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1월 30일 로동신문
조선로동계급의 영예를 지켜 한생을 빛내인 강선땅의 천리마기수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 전망현대화연구실
경애하는 《조선혁명은 하늘이 주는 신비한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편단심 당을 따르고 옹위하는 영웅적 이 세상에 근로하는 계급이 생겨난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수천년세월 그 어느 계급도 받아안지 못한 최상최대의 영광을 안고 사는 로동계급이 있다. 세계가 우러르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품속에서 나라의 맏아들로 자라난 계급,조국과 혁명이 바라는것이라면 무엇이든 마음먹은대로 만들어내는 기적의 창조자들에게 우리 당은 영웅적 지난날 시대와 력사밖에 밀려나 버림받던 로동자들을 혁명의 핵심부대로 내세워주시고 조국의 억센 기둥으로 키워주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손길아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조선로동계급의 기수,선구자의 영예를 떨쳐왔던가.진응원,길확실,김필환,김유봉… 재가루날리는 페허우에 사회주의를 일떠세우던 그날로부터 수소탄의 장쾌한 폭음이 천지를 진감하는 오늘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 어버이수령님들의 사랑과 믿음이 어려있는 위대하고 신성한 계급의 영예를 지켜 생명이 다하는 마지막순간까지 대오의 앞장에서 내달린 참된 인간전형들속에는 우리 나라 첫 천리마기수들중의 한사람인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 전망현대화연구실 실장이였던
전기로는 나의 심장
주체48(1959)년 3월 우리 나라에서 첫 천리마작업반이 태여났다. 온 나라 인민이 첫 천리마선구자들을 끝없는 찬탄과 선망속에 바라보았다. 천리마휘장을 가슴에 번쩍이며 시대의 상상봉에 오른 강선의 진응원작업반원들,바로 그속에 허인환동무도 있었다. 꿈만 같았다.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강선제강소 1강철직장(당시) 용해공으로 배치받던 한해전만 하여도 전기로앞에 다가서기를 주저하였던 허인환동무였다. 황금빛쇠물이 출렁이고 무수한 불꽃이 흩날리는 황홀한 풍경,눈처럼 희디흰 방열복을 입고 하나와 같은 률동으로 마치 춤을 추듯이 생석회를 퍼넣는 용해공들,이것이 책상물림의 20살 애젊은 청년의 상상속에 비껴든 전기로의 모습이였다. 랑만적인 상상에 비해볼 때 현실은 너무나도 엄청난 차이로 그를 놀래웠다. 전기로에서 울려나오는 고압전류흐르는 소리는 참으로 요란하였다.쇠물은 눈부신 백광을 뿜으며 무섭게 사품쳤으며 용해장에 흩날리는 불보라는 쇠물남비에서 무시로 튀여나오는 쇠물방울들이였다. 때없이 룡트림하며 세찬 고열을 내뿜는 전기로,보통 7~8㎏의 원료가 담긴 부삽을 들고 화점크기만 한 장입구를 향하여 달려나가기를 몇백몇천번,삽시에 온몸이 땀으로 화락하니 젖어들었다.더우기 웃몸에서 솟아나는 땀이 고스란히 아래도리를 적셔놓아 바지가 허벅다리에 붙어돌아갈 때면 피부가 쓰리여났다.일을 끝내면 물먹은 솜처럼 작업장바닥에 주저앉아 일어설념을 못했다. 용해공의 첫걸음을 힘겹게 떼던 날들에 한생의 추억으로 남을 일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허인환동무가 용해공으로 일한지 얼마 안되였을 때였다. 밤교대작업을 위해 직장으로 출근했던 허인환동무가 갑자기 몸이 아프다면서 휴가를 신청한적이 있었다.가는 길에 병원에 들려 꼭 약을 타가지고 가라는 진응원반장의 근심어린 당부에 얼굴을 숙이며 용해장을 나서는 허인환동무의 발걸음은 가볍지 못했다.장입해야 할 원료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전기로앞에서 분주히 오가는 작업반원들의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그는 합숙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이 되여 직장으로 출근하던 허인환동무는 제강소정문에서 류다른 행렬과 마주쳤다.파철이 든 손수레를 끌고 제강소로 들어서는 녀인들의 모습이였다.그들이 끌고 가는 수레채에 데룽데룽 매달린것은 남편들에게 가져가는 밥곽이 분명했다.아마도 강냉이밥에 나물찬이나 된장 한숟갈이 전부였을 그 밥곽… 순간 허인환동무는 꼬들꼬들 마른 강냉이밥을 물에 말아먹으며 밤새 30t이 훨씬 넘는 원료들을 로에 장입했을 작업반원들의 모습이 보이는것만 같았다.그때까지만 하여도 전기로의 천정이 밀페되여있어 모든 원료를 삽이나 손으로 던져넣어야 했던것이다. 불과 10명도 안되는 작업반에서 한사람,한사람이 차지하는 몫이 얼마나 크고 자기가 빠지면 그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만한 작업부담을 주겠는가.지금쯤은 교대를 마치고 또 파철을 선별하고있을 작업반원들을 생각하니 마음속에 큼직한 쇠덩어리가 들어앉은것만 같았다. 그길로 진응원반장을 찾아간 허인환동무는 몸이 어떤가고 묻는 그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로앞에 산처럼 쌓여있는 원료들을 퍼넣을 생각에 눈앞이 아찔해지고 두려운 생각까지 들어 몸이 아프다고 했다는 그의 솔직한 고백을 들은 진응원반장은 빙그레 웃으며 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며칠후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진응원반장이 허인환동무를 따로 조용히 휴계실로 불렀다.그는 허인환동무더러 웃옷을 벗으라고 하더니 길다란 수건을 그의 허리에 매여주었다. 《이걸 허리에 매면 웃몸의 땀이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을게요.일하다가 수건이 젖으면 다시 풀어서 땀을 짜내라구.》 베개잇을 뜯어 만든것이 분명한 그 수건을 허리에 바싹 조여맨 허인환동무는 뜨거운것을 삼켰다.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크나큰 믿음을 지켜 1년 열두달을 불뿜는 전기로와 함께 사는 진응원동무의 진정이 사무쳐왔던것이다. 《반장동지,제 다시는 전기로앞을 뜨지 않겠습니다.》 그때부터 허인환동무는 작업반원들과 함께 늘 불앞에서 살았다. 작업을 마치면 신발바닥이 닳도록 제강소구내를 뛰여다니며 원료들을 확보하고 기술학습을 했으며 다른 작업반의 로보수도 도와주었다.그러다가 시간이 있으면 휴계실 긴걸상에 앉아 말뚝잠으로 눈을 붙이고는 또다시 교대작업을 나가고. 이 시절의 말뚝잠버릇이 몸에 배여 먼 후날 갓 시집온 며느리가 앉은자리에서 잠을 자는 시아버지를 보고 깜짝 놀란적도 있었다. 허인환동무는 이렇게 용해공의 첫걸음을 떼였고 온 나라가 손꼽아 기다리던 첫 천리마기수의 한사람,진짜배기로동계급이 되였다. 로동계급,그들은 끓는 쇠물처럼 뜨거운 심장을 지닌 사람들이였고 눈부신 백열빛으로 본태를 그대로 드러내는 쇠물처럼 가식이 없고 변심을 모르는 사람들이였다. 당과 수령을 받드는 심장이 식으면,그 마음에 티가 앉으면 로동계급이라고 말할수 없다고 허인환동무는 생각했다. 그는 첫 천리마기수의 영예를 지니던 잊지 못할 그날에 가슴속에 스스로 간직한 삶의 이 지론을 한번도 잊어본적이 없었다. 첫 천리마작업반의 영예를 떨치며 강선제강소(당시)가 5개년인민경제발전계획을 2년이나 앞당겨 수행하는데 크게 기여한 작업반원들과 함께 허인환동무는 날마다 성장했다.비록 작업반의 막냉이였지만 바로 천리마기수,조선로동계급의 기수라는 긍지가 허인환동무를 끊임없는 혁신에로 추동하여주었다. 이 나날에 허인환동무는 강선공업대학을 졸업하고 책임기사를 거쳐 강철생산을 책임진 강철직장 종합직장장으로 성장하였으며 인생의 황혼기에도 전망현대화연구실 실장으로 정력에 넘쳐 일하였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을 용해공이라고 생각하였다. 심장이 뛰여야 온몸에 피가 흐르듯이 전기로가 돌아야 온 나라에 부흥의 혈맥이 흐른다는 그의 소박한 인생철학은 전기로예열법과 진동식바닥다짐법,새로운 원료에 의한 합금철생산방법을 비롯한 수많은 기술혁신안들에 그대로 어려있다. 지금도 강선의 로동자들과 기술자들은 고난의 시기 전기로의 숨결을 지켜 간난신고하던 허인환동무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어느해 여름이였다. 삼복의 숨막히는 더위가 아지랑이를 피워올리던 어느날 강선땅의 유명한 할딱고개로 무거운 배낭을 지고 힘겹게 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 강철직장 종합직장장으로 일하던 허인환동무와 공업시험연구소의 연구사들이였다.땀에 푹 절은 그들이 거친 숨을 헐떡이며 올리막길로 힘겹게 올라가는데 부피큰 짐들을 손달구지에 싣고 고개길을 내려오던 두 녀인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한달째 저 고생을 하는구만.》 《저 돌배낭에서 뭐가 나오겠다고 저리도 극성인지…》 그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내리막길로 총총히 사라지는 녀인들을 돌아보던 한 연구사가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듯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젠장,이거야 어디 맥이 풀려서…》 그통에 다른 연구사들도 걸음을 멈추고 맹랑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허인환동무와 연구사들이 무겁게 지고 가던것은 그 지방에 흔한 도자기원료였다. 모든것이 어렵고 부족했던 그때 기업소에는 고령토와 규사와 같이 먼곳에서 실어오던 국내산원료마저 고갈되기 시작했다.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대로 금속공업의 주체화를 실현하지 못해 콕스와 중유에 매여있는것만도 가슴아픈 일인데 우리 나라에 있는 원료마저 끌어들이지 못해 심장이 저려드는것만 같았던 허인환동무는 거듭되는 사색끝에 강선지방에 흔한 도자기원료로 고령토와 규사를 대신할것을 결심하였다. 하지만 근 8t에 달하는 시험용원료들을 30리밖에서,그것도 불과 몇사람이 등짐으로 날라온다는것이 간단치 않았다. 지친 기색이 완연한 연구사들에게 휴식구령을 내린 허인환동무는 집에서 안해가 준비해준 남새빵을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연구사들과 함께 맹물에 빵을 씹으며 고개밑으로 멀어지는 녀인들을 내려다보던 허인환동무가 누구에게라없이 말하였다. 《글쎄,올리막길보다야 내리막길이 한결 쉽겠지.하지만 천리마고삐를 틀어잡은 우리가 땅으로 곤두박질하면 무슨 꼴이 되겠소.》 어딘가 모르게 롱조가 다분한 그 이야기를 듣고 젊은 연구사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직장장동지는 나이도 많고 몸도 여느 사람들같지 않은데 힘들지 않습니까.》 그 말에 허인환동무의 눈빛이 추연해졌다. 《나야 우리 수령님 덕에 죽음의 고개를 넘어선 사람이 아닌가.》 순간 온 강선땅이 잊지 못해하는 뜨거운 추억이 허인환동무와 연구사들의 마음속에 흘러들었다. 못 잊을 주체79(1990)년 8월 나라일에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천리마대고조시기 자신과 함께 일한 일군들가운데 심하게 앓는 동무들이 있다는데 금속공업부문과 보건부문의 일군들이 시급히 강선에 내려가 사죄를 하고 치료대책도 세우도록 해주신 어버이수령님, 그리하여 강선땅이 생겨 처음 보는 뜻깊은 사죄모임이 이곳 로동계급의 눈물속에 열리였고 진응원영웅을 비롯한 천리마시대 기수들과 오랜 로동자들에 대한 집중검진과 치료가 해마다 정기적으로 진행되게 되였다. 한뉘 쇠물을 끓여온 평범한 로동자들을 자신과 함께 일한 일군들이라고 높이 내세워주시며 육친의 정을 부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속에 중병으로 생사기로에서 헤매던 허인환동무는 기적적으로 소생할수 있었던것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지켜주신 목숨이 붙어있는 한 전기로를 죽인다는건 말도 안돼.》 비상한 각오를 안고 울리는 허인환동무의 이야기는 연구사들에게 커다란 힘과 숭고한 자각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그들은 시험생산에 필요한 원료를 전부 등짐으로 날라왔고 피타는 노력끝에 샤모트벽돌을 대신할수 있는 새형의 벽돌을 만들어냄으로써 긴장한 내화물문제를 푸는데 기여하였으며 규소철생산에도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때 허인환동무의 나이는 60살을 눈앞에 둔 때였다.흔히 쇠를 녹이는 사람들은 쉰고개를 넘으면 맥이 진한다고 한다. 그런 나이에 무거운 돌배낭을 지고 할딱고개를 앞장에서 오르던 허인환동무의 가슴속에는 전기로가 죽으면 내 심장이 얼어붙고 조국의 숨결이 멎는다는 사생결단의 의지가 꽉 차있었다. 그런 의지의 힘으로 허인환동무는 강철공업의 정수인 초고전력전기로를 자체의 힘과 기술로 일떠세울 때에도 전망현대화연구실 실장으로서 진지한 탐구와 사색을 기울이며 우리 식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갔다. 로의 위치와 크기를 기업소의 조건에 맞게 합리적으로 정하며 우리 나라의 전력조건에 맞는 변압기를 설계하는 문제,수입전극이 아니라 우리의 전극을 리용하며 복잡한 생산환경속에서도 내화물의 침식과 전력손실을 방지하기 위한 수많은 문제들을 풀어나갔다. 주체97(2008)년 12월 24일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를 찾아오신 위대한 령도자 그때로부터 두해가 지난 주체99(2010)년 4월 허인환동무는 영예의 51년전 그날 자신과 함께 천리마휘장을 수여받던 어제날의 작업반원들이 곁에 서있는것만 같았다. 통강냉이밥에 된장을 먹으면서도 전기로앞을 떠나지 않았으며 고열에 방열복이 타드는 로안에도 주저없이 뛰여들고 때로는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친 수많은 강철전사들의 모습이 비껴들었다. 무엇때문에 그들은 강철을 위하여,전기로를 위하여 삶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왔던가. 전기로는 바로 그들의 심장이였다. 쉬임없이 쇠물을 끓여 어머니조국에 부흥의 숨결을 더해주는 전기로처럼 마지막 피 한방울 다할 때까지 어머니조국과 운명의 숨결을 같이한 애국자들,그들이 못다 바친 충정,못다 이룬 참뜻이 허인환동무의 가슴속에 쇠물처럼 뜨겁게 흘러들었다. 그렇다.허인환동무의 심장속에는 피가 아니라 그보다 몇천몇만배 더 뜨거운 쇠물이 끓고있었다. 20대 애젊은 청춘시절에 충정의 쇠물을 품어안고 70고령의 황혼기까지 어느 한시도 식지 않고 세차게 끓어번진 허인환동무의 심장은 바로 그가 한생토록 조국의 운명처럼 간직하고 지켜온 강선의 전기로였다.
뜨겁고 순결한 붉은 쇠물
지난해 4월 어느날 대동강반을 따라 시원하게 뻗어나간 도로로 천리마구역을 떠나 온천군으로 가는 려객뻐스가 달리고있었다. 뻐스안에 촘촘히 앉아있는 사람들속에는 동지들과 가족들의 권고에 못이겨 료양소로 가는 허인환동무도 있었다. 기업소의 일군들에게 한마디 비쳤더라면 승용차를 타고 편안히 갔으련만 허인환동무는 소문없이 조용히 강선을 떠났던것이다. 색날은 려행용가방을 가슴에 안은채 옆에 서있는 사람에게 불편한대로 함께 앉자며 자기 자리를 조여주는 백발의 로인이 다름아닌 우리 나라의 첫 천리마기수이며 위대한 장군님께 크나큰 기쁨을 드린 너무나도 소박하고 평범한 모습이였다. 그것은 허인환동무의 한생의 모습이기도 하였다. 한생에 그토록 많은 쇠물을 부어내고 그토록 많은 공로를 세운 그였건만 자그마한 특전과 특혜도 바람이 없이 한생을 묵묵히 바쳐온 참되고 아름다운 인간이 바로 허인환동무였다. 지금도 허인환동무의 안해 최금희녀성은 그와 결혼하여 첫 살림을 펴던 때를 영원히 잊을수 없다고 한다. 그때는 허인환동무가 2중천리마기수의 영예를 받아안은 1960년대초였다. 가슴에 천리마휘장을 단 천리마기수라면 뻐스안에서도 서로마다 자리를 권하고 식당이나 리발소에서도 우선적으로 봉사해주며 영웅처럼 존대해주던 그 시절에 2중천리마기수와 결혼하게 된 최금희녀성의 긍지는 대단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서도 당장은 집이 없으니 당분간 기다리라 하고는 제 혼자 합숙으로 다시 들어간 허인환동무는 거의 1년이 지나서야 집이 해결되였다는 소식을 보내여왔다.이제는 보금자리가 생겼다는 기쁨을 안고 찾아가보니 그것은 제강소구내의 어느 한 건물에 곁달린 창고를 살림방으로 개조한것이였다. 1년내내 습기가 배여나오는 담벽은 랭기를 풍겼고 누기가 찬 집안엔 불이 잘 들지 않아 늘쌍 내굴이 차있었다. 겨울이 시작되기 바쁘게 태여난지 몇달밖에 안된 아들까지 손에 동상을 입었다. 친정집에 가서 구해온 꿀을 아들애의 손에 발라 석탄불에 쬐여주던 최금희녀성은 며칠만에 집에 들어서는 남편에게 사정했다. 《당신이야 2중천리마기수가 아니예요. 이제라도 당위원회에 찾아가 집문제를 말해보세요.아무러면…》 《여보!》 버럭 화를 내려던 허인환동무는 동상입은 아들의 손을 꼭 쥐더니 마음을 눅잦히고 자기의 심정을 토로했다. 지금 온 제강소가 한토막의 강재라도 더 내자고 배고픔도 추위도 모두 참으면서 일하고있다.살림집이 부족해서 진응원영웅도 자기 집에 동거를 들였는데 내가 나라를 위해 뭘 크게 한 일이 있다고 손을 내민단 말인가.우리 조금만 더 견디자.나라의 강철기둥부터 든든히 세우면 집은 저절로 생길것이다. 가정보다 먼저 제강소를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하는 결곡한 마음이 어린 남편의 말은 현실로 되였다.나라에서는 그들부부에게 아담한 살림집을 배정해주었으며 제강소당위원회에서는 생활에 불편이 있을세라 깊은 관심을 돌려주었다.그 모든것이 제강소에 찾아오실 때마다 쇠물보다 먼저 사람을 보아야 한다시며 용해공들의 생활을 잘 돌봐주라고 하시던 어버이수령님의 간곡한 당부에 따른것이라는것을 알았을 때 뜨거운 눈물을 흘린 그들부부였다. 받아안는 사랑이 커갈수록 나라의 맏아들로서의 본분을 다해갈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한생토록 지켜야 할 그 본분에 변함없이 충실했던 허인환동무였기에 아들딸 세 남매의 결혼식에 모두 지각하는 잊지 못할 추억도 남기였다. 맏아들인 허영길동무의 결혼식날이였다. 너무나도 일이 바빠 짬을 내지 못한 허인환동무가 뒤늦게 집으로 달려와보니 기다리기에 지친 가족들이 사진을 찍고 큰상을 헐고난 뒤였다.상을 다시 차리고보니 큰상에 올려놓았던 희귀한 과일이며 당과류들을 이웃들에 나누어준 뒤여서 어설프기 그지없었다.할수없이 몇가지 음식들을 올려놓은 큰상앞에서 다시 사진을 찍었지만 그나마도 허인환동무는 작업복차림이였다. 딸이 시집갈 때도,막내아들이 장가갈 때도 허인환동무는 꼭같은 작업복을 입고 뒤늦게 나타나 사진을 찍었다.사진을 찍고서는 제 몸의 귀중한것을 떨구어두고 온듯 또다시 기업소로 달려나갔다. 지금도 사진첩에 붙어있는 석장의 결혼사진을 볼 때마다 허인환동무의 세 남매는 눈굽을 적시군 한다. 한생 전기로를 심장에 안고 살아온 아버지,너무도 일밖에 모르는 아버지여서 70돐 생일상도 기업소의 책임일군들이 주관해서야 받지 않았던가.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이삭처럼 나이가 들수록,해놓은 일이 많을수록 더욱 고지식해지고 더욱 완강해지며 더욱 투철해지는것이 허인환동무의 성격이고 기질이였다. 8년전 12월 위대한 장군님께서 강선땅을 다녀가신 때로부터 얼마후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를 현지지도하시는 장군님의 영상을 수록한 기록영화가 텔레비죤으로 방영되였다. 기업소의 전체 종업원들이 커다란 감격과 흥분속에 기록영화를 시청하고난 뒤 강태웅동무를 비롯한 전망현대화연구실의 연구사들이 허인환동무에게 말했다. 실장동무도 그날 위대한 장군님을 한자리에 모시고있었는데 어째서 기념사진을 찍는 화면외에는 얼마 비치지 않았는가,장군님 가까이에 조금만 더 다가섰더라면 력사에 길이 남을 화폭에 얼굴을 남겼겠는데 참 아쉽게 되였다고. 그때 허인환동무는 무엇이라고 대답했던가. 꿈에도 그리던 위대한 장군님곁으로 한발자국이라도 더 다가가고싶었다.하지만 너무나도 수척해지신 장군님을 뵙는 순간 선뜻 그이곁으로 다가설수 없었다.강철생산도 추켜세우지 못하고 강철공업의 현대화도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한데 무슨 낯으로 장군님앞에 나선단 말인가.나처럼 구실 못하는 전사들이 있어 장군님 로고가 날이 갈수록 커만 간다고 생각하니 얼굴조차 들기 힘들었다. 마디마디에 눈물이 돋는 그의 대답을 들으며 사람들은 자신들의 심장에 물어보았다. 하나의 자그마한 성과를,그나마도 뒤늦게야 내놓고도 당에 큰 기쁨을 드리게 되였다고 너무나도 쉽사리 자부했던적은 없었던가.만약 나자신이 그런 영광의 자리에 섰더라면 한걸음한걸음에 그토록 깨끗하고 순결한 량심과 의리를 씨앗처럼 묻을수 있었겠는가를. 그후 위대한 장군님의 현지지도과업을 관철하기 위하여 제강공정에서 주체철의 비중을 높이기 위한 연구과제를 스스로 맡아안고 자신의 전공지식과는 거리가 먼 제철분야에 대한 피타는 연구를 심화시켜나가는 허인환동무의 모습은 당에 대한 충정도,높은 실력도 모두 참된 량심에 뿌리를 두어야 진실하고 공고한 인생의 재부로 된다는것을 가르쳐주었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관철을 위하여 낮과 밤이 따로없이 심장을 불태우던 허인환동무는 지난해 8월 자신이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뜻밖의 진단을 받았다.이따금 심한 아픔이 올 때마다 수술을 받으면 나아지겠지 하고 안심했던 그것이 불치의 병이라는것을 알았을 때 땅이 꺼져내리는것만 같았다.병원에 갔다와서도 온종일 말이 없는 그에게 자식들이 위로하려고 하자 허인환동무는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을 관철하자면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시간이 너무나도 모자라는게 안타까와서 그런다.》 이런 말을 남기고 일터로 나간 허인환동무는 고온공기연소기술을 도입한 선재압연가열로를 당창건 70돐전으로 일떠세우기 위한 전투를 초인간적인 의지로 벌려나갔다. 살을 저미는것 같은 아픔이 엄습할 때에도 신음 한번 내지 않았으며 식은땀으로 온몸을 적시면서도 날씨가 더워 그런다고 말하군 하였다. 너무도 강한 의지로 자신의 몸상태를 감추다나니 함께 일하는 연구사들도 그가 한두해정도는 얼마든지 견딜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허인환동무의 생은 마지막고비에 이르고있었다. 당창건 70돐을 눈앞에 둔 10월 8일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에서는 새로 건설한 선재압연가열로에 대한 시운전을 진행하게 되였다. 이날 아침 허인환동무는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심한 아픔이 치밀어오르는 상태였지만 시운전현장에 꼭 나가봐야 한다면서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몸으로는 한걸음도 걷지 못한다고 자식들이 눈물을 흘리며 만류하자 허인환동무는 안타까운 어조로 말했다. 《래일이 무슨 날인지 잊었니.우리 수령님께서 강선을 처음으로 찾으신지 일흔돐이 되는 날이 아니냐.걸어서 못 가면 기여서라도 가야 해.》 모두가 깜짝 놀랐다. 생명의 마지막불꽃이 타들어가는 그 시각에조차 수령님 생각으로 심장을 끓이는 로동계급의 참된 진정이 자식들의 마음을 통채로 울렸다. 잠시후 당위원회 책임일군이 보내온 승용차가 도착하였고 그 차를 타고 허인환동무는 마지막출근길에 올랐다. 정문을 통과한 승용차가 전망현대화연구실이 있는 청사앞에 이르렀을 때 허인환동무는 이제는 좀 걷고싶다면서 차에서 내렸다.그리고는 연구사 현순하동무와 함께 시운전이 진행될 압연직장으로 향했다. 57년간이라는 기나긴 세월 걷고걸은 낯익은 구내길,이제는 눈을 감고도 갈수 있는 그 길을 처음으로 걷는듯 허인환동무는 길옆에 서있는 건물들을 하나하나 눈여겨보았다. 진응원영웅과 첫 인연을 맺었던 강철직장이며 기술신비주의,보수주의를 12만t의 강편으로 밀어버린 분괴압연직장,자력갱생만이 살길이라는 진리를 안고 건설한 가스발생로직장… 한생의 넋과 체취가 어린 그 모든것을 정에 겨운 눈길로 더듬어보며 허인환동무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여느때같으면 10분이내에 가닿을 길을 걸음마다 치밀어오르는 아픔을 참으며 30분나마 걸어가는 그의 온몸은 땀으로 젖어들었다.힘들게 걸음을 옮기는 허인환동무를 현순하동무가 부축하려고 했으나 그는 거절하였다. 《나야 강철을 만들던 사람이 아닌가.내 절대로 넘어지지 않을테니 마음놓소.》 그리고는 애써 태연한 기색을 지으며 시운전현장으로 들어섰다. 수많은 사람들의 긴장한 눈길속에 드디여 시운전이 시작되였다. 세찬 불길을 내뿜는 가열로의 여러곳을 다시금 살펴보고 푹 익은 강괴들을 지켜보는 허인환동무의 눈가에 쇠물빛이 이글거렸다.강괴에서 뿜어나오는 눈부신 백광이 그의 눈가에 맺힌 눈물속에 비쳐들었던것이다. 성공의 희열이 안아온 눈물이였다. 기쁨에 겨워 어쩔줄 모르는 사람들을 미소속에 바라보던 허인환동무는 조용히 압연직장을 나섰다. 얼마후 집으로 돌아온 허인환동무는 자리에 쓰러졌다.지금껏 생명을 견지하고있던 마지막탕개가 풀려나갔던것이다. 혼미해지는 의식속에 그는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을 모시고 찍은 기념사진들을 바라보았다.이름없던 자신을 우리 나라의 첫 천리마기수로 키워주시고 영원히 안겨살고싶은 어버이의 품을 자기의 기억속에 뚜렷이 새겨안고 가려는듯 전기로와 함께 바쳐온 인생의 모든 영광이 응축되여있는 기념사진들을 하염없이 우러르던 허인환동무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들인 허영길동무가 의식을 잃은 아버지의 손을 잡았을 때 그 손은 굳게 쥐여져있었다. 한생토록 온넋과 심혈을 바쳐온 강철덩어리마냥 억세게 틀어잡은 허인환동무의 주먹우에 쇠물처럼 뜨거운 아들의 눈물이 점점이 떨어져내렸다. 의식을 잃기 전에 허인환동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수 없다. 다만 아버지에 대한 걱정으로 눈물흘리는 자식들에게 어버이수령님의 첫 현지지도기념일을 상기시켜주던 그의 목소리에서 우리는 피끓는 심장을 위대한 수령님들과 당의 품에 잇고 살아온 오랜 로동계급의 백옥같은 량심과 천리마세대가 물려준 충정과 의리의 전통을 강선땅의 후손들이 70년,700년 아니 영원토록 이어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당부를 받아안을수 있는것이다. 천수백℃의 고열속에서 쇠물은 더욱 순결해지고 눈부신 빛을 뿌린다. 허인환동무의 심장속에 간직된 첫 천리마기수의 량심은 이렇듯 쇠물과 같은것이다. 우리 당을 따르는 길에 시련이 겹쌓이고 고난이 막아설수록 더욱더 당의 손길을 꼭 부여잡고 걸어가는 량심,인생의 길에 겹쳐드는 정신육체적고통이 크면 클수록 더 깊이 당의 품,수령의 품에 안겨드는 이런 량심의 힘과 의지로 허인환동무는 한생토록 변함없이 천리마기수의 영예를 빛내여왔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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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수령이 안겨준 로동계급의 영예를 목숨처럼 간직하고 한생을 다 바쳐 지켜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선군시대 조선로동계급의 제일기수,전위투사가 될수 있다는것을 허인환동무는 자기의 한생을 통하여 보여주었다. 위대한 태양의 존함과 더불어 빛나는 영웅적 바로 이것을 목숨바쳐 지키는 길에서 천리마의 눈부신 기적도,수소탄보유의 력사적인 대업도 모두 이룩할수 있었다는것을 우리 로동계급은 당을 따라 걸어온 혁명의 천만리길에서 진리로 체득하였다. 그 진리를 안고 한사람의 기수가 쓰러지면 열,백,천사람이 그 기발을 이어받으며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돌격해나가는 총진군대오의 앞장에 우리 나라의 첫 천리마기수 허인환동무는 영원히 서있을것이다. 본사기자 승철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