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4(2015)년 10월 1일 로동신문

 

길이 빛나라,존엄높은 조선로동당의 성스러운 70년이여

당창건사적관과 당창건기념탑에서 절세위인들의 거룩한 업적을 새기며

 

한없이 숭엄한 격정과 성스러운 사명감에 젖어 우리는 조선로동당기의 나붓김아래 시대적변천을 이룩한 사랑하는 조국강토를 한가슴에 안아본다.

위대한 로동당이 혁명의 기관차가 되여 인민의 운명을 영광에로 이끌어오고 조국의 존엄을 최상의 높이에로 령도해온 70년!

푸르른 이 하늘아래 그 어디에서라도 좋을것이다.이 땅의 어느 평범한 인간도,가을바람에 설레이는 한그루의 나무,한포기의 풀마저도 우리 당의 위대함을 말하여주고있기에.

그러나 우리는 조선로동당을 이야기하는 하많은 력사의 지점들중에서도 당창건사적관과 당창건기념탑앞에 섰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선로동당은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을 영원한 수령으로 높이 모신 김일성,김정일동지의 당입니다.》

조선로동당의 70년사를 우리는 열광의 환호로만 칭송하려는것이 아니며 금문자 아로새긴 부피두터운 책으로 말하려 하지도 않는다.당창건의 력사적인 사연들을 소중히 간직하고있는 해방산기슭의 크지 않은 집에서 그리고 주체형의 혁명적당건설업적을 상징하는 기념비적건축물인 당창건기념탑앞에서 우리 당의 70년에 대하여 격조높이 구가한다.

우리 당의 성스러운 력사를 보여주는 지점은 연연한 산줄기의 무수한 봉우리들마냥 많고많으나 바로 여기에 장구한 당의 력사가 응축되여있기때문이다.

 

해방산기슭의 크지 않은 집으로부터

 

그토록 영광스러운 력사만을 안고있는 조선로동당이 탄생한 당창건사적관은 너무도 수수하고 소박하다.

해방산은 원래 상서로운 기운이 항상 서려있다고 하여 먼 옛날부터 서기산으로 불리워왔다고 한다.위대한 수령님께서 해방산기슭에서 새 조선을 이끄신 때로부터 항간에서는 서기산을 차츰 해방산이라고 불렀다.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가 자리잡고있던 뾰족지붕의 청사도,어버이수령님께서 계시던 2층의 벽돌집도 그때의 모습그대로이다.

혹시 저 나무가 아닌지.우리 수령님께서 당창건의 원대한 구상을 무르익히시며 한밤을 지새우시던 잊지 못할 순간들을 년륜에 아로새기고있는 나무가.

못가의 저 바위는 아닌지.투쟁의 진로를 찾아 험로를 헤쳐온 혁명가들에게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며 수령님 앉으시였던 바위가.

사적지의 나무 한그루,조약돌 하나,사적물 하나에서도 어버이수령님의 체취와 숨결이 느껴지는듯싶어 쉬이 걸음을 옮길수 없다.

10대의 시절에 벌써 《ㅌ.ㄷ》의 결성으로 우리 당의 력사적뿌리를 마련하시고 항일의 피어린 나날 당창건의 조직사상적기초를 마련하신데 기초하여 해방후 지체없이 당을 창건하기 위한 사업에 착수하신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사들과 함께 생활하시던 2층집을 돌아보느라면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글줄이 어려온다.

《우리 투사들은 백두산에서 매고온 신들메를 풀 사이도 없이 새 전구로 속속 떠나갔습니다.그들은 한결같이 자기네가 차지할 파견지를 하나의 작전지역처럼 여기였습니다.우리의 조국개선은 개선이라기보다 혁명의 새 장을 개척하기 위한 전략적이동과 같은것이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항일대전의 초연스민 배낭을 벗어놓고 어린애들마냥 기뻐 어쩔줄 몰라하는 투사들,백두의 풀물오른 군복도 갈아입지 못한 그들을 또다시 새로운 투쟁전구로 떠나보낼 결심을 내리실 때 우리 수령님의 심중에 차넘친것은 무엇이였던가.하루빨리 주체형의 혁명적당을 창건하고 부강번영하는 새 나라를 일떠세우시려는 굳센 의지였다.

지금도 현관문을 드르릉 여시고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투사들을 반갑게 맞아주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 환히 웃으시는듯,

누비돗자리가 깔려있는 방은 투사들이 생활하던 방이였다.파견지에서 돌아온 항일투사들이 모여 서로 회포도 나누군 하던 이 방이야말로 제2의 빨찌산병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도 자주 여기에서 투사들과 함께 쉬시였는데 수령님께서 회고하신 《따바리잠》에 대한 이야기도 바로 이 방에서 있은 사실이다.

그뿐이 아니다.위대한 수령님께서 림춘추,강상호,김익현동지들의 결혼상도 차려주시고 몸소 사랑의 축배잔까지 부어주신 추억도 고이 간직하고있는 방이다.그 나날의 온기가 느껴지는듯,축하의 박수소리가 들려오는듯 돗자리를 정히 쓸어보며 방안을 둘러보는 우리의 가슴도 후더워오른다.

어버이수령님의 인민적풍모를 보여주는 하많은 사연들이 매 방마다에 가득가득 넘치고있다.

김일성빨찌산부대 정치위원이라고 하시며 각계층 인사들은 물론 베잠뱅이를 걸치고온 사람들의 손도 허물없이 잡아주시던 이야기,온돌방의 나무식탁에 마주앉으시여 대원들과 꼭같이 잡곡밥을 드신 이야기,우리 수령님을 모시던 첫 운전사가 뜻깊은 개선연설의 그날에야 지금껏 모시고다닌분이 그처럼 뵙고싶던 김일성장군님이심을 알게 되였다는 전설같은 이야기…

바로 이러한 력사의 집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세에 길이 빛날 10월 10일의 아침도 맞이하시였다.

순간의 휴식마저 잊으신채 새벽까지도 당창립대회의 보고집필에 전념하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한 일군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새날이 밝아온다고,잠시나마 쉬셔야 하겠다고 말씀올리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제는 습관이 되여 일없다고,새벽시간이 자신께는 제일 귀중한 시간이라고 하시였다.당창립대회보고의 마지막집필을 끝내시였을 때에는 어느덧 아침해가 떠오르고있었다.집무실 겸 침실로 리용하시던 2층의 방 창가에 서시여 밝아오는 동녘하늘을 바라보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교시하시였다.

동무들,파란곡절과 준엄한 시련을 겪던 우리 나라 공산주의운동력사에 새 페지를 기록할 시간이 다가오고있소.…

그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려보시였으리라.《ㅌ.ㄷ》의 성원들과 함께 휘발하강가에 달려나가 손에손을 잡으시고 목청껏 노래를 부르시던 순간이며 혁명연극 《3인1당》의 공연으로 파쟁만을 일삼던 민족주의자들을 깨우쳐주시던 순간을.국내당조직을 결성하시고 조국광복회의 창립으로 당의 대중적지반을 튼튼히 다져나가시던 순간들을.

하많은 력사와 미래를 안고 10월 10일 마침내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창립대회가 소집되였다.

우리 당의 창건,진정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의 길에 나서신 첫 시기부터 혁명적당을 창건하기 위하여 벌려오신 정력적인 투쟁의 결실이였으며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하고 항일의 혁명전통을 계승한 혁명적당의 탄생이였다.

2층으로 된 당창건사적관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업하시던 2개의 집무실과 응접실,회의실이 있으며 당창건사적을 보여주는 7개의 호실이 있다.

이 집무실들에서 우리 수령님께서는 가장 과학적이며 인민적인 정책들을 실시하시였으며 당파와 주의주장이 다른 수많은 인사들,각계각층의 인민들과 담화하시며 새 조국건설을 령도하시였다.

당의 정치로선과 조직로선을 관철하기 위한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제2차,제3차 확대집행위원회 연설문과 보고문,민주개혁의 법령초안들,북조선로동당창립대회 보고문,헌법초안을 비롯한 위대한 수령님의 수많은 고전적로작들이 여기서 집필되였다.

지금도 바라보느라면 우리 수령님께서 창덕학교시절의 첫 동지였던 강윤범을 비롯한 교원들을 이 방에서 만나주시고 지덕체를 겸비한 인재를 육성하여 나라를 흥하게 한다는 뜻에서 학교의 이름을 《삼흥중학교》라고 지어주시며 책상우에 놓여있는 펜으로 잉크를 듬뿍 찍으시여 《석 삼》자와 《흥할 흥》자를 활달하게 써주시던 력사적순간이 어려온다.

우리 당의 기관지인 《정로》의 창간을 두고 너무도 기쁘시여 자,우리 당보를 보시오,우리가 그처럼 애써 준비해온 당보가 드디여 나왔습니다,이것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라고 하시던 어버이수령님,우리의 보건은 철저히 인민을 위한 보건이 되여야 한다고 하시며 처음으로 병원의 명칭에 《인민》자를 달도록 하신 우리 수령님,당기와 국기를 이 세상 가장 훌륭하게 완성시켜주신 수령님,

평강군의 평범한 녀성농민을 만나주시고 문맹을 퇴치하였다는 편지를 반갑게 받아보신 곳도,당세포에 소속된 평당원이 되시여 당조직관념의 숭고한 모범을 보여주신 곳도 여기 해방산기슭의 청사이다.

얼마나 하많은 가지가지의 추억들을 간직하고있는 곳인가.

하기에 주체59(1970)년 이곳을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당을 창건하시던 나날에 있었던 잊을수 없는 사연들을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고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당중앙위원회 협의회들과 당과 국가의 중요행사들을 지도해주신 응접실에도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사적들이 깃들어있다.위대한 수령님께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금고속에 소중히 보관하고계시던 한장의 사진이 이 응접실에서 찍으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람들은 흔히 생활의 소중한 추억을 불러오는것이 사진이라고 한다는데 그동안 서로 바쁜 시간을 보내다보니 언제 사진 한장 함께 찍어볼 기회가 없었다고,오늘은 잊지 못할 1948년을 보내면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시며 김책동지를 곁으로 부르시였다.그러시고는 오늘 김책동무와 찍으려는 이 사진은 내각수상이라는 관직을 가지고 내각의 한 성원인 부수상과 공식적으로 찍는 사진이 아니라 인간 김일성과 인간 김책이 동지적으로 함께 찍는 기념사진이라고,그래서 자신께서는 더 잘 찍고싶다고 하시였다.

회의실까지 돌아보고 계단을 내리느라니 생각은 깊어진다.

별로 높지 않은 계단,세여보니 28개밖에 되지 않는 이곳으로 얼마나 많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어버이수령님을 뵈오려고 올랐겠는가.고령의 김구가 목숨마냥 간수해오던 상해림시정부의 인장을 정히 받쳐들고 이 계단을 한계단 또 한계단 오를 때 얼마나 하많은 생각이 그의 가슴에 고패쳤으랴.베잠뱅이차림에 짚신을 신고온 김책동지의 아들이며 자기가 직접 잡은 범가죽을 싸들고 찾아온 녀성포수 그리고 로동자,농민,지식인,청년학생들모두에게 있어서 이 계단으로 오른 순간은 위대한 수령님의 품,고마운 당의 품에 운명도 미래도 다 맡긴 력사적순간들이였다.

부피두터운 당창건사적관 감상록의 한페지에는 이런 글이 있다.

《혁명가는 안락과 편안을 바라지 않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처럼 수수한 곳에서 정력적으로 활동하시였다.

바로 여기에서 조선의 운명이 결정되였으며 조선로동당은 굳세고 용감한 정의로운 민족을 키워냈다.이 모든것은 조선인민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의해서만 실현될수 있었다.》

그렇다.당창건사적관은 만경대의 추녀낮은 고향집처럼 수수하고 소박하다.하지만 조선로동당의 백전백승의 힘이 어디서 솟아났는지,우리 당의 인민적시책들이 어떻게 태여났고 인민의 꿈과 리상이 어떻게 현실로 꽃펴났는지 해방산기슭은 전하여주고있다.우리 후손만대가 영원토록 잊지 말고 전해가야 할 위대한 혁명의 진리,생활의 진리를 소리높이 웨친다.

우리 당의 붉은 당기가 세차게 나붓기는 당중앙위원회의 청사와 더불어 오늘도 당창건사적관은 조선로동당의 령도를 충정으로 받들어나가도록 떠밀어주는 등대마냥 천만군민의 앞길을 밝혀준다.

 

마치와 낫과 붓대가 빛나는 하늘아래서

 

세계에는 유명무명의 수많은 기념탑들이 있어도 당창건을 칭송하는 탑,수령,당,대중의 일심단결을 형상한 탑은 오직 당창건기념탑 하나뿐이다.

당창건기념탑이 건립되던 가슴뜨거운 나날들을 어찌 잊을수 있겠는가.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창건 50돐을 맞으며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당건설업적을 칭송하는 기념비를 세울데 대하여 가르쳐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83(1994)년 7월 7일 여러건의 기념탑형성시안들을 지도해주시였다.

그런데 어이 알았으랴.그 이튿날인 7월 8일 어버이수령님께서 너무도 뜻밖에 우리곁을 떠나실줄을.

어버이수령님께 당창건기념탑의 형성시안도,완공된 기념탑도 보여드리지 못하게 되시였으니 그때 우리 장군님의 심중은 천갈래만갈래로 찢기는듯 하였다.

하지만 온 나라가 민족최대의 국상을 당하고 피눈물의 바다에 잠겨있던 때 어버이수령님의 사상과 업적을 변함없이 고수하고 빛내여나가도록 천만군민을 산악같이 일떠세워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마음속에서 당창건기념탑건설은 한시도 떠난적이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당창건기념탑을 만수대언덕에 높이 모신 어버이수령님의 동상과 한축상에 놓이도록 오래동안 아껴오시던 명당자리에 그 위치를 잡아주심으로써 수령님을 천세만세 높이 모시고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할 우리 당과 인민의 확고한 의지가 수도 평양의 축을 이루도록 하시였던것이다.

주체84(1995)년 10월 5일 준공을 앞둔 당창건기념탑을 돌아보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당창건기념탑은 주체혁명위업과 인류의 자주위업을 위하여 투쟁하는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당,조선로동당의 상징이며 전체 인민이 당과 수령의 두리에 한마음한뜻으로 굳게 뭉쳐 나아가는 우리 사회의 일심단결의 상징입니다.당창건기념탑은 승리와 영광으로 아로새겨진 우리 당의 자랑찬 투쟁력사와 불멸의 업적을 보여주는 증견자로서 김일성민족의 존엄과 영예를 온 세상에 떨치며 길이 빛날것입니다.》

김일성민족의 존엄과 영예를 온 세상에 떨치며 길이 빛날 당창건기념탑!

그것은 명실공히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령도가 낳은 고귀한 창조물이며 우리 당을 영원히 김일성동지의 당으로 강화발전시켜나가려는 천만군민의 확고부동한 신념이 떠올린 기념탑이였다.

당의 구성부분을 상징하는 마치와 낫과 붓을 틀어쥔 억센 주먹을 형상한 탑신,수령,당,대중이 한덩어리가 된 일심단결을 형상한 원형띠,조선로동당의 깊고도 억센 뿌리를 형상한 넓은 기단,

수백곡의 노래로써도,수천수만권의 책으로써도 다 이야기할수 없는 우리 당의 위대한 모습이 하나의 건축물에 다 담겨져있다.그것은 이 땅의 천만자식들을 차별없이 품어안는 위대한 어머니의 모습이라고 우리는 스스럼없이 말한다.

당창건기념탑의 탑신을 굳건히 떠받들고있는 수많은 자연돌들을 바라보느라면 당을 광범한 인민대중속에 뿌리박은 대중적당으로,어머니당으로 건설하시여 일심단결을 이룩하신 어버이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이 어려온다.

《당사업을 근본적으로 개선강화하여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를 힘있게 다그치자》,《당세포를 강화하자》를 비롯한 불후의 고전적로작들과 수많은 가르치심들을 통하여 각계각층 군중과의 사업에 관한 독창적인 사상과 방침을 제시하신 위대한 장군님,

위대한 장군님의 인덕정치,광폭정치의 넓은 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영웅으로,시대의 전형으로 영생의 삶을 빛내였다.

우리 당을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어머니당으로!

조선로동당의 위력한 힘의 원천이 바로 여기에 있다.

어느해의 첫날에도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력사의 창조자는 인민대중인것만큼 당일군들은 마땅히 인민을 위하여 일하고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당일군들은 인민을 위하여 일하고 인민을 위하여 복무할 때에만 인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을수 있고 혁명에서 승리할수 있다는것을 명심하고 인민의 참된 복무자가 될데 대하여 거듭 강조하시였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조선로동당과 사회주의조국,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혈연으로 굳건히 련결되였는가를 실지체험을 통하여 절감하였다.

당창건기념탑 기단바닥의 중심에 원형으로 앉힌 붉은색돌과 해살들이 퍼져나가는 모양은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령도에 의해 주체혁명위업이 어떻게 줄기차게 이어졌는가를 보여주는듯싶다.

피눈물의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새해의 첫날 아침 온 나라 전체 군인들과 인민들에게 우리모두 한마음한뜻으로 힘차게 일해나아가자는 단결의 호소를 하신 위대한 장군님,

위대한 장군님께서 쉬임없이 걸으신 전선길,현지지도의 길은 최고사령부와 병사들사이의 혈연적뉴대를 이어주고 인민의 무궁무진한 힘을 최대로 발양시켜 강성국가건설투쟁에로 불러일으키신 단결의 로정이였다.

그 어떤 론리적힘이나 가설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피와 땀을 바쳐 하나하나 씨를 묻고 뿌리를 내리우고 억센 줄기를 자래우며 말그대로 심장의 단결을 이룩하신 우리 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을 무슨 말로 다 칭송할수 있으랴.

당창건기념탑의 원형띠안에 형상되여있는 부각상들은 우리 당이 걸어온 빛나는 력사와 조선로동당의 본질과 성격,달성해야 할 목표들에 대하여 높은 사상예술적형상을 통하여 보여주고있다.

마치와 낫과 붓이 새겨진 당기발을 배경으로 서로 팔을 굳게 겯고 서있는 로동자,농민,지식인 등 각계각층 군중들,항일의 험산준령을 헤쳐온 로투사로부터 혁명의 홰불봉,주체의 계주봉을 넘겨받는 만경대혁명학원 학생의 모습을 보라.그것이 곧 우리의 일심단결의 참모습,조선의 모습이다.

오늘날 조선로동당과 천만군민은 일심동체이며 운명공동체이다.이 세상 가장 숭고한 높이에 올라선 우리의 일심단결,령도자의 마음속에 전사들과 인민들이 있고 전사들과 인민들의 심장속에 언제나 령도자가 있는 이 위대한 혼연일체의 대오를 누가 허물수 있겠는가.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마련해주신 일심의 대화원을 더욱 아름답게 꽃피워주시고 이 땅우에 인민이 대대로 만복을 누려갈 번영의 터전을 굳건히 다져주시는분은 경애하는 원수님이시다.

백두산에서 우리 수령님 들고오신 붉은기는 높이 휘날려야 하고 선군의 총대는 강성의 보검으로 서리발쳐야 하며 사회주의와 일심단결은 조선의 모습으로 영원히 빛을 뿌려야 한다!

이런 철석의 의지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우리 군대와 인민과 함께 팔을 끼고 어깨를 겯고 최후승리의 길을 맨 앞장에서 헤치신다.발이 닳도록 인민들속으로 들어가시여 인민의 요구와 지향이 반영된 창조물들을 수많이 일떠세워주신다.최전연의 전호가들에서 병사들과 함께 계시며 혁명적전우애의 력사를 빛내여가신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하늘처럼 여기신 우리 인민을 수령님과 장군님의 영상으로 정히 새겨안고 수령님들을 모시듯이 받들어나가는것이 우리 당의 인민관입니다.…

수령님들을 모시듯이!

인민을 대하는 조선로동당의 관점과 립장이 과연 어떤 숭고한 경지에 이르렀는지 경애하는 원수님의 이 가르치심에 뜨겁게 담겨져있다.

억수로 쏟아지는 비방울에 옷자락이 젖는것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건설장을 찾으신 사연이,불어치는 모래바람을 손으로 가리우시며 건축의 묘리를 가르쳐주시던 순간이,아슬한 공중삭도에 제일먼저 오르시여 그 안전성을 확인하시던 추운 겨울날이 지금도 심장에 못 견디게 파고든다.

얼마전 라선시의 피해복구전투를 몸소 지도하시려 현지를 찾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라선시피해복구전투는 단순히 자연재해의 후과를 가셔내기 위한 사업이 아니라 우리 인민들의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된 당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성스러운 투쟁이라고.

이런 위대한 사랑의 품에 우리 인민이 안겨산다.

지난 몇해어간 당창건기념탑이 자리잡고있는 문수지구에 펼쳐진 황홀경들은 그 얼마인가.바로 여기에 자식들에게 하나라도 더 좋은것을 마련해주는것을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무한한 기쁨으로 여기는 다심한 어머니,위대한 당의 뜨거운 진정이 담겨있는것 아닌가.

빛과 열이 없는 태양이란 없듯이 인민에 대한 사랑을 떠난 조선로동당의 붉은기도 백전백승도 생각할수 없다.

많은 당들이 뿌리잘리운 나무와 같이 인민의 버림을 받고 집권당으로부터 한갖 구락부로 전락되여 자기의 존재마저 비극적으로 끝마친 실례를 우리는 가슴아프게 목격하였다.오직 조선로동당만은 장장 70년세월 열렬한 사랑과 신뢰를 받으며 인민의 대지에 내린 뿌리를 더욱 억세게 하고있다.이것이야말로 위대한 김일성,김정일동지의 당의 기상이다.

기념비의 무게는 력사만으로 론할수 없다.체현하고있는 사상이 숭고하고 위대할 때 당대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빛을 뿌리는것이다.

우리 다시 눈길을 들어 당창건기념탑의 웅자를 바라본다.

그렇다.조선인민의 모든 승리의 조직자이며 향도자인 조선로동당의 상징인 당창건기념탑의 모습,그것은 이 나라 천만아들딸들모두를 한품에 안아 천만년미래까지도 보살펴주는 위대한 어머니의 모습이다.

이 땅우에 울려퍼지는 조선로동당찬가는 당의 창건자,령도자들이신 위대한 수령님들과 경애하는 원수님께 드리는 진할줄 모르는 송가이다.

《백전》,《백승》의 글발을 배경으로 거연히 솟아있는 당창건기념탑에서 바라보느라니 인민의 행복 한껏 무르녹는 대동강기슭너머 거연히 서계시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모습이 태양의 찬란한 빛발속에 안겨온다.

조선로동당창건 70돐에 드리는 로력적선물로 충정의 꽃바구니를 엮어안고 이 나라 군대와 인민이 만수대언덕으로 오른다.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의 천만년미래를 축복해주시는 위대한 김일성동지김정일동지의 동상을 우러러 삼가 인사를 드린다.

본사기자 백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