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1월 12일 로동신문

 

필승의 혁명신념과 의지로 삶을 빛내인 열혈투사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권동지의 한생을 더듬으며

 

혁명선렬들의 고귀한 넋이 스며있는 이 땅,투사들의 념원이 꽃핀 이 강산에 한없는 감격과 환희의 파도가 물결친다.

반만년력사에 특기할 대사변인 수소탄시험의 눈부신 대성공은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를 향하여 새해의 총진군길을 다그쳐나가는 천만군민의 심장마다에 거세찬 약동의 숨결을 더해주고있다.

주체혁명위업의 최후승리를 확신하며 세기를 주름잡아 힘차게 내달리는 총진군대오앞에 혁명의 붉은기가 펄펄 휘날린다.

혁명의 붉은기,성스러운 그 기발 우러러 죽어도 변치 않을 혁명신념을 억세게 벼리며 투사로 자라난 이 나라 아들딸들은 과연 몇천몇만이던가.

그 열혈혁명투사들의 전렬에 서계시는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권동지,우리 군대와 인민은 김형권동지의 고귀한 생애를 감회깊이 돌이켜보며 혁명가의 삶은 무엇으로 빛나고 값높은가에 대하여 다시금 뜨겁게 새겨안게 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혁명은 신념으로 전진하며 승리합니다.》

신념은 혁명가의 생명이며 신념을 떠나 참된 애국에 대해 말할수 없다.

만경대가문의 애국의 혈통을 그대로 이어받으신 김형권동지는 어려서부터 남아다운 기질의 소유자이시였다.

지금도 문득 귀기울이면 김형권동지께서 파발리에서 울리신 통쾌한 총성의 메아리가 들려오는것만 같다.

위대한 수령님의 무장투쟁로선을 받들고 김형권동지께서 조선혁명군의 한 소조를 거느리시고 조국땅에 진출하신것은 주체19(1930)년 8월이였다.

김형권동지께서는 소조성원들과 함께 적들의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거듭되는 난관을 이겨나가시면서 삼수,풍서,풍산일대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투쟁방침을 해설선전하여 광범한 인민들속에 혁명의 불씨를 심어주시였다.

무장소조원들은 풍산군(당시) 파발리부근의 황수원들쭉밭에서 잠시 지체하게 되였는데 이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악질경관 《오빠시》순사부장의 의심을 받게 되였다.그놈은 1919년부터 풍산지방에 와서 조선사람들의 손발을 얽어매놓고 갖은 행패와 악행을 일삼던 악질경관이였다.그래서 그 고장 사람들로부터 《오빠시》라는 별명이 붙여진 놈은 주재소앞을 지나던 일행을 불러들이였다.

주재소에 들어서자 김형권동지께서는 인민들의 피맺힌 원쑤 《오빠시》놈을 단호하게 처단해버린 다음 군중앞에서 불같은 반일연설을 하시였다.

발톱까지 무장한 왜놈들과 그 주구들이 욱실거리던 당시의 국내형편에서 그것도 대낮에 반일연설을 한다는것은 웬만한 담력과 배짱이 없이는 감히 내릴수 없는 용단이였다.

그날 군중들은 김형권동지의 연설을 들으며 큰 충격을 받았다.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권동지께서 파발리에서 울리신 총성은 조선혁명군이 국내에서 울린 첫 총성으로서 인민들의 가슴마다에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고 그들을 일제격멸의 성전에로 불러일으켰다.

김형권동지께서 인솔하시는 무장소조일행은 그후 리원과 북청일대에서 과감한 군사정치활동을 벌리였다.

김형권동지가 이끄는 무장소조원들의 대담무쌍한 활동에 일제놈들은 대경실색하여 허둥지둥거렸다.

그러던 어느날 김형권동지께서는 한 변절자의 밀고로 일제경찰놈들에게 체포되시였다.

그 변절자로 말하면 한때 우국지사의 행세를 하던 독립군관계자였다.

무송에 있을 때 하루 세끼씩 몇달을 두고 더운밥을 해서 상우에 반주까지 놓아 푸짐하게 대접해주시던 강반석어머님의 은혜를 백골이 되여서도 잊지 않겠노라고 념불처럼 외우던 놈이였다.

김형권동지를 체포한 일제교형리들은 악착한 고문과 위협공갈을 들이대면서 그이를 굴복시켜보려고 갖은 발악을 다하였다.

그러나 적들의 그 어떤 고문과 위협공갈도 김형권동지의 혁명적지조를 꺾을수 없었다.

김형권동지께서는 체포된 후 얼마동안 홍원경찰서에서 옥살이를 하시다가 그후 함흥감옥에 이송되여 거기서 또다시 중세기적인 고문을 받으시였다.하지만 김형권동지께서는 옥중에서도 줄기찬 투쟁을 벌리시였다.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권동지의 고귀한 생애를 보여주는 혁명영화 《누리에 붙는 불》에서도 볼수 있는것처럼 그이께서는 함흥지방법원의 법정에서 일제의 죄상을 추상같이 단죄하면서 무장한 강도들과는 무장으로 싸워야 한다고 소리높이 웨치시였다.

김형권동지와 전우들은 재판장에서 혁명가요를 우렁차게 불렀고 노래가 끝나면 혁명적인 구호를 목청껏 불러 놈들을 전률케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삼촌이 이처럼 법정에서 당당하게 처신할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었는가.그것은 혁명에 대한 신념과 충실성이였다고 생각한다.삼촌이 죽음보다 더 두려워한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인간을 정의롭고 용감하게 만들며 이 세상에서 가장 존엄있는 존재로 되게 하는 신념에 대한 배신이였을것이다.》라고 쓰시였다.

혁명승리에 대한 견결한 신념,바로 이것은 김형권동지의 전생애에 관통되여있는 억년 드놀지 않는 혁명적신조였다.

혁명적신념이 확고한 사람에게는 그 어떤 절해고도에 있다 해도 혁명의 승리가 보이지만 신념이 없는 인간들,신념이 박약한자들은 인간의 도덕의리마저 헌신짝처럼 집어던지고 혁명의 배신자로 굴러떨어지는 법이다.

함흥재판에서 쓴맛을 본 일제는 그후 서울에서 한명의 방청자도 없는 비밀재판을 벌리고 김형권동지를 10년이상의 장기수들만을 가두어두는 서울의 마포형무소로 이송하였다.

이 감옥에서도 김형권동지는 투쟁을 멈추지 않으시였다.놈들이 중형을 받은 《정치범》들을 전향시키려고 책동할 때 김형권동지는 수많은 수감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상전향을 반대하는 열화같은 연설을 하여 군중을 격동시키시였고 수감자들에 대한 대우개선투쟁때에도 앞장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놈들과 견결히 싸우시였다.

놈들은 전쟁준비를 다그치면서 탄알상자를 만드는 작업에 수인들을 내몰았다.수인들은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굶주리면서 살인적인 로동을 강요당하였다.

이에 분격한 김형권동지께서는 살인적인 강제로동을 반대하는 옥내공장수인들의 파업을 지도하시였다.이 파업에 많은 수인들이 참가하였다.

놈들은 김형권동지의 영향력을 어떻게 하든지 막아보려고 캄캄한 독감방에 가두어두는것만으로도 모자라 팔목과 발목에 고랑쇠를 채워 조금만 움직여도 그 고랑쇠가 살을 파고들게 하였다.식사도 하루에 아이들주먹만 한 콩밥덩어리를 한개씩 들이밀었다.

김형권동지께서 그처럼 엄혹한 처지에서도 투쟁을 계속하시였기때문에 감옥당국자들은 그이가 마포형무소를 적색화한다고 비명을 질렀다.

그럴수록 김형권동지에 대한 놈들의 고문은 더욱 악랄해졌다.

김형권동지가 사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형무소로 달려간 일가분들은 너무도 기가 막혀 자기 눈을 의심하였다.

놈들의 끈질긴 악형과 고문으로 김형권동지의 얼굴을 제대로 알아볼수가 없었던것이다.

그러나 김형권동지께서는 일가분들에게 나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지만 왜놈들은 꼭 망한다고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김형권동지는 최후의 순간까지 놈들과 싸우시며 수감자들에게 참된 혁명가의 고결한 모범을 보여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생명의 마지막순간에 《김일성은 내 조카이다.그는 지금 만주에서 큰 혁명부대를 이끌고 왜놈들을 족치고있다.그 부대가 국내에 쳐들어올 날은 멀지 않았다.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무장으로 싸우라.무장을 들고 싸워야 왜놈들을 쫓아내고 나라를 해방할수 있다!》고 절절히 말씀하시며 수감자들에게 혁명승리에 대한 신념을 굳게 심어주시였다.

주체25(1936)년 1월 12일,성에가 하얗게 불리고 추위가 뼈속까지 스며드는 차디찬 감방에서 그리도 열렬하고 불같은 혁명열로 높뛰던 김형권동지의 심장은 고동을 멈추었다.

정녕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권동지의 생애는 자기 수령과 그 위업에 대한 절대불변의 신념으로 빛나는 혁명가의 고귀한 한생이였다.

지금으로부터 몇년전 마두산혁명전적지를 찾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말라》는 구호문헌을 새겨보시며 《혁명은 곧 신념입니다.신념을 버리면 혁명을 할수 없습니다.혁명적신념을 굳건히 간직한 사람만이 혁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수 있으며 조국과 인민앞에 떳떳할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혁명은 곧 신념,김형권동지의 한생에 관통되여 높뛰던 이 고귀한 정신은 그대로 경애하는 원수님 따라 하늘땅 끝까지 가고갈 우리 군대와 인민의 가슴마다에 혁명승리의 영원한 진리로 새겨져 백두의 혁명정신,백두의 칼바람정신으로 주체혁명위업의 최후승리를 앞당겨가는 천만군민의 심장을 세차게 울려주고있다.

그 신념의 노래,억천만번 죽더라도 변치 않을 신념의 노래가 온 강산에 메아리친다.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말자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말자

우리 당 령도따라 끝까지 한길가리

한길 한길가리

글 본사기자 김일권
사진 본사기자 리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