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4(2015)년 9월 26일 로동신문

 

인민들속에서

모든 산을 황금산,비단산으로

리규환

 

북청군치고도 우리 룡전리는 가장 큰 영예를 지닌 마을이다.

력사적인 우리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 북청확대회의가 바로 우리 문화협동농장(당시 문화농업협동조합)에서 열렸던것이다.

회의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나라의 모든 산을 백과 무르익는 황금산으로 전변시킬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모든 산을 황금산,비단산으로!

그이의 이 위대한 구상을 전당과 전체 인민의 투쟁강령으로 접수한 북청회의를 나는 영원히 잊을수 없다.

1961년 4월 4일,어버이수령님께서 우리 농장에 오신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마을은 첫새벽부터 들끓었다.

봄비를 맞아 잔디가 더욱 파랗게 돋아오르는 남대천 방축너머로 멀리 승용차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승용차가 마을앞에 와 멎자 나는 농장원들과 함께 어버이수령님앞으로 달려갔다.

차에서 내리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환영나온 농장원들이 비를 맞는것을 념려하시여 걱정어린 표정으로 빨리 들어들 가라고 거듭 말씀하시였다.

그러나 누구도 어버이수령님의 곁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사과나무와 뽕나무를 심은 산비탈을 바라보시며《동무들은 참으로 당정책을 훌륭히 집행했소.》하고 우리를 치하해주시였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관리위원장동무에게 물으시였다.

《뽕나무는 정당 몇그루씩 심었소?》

《정당 2만그루를 심었습니다.》

《아주 잘했소.당이 내세운 정책대로 잘했소.오던 길에 산비탈 뽕밭에 올라가 뽕나무를 세여봤는데 정당 2만그루가 틀림없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비를 맞으시는것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오시는 길에 산비탈과수원을 일일이 돌아보시였고 우리들도 눈여겨보지 않으면 알아낼수 없는 뽕밭에까지 찾아가시여 몸소 재식밀도도 재여보시고 평당 그루수도 세여보시였던것이다.

산에다 사과나무와 함께 뽕나무를 더 많이 심어야 하겠소.그러면 뽕도 많이 따고 사태도 방지할수 있으니 얼마나 좋소.앞으로는 모래막이공사를 할 때 뽕나무를 대대적으로 심어야 하겠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그이께서 비를 맞으시는것이 몹시 걱정되였지만 수령님께서는 오히려 우리들을 보고 찬비를 맞으면 몸에 해롭다고 하시며 어서들 들어가라고 재삼 말씀하시는것이였다.

한참후에야 휴계실로 들어가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뒤따라 들어간 우리를 바라보시며 북청땅에 이렇게 또다시 찾아온것은 앞서 왔을 때 유명한 산경사지과수원들을 보았기때문이요라고 말씀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조상들이 이룩해놓은 귀중한 본을 따서 산에다 사과나무와 뽕나무를 많이 심는것은 매우 좋은 일이라고 몇번이나 말씀하시고나서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시더니 수행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곳 룡전리에서 시범상학을 조직합시다.그리고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를 이곳에서 가집시다.

나는 이때야 비로소 수령님께서 나라일에 바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 고장을 여러차례 찾아오시여 산을 잘 리용할데 대한 방도를 가르쳐주시던 그 깊은 뜻을 짐작할수 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1957년에 북청군일대를 돌아보시면서 전국의 산을 효과적으로 리용하여 과수면적을 10만정보로 확대시킬데 대하여 구상하시고 이 문제를 전인민적운동으로 전개할것을 제기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그후 우리 농장을 찾아오시여 과수원을 확장할데 대한 구체적인 지도를 주시였던것이다.

1959년에 우리 농장을 찾아오셨을 때에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43°경사지에 있는 계단식과수원까지 올라가시여 과수재배정형을 세세히 료해하신 다음 3단주지법대신에 주간형가지자르기방법도 도입하며 정당 30t씩 비료를 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떨어진 열매로는 술,과일단졸임,식초 등을 만들어 수입을 높일데 대해서까지 세심히 가르쳐주시였다.

그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이 조합은 아주 높은 수확을 내고있소.평지대과수원과 차이가 없소.이 조합의 과수원은 참으로 훌륭하오.높은 산이나 골짜기가 전부 과실천지요.이것이 지상락원이 아니고 무엇이겠소.전국이 하루바삐 이렇게 됐으면 얼마나 좋겠소.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북청군을 이 조합처럼 만들어야겠소.

우리는 어버이수령님의 교시를 심장으로 받들고 20°로부터 35°의 심한 경사지를 개간하여 21정보의 과수원과 17정보의 나무모밭을 더 얻어냈다.이리하여 북청군적으로 1 000여정보의 과수원이 산경사지에 새로 생겨났다.

그이께서는 우리들이 창조한 이 자그마한 싹에서 부유해질 조국의 래일을 바라보셨던것이다.

이렇듯 수령님께서는 여러차례에 걸치는 현지지도를 통하여 우리 농장에 모범을 창조하시고 그를 전국에 일반화하기 위하여 력사적인 북청회의를 준비하시였던것이다.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 북청확대회의에 앞서 협의회가 진행되였다.

협의회에는 군내의 근 300명의 과수부문 일군들이 참가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들과 함께 노전을 깐 방바닥에 앉으시면서 조선사람은 이렇게 온돌방에 앉아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오라고 말씀하시였다.

협의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토론에 참가하였다.

처음에 우리 농장 과수작업반장이 계단식과수원사업에서 얻은 경험을 가지고 토론하였다.

그는 계단식과수원은 태양광선을 많이 받기때문에 평지대과수원보다 사과의 빛갈도 고울뿐만아니라 맛도 좋다는것을 말하면서 수령님의 교시대로 심한 경사지를 개간하여 사과나무를 심고 거기에 콩과 강냉이,호박도 심어서 기름도 짜고 집짐승사료문제도 해결하였다는것을 이야기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작업반장의 토론을 주의깊게 들으시고나서 옳소,바로 그거요,우리는 알곡이 첫째고 그다음 사과를 먹자는거요,동무들이 참 일을 잘했소 하고 만족해하시였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토론하려고 앞을 다투어 일어섰다.

어떤 때는 두세사람씩 한꺼번에 일어서군 하였다.

그러면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웃으시면서 누가 먼저 일어났는가고,먼저 일어선 순서대로 토론을 하라고 말씀하군 하시였다.

그럴 때마다 우리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웃었다.

이렇듯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협의회는 화기에 찬 분위기속에서 진행되였다.

협의회에서는 좋은 경험들이 많이 제기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매우 만족해하시며 과수업에서 기계화와 화학화를 실현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동무들에게 나도 의견을 말해야 하겠습니다.이 조합에 살구나무가 있습니까?》하고 물으시였다.

우리들이 얼마 안된다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사과에만 편중하지 말고 조합의 기후풍토에 맞게 살구,복숭아,추리,포도 등 다양한 과실을 심어 계절에 따라 끊임없이 맛좋은 과실을 근로자들에게 공급하라고 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협의회를 마감하시며 과수업의 전망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가 과수업에서 기수이며 기사이며 박사들입니다.우리들은 여기서 협의된 의견들만 가지고도 전국이 모여서 충분히 회의를 할수 있습니다.

나는 어버이수령님의 이 말씀에서 또 하나 귀중한것을 배웠다.

협의회를 소집한 목적이 바로 광범한 대중의 의견을 종합하고 체계화한 기초우에서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를 지도하시려는데 있었다는것을 깨달았다.

우리 나라는 산이 많습니다.약 900만정보가량이나 됩니다.북청사람들처럼 높은 산 깊은 골짜기까지 과수원과 뽕나무밭을 일쿤다면 삼천리금수강산 어디나 다 황금산,비단산으로 될수 있습니다.우리 나라 산면적의 10분의 1만 개간하여도 실로 수많은 과수원을 만들수 있습니다.그러면 얼마나 경치가 좋고 살기 좋은 지상락원이 되겠습니까.몇해후에 여기서 100만t의 실과를 생산한다면 50만t은 우리가 먹고 50만t은 다른 나라에 수출하여 밀 100만t,강냉이 150만t을 바꿔들일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식량과 집짐승먹이문제도 해결하고 고기도 세계적수준에 도달할수 있습니다.그리고 조합마다 과실가공공장을 차려놓고 포도주도 만들어 마신다면 인민들은 모두가 장수할수 있습니다.우리가 과거 중농들처럼 조반석죽이나 하자면 이렇게 산에다 대대적으로 과수원을 만들려고 머리를 쓸 필요도 없습니다.

과거부터 우리 조상들은 근면하고 슬기로운분들이였습니다.그러나 리조봉건귀족통치배들은 큰 대통을 물고 정자나 짓고 기생놀이나 하면서 우리들에게 불과 만정보도 못되는 과수원을 물려주었습니다.

우리는 결코 그럴수 없습니다.우리는 낡은 사회를 뒤집어엎고 천지를 개변하는 혁명을 하고있습니다.우리들은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 사람들입니다.우리는 산을 개간하여 가까운 년간에 30만내지 50만정보의 과수원을 삼천리금수강산에 만들어 후손들에게 넘겨주어야 하겠습니다.

어버이수령님의 이 말씀을 듣는 나의 머리에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하신 그이의 말씀이 떠올랐다.

산좋고 물맑은 우리 조국땅우에 착취없는 사회를 건설하고 풍만한 자원을 우리의 힘으로 개발하여 모든 인민들이 자유롭고 풍족하게 살게 된다면 얼마나 보람있고 행복하겠습니까.우리가 지금 피를 흘리면서 싸우는 종국적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는것입니다.…이것은 공상이 아닙니다.우리 공산주의자들의 리상은 과학적이기때문에 그것은 기필코 현실화되리라는것은 조금도 의심할바 없습니다.

어버이수령님의 이 위대한 리상은 오늘 현실로 되고있지 않는가.그이께서는 우리 나라에 이미 착취없는 사회를 건설하시였다.그리고 우리 인민을 보다 풍족하게 살게 하시려는 그이의 념원도 지금 실현되고있다.우리 농장만 하여도 모두 부유한 중농수준으로 되였다.

나는 우리 인민이 행복하게 살게 될 희망찬 래일을 머리속에 그리면서 그이의 원대한 구상을 실현하는 투쟁에 모든 힘과 지혜를 다 바칠것을 굳게 결의하였다.

이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참 동무들은 조상들의 본을 따서 산을 쓸모있게 가꿨소,북청문화농업협동조합같으면 전국의 모범이 될수 있소라고 우리들을 치하해주시였다.

돌밭을 일구며 산비탈골짜기에 고랑을 째고 과일나무를 심어 과일을 마음껏 먹어보려는 조상들의 슬기로운 념원은 실로 오늘 로동당시대에 와서야 어버이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활짝 꽃필수 있게 된것이다.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보시고도,산비탈의 한뙈기 뽕나무밭을 더듬으시고도 조상들이 쌓아올린 슬기를 찾아보시는 그이,오늘 우리 인민의 행복을 마련하시고 후손만대의 번영을 생각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있는 우리 인민과 우리 자손들은 얼마나 행복스러운가.

협의회에서 나오자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어버이수령님께서 우리 조합에서 전국적인 회의를 여시고 우리 나라의 모든 산을 황금산,비단산으로 만들어 후손만대에 넘겨줄 크나큰 설계를 하신다고 말하였다.

며칠이 지난 4월 7일,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지도하에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 북청확대회의가 열리였다.

나도 직접 그 회의에 참가하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회의에서는 전국의 산을 모두 과수동산으로 전변시킬 구체적인 방도들을 토의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결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당은 해방직후부터 〈산을 낀 곳에서는 산을 잘 리용하고 바다를 낀 곳에서는 바다를 잘 리용하라.〉는 구호를 내놓았습니다.산이 많은 우리 나라에서 산을 잘 리용할데 대해서는 우리의 선조들도 많이 강조하여왔습니다.그러므로 산을 잘 리용하라는 우리 당의 구호는 우리 인민의 좋은 전통을 살린 구호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산을 리용하는데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우리는 산을 리용하여 벌써 약 8만정보의 과수원을 만들었습니다.이것은 1957년이후 몇해밖에 안되는 동안에 거둔 성과입니다.새로 만든 8만정보의 과수원은 한 5~6년 지나면 과실을 딸수 있게 될것입니다.이렇게 되면 정당 평균 12t씩 딴다 하더라도 여기에서 거의 100만t의 과실을 얻을수 있습니다.이것은 인구 한사람당 약 100kg씩 차례지는 대단한 량입니다.그때에 가서는 우리 인민들이 과실을 넉넉히 먹고도 남게 될것입니다.…

그런데 과수원 8만정보는 다른 나라들에 비한다면 그리 많은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적어도 30만정보 내지 40만정보의 과수원을 가지고있어야 합니다.

벌판이 적고 산이 많은 우리 나라에서 다른 나라와 같이 많은 과수원을 가지려면 산을 리용하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사실 우리 나라에는 과수원을 만들만 한 산이 얼마든지 있습니다.나라의 방방곡곡에 있는 이와 같은 산들을 우리가 다 일구어 과수원을 많이 만든다면 거기에서 우리 인민을 잘살게 할수 있는 큰 재부를 얻어낼수 있습니다.

과수원을 대대적으로 늘이는것은 대규모적인 자연개조사업이며 인민생활을 높이기 위한 위대한 혁명과업입니다.이 사업은 우리 세대의 행복을 위한 사업일뿐만아니라 우리 후대들의 행복을 위한 영광스러운 사업입니다.전당과 전체 인민이 동원되지 않고서는 이 거대한 사업을 할수 없습니다.

이 방대한 자연개조사업을 성과적으로 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근로자들을 공산주의사상으로,자기 향토를 사랑하며 자기 조국을 사랑하는 사회주의적애국주의사상으로 교양하여야 합니다.

…한 5년동안 계속 투쟁한다면 25만정보의 과수원과 5만정보의 뽕밭을 새로 만들수 있게 될것입니다.

우리는 7개년계획기간에 과수원을 한 20만정보 새로 만들어 30만정보로 늘여야 하겠습니다.》

이 회의는 우리 나라에서 단꺼번에 20만정보의 새땅을 얻어내게 했다.여기에 과일나무를 심으면 이미 개간한것을 합쳐 30만정보의 과수원이 조국의 산을 뒤덮게 된다.

정보당 10t씩만 과일을 수확한다 해도 300만t의 과일더미가 산처럼 솟을것이 아닌가.

회의참가자들은 모두다 백과 무르익을 조국의 산들을 눈앞에 그리면서 회의장을 나섰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나를 가까이 부르시였다.

《리당위원장동무,우리는 많은 페를 끼치고 떠납니다.성과에 자만하지 말고 앞으로도 계속 동무들이 전국의 모범이 되여야 하겠소.》

수령님께서는 나의 손을 잡고 오래동안 흔들며 격려해주시였다.

나는 어버이수령님앞에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북청회의결정을 철저히 관철함으로써 그이의 기대에 보답할것을 굳게 다짐하였다.

평양으로 돌아가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 협동농장에 뜨락또르를 보내주시였다.

우리 농장원들은 그날 너무나 기쁘고 감격하여 뜨락또르를 둘러싸고 얼싸 좋아라고 춤을 추었다.그리고 과수원개간에서 혁신을 일으킬 굳은 결의를 다시한번 다지였다.

우리 농장원들은 모두가 한사람처럼 과수원개간에 궐기하였다.칠순이 넘은 로인들도 마음은 늙지 않았다고 하면서 청년돌격대에 떼를 쓰고 들어왔다.

돌격대원들은 령너머 장흥동골에 천막을 치고 개간사업에 착수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북청회의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76정보의 과수원을 새로 개간하였다.

산경사지에 새로 생겨난 이 과수원에는 1만 5 000여그루의 사과나무와 1만그루이상의 포도나무가 꽃이 피고있다.

이제 1967년에 가서는 북청회의정신을 받들고 우리가 심은 나무들에서 첫열매를 맺게 된다.

그때에 가면 우리들의 생활이 얼마나 더 유족해질것인가.

호당 2 000여원의 현금과 3t이상의 알곡을 분배받고 사람들은 더덩실 춤을 추며 노래부를것이다.

북청회의는 우리를 더 잘살게 만들었다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에게 후손만대 번영할 황금산,비단산을 안겨주시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