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5(2016)년 2월 11일 로동신문

 

위대한 한평생은 오늘도 우리를 승리에로 부른다

2월 16일과 더불어 력사에 새겨진 불멸의 자욱을 더듬으며

 

여기에 하나의 자료가 있다.

《위대한 장군님께 세계 여러 나라와 국제기구,개별적인사들이 드린 훈장과 메달,명예칭호는 380여개에 달한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생전에 세계 170여개 나라에서 외국의 벗들로부터 3만 9 900여점의 선물을 받으시였는데 이것은 그이께서 10대의 중엽부터 시작하여 한생토록 매일과 같이 2점이상의 선물을 받으신것으로 된다.

지구의 곳곳에 그이의 존함을 모신 연구조직이 100여개나 결성되였고 그이의 고전적로작들은 190여개 나라에서 60여개 민족어로 출판되였다.새 세기에만도 180여개 나라에서 그이를 칭송한 위대성도서,시가작품,글이 집필발표되였다.…》

위대한 장군님을 우리 군대와 인민뿐아니라 세계 진보적인류가 이 행성의 운명과 미래를 맡긴 희세의 위인으로 끝없이 존경하고 흠모하여마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이다.

탁월한 사상리론가,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인민의 어버이로서 만민의 다함없는 칭송을 받으신 만고절세의 위인,

혁명의 붉은기를 높이 들고 강철의 의지와 초인간적인 정력으로 전인미답의 험난한 초행길을 헤쳐오신 위대한 혁명가의 빛나는 생애의 갈피갈피를 번지며 우리는 뜻깊은 2월 16일들에로 추억의 붓을 달린다.

 

* *

 

주체31(1942)년 2월 16일,

이날에 접어들면서 백두산지구에서는 전날까지도 사나왔던 강추위가 수그러들고 바람이 잠풍해지는 현상이 일어났다.이날 새벽 소백수기슭에서는 기온이 아주 높아져 날씨가 류례없이 온화해졌다.그날은 유난히도 해빛이 밝고 대기도 맑아졌다.자료에 의하면 이날 조선반도 전지역이 다 청명한 날씨였다는것이다.

백두대산줄기가 뻗어내린 삼천리지맥우에 백년래의 신비스러운 봄기운이 쾌청하게 감돌았던 력사의 그날로부터 시작된 위대한 장군님의 2만 5 500여일의 거룩한 생애에서 2월 16일은 불과 예순아홉번만 돌아왔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어린시절부터 백두산의 눈보라를 맞으시며 고생을 많이 하시고 한생토록 순간의 휴식도 없이 혁명의 길을 걸어오신 우리 장군님이십니다.장군님께서는 늘 인생이란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바치는 한생이라고,생의 시작이 아름다웠으면 생의 마감도 아름다워야 참된 인생이라고 하시면서 한생을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에 고스란히 바치시였으며 생의 마무리도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에서 하시였습니다.》

어느 갈피를 더듬어보아도 시작부터 마감까지 흰눈처럼 순결하고 불길처럼 열렬한 위대한 장군님의 한평생의 증견자들이 그 얼마이랴만 원화리,

너무도 귀에 익은 그 지명을 여기서 다시 외우는것은 그이께서 자신의 탄생일에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신 사연을 영원히 잊을수 없기때문이다.

주체58(1969)년 2월 16일,이날 아직 똑똑한 길도 나지 않았던 생눈길을 헤치시며 과수원언덕으로 오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마을전경을 굽어보시며 원화리가 천지개벽되였다고 못내 만족해하시였다.자신께서 이미 여러차례나 찾으시여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의 자욱이 어려있는 원화땅이 천지개벽되도록 지도해주신 헌신은 묻어두시고 이게 다 수령님의 은덕의 결과라고 하시던 위대한 장군님,

해가 서산마루에 기울어지고 쌀쌀한 랭기가 옷깃속으로 스며드는 저녁까지 이 언덕을 오랜 시간 거니시면서 농장에서 당면하게 해야 할 일들과 전망적인 과업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신 이야기를 오늘도 원화리사람들은 어제일처럼 잊지 못하고있다.

동무들은 오늘이 나의 생일이라고 나를 붙잡아놓으려고 하였지만 원래 나는 생일을 쇠지 않습니다,전사가 무슨 생일을 쇠겠습니까,수령님의 심려를 덜어드릴 일감을 찾아냈을 때가 나는 제일 즐겁고 기쁩니다라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도 도와주겠으니 힘을 합쳐 원화마을을 문화농촌의 본보기로 만들어 수령님께 꼭 기쁨을 드리자고 하시던 그날의 현지지도는 우리 혁명력사에 《원화리의 언덕길》이라는 혁명일화로 뜻깊게 새겨져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생일을 쇠지 않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신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였다.

주체52(1963)년 2월 16일,위대한 장군님께 대학생들은 검소하게나마 생일을 함께 쇠주셨으면 하는 청을 드리였었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동무들의 성의와 동지적사랑에 대하여 매우 고맙게 생각하지만 자신께서는 생일을 쇨수가 없다고 간곡히 만류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쳐오시지만 이날이때까지 아직 한번도 자신의 생일날을 쇠신적이 없으시였다고,수령님께서 나라의 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로고를 바쳐가고계시는데 내가 어떻게 생일을 쇨수 있겠는가고,우리는 어떻게 하면 위대한 수령님의 심려와 로고를 덜어드리고 수령님을 잠시라도 편히 모시겠는가,어떻게 하면 수령님의 은덕과 배려에 더 잘 보답하겠는가 하는 이 한가지만을 생각해야 한다고 하시며 수령님의 심려와 로고를 덜어드리는데 혁명전사의 참된 행복이 있다고 하시던 위대한 장군님,

이런 인생관,행복관을 지니시였기에 다음해인 1964년의 탄생일을 평양종합인쇄공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보내시였고 1966년의 탄생일은 우리 음악에 자기 인민을 위하고 자기 나라 혁명에 복무하는 참다운 넋을 심어주시면서 보내시였으며 격동속에 흘러간 1970년대의 첫 탄생일도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영화로 옮기는 사업을 지도하시면서 보내시였다.

순간도 쉬임없이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며 주체문학예술의 혁명적포성을 울려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위인상에 매혹되여 창작가,예술인들이 누를길 없는 진정을 담아 노래를 불러드린적이 있었다.

노을이 피여나는 이른아침에 인자하신 그 미소를 생각합니다 고요한 밤하늘에 별이 웃을 때 따사로운 그 사랑이 그립습니다… 이제나저제나 터치고싶었던 심장의 송가를 목메여 합창하는 전사들에게 누가 이런 노래를 지으라고 하였는가고 하시며 엄하게 꾸짖으시던 그이의 심중에 얼마나 숭고한것이 고패치고있었던가.

동무들이 이러면 안됩니다,나는 이렇게 하는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나도 수령님의 한 전사입니다,우리는 수령님에 대한 노래를 많이 지어야 합니다라고 하시던 격정의 순간은 다름아닌 2월의 탄생일이였다.

그이의 탄생일은 정말이지 혁명령도의 날과 달속에 례사롭게 흘러간 보통날이였다.

서른한번째 탄생일은 황해제철소(당시)의 자동화에 필요한 설비문제로 로고를 바치시고 예술인들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높은 정치적신임에 보답하도록 이끌어주시며 보내시였고 서른두번째 탄생일은 당사업,전국공업대회준비,당보의 사설과 론설,문학예술부문 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하시느라 말그대로 순간의 휴식도 없이 보내시였다.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10차전원회의가 진행되는 분망한 속에 맞으신 서른세번째 탄생일에는 조국통일을 위한 전략전술적방침을 밝혀주시고 속도전청년돌격대,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당시)사업을 지도해주신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혁명령도의 첫 시기부터 휴식날 한번 없이 어버이수령님을 받들어 조국과 인민을 위한 길에 모든것을 바쳐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우리 당과 국가,군대의 강화발전과 문학예술,출판보도 등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에 쌓아올리신 업적은 실로 전무후무한것이였다.

그 업적을 칭송하여 우리 군대와 인민은 주체65(1976)년 2월의 탄생일을 맞으며 위대한 장군님께 삼가 김일성훈장을 올리려 하였다.

사실 이 훈장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을 모신 최고훈장이 제정되였을 때 온 나라 군대와 인민의 한결같은 념원을 담아 위대한 장군님께 올리기로 한 김일성훈장 제1번이였다.그때 장군님께서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엄하게 책망하고 제지시키시여 무려 4년간이나 소중히 보관되여있던것이였다.

이런 사연깊은 훈장이건만 인민의 사랑과 신임을 받으면 그만이지 꼭 훈장을 받아야만 하는가고 굳이 만류하심으로써 훈장수여사업은 끝내 진행되지 못하였으며 이날도 그이께서는 황해남도사업을 지도하시는 등 보통날처럼 혁명시간을 보내시였다.이 훈장수여사업은 그때로부터 몇년세월이 더 흘러서야 진행되게 되였다.

가슴이 미여져온다.

주체의 찬란한 빛발로 진보적인류의 심장을 틀어잡으며 우리 조국이 걸어온 전환의 년대들에 소중히 묻혀있는 그이의 헌신의 자욱은 너무나 깊고깊은것이여서 눈에 보이는것보다 보이지 않는것이 더 많았다.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가 열린 주체69(1980)년,

자주와 정의의 기치를 높이 든 조선로동당의 불패의 단결과 위대한 향도적권위를 만방에 과시한 이해의 2월 16일,우리 장군님께서는 참으로 감회깊은 추억을 하시였다.10여년전 어버이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정식화하시기 위하여 자신께서 조용히 하신 사업을 처음으로 공개하신것이다.

나는 1966년 5월부터 1969년 7월까지 맑스와 엥겔스,레닌의 중요저서를 전면적으로 연구분석하고 재평가하였다.…

이렇게 시작되여 그때 자신께서 분석평가하신 선행고전들이 얼마나 많은가를,그 한건한건의 도서탐독에 바치셨던 피타는 노력을 회고하시는 그이의 추억은 한갈피한갈피가 격정없이 들을수 없는 사색과 로고의 자욱들이였다.

그때에는 정말 눈에 피발이 서는줄도 모르고 책을 읽었고 목이 쉬도록 토론하였다고 하시던 위대한 장군님,

보통사람들은 제목만 다 외워도 대단하다고 할수 있는 부피두터운 책들을 하나하나 해부학적으로 분석하시기 위하여 어떤 때는 간단한 표현을 놓고도 며칠동안 생각하고 어떤 표현은 몇달동안 생각해보았다고 하시니 그이께서 바치신 심혈이 과연 어떤것이였겠는가.

그 시기로 말하면 그이께서 참으로 긴장한 나날을 보내실 때였다.

우리 혁명발전의 중대한 계기로 된 조선로동당 제2차대표자회와 조선로동당 전원회의들이 련이어 진행되였고 당 제5차대회를 맞으며 7개년계획을 완수하기 위한 전인민적인 투쟁이 힘있게 벌어졌다.윁남전쟁에 발목이 잡혀있던 미제는 1967년 한해에만도 수십만의 자기편 병력과 수천대의 비행기를 잃고 허우적거리면서도 다음해 1월에는 감히 우리 공화국까지 넘겨다보면서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를 우리 령해에 들이밀었다.그것이 영웅적조선인민군 해병들에게 나포되자 때를 기다렸다는듯이 조선에서 또다시 새 전쟁의 불집을 일으키려고 마치 피를 본 승냥이마냥 미쳐날뛰였다.

바로 이런 시기에 혁명의 참모부에서 당사업을 지도하시면서 주체의 봉화가 온 누리를 물들이는 위대한 시대의 눈부신 광휘를 위하여 탄생일마저도 깡그리 바쳐 사색과 열정을 바치시였을 우리 장군님,

초인간적이라고밖에 볼수 없는 그 무한대의 헌신을 무슨 말로 다 형언할수 있으랴.

뜻깊은 회억과 더불어 흘러간 그날은 진정 탁월한 사상리론가,수령으로서 그이의 비범한 자질이 세인을 경탄시키는 천품과 함께 누구도 따를수 없는 그렇듯 상상초월의 비상한 노력과 열정의 결정체임을 심장으로 깨닫게 한 환희로운 순간이였다.

우리 장군님도 인간이시였다.

령도자이시기 전에 동지들이 있고 가정이 있으며 때로는 생활속에서 단란한 기쁨과 즐거움도 느끼셔야 할 인민의 아들이신것이다.

허나 그이의 하루하루는 시작부터 마감까지 오로지 수령님을 위한 생,조국과 인민을 위한 생의 련속이였다.

마흔번째 탄생일에 있은 이야기는 또 얼마나 뜨거운 사연을 안고있는가.

주체71(1982)년초 당중앙위원회로는 그해의 2월 16일을 성대히 경축할데 대한 열렬한 청원의 편지들이 그칠새없이 올라갔다.

이때에도 우리 장군님께서는 생일을 쇠지 않으려는것이 자신의 결심이니 그렇게 당원들과 인민들을 설복하라고,그러면 리해할것이라고 하시며 그 어떤 공식행사도 엄금하도록 하시였다.

그러나 태양의 빛을 받아 움터난 싹이 태양을 향하여 키돋움함을 어찌할수 없듯이 그 무엇으로써도 막을수 없는 천만군민의 념원을 담아 이해의 탄생일을 맞으면서는 우리 장군님께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해드릴수 있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막혔던 물목이 터진듯 온 강산에 격렬하게 굽이치는 위인칭송의 열풍을 헤아리시여 그이의 탄생일 점심시간에 간소한 연회를 마련하시였다.그리고 뜻깊은 연설을 하시였다.

원래 김정일동무는 자기의 생일을 쇠지 않겠다고 하였다.사실 그전에는 그의 생일을 쇤적이 없으며 그저 집에서 식사나 함께 나누었을뿐이다.그러나 이번에 나는 그의 생일을 꼭 쇠여야겠다고 생각하였다.나는 결코 부자간의 정이나 사랑에서가 아니라 혁명동지로서의 사랑과 정으로부터 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오늘 이렇게 간단히 동지들을 초대하였다.…

수백만 당원들이 당중앙위원회두리에 튼튼히 뭉친 우리 당의 통일단결을 깨뜨릴 힘은 이 세상에 없다고 하시며 우리 당을 이처럼 위력한 전투대오로 강화하고 불패의 통일단결을 이룩하게 한것은 김정일동지의 커다란 공로이라고,우리 조선로동당과 같이 전당이 하나의 사상의지로 통일단결되고 조직성과 규률성이 강한 혁명적당은 없다고 그렇듯 기쁨에 넘쳐 거듭거듭 외우신 어버이수령님,

김정일동지에 의하여 불패의 전투적대오로 강화발전된 우리 당의 통일단결을 축하하여 잔을 들자고 하시던 어버이수령님의 우렁우렁하신 연설은 장내를 감격의 파도로 설레이게 하였다.

간소하나 뜻이 깊었던 그 축하의 연회가 끝나자마자 우리 장군님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어디였던가.

장군님께서 또다시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신 어버이수령님께서 하신 교시가 가슴을 친다.

김정일동무는 이때까지 언제 한번 생일때 쉬여본적이 없다.생일에는 좀 쉬여서 일하라고 하면 더 많은 일을 하는것이 자기의 보람이고 휴식이라고 하면서 밤낮없이 일만 하였다.이날이때까지 그렇게만 살아온 그가 오늘이라고 그냥 쉬겠다고 하겠는가.…

오늘은 꼭 쉬게 하려고 했는데 쉬지 않는군이라고 혼자말씀처럼 뇌이시며 창밖을 바라보시던 어버이수령님의 가슴속에 얼마나 후더운것이 끓고있었으랴.

수령님의 축복,동지들과 인민들의 축하속에 편히 쉬시였어야 할 그 시간마저도 바치시여 찾으신 곳은 모란봉경기장(오늘의 김일성경기장)이였다.

모란봉경기장을 어버이수령님의 존함을 모신 경기장으로 훌륭히 완공하기 위하여 장군님께서 바치신 그날의 현지지도로고는 사람들속에 널리 알려져있다.

생의 시작부터 마감까지,이런 말을 우리는 흔히도 써왔다.

하지만 그 한마디에 담겨져있는 장군님의 한생은 너무도 눈물겨운것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하늘에 닿은 인민의 념원을 담아 친히 송시를 쓰시여 축복해주신 탄생 쉰돐이 되는 날에도 그이께서는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나는 이 송시의 구절구절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앞으로 혁명에 더 충실하겠다는것을 수령님께 전하여주기 바랍니다.…

백두의 천출위인을 우러러 터치는 만민의 흠모심이 하늘땅에 차고넘쳤던 그날에도 우리 장군님께서는 총련사업을 지도하시고 조국통일과 관련된 사업을 지도하시느라,인민들의 식생활문제때문에 마음쓰시느라,대외활동을 하시느라 편히 쉬지 못하시였다.

우리 장군님은 이런분이시였다.

이런분이시였기에 언제인가는 전력생산일면에만 치우치지 말고 로동자들의 생활에 항상 깊은 관심을 가지고 친부모의 심정으로 잘 돌봐주어야 한다고 하시며 청천강화력발전소 로동계급에게 따뜻한 사랑을 부어주시는것으로 탄생일을 보내시였고 때로는 상품포장사업과 관련한 지도사업으로,때로는 수도시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경공업부문사업을 지도하시며,때로는 인민생활을 높이기 위한 방향과 방도를 환히 밝혀주시며 탄생일을 보내시였다.

당과 군대,경제와 문화 어느 분야든지 령도사적의 갈피를 펼쳐보시라.그이의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받으며 탄생일을 보낸 일군들은 얼마였고 2월의 명절날 그이를 현지지도의 길에서 만나뵈온 사람들은 또 얼마이던가.

어버이수령님을 잃고 처음으로 맞이한 2월의 명절도 그이의 혁명시간은 금수산기념궁전(당시)건설장에서 흘렀으며 이날 우리의 병사들은 찬바람부는 험한 작업장에서 그이를 뵈옵고 감격의 눈물을 지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진함이 없고 변함이 없는 우리 장군님의 한평생은 이렇듯 력사가 알지 못하는것이다.

오늘도 나는 늘 하던대로 군인들을 만나보러 가겠습니다라고 하시며 이 나라의 첫 새벽문을 여시였고 오늘도 나는 군인들과 하루를 보냈습니다,군인들과 인민들을 위해 보내는것이 곧 나의 기쁨이고 바로 그런 날이 나의 명절입니다,내가 군인들과 인민들을 위해 살아야지 누구를 위해 살겠습니까라고 하시며 보람있게 보내신 하루를 돌이켜보시던 강행군의 밤,량강도에서 고기생산을 늘이는 문제,대홍단감자농사문제와 대홍단군에 가는 제대군인들의 살림집건설문제,청년들에 대한 교양사업문제,두벌농사문제,축산에서의 종자문제 등 순간도 쉬임없이 로고를 바쳐가신 사연깊은 그날은 그이께서 1990년대에 마지막으로 보내신 탄생일이였다.

달리는 사실수 없는분,달리는 높뛰지 않을 그이의 심장이였다.

사랑의 닭고기를 받아안은 로동자들이 좋아한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오늘은 정말 기쁜 날이라고,힘들더라도 이런 때면 일하는 보람을 느낀다고 하시던 날,얼마간만이라도 휴식하셨으면 하는 일군에게 고맙다고,인민을 위하여 우리 일을 더 잘하자고 고무해주시며 또다시 일감을 잡으시였던 날은 새 세기의 첫 탄생일이였다.

우리 인민들과 동지들은 올해 2월 16일을 크게 경축하려고 하였다고,그러나 나는 인민들을 푹 휴식시키기 위하여 될수록 국가적인 큰 행사들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고,그리고 내가 평양에 그냥 있으면 동무들이 여러모로 마음쓸것 같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며칠동안 여기에 와서 일하였다고 하시며 조용히 지방현지지도의 길에서 보내신 예순번째 탄생일,

아마도 사람들은 이날 하루에 우리 장군님께서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받으신 선물이 무려 660여점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너무도 가슴뜨거운 추억을 안고있는 이 력사의 자욱앞에 삼가 머리숙이지 않을수 없으리라.

수백리 눈보라길을 달려 최전연초소를 찾아주시고 자신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이 있으며 그들과 함께 있을 때가 제일 기쁘다고 하시며 전선에서 인민군장병들과 함께 보내신 예순한번째 탄생일의 이야기도 정녕 눈물없이 추억할수 없다.

인민들의 얼굴마다에 행복의 웃음이 활짝 피여나게 될 지상락원을 하루빨리 일떠세우기 위하여 래일 또 현지지도를 하러 떠나려고 한다고,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험한 길을 걷는것이 나에게는 락으로 된다고 하시며 우리 인민이 세상에 부럼없이 잘살게 될 래일을 향하여 자신께서는 기발을 들고 앞으로만 내달리겠다고 하시던 잊지 못할 력사의 그밤도 기억하시라 사람들이여,

그날은 우리 장군님께서 눈보라강행군길에서 맞고보내신 새 세기의 아홉번째 탄생일이였다.

그래서이시였던가.생이란 무엇인가 누가 물으면 우리는 대답하리라 마지막순간에 뒤돌아볼 때 웃으며 추억할 지난날이라는 노래를 그리도 사랑하시였음은.

아,붓을 달리고달려도 다 적을수 없는 2월 16일의 사연들이여,

민족대통운의 축복이 어리였던 소백수기슭의 2월의 새벽으로부터 12월의 인민행렬차의 눈물겨운 그 새벽까지 어버이장군님께서 탄생일마저 쉬지 않으시고 이 땅우에 남기신 진하디진한 헌신의 자욱을 어찌 몇마디의 이야기나 한두편의 글에 다 담을수 있으랴.

경애하는 원수님의 말씀이 다시금 심장에 사무쳐온다.

우리 장군님께서는 생신날도 언제 한번 편히 쉬지 않으시고 조국과 인민을 위한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였다고,그래서 자신께서는 장군님 탄생 70돐이 되는 2월 16일을 가장 뜻깊게 기념하려고 하였다고,생신날을 제대로 쇠신적이 없는 장군님께 70돐상이라도 차려드리였다면 이다지도 가슴이 아프지 않을것 같다고 하시던 12월의 절절하신 음성이여,

그 뜨거운 심중의 세계를 그리며 추억의 붓을 들었건만 우리는 장군님께서 인민의 마음속에 불멸의 정으로 새겨놓으신 성스러운 한평생을 다 노래하지 못하는 아쉬움에 젖어있다.

그러나 그이께서 2월의 년륜마다에 남기신 자욱들,그 못 잊을 날들에 터놓으신 심정만으로도 소리높이 말할수 있다.

태양의 빛과 열이 없으면 뭇생명도 없듯이 2월의 강산이 위인칭송의 송가로 끓고 조선의 날과 달들에 선군태양 만만세의 진정이 넘쳐흐르는것은 력사의 필연이다.

뿌리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말없이 자양을 주고 활력을 주며 거목을 묵묵히 떠이고 영원한 생명력을 담보해주는 뿌리를 떠나 아름다운 향기와 풍성한 열매를 생각할수 있겠는가.

시작부터 마감까지 한모습인 위대한 장군님의 순결한 한생이 굳건한 밑뿌리로 자리잡고있기에 대를 이어 우리 당은 불패의 통일단결과 백전백승만을 알고 우리 공화국은 언제나 백두산악처럼 존엄높고 강대하며 주체의 선군혁명위업은 소백수의 푸른 물결마냥 줄기차게 굽이치고있다.

해마다 2월이면 그이의 탄생일이 어김없이 찾아오듯이 그이의 한평생도 끝나지 않았다.

백두의 흰눈과 함께 인민의 품에 오셨던 그날처럼 순결한 모습으로,불길처럼 한몸을 바쳐오셨던 나날들처럼 열렬한 모습으로 붉은기높이 폭풍쳐 내달리는 위대한 김정은시대속에,그 품속에 자라나 승리와 영광만을 련면히 떨쳐가는 천만군민의 마음속에 언제나 함께 있을것이다.

위대한 김정일동지를 영원한 총비서로 높이 모신 조선로동당의 제7차대회가 열리는 뜻깊은 해의 탄생일을 앞두고 《광명성-4》호위성이 우주에 날아오른것은 위대한 선군태양의 영생에 대한 그 어떤 설명도 필요없는 조선의 증명이다.

사회주의문명국의 성공탑들이 나날이 솟구쳐오르고 자강력제일주의의 기개드높은 우리의 앞길에 백두산대국의 위대한 영상이 밝게 빛난다.

위대한 장군님의 한평생을 넋으로,힘으로,혈통으로 간직하고 경애하는 원수님 따라 나아가는 우리 군대와 인민은 도전이 겹쌓일수록 천백배 더 억세고 자신만만하게,더 용감하고 휘황하게 자기의 미래를 창조할것이다.

위대한 한평생을 최후의 승리에로 반드시 이어갈 천만군민의 심장은 2월과 더불어 더 붉게 탄다.

본사기자 리동찬