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2월 23일 로동신문

 

론평

령토강탈을 노린 비렬한 광대극

 

일본은 해마다 2월 22일이 되면 시마네현에서 《다께시마(독도)의 날》행사라는것을 벌려놓군 한다.일본정부는 시마네현을 내세워 2005년에 《다께시마의 날》이라는것을 정해놓고 그 다음해부터 년례적인 광대극을 펼쳐놓고있다.일제가 《시마네현고시》 제40호를 발포하여 우리 나라의 독도를 일본 시마네현에 《편입》시킨 1905년 2월 22일을 잊지 않는다는것이다.때문에 《다께시마의 날》행사는 한줌도 안되는 일본반동들이 썩은 물의 싸그쟁이들처럼 오구구 모여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넉두리를 늘어놓는것으로 일관된 비렬한 광대극이다.다른 나라의 령토를 강탈하는데 이골이 난 강도들만이 펼쳐놓을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놀음이다.

일본이 《독도령유권》을 주장하는 그따위 황당한 광대극을 벌린다고 하여 우리 나라 신성불가침의 고유한 령토인 독도가 일본령토로 바뀌여질수는 없다.일본반동들의 책동은 오히려 세상사람들의 비난과 조소만을 자아내고 일본이야말로 매우 파렴치한 나라임을 드러내보일뿐이다.

일본의 《독도령유권》주장이 얼마나 부당한가 하는것은 일본국내에서 발굴된 력사자료들이 보여주고있다.

몇해전 남조선의 한 교수가 일본륙군성 참모국이 1877년에 제작한 《대일본전도》를 일본에서 입수하여 처음으로 공개한 일이 있었다.그 지도에는 일본령토전체가 자세하게 그려져있다.그런데 독도만은 그려져있지 않다.왜냐하면 독도가 일본땅이 아니기때문이다.

1899년 일본륙지측량부가 20만분의 1의 크기로 만든 지도의 구역일람표에도 독도가 명기되여있지 않다.

1876년 일본해군성이 편찬한 《조선동해안도》,일본수로국이 편찬한 《환영수로지》와 《조선수로지》를 비롯하여 1905년까지 나온 많은 지도들도 독도를 조선령역안에 포함시키였다.

모든 사실은 독도가 우리 나라의 주권이 당당히 행사되는 조선의 신성한 령토라는것을 당시 일본자체가 인정하고있었다는것을 말해준다.

지난날 독도에 대한 임대청원을 한 일본인도 독도를 조선령토로 인정하고있었다.1903년부터 독도수역에서 비법적인 물개잡이에 종사한 나까이 요사부로가 직접 쓴 《사업경영개요》에 의하면 그는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물개잡이독점권을 얻기 위해 《리양꼬섬(독도의 유럽식명칭)을 조선령토로 믿고 동국정부(즉 조선봉건왕조)에 임대청원할 결심》을 가졌으며 이로부터 1904년에 수도에 찾아가 《그 섬이 울릉도에 부속된 조선의 령유라고 생각하여 장차 통감부(조선봉건왕조)에 가서 할바가 있지 않을가 하여 상경하였다.》고 하였다.

나까이가 독도의 《무주지》설을 주장하게 하고 독도의 임대청원을 《리양꼬섬 령토편입 및 임대청원》으로 바꾸도록 꼬드긴것은 일제의 해군성이였다.

로일전쟁과 관련하여 조선동해상에 망루와 해저전기선설치사업을 추진하고있던 일제의 해군성은 나까이의 청원을 독도강점의 꿈을 이룰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나까이를 내세워 독도의 《무주지》설을 주장하도록 하였다.그후 일본내각이 나까이의 청원을 승인하였고 그에 따라 시마네현청이 1905년에 《시마네현고시》 제40호라는것을 조작발포하여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시키는 책동을 벌렸던것이다.1905년이라고 하면 일제가 우리 나라를 식민지로 전락시킨 해였다.이것은 일제가 조선강점정책실현의 한 고리로서 우리 나라의 독도를 강탈하려고 날뛰였다는것을 말해준다.

국제법상 령토취득의 기본원칙들에 비추어보아도 일본의 《독도령유권》주장은 참으로 부당하다.독도에 대하여 《무주지선점》이 이루어진것은 벌써 512년이였다.당시 울릉도와 독도를 령역으로 하는 조선인계통의 우산국이 신라에 의하여 통합됨으로써 우리 나라는 독도에 대한 완전한 령유권을 가지게 되였다.또한 1900년에 우리 나라 봉건왕조는 《칙령 제41호》를 공포하여 독도에 대한 령유권을 재삼 선포하였다.반면에 일본은 1905년에야 강도적방법으로 《독도령유권》을 주장해나섰다.그리고 주인없는 땅을 자기 령토에 편입시킬 때에 응당 린접국가에 사전협의와 조회를 요구하고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게 되여있는 관례적인 원칙도 지키지 않았다.

일본은 오가사와라섬을 자기의 령유로 할 때 미국,영국 등과 몇차례 협의했고 유럽 12개 나라들에 이 섬에 대한 일본의 관리를 통보하였다고 한다.그러나 일본의 《독도편입》과 관련해서는 린접국인 조선봉건왕조는 물론이고 다른 나라들과도 사전협의조차 하지 않았으며 더우기 사후통보도 하지 않았다.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일본은 1898년 7월에 오가사와라의 무인도 미나미도리섬의 도꾜부소속을 결정했을 때 도꾜부고시를 《요미우리신붕》과 《미야꼬신붕》 등 중앙신문들에 게재했지만 독도의 《시마네현편입》만은 일본의 104개 신문들중 단 1개 신문에도 싣지 않았다.한 력사가가 《시마네현고시》 제40호의 게재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시마네현도서관에 《독도편입》에 관한 고시원본을 찾으니 도서관으로부터 유감스럽게도 그 호수는 《루락되여있다.》는 회답만 받았다고 한다.

실태는 바로 이러하다.일본이 떠드는 《독도편입》에 관한 《시마네현고시》 제40호는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유령에 불과하다.정부의 지령에 따라 만들어진 이 협잡문건은 기껏해야 몇명의 관리들이 열람한것으로 그친것이였다.

일제가 독도의 《시마네현편입》을 조선봉건왕조에 통지한것은 《을사5조약》을 날조한 후 4개월이 지나서였다.외교권을 일제에게 빼앗긴 조선봉건왕조가 어디에도 항의할수 없다는것을 면밀히 타산한 교활한 술책이였다.

일본이 독도를 강탈하고 실질적으로 지배할수 있은 기간은 지난 세기 전반기 우리 나라를 군사적으로 강점하고 식민지통치를 실시한 때뿐이다.

일제의 패망과 함께 일본은 우리 나라의 모든 령토에 대한 식민지통치권을 완전히 상실하였다.제2차 세계대전시기 반파쑈세력이였던 련합국측은 사실상 일제의 다른 나라 강점을 불법비법으로 인정하였으며 일제가 강탈하였던 섬들을 해당 나라들에 전부 넘겨줄데 대하여 법적으로 규제하였다.

보다싶이 력사자료들이나 국제법적원칙들,일제패망후 취해진 국제적조치들 등을 놓고보아도 일본의 《독도령유권》주장은 령토강탈야망이 골수에 찬 날강도의 황당무계한 궤변에 불과하다.

《시마네현고시》 제40호를 도적고양이처럼 슬그머니 조작한 일본이 현시기에 와서 《다께시마의 날》행사라는것을 년례적으로 벌려놓고있는것은 독도가 일본땅이라는것을 적극 여론화하여 앞으로 독도를 무력으로 강탈할수 있는 유리한 국제적환경을 마련하자는데 그 흉심이 있다.

오늘의 시대는 일본과 같이 령토강탈과 해외침략에 환장한자들이 함부로 날뛸수 없는 시대이다.일본반동들은 변천된 시대를 똑똑히 보아야 한다.

독도는 반만년의 유구한 우리 민족사와 더불어 한치도 떼여놓을수 없고 그 누구도 감히 넘겨다볼수 없는 조선의 신성한 령토이다.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이 력사적사실은 영원히 달라지지 않을것이다.

일본반동지배층은 실현불가능한 령토강탈야망실현에 발광할것이 아니라 죄많은 과거부터 깨끗이 청산하는데 선차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것이다.

리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