오르자 조선을 분렬시켜 남부조선만이라도 강점하려는 또 한차례의 모략책동에 달라붙었다. 미제가 일본본토에도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더우기 조선에는 아직 접근도 하지 못했을뿐아니라 조선강점 일제침략군에 단 한번의 비행기타격도 하지 못한 주제에 조선의 38°선 남부를 저들의 작전지역으로 한다는것은 조선을 강점하기 위한 모략에 지나지 않았다. 조선인민혁명군의 드센 공격에 의하여 《최후의 1선》으로 믿고있던 조선에서 일제침략군은 결정적타격을 받았으며 일제가 《대륙의 꽃》이라고 자랑하던 100만의 관동군은 괴멸되였다. 일제는 더는 전쟁을 계속할수 없게 되였으며 그들에게 남은것은 오직 무조건 항복하는 길뿐이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이 최후공격작전을 개시하여 북부국경을 돌파하고 쏘련군대가 만주에로 돌입할 때인 8월 9일 오전 11시에 궁중의 지하방공호에서 일제의 《긴급최고전쟁지도회의》가 열리고 여기에서 수상 스즈끼는 《우리는 종국적으로 곤경에 처하게 되였으며 전쟁을 더는 계속할수 없게 되였다.》고 비명을 질렀으며 외상 도고는 당장 항복해야 한다고 하였다. 일제는 조선인민혁명군과 련합부대들이 《이제 10시간이면 서울에 남하할수 있고 또 10시간이면 부산을 해방할 태세에 있다.이에 비하여 미군은 가장 가까운데라야 오끼나와이다.》라고 비명을 질렀다. (《대동아전사》8,〈일문〉,조선편,1973년,124페지) 그러나 군부우두머리들은 더 싸워야 한다고 우겨대였다. 왜왕은 군부우두머리들의 주장대로 만약 전쟁을 더 끈다면 조선인민혁명군의 진격을 더는 막아낼수 없고 왜왕자신이 단두대에 나서야 하며 군국주의재생의 가능성도 없어지리라는것을 우려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의 노도와 같은 진격과 인민들의 강력한 혁명적진출앞에서 그처럼 오만무례하게 기승을 부리던 일제의 《대본영》은 드디여 저들의 완전한 패배를 자인하고 무릎을 꿇었다.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시며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이리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최후공격작전명령을 내리신지 1주일밖에 안되는 1945년 8월 15일 일제는 무조건 항복하였다. 오늘 미제에 의하여 되살아난 일본군국주의는 미제의 아시아태평양전략에 편승하여 또다시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실현해보려고 우리 나라를 첫 공격목표로 삼고 재침책동을 로골화하고있다. 경애하는 본사기자 채일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