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1월 22일 로동신문

 

태양조선의 력사와 더불어 길이 빛나라,혁명의 천리길이여!

 

경애하는 원수님의 신년사를 높이 받들고 강성국가건설의 최전성기를 열어나가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고있는 격동적인 시기에 천만군민은 어버이수령님께서 광복의 천리길에 나서시였던 뜻깊은 날을 맞이하고있다.

력사의 이날을 맞으며 얼마전 우리는 혁명의 천리길로정을 따라 취재길에 올랐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걸으신 광복의 천리길은 일제식민지통치의 검은구름이 덮인 조국강산에 민족재생의 서광을 비쳐준 영광의 길이였으며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주체혁명위업의 새 기원을 열어놓은 력사의 길이였습니다.》

반만년민족사에 특기할 대사변인 수소탄시험의 눈부신 성공이 안아온 환희와 긍지,신심과 락관에 넘친 사람들의 목소리가 취재길을 이어가는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그래서인지 위대한 수령님께서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나라를 찾으실 큰뜻을 품으시고 걸으신 광복의 천리길로정을 따라 생눈길을 헤치며 취재길을 걷는 우리도 마음은 더욱 숭엄해졌다.

 

* *

 

취재길을 달려온 우리가 조국의 북변 자강땅에 들어서자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강산에 소담하게 내려쌓이는 흰눈을 보느라니 락원의 길을 여시려 강계의 눈보라길을 헤쳐가시던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우리의 마음을 흥건히 적셔주었다.

우리의 마음이 이럴진대 자강도인민들의 심정은 오죽하랴 하는 생각이 뇌리를 쳤다.

깊은 사색에 잠겨 취재길을 이어가는 우리의 눈앞에 직령의 설경이 펼쳐졌다.해발 천여m를 헤아리는 직령의 설경은 실로 장관이였다.

흰눈덮인 울창한 숲의 자태,한아름은 실히 될 거목들과 키높이 자란 나무들의 우듬지마다 수북이 내려앉은 흰눈,그 나무들을 감고 서로 얽힌 덩굴에 햇솜을 뭉그려놓은듯이 사뿐히 올라앉은 흰눈,아아한 산발너머로 끝간데를 알수 없는 은빛세계…

오르면 오를수록 고산지대 특유의 정취가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굽이굽이 뻗어간 가파로운 직령을 오를수록 대낮에도 맹수들이 어슬렁거린다는 무인지경의 이 령길을 넘으시며 빼앗긴 나라를 기어이 찾고야말 의지를 굳히시였을 우리 수령님의 숭고한 모습이 가슴에 마쳐왔다.

직령마루에 올라선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의 명제비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직령은 우리 만경대가문의 3대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대를 이어 걸은 뜻깊은 곳입니다.나는 언제나 직령을 잊을수 없습니다.

김 정 일

만경대가문의 3대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대를 이어 걸은 뜻깊은 곳,

숭엄한 감정이 북받쳐올랐다.

김형직선생님께서 《지원》의 높은 뜻을 안으시고 걸으시였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라를 찾으실 큰뜻을 품으시고 걸으시던 길이였으며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인민들에게 락원의 길을 열어주시려고 넘으시던 령길이였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 길에는 대대로 조국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는 만경대가문의 열렬한 조국애와 무한한 헌신성이 그대로 수놓아져있다고 하시면서 나는 이 길을 걸으며 만경대가문이 대를 이어 개척하고 실현해나가는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할 결심을 더욱 굳게 가지게 된다고,직령을 넘는 이 길은 만경대가문과 더불어 력사에 길이 전해지게 될것이라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정녕 무심히 걸을수 없는 령길이였다.

쉬임없이 쏟아져내리는 흰눈송이들마저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속에 못 잊을 력사의 그날을 전하여주며 내 조국의 귀중함을 끝없이 속삭이는것만 같았다.

직령을 내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14(1925)년 1월 31일 흑수려인숙에서 하루밤을 주무시였다.

흑수라는 이름은 마을이 생겨날 때 물밑에 있는 돌에 검은 이끼가 끼여있기때문에 얼핏 보기에는 검은 물이 흐르는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것이라고 한다.이곳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디 가나 망국민의 불행을 강요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우리 인민들의 비참한 처지에 대해서 통절히 느끼시였다.

우리는 혁명의 천리길로정을 따라 백두산절세위인들의 령도자욱이 뜨겁게 수놓아져있는 화평땅에 들어섰다.

아담하게 꾸려진 군소재지에는 혁명의 천리길에 오르신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이 정중히 모셔져있었다.

쉬임없이 날리는 눈발속에서도 우렷이 안겨오는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우러를수록 한숨소리높던 화전민들과 류랑민들에게 독립의 기쁨을 하루빨리 안겨주시려 화평땅의 생눈길을 헤치시며 발걸음을 재촉하시던 우리 수령님의 거룩하신 모습이 눈앞에 삼삼히 어려왔다.

화평에 이어 험산준령을 넘으신 우리 수령님의 불멸의 자욱을 따라 우리는 오가산으로 향하였다.

소리없이 내리던 하얀 눈송이들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춘 뒤끝이여서 날씨는 비교적 잠풍했으나 한겨울의 맵짠 기운은 여전히 대지를 감돌고있었다.

해발 천여m의 오가산의 륜곽이 멀리서도 뚜렷이 바라보이였다.

그 령길에는 또 얼마나 깊은 사연이 담겨져있었던가.

우리는 혁명의 천리길답사행군길에 오른 심정으로 걸음을 다그쳤다.

오가산령밑에서 걸음을 멈춘 우리는 오가산자연보호구관리소의 일군인 김광철동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오가산이라는 지명에는 이 고장사람들이 전해내려오는 두가지의 유래가 있다고 하였다.

예로부터 5개의 아름다운 산봉우리가 태고연한 밀림속에 자리잡고있다고 하여 오가산이라고 했다고도 하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배움의 천리길》과 《광복의 천리길》을 걸으실 때 넘으신 가산령밑에 5채의 집이 있었다고 하여 오가산이라고 불렀다는 말도 있다고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의 천리길에 오르실 당시 오가산령길은 원시림으로 꽉 들어차서 대낮에도 해빛이 스며들지 않았고 더우기 맹수들이 욱실거리는 무서운 곳이였다.그래서 어른들도 혼자서는 도저히 이 령을 넘을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리신 나이에 이 령길에 들어서시였다.

아무리 걸으시여도 새 고개가 연방 나타나는 오가산령길을 우리 수령님께서는 용감성과 담력으로 넘으시였다.

《오가산은 어리실 때부터 천하를 쥐락펴락하는 천출명장의 담력과 배짱을 체질화하신 우리 수령님의 위인상을 길이 전해주는 력사의 증견자입니다.》

그 일군의 말은 우리의 가슴속에 격정의 파도를 일으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생결단의 각오를 안고 넘으신 오가산의 령길이야말로 짓밟힌 내 나라에 민족재생의 봄빛을 안아온 혁명의 지름길이였고 조국해방의 성스러운 전구와 잇닿아있는 력사에 길이 빛날 행로였다.

주체97(2008)년 7월 오가산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 오가산은 자신의 어린 가슴에 조국에 대한 사랑과 일제에 대한 증오의 불씨를 심어준 잊지 못할 곳이라고 하시였다고 하시며 오가산에 깃들어있는 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길이 빛내여나가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숙연한 마음을 안고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걸으신 광복의 천리길로정을 따라 오가산령길을 톺아올랐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령길을 오르자니 조련치 않았다.절세위인들의 불멸의 업적을 세세년년 길이 전하기 위해 억세게 버티고 서있는듯 든든히 뿌리를 내리고 서있는 거목들이 머리에 이고있던 장설을 휘뿌릴 때면 오가산을 오르느라 열기오른 얼굴이 대번에 축축히 젖어들었다.

밀림속눈길을 따라 걷느라니 가지가지의 생각이 우리들의 머리속에 갈마들었다.

우리 수령님께서 열어주신 이 길을 따라 걸으며 얼마나 많은 이 나라의 아들딸들이 열렬한 조국애로 가슴 불태우며 혁명의 피줄기를 이어받은 혁명가로 성장했던가.

이런 생각을 하며 오가산령을 내린 우리의 발걸음은 월탄로동자구로 이어졌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루밤을 보내신 집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있는 사연깊은 집에 들어서니 오가산령을 넘으신 피로를 푸시기에 앞서 원쑤격멸의 굳센 의지를 가다듬으시였을 위대한 수령님의 강인한 모습이 가슴뜨겁게 어려왔다.강사 박충심동무의 해설을 통하여 우리는 이 집이 김형직선생님의 혁명적인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한 독립운동자의 집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이 집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체취를 페부로 느끼며 우리는 하산령에로의 취재길을 이어갔다.

해발 800m가 넘는 하산령도 직령 못지 않은 가파로운 령이였다.

월탄땅을 떠나 하산령을 넘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포리를 거쳐 포평으로 향하시였다.

포평땅에 우리가 들어선것은 한낮이 기운 때였다.

포평혁명사적지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이 숭엄히 안겨왔다.

오늘도 혁명의 천리길에 오르시던 그날의 모습으로 거연히 서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를수록,항일의 혁명전통을 상징한 붉은 오각별을 새겨안고 높이 솟아있는 포평혁명사적탑을 바라볼수록 이름 못할 격정의 파도가 우리의 가슴을 쳤다.

인류력사의 그 어느 갈피에 우리 수령님처럼 일찌기 혁명의 길에 나서시여 이 세상 온갖 풍상고초를 다 겪으시며 80여성상 조국과 인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치신 그런 위대한 수령,인민의 령도자가 있었던가.

하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언제인가 세상에는 우리 수령님처럼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혁명의 길에 나서시여 기나긴 세월 혁명투쟁을 벌리신 수령은 없다고 절절한 음성으로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앞으로 력사의 땅 포평에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높이 모시고 포평혁명사적지에 대한 선전사업도 잘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그후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더 밝고 정중하게 모시도록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으며 포평혁명사적탑과 포평기념비조각군상도 잘 형상하도록 세심한 지도를 주시였다.

우리는 포평혁명사적관 일군의 안내를 받으며 포평나루터로 발걸음을 옮기였다.

눈보라몰아치는 압록강만 건느면 천리길의 나날 꿈결에도 잊으신적 없는 그리운 어머님과 사랑하는 동생들을 만나실수 있으시였고 일제경찰에 체포된 아버님의 소식도 알수 있으시련만 왜놈의 발굽밑에서 신음하는 조국산천을 두고 가시는것이 그리도 가슴아프시여 포평나루터에서 오래도록 발걸음을 떼지 못하시던 우리 수령님.

포평나루터,

참으로 두고두고 잊을수 없는 가지가지의 만단사연이 깃들어있는 력사의 나루터였다.

이곳에 서니 조국땅을 떠나는 아픔속에 설음과 비분을 안고 몇번이나 돌아보고 또 돌아보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이 우렷이 안겨왔다.압록강에서 불어오는 차디찬 눈바람에 귀기울여도 조선아,조선아,나는 너를 떠난다.너를 떨어져서는 한시도 살수 없는 몸이지만 너를 찾으려고 압록강을 건는다.압록강만 건느면 남의 나라 땅이다.그러나 남의 땅에 간들 내 너를 잊을소냐.조선아,나를 기다려다오라고 하시던 우리 수령님의 마음속맹세가 들려오는듯싶었다.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누군가가 지은 《압록강의 노래》를 부르시면서 천천히 강건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시며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비장한 맹세를 굳게 다지시였다.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력사의 그날 우리 수령님께서 포평나루터에서 결연히 내디디신 힘찬 걸음은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한 성스러운 항일대전으로 이어져 조국해방의 새봄을 불러왔으며 인민의 념원을 꽃피우는 창조와 건설의 길로 줄기차게 이어져 이 땅에 사회주의강국을 일떠세운것이다.

그렇다.

혁명의 천리길은 우리 혁명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영원무궁한 김일성,김정일조선의 래일과 잇닿아있는 빛나는 로정이며 그 로정은 또 한분의 천하제일명장이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계시여 주체혁명의 최후승리를 앞당기는 힘찬 보폭의 메아리를 끝없이 울리고있다.

본사기자 김일권
본사기자 강철남
(현지에서 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