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4(2015)년 11월 30일 로동신문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몸소 《적기가》를 부르시며

리을설

 

항일무장투쟁의 전과정이 다 그러했지만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몽강현 남패자를 떠나 우리 나라 북부국경일대에로 진출한 1938년말-1939년초는 항일혁명투쟁력사에서 가장 어려운 시련의 시기였다.

항일무장투쟁기간에 어려운 행군이 여러차례 있었지만 이 행군은 행군기간으로 보나 그 간고성으로 보나 여느 행군에는 대비도 할수 없는 간고한 행군이였다.

행군기간이 100일나마 되기때문에 《100일행군》이라고도 부르고 고생이 너무도 막심했기때문에 《고난의 행군》이라고도 부르게 된 이 행군은 이름그대로 시작부터 끝까지 모진 시련과 난관으로 이어졌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고난의 행군시기를 회고하시면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고난의 행군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엄혹한 자연과의 투쟁,극심한 식량난과 피로와의 투쟁,무서운 병마와의 투쟁,간악한 적들과의 투쟁이 하나로 엉켜진것이였다고 할수 있습니다.여기에 또 하나의 심각한 투쟁이 동반되였습니다.그것은 고난을 이겨내기 위한 자기자신과의 투쟁이였습니다.초보적으로는 살아남기 위한 투쟁,나아가서는 적들과 싸워 이기기 위한 투쟁이 바로 고난의 행군의 기본내용이였습니다.참으로 고난의 행군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진 시련과 난관으로 일관되여있었습니다.》

고난의 행군은 시종 적의 끊임없는 추격과 포위속에서 진행되였다.

일제는 1군은 다 녹고 남은것은 김일성부대뿐이다,전력량을 다 동원하여 김일성부대《토벌》에 집중하라고 떠벌이면서 우리 주력부대에 《토벌》력량을 총집중하였다.

나는 지금도 고난의 행군을 생각할 때면 남패자의 수림을 대낮처럼 환히 밝히며 타오르던 적《토벌대》놈들의 우등불이 먼저 떠오른다.

1938년 12월초 남패자회의를 성과적으로 마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이끄시고 백두산지구에로 력사적인 행군을 개시한 바로 그날 밤이였다.

몽강현 이도화원막바지를 떠난 우리 행군대오는 무연하게 펼쳐진 남패자의 울창한 밀림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언덕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을수 없었다.우리가 숙영하던 남패자의 수림을 중심으로 우등불이 겹겹이 원을 그리며 타오르고있었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았던것이다.

불무지수로 보아 적《토벌대》놈들이 수만명이 되리라는 짐작이 갔다.

위대한 수령님의 령활한 지략으로 부대는 적들의 포위망을 감쪽같이 돌파하였지만 남패자의 수림속을 겹겹이 둘러싸고있던 그 숱한 놈들이 몽땅 우리의 발꿈치를 물듯이 뒤따라섰다.

그때 적들은 처음부터 《맹공장추전술》을 썼는데 그 전술에서 기본은 진드기처럼 검질기게 달라붙어 상대를 못살게 구는 《다니전술》이였다.《다니전술》은 《토벌대》를 요소마다에 미리 배치해놓고있다가 유격대가 나타나면 치고 또 일단 발견한 유격대는 끝까지 따라가며 소멸한다는 전술이였다.

《맹공장추전술》이란 이를테면 《장거리추격전술》과 《요점배치전술》을 배합한것으로서 이 전술은 유격대가 쉬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줄창 쫓겨다니며 얻어맞다가 기진맥진하여 녹아나게 하기 위하여 고안해낸것이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루에도 몇차례씩 치렬한 격전을 벌리면서 행군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하루에 20번이상 전투를 한 날도 있었다.

적들이 어찌나 진드기처럼 악착하게 뒤따르는지 밥을 지을 시간이 없어 생쌀을 씹으며 행군하고 사방에 적이 있기때문에 불을 피울수 없어 날고기를 먹으며 결사전을 벌리던 일이 눈에 선하다.

도보로 대엿새면 가닿을수 있는 거리를 무려 100여일이나 되는 엄청난 품을 들여서야 목적지에 가닿을수 있었다는 그 한가지 사실로도 적의 추격이 얼마나 집요하였는가 하는것을 짐작할수 있을것이다.

이해따라 겨울날씨가 전에없이 사나왔다.추석전에 첫서리가 내리고 추석이 지나서는 첫눈이 많이 내렸으며 초겨울부터 강추위에 박달나무가 얼어터진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눈은 또 얼마나 내리는지 나는 이 일대에서 살다가 몇해전에 유격대에 입대하였는데 이해처럼 눈이 많이 내리기는 처음이였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100년래의 대강설》이라고 했는데 온 산판과 골짜기가 모두 눈에 묻혀 눈이 적게 쌓인데가 가슴을 치고 깊은데는 몇길씩 되였다.

하루는 행군끝에 고깔불을 피우고 쪽잠을 잤는데 일어나보니 불무지가 녹아내려 깊은 우물속에 들어앉은것처럼 푸른 하늘이 천정같이 동그랗게 올려다보이였다.

눈이 너무나 깊어 그것을 계속 헤치고나갈수 없어 눈굴을 뚫거나 몇명이 눈우에 누워 디굴디굴 굴러 다져놓은 다음에 대오가 조금씩 전진하였는데 그때 나도 한창나이여서 기운을 꽤 쓴다고 하였지만 고작 100m도 길을 못 내고 주저앉군 하였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무서운 기아도 부대의 전진을 방해하였다.아무리 춥고 눈이 절벽처럼 앞을 막아나서고 적들이 집요하게 달려들어도 배불리 먹기라도 하면 무서울것이 없을상싶었다.

하지만 남패자의 수림속을 떠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한주일이상 낟알구경을 못하고 눈만 움켜먹으면서 전진할 때가 드문하였다.

거기에 쫄라병까지 겹치여 설상가상이였다.

정말이지 그 간고성에 대하여 이야기하자면 몇책을 써도 다 쓰지 못할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그 모진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고 불사신처럼 살아남아 승리자로 될수 있은 비결은 어디에 있었는가.그에 대하여 말하자면 수령결사옹위정신과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자력갱생,간고분투의 혁명정신,혁명적락관주의정신,혁명적신념과 혁명적동지애,인민들의 원호 그리고 령활한 전술과 전법 등 여러가지로 이야기할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중요한 문제의 하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들의 가슴속깊이 심어주신 혁명적신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마 그때 고난의 행군에 참가한 우리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열렬한 흠모심,수령님만 계시면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는 신념이 없었다면 그처럼 엄혹한 시련을 이겨낼수 없었고 도대체 살아남지도 못했을것이다.

우리가 천신만고하여 1938년 12월 림강현 요구 림산마을부근에 이르렀을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요구지하혁명조직의 요청도 있고 당장에는 긴박한 부대의 식량을 해결할 목적도 있고 하여 이곳 적정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신 다음 적들을 불의에 습격소탕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식량을 비롯한 전리품을 지고 부대들이 곧 철수하도록 하시였다.

철수하는 부대들에서는 중대,소대,분대별로 대렬점검이 있었다.그 과정에 독립대대에서 1명의 대원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것이 알려지고 그 사실이 곧 위대한 수령님께 보고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도착하지 못한 대원이 신입대원이라는것을 아시고 사람을 보내여 더 찾아보라고 이르시였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를 찾을수 없었다.신념이 없었던 신입대원은 간고한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취를 감추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저녁 숙영지에서 중대정치지도원이상급 간부들을 사령부로 부르시였다.

부대지휘관들이 다 모이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남패자의 수림속을 떠나 요구마을부근에 올 때까지의 행군과 전투정형을 총화하시고 모든 곤난을 이겨내며 용감하게 싸워온 대원들을 높이 평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어 앞으로는 더욱더 간고한 조건에서 행군할것이 예견되는만큼 대원들속에서 사상동원사업을 잘하여 독립대대에서와 같이 비겁분자가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기에서 중요한것은 신념문제라고 하시면서 노래에도 있는것처럼 혁명에 다진 맹세 변치 말고 붉은기를 끝까지 지킬 각오를 가지도록 교양할데 대하여 특별히 강조하시였다.

다음날 이른아침 우리는 또다시 행군을 개시하였다.

배불리 먹고 눈속에서나마 하루밤 푹 자고나니 우리는 무서운것이 없었다.

우리 부대는 마의하,왕가점일대를 거쳐 점차 장백땅을 가까이하며 기세좋게 전진하였다.

날이 갈수록 적의 발악도 더욱 심해졌다.

특히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분산행군으로 넘어간 후 사령부로 가장하고 적들을 이리저리 끌고다니던 오중흡동지의 7련대가 가짜사령부라는것을 뒤늦게 알게 된 일제는 악에 받쳐 《토벌》력량을 몽땅 사령부에 집중하였다.적의 비행기도 사령부쪽으로만 계속 날아오고 크고작은 《토벌대》들이 갈가마귀떼처럼 몰려들어 어느쪽으로도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았다.

오랜 세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싸우면서 배짱이 생겨 아무리 큰 적과 맞다들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오백룡중대장까지도 얼굴색이 꺼멓게 질리는것을 보고 나는 아무래도 이제는 너죽고 나죽고 결판을 낼 때가 되였는가부다 하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민족의 운명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을 어떻게 지켜드리는가 하는것이였다.

우리 경위중대와 기관총소대전원이 다 없어진대도 위대한 수령님의 안녕을 지켜드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모두가 이 한가지 생각으로 간고한 행군의 쉴참에도 누구 하나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때마침 위대한 수령님께서 맥을 놓고 여기저기 흩어져 앉아있는 우리들에게로 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를 한사람한사람 둘러보시더니 모두들 맥을 놓지 말라,수풀속에 들어있는 바늘은 만쌍의 눈이 밝혀도 쉽게 찾아내지 못한다,우리가 잘만 꾀를 쓰면 대밀림과 대적의 무리속에서 능히 바늘처럼 자신을 숨길수 있다고 하시면서 리순신장군이 명량해전에서 적은 배를 가지고 수많은 왜군의 함대와 싸워이김으로써 대세를 역전시킨 이야기를 들려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리순신이 무슨 수로 적을 이겼겠는가,물론 지혜와 책략,용기로 이겼다,그러나 그보다 큰 요인은 애국심이였다,왜적을 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고 나라가 망하면 그놈들의 노예가 된다는 분발심으로 적을 이긴것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물론 우리를 둘러싸고있는 정세는 험악합니다.그러나 혁명승리에 대한 신심을 확고히 가지고 난관앞에 주저앉지 않으면 우리도 능히 대세를 뒤집어놓을수 있습니다.그러니 신심을 가지고 행군을 계속합시다.

우리는 그이의 말씀을 되새기며 정말 많은것을 생각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들으니 신심이 생기고 힘이 용솟음쳤다.

여기저기서 동무들이 앞을 다투어 일어섰다.

《장군님,명령만 내리십시오.우리는 장군님을 끝까지 따라가겠습니다.》

행군은 다시 계속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친 대원들을 부축해주시며 조금만 더 힘을 내라,힘을 내야 고난을 극복하고 조국으로 나갈수 있다고 고무해주기도 하시고 놈들이 우리 내부를 와해시키려고 삐라를 뿌리며 귀순공작을 벌릴 때면 만일 우리 세대에 승리하지 못한다 해도 우리는 혁명을 버릴수는 없다,우리가 가면 어데로 가겠는가,죽어도 원쑤를 갚아야지 다른데로 갈데가 없다고 절절하게 말씀해주기도 하시였다.

행군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졌다.

적들이 부대의 꼬리를 물고 집요하게 달려드는데다가 특히 무서운 식량난까지 겹치다보니 도무지 맥을 출수가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예견성있는 조치에 따라 부대에서는 1938년 가을에 이미 한해겨울을 먹을수 있는 식량을 충분히 마련해놓았었다.

그런데 남패자회의때 많은 식량을 소비하고 나머지식량은 먼저 떠나는 부대들이 담당지역으로 갈 때 다 지워보내다나니 주력부대는 처음부터 거의나 맨몸으로 행군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부대의 후방밀영이 있는 청봉에 들려서 식량을 보충해가지고 압록강연안으로 나가실 계획이였는데 그곳에도 식량의 예비가 없었다.

부대의 예비식량을 마련할 과업을 받고 1938년 봄에 이곳에 파견된 엄광호가 태공하여 자기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하는수 없이 부상자들과 그들을 돌보아줄수 있도록 몇명의 녀대원들을 밀영에 들여보내신 후 부대를 거느리시고 간고한 행군을 계속하시지 않으면 안되였다.이곳에서 얼마간의 식량이라도 해결하였더라면 그후의 행군이 그처럼 어렵지 않았을것이다.

오래동안 낟알구경을 하지 못한 대원들은 어지간한 눈보라에도 자꾸만 비칠거리며 쓰러졌다.

아무리 힘을 내여 걷고걸어도 길은 축나지 않았다.종일 가야 20리도 못 가는 때가 많았다.

이때 우리가 떨구지 않고 먹을수 있는것은 눈밖에 없었다.

하지만 눈은 먹을 때뿐이지 먹고나면 설사가 나고 허기증을 더 느끼게 하였다.그래도 눈밖에 먹을것이 없어 그것으로 주린 창자를 달래며 간신히 걸음을 옮겨놓군 하였다.

치렬한 격전과 행군속에서 옷은 갈기갈기 찢어져 어깨살이 드러나고 신발은 다 꿰지여 맨발을 각반으로 동이거나 나무껍질로 처매고 걸었다.

하늘에서는 적의 정찰기가 우리의 행방을 찾아 숨돌릴새없이 돌아치는 바람에 불을 피우고 몸을 녹일수 없었고 밤에도 눈우에서 그대로 자지 않으면 안되였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하면서 간단없이 달려드는 적들과 무시로 전투를 벌리면서 전진하자니 다리맥이 없어 제대로 걸을수 없고 깜박깜박 정신이 흐려지면서 앞이 노랗게도 보이고 빨갛게도 보이였다.

조준을 할 때면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안타까이 눈을 비비기도 하였다.

어떤 날에는 눈우에 한참 엎디여 전투를 벌리고나면 적들을 향하여 방아쇠를 당긴채 기력이 진하여 숨진 동무들도 있었다.

그야말로 우리는 한걸음한걸음 고난을 이겨내고 사선을 헤치며 신념과 의지의 힘으로 앞으로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들의 가슴에 신념과 의지의 기둥을 굳건히 세워주시며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고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장백의 눈보라속에 영영 묻히고말았을것이다.

나는 지금도 잊을수 없는 가슴뜨거운 한가지 이야기만을 더 쓰려고 한다.

간고한 행군이 계속되던 어느날이였다.

지칠대로 지친 대원들이 저마끔 앞에 나서서 길을 내느라고 무진애를 썼지만 거퍼 몇발자욱을 나가지 못하고 푹푹 쓰러졌다.

나도 산비탈을 오르다가 맥이 진하여 그만 쓰러지고말았다.

당장 일어나지 못하면 온몸이 그대로 얼음덩이로 굳어질 판이였다.

나는 두주먹을 부르쥐고 있는 힘을 다하여 일어나려고 하였다.그러나 손발이 말을 듣지 않았고 정신이 점차 희미해졌다.

의식을 잃으면 영영 눈속에 묻히고만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이를 악물고 소리라도 쳐서 동무들의 방조를 청하려 하였다.

그런데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나는 끝내 의식을 잃고 눈속에 묻히고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정신이 들어서 보니 나의 몸은 위대한 수령님께 실리여있었다.

나는 죄송한 마음이 들어 급히 일어서려고 하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신을 차렸구만,힘을 내라구.》라고 하시며 나를 더욱 바싹 끌어안으시였다.

간신히 머리를 들고 앞을 바라보니 뽀얀 눈보라속에 서로 부축하고 의지하면서 한치한치 톺아나가고있는 동무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였다.간신히 기여가는 동무들도 있고 의식을 잃고 쓰러져 아무리 불러도 응대를 못하는 동무도 있었다.

순간 나는 혼미한 속에서도 전대오가 눈속에 묻혀 영영 일어나지 못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비장한 생각까지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잠시 걸음을 멈추시고 깊은 눈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대오를 살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용히 노래를 부르시는것이였다.

 

민중의 기 붉은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

시체가 식어 굳기 전에

혈조는 기발을 물들인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온몸에 힘이 솟구쳐올랐다.

위대한 수령님의 노래는 나뿐이 아니라 기진맥진하여 허덕이던 전대오에 활력을 주었다.쓰러졌던 동무들이 하나둘 머리를 들고 기여가던 동무들이 일어나 대오에 들어섰다.

먼저 경위중대동무들이 노래를 따라불렀다.

이어 전대오가 따라불렀다.

노래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고난앞에 굴하지 않고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붉은기를 지키려는 대원들의 의지가 그대로 맥박치고있었다.

나도 따라부르려고 하였지만 입술이 얼어붙어 소리를 낼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금만 참으라구.》 하시며 눈으로 내 입술을 비벼주시였다.

그제서야 입이 열린 나는 띄염띄염 노래를 따라불렀다.

원쑤-와-의 혈전-에서

붉은-기를 버린-놈이 누구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노래를 따라부르는 나를 꼭 껴안으시며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 어려운 고비를 견디여내자.

우리가 여기서 주저앉으면 조국이 영영 일어나지 못한다.》

그러시면서 우리가 가는 길은 험난해도 조국과 잇닿은 성스러운 길이라고,혁명에 다진 맹세를 잊지 말고 조국광복의 날을 앞당기기 위해 억세게 걸어가자고 하시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나에게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은 자신의 심중에 다진 신념의 맹세이기도 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때 로고와 심려로 말하면 위대한 수령님께서 누구보다 더하시였다.

대오를 이끄시느라 걸음도 더 걸으시였고 대원들을 보살피시느라고 짐도 더 지시였으며 전사들을 생각하시여 배도 더 곯으시였다.

그리고 누구보다 심려도 더 많으시고 기력도 더 많이 쓰시였으니 한걸음한걸음 걸으시기가 제일 힘드시였을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생각하시며 죽기보다 더 힘든 고난을 헤쳐넘으시면서 대원들을 일으켜세우시고 대오를 이끄시며 조국광복의 길을 줄여나가시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 숙영지에 닿을 때까지 나를 부축하시고 《적기가》를 부르며 행군하시였다.

고난의 행군때 대부분 나어린 대원으로 구성된 경위중대는 위대한 수령님을 호위한것이 아니라 나처럼 이렇게 모두 수령님의 손에 이끌려 중첩되는 난관과 시련을 이겨낼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적기가》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 모든 대원들의 심장에,페부에,아니 온몸에 심어주시고 키워주시며 굳혀주신 그 신념,그 투지가 있었음으로 하여 우리는 항일혈전의 나날 가장 준엄하고 간고했던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고 조국진군의 길을 열어놓을수 있었으며 이 과정에 어엿한 혁명투사로,열렬한 공산주의자로 더 억세게 자라날수 있었다.

오늘 우리 인민들은 90년대의 《적기가》인 신념의 노래 《높이 들자 붉은기》를 힘차게 부르면서 전진하고있다.

 

백두의 성스런 붉은 기발엔

수령님의 한생이 어리여있다

높이 들자 붉은기 맹세로 불타라

장군님을 따라서 휘날려가리라

이 노래를 부르며 보무당당히 행진하는 우리 인민군대오를 볼 때마다 나에게는 고난의 행군때 진두에서 몸소 《적기가》를 부르며 험산준령을 넘고넘으시며 불멸의 력사를 창조하시던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거룩한 모습이 안겨오군 한다.

그럴 때면 위대한 수령님과 꼭같은 천품을 지니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를 진두에 높이 모시고 90년대의 《적기가》를 힘차게 부르며 전진하는 우리의 혁명대오는 부닥치는 난관을 과감히 이겨내며 오늘의 고난의 행군을 빛나게 결속하고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기어이 이룩하리라는 확신을 가지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